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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인왕산 석굴`천향암과 수성동계곡

인왕산 석굴`천향암과 수성동계곡

천향암의 천공을 통한 서울

지겨운 장마에 국지성폭우는 중남부지방을 수마(水魔)에 신음케 한다. 용케도 인구과밀지대인 수도권은 소강상태라 다행이다. 후덥지근한 날씨 탈출구를 생각하다 문득 인왕산 천향암(天香庵))이 떠올랐다. 재작년 여름 아내와 이삼일 피서했던 바위동굴이 생각나 우산 하나 달랑 들고 집을 나섰다. 경희궁 뒤에서 시작하는 한양도성길을 오른다.

석굴암화단에 수국이 만개했다

장마속이라 산책길손님도 뜸하다. 산성을 월담하는 능소화가 아직 화려하고 담벼락 숲에서 모가지를 내민 수국이 한창 때깔이 올랐다. 반시간쯤 오르자 도성 밖 범바위가 고갤 내밀고 인사를 한다. 장맛비에 씻겨 짙푸른 초목사이를 가르는 한양도성이 하얀 구렁이처럼 꿈틀대고, 백색의 도심은 남산타워위에 잿빛구름천막을 쳤다. 북악산 초록 숲이 경복궁을 휩쓸고 청와대지붕이 쪽배처럼 떠있다.

인왕산마루의 군시설
한양도성을 넘는 능소화

산성을 타고 오는 바람결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아파트를 빠져나오기 잘 했다. 매일 찾는 안산(鞍山)이 송신탑을 깃대처럼 세우고 바위주먹을 불끈 쥔 채 다가선다. 장마속의 서울은 새초롬한 얼굴로 시름을 시침이 땐다. 인왕정수배기 밑에서 인왕천약수터를 향한다. 지랄 맞을 급경사길이 덱`계단으로 깔끔하게 단장됐다. 약수 한 종지를 받아 마시고 석굴암을 향한다.

서울 사대문안을 향하는 한양도성, 멀리 남산타워가 보인다
백악산 아래 청와대지붕도 보이고~

인왕천약수를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선 ‘초정(椒井)은 인왕산 아래에 있으며, 목욕하면 병이 나았다. 효종조와 현종조에 모두 여기에 행차했다.’라고 기록했다. 경복궁에서 빡센 골짝 길을 행차한다는 것만으로도 치유됐지 싶다. 1.21사태 후 청와대경비를 했던 수방사경비단 소초(GOP)가 떠난 숲길 그대로라 원시 숲속을 헤치는 기분이다. 이 음침한 숲길엔 바위에 새긴 산신도 2점이 발견됐다.

인왕산 범바위
인왕산 철모바위

19세기작품으로 호랑이가 새겨진 건 여기가 호랑이굴이 많고, 산성밖엔 무당촌이 번성해서였지 싶다. 또한 바위굴초소도 있어 의시시하다. 숲속엔 뜬금없이 부처입상도 있는데 금빛가사마저 빛바래 스산했다. 석굴암은 거대한 바위굴이다. 바로 위에서 치마바윌 만드느라 바위들을 몽땅 밀쳐내는 통에 생긴 암자가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암튼 치마바위 밑의 설굴암은 한양중심지를 조망하는 천혜의 명당이다.

군부대(출입금지구역)

이 석굴암 바위틈에서 솟는 샘 줄기는 아주 가늘어 한참을 기다려야 한 종지를 받을 수 있는 영천(靈泉)이었다고 김상헌은 그의 <유서산기>에 기록했다. 김상헌은 그 영천을 받아 어머니 눈병을 낫게 하기 위해서 석굴암에 올랐는데 ‘샘물의 맛은 달착지근했으나 톡 쏘지는 않았고 차갑지도 않았다.’고도 했다. 주위 나무에 지전(紙錢)이 어지럽게 붙여있어 영험을 빌었던 기도처라고 했다.

약수가 솟는 바위는 암자법당이 되어 독경소리가 스님을 대신하나 싶다. 천향암은 우측의 다른 바위동굴에 있는데 눈에 띄지 않아 간과하기 싶다. 앞뒤가 터진 석굴은 비좁고 암벽이 물기를 짜내고 있어 기도처가 없다시피 한다. 바위에 앉아 천공(天空)의 변화를 감상하다보면 일심(一心)을 향하는 선계(禪界)에 드는데 선경(仙境)이 따로 없지 싶다. 재작년 여름의 <‘인왕산 석굴암, 천향암의 여름나기’><https://pepuppy.tistory.com/1084> 클릭해본다. 참 멋있고 별난 피서였다.

안산정상 뒤로 송신탑이~
인왕산정을 향하는 한양도성

천향암에서 재작년 여름 한 때를 소환해 흐뭇해하다 석굴암을 빠져나온다. 급강하계단이, 내려온 가파른 계단이 아슬아슬하다. 설굴암이 짜낸 바위틈새 물길이 수성동계곡을 이루고, 깊은 협곡위의 인왕산바위가 어우린 산수진경이 하 빼어나 조선의 왕족과 사대부, 중인들이 자주 찾아 아름다운 풍경에 흠뻑 빠지곤 했다. 유명한 겸재 정선과 추사 김정희가 수성동계곡을 그림과 시로 소개하고 권세가들이 보금자릴 텄다.

그 계곡을 향한다. 장마철이라 계곡물길도 힘찰 테다. 안평대군과 그를 따르던 문우들이 유유자적하던 수송동계곡이 복원돼 계곡물가에 서니 인왕산치마바위를 비롯한 바위마루가 훤히 보인다. 병자호란 때 주전파였다 청에 인질로 끌려간 김상헌을 비롯한 서인들의 놀이터였던 청풍계곡과 옥류동이 옛 때깔을 찾았다. 아까 김상헌이 어머니 눈병을 치료하러 찾았던 영천약수가 계곡돌다리 밑을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젤 오래된, 젤 큰 돌다리다. 그 돌다리근방에서 이맘때 비온 뒷날 75세의 정선(鄭敾)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그렸단다. 며칠이 걸렸을까? 돌다리는 그 정경을 기억하고 있을 터! 후덥지근한 장마 탈출을 한답시고 나선 인왕산행이 돌다리에서 정선의 산수화로 상상의 나래 짓까지 한다.     2023. 07. 17

인왕산정상과 석굴암 갈림길
▲인왕천 약수터까지의 급경사길은 덱`계단으로 단장했다▼
약수터쉼터
구멍바위
군부대 철수 뒤 공개된 산신도 2점. 인왕산호랑이도 보인다
석굴암가는 숲길은 태곳적 냄새가 난다
인적 끊긴 부처입상
석굴암 오르는 길은 흰 페인트점이 길잡이다
암굴초소
치마바위
석굴암
석굴암법당
석굴암 산신각
천향암 입구
천향암천공과 웅덩이의 데칼코마니
천향암 뒷문과 기도처
천향암낙수가 바위에 웅덩이를 만들고 이끼옷을 입혔다
천향암에서 조망한 서울
천향암에서 본 치마바위
석굴암 정문계단
석굴암은 입구부터 가파른 계단으로 이뤄졌다
토끼바위
▲수성동계곡, 인왕산 치마바위가 보인다▼
▲수성동계곡의 정자▼
▲수성동 통돌다리,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 된, 가장 긴 돌다리다▼
▲겸재 정선이 이 바위마당에서 인왕제색도를 그리지 않았을까?▼
겸재의 인왕제색도

# <https://pepuppy.tistory.com/1084>를 클릭하세요.  천향암의 신비에  더위를 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