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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성산(城山) & 재인폭포

성산(城山) & 재인폭포

▲재인폭포▼
재인폭포를 완상할 출렁다리

초하(初夏)의 6월이 빗장을 열자마자 재인폭포와 그 폭포를 생성시킨 성령산성의 성산등정에 나섰다. 어제 친구P의 제안으로 느닷없이 나선 산행인데 2년 전에 한 번 등정했던 성산이란 걸 재인폭포주차장에서 기억해 냈다. 그때도 나는 연천읍에서 재인폭포를 가기위한 마중물코스(?)로 택시기사님이 추천하여 얼떨결에 단행했던 산행이었는데, 오늘 또 뜬금없는 성산등정이 그날을 복기하는 재미가 솔깃했다.

한탄강
재인폭포 주상절리길

재인폭포주차장을 유채꽃밭이 에워쌌다. 계절이 한 템포 늦은 이채로움이 신선하다. 재인폭폴 한 바퀴 휘돈다. 길이100m, 너비30m, 높이18m의 재인폭포(才人瀑布)의 물줄기는 재작년그대로다. 출렁다리에서 조망하는 원형주상절리는 폭포 밑에서 서야 웅장함이 실감날 텐데~! 그때는 ‘출입금지’여서 오늘은 하산한 후 시간이 어찌될지 모르겠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소(龍沼) - 선녀탕물이 더 불어났나싶다.

용소-선녀탕
높이 18m, 폭30m, 길이100m의 재인폭포 주상절리 완상을 이번에도 놓쳤다

 선녀탕주변을 뽕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까맣게 익은 오디세례를 하고 있는데 선녀는 어딜 갔을꼬? 조선조 중엽, 여기서 비극으로 끝난 재인(才人)커플의 비련이 생각난다. 남사당패 줄타기고수 재인은 잘 생긴 산받이와 짝을 이뤄 공연했다. 근디 패거리 중에 곰뱅이가 산받이가 남장여인이란 걸 알아채고 덮치다가 재인한테 들켜 살해당한다. 순식간에 살인범이 된 재인은 산받이와 함께 도망쳐 동막골 남사당패에 끼어 은신했다.

재인폭포공원
오늘 등정한 성산은 저 산정 뒤에 숨어있다

남사당패엔 여성은 낄수가 없단 게 불문율이다. 줄타기고수 재인과 산받이의 유명세는 입소문 나서 연천사또 생일잔치공연에 초청된다. 사또가 뭔 기미를 알아채 산받이에게 혹심을 품고 음모를 꾸몄다. 재인이 폭포 위 줄타기성공을 하면 살인죄를 면케 해주겠다고-. 재인은 쾌락한다. 음흉한 사또는 재인이 밧줄타고 강 중앙에 오면 한 가닥만 남겨놓은 밧줄을 끊어 재인을 수장시키는 흉계를 관아졸병에게 사주했었다. 흉계를 모르는 재인이 밧줄을 타다 폭포 중앙에서 떨어져 죽었다.

공원쉼터
개망초,아카시,다래,나방,양귀비,붓꽃

연천사또가 신받이를 불러 감언이설과 회유로 꼬시면서 능욕하려하자 그녀는 혀를 깨물고 폭포에 뛰어들어 순절했다. 재인과 신받이의 익사사건 후 신관사또가 부임하고 다음날, 그 사또도 익사하는 불상사가 발생하여 사또 없는 고을이 된다. 그 후 장원급제한 젊은 선비가 자청하여 부임했는데, 부임첫날 밤 소복한 여인이 피눈물을 흘리며 꿈속에 나타나 사또에게 폭포 쪽을 가리키다 닭이 울자 사라지길 사흘 밤을 연속하는 거였다.

임도 끝의 숯골계곡쉼터에서 본격 산행 들머리

괴이하게 여긴 신관사또는 이방에게 폭포와 소(沼)를 수색케 하자 폭포 밑에서 쪽진 머리의 소복차림시신이 발견됐다. 변사체를 수습해보니 혀가 잘려있어 신원파악과 사인조사에 나섰다. 구관사또가 재인커플의 여인을 탐해 야기된 사건이란 걸 파악하여 조정에 장계올리고, 두 혼령의 진혼제를 열어 위무해주는 한편 천도제를 올려줬다.

놈은 바위와의 자리다툼 스트레스에 속이 타고 뭉개졌을 터!
멧돼지바위. 놈들의 똥덩이는 수시로 눈에 띈다. 놈들은 산님들에게 경고하는 듯 등산로갓길에 꼭 똥무덤을 만들었다, 여긴 우리들 영역이라고~!

그날 밤 재인커플의 혼령이 사또를 찾아와 목례를 하곤 승천한 후 고을은 평온을 되찾고 융성해졌다. 그래 선남선녀 재인커플이 익사한 폭포를 후세사람들은 ‘재인폭포’라 불렀다. 폭포물소리가 재인커플의 세레나데이길 염하면서 성산골짝으로 들어서 숲길을 헤친다. 엊그제 내린 빗발에 멱 감은 초목들이 한결 짙푸르다.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인사를 한다. 성산골은 야생화군락지다.

토토봉, 정상,재인폭포 분기점 삼거리

워낙 오지여선지 임도는 뚜렷한데 인적이 없다. 본격 숲길에 들자 두텁게 쌓인 낙엽이 발밑에서 부스럭대며 오감(五感)을 일깨우는 희열에 들게 한다. 인적 뜸한 완만한 오름의 숲길이 베푸는 숲 냄새와 적요(寂寥)는 산이 아니고선 체감할 수 없는 테라피의 명약이요 홀로산행의 특전(特典)이다. 얼굴을 간질대는 바람, 초록이파리사이를 기웃대는 햇살, 수없이 찢긴 파란하늘!

군 은패처의 폐허물

야생화 꽃술로 멱을 감곤 불나게 딴꽃을 찾아가는 꿀벌의 비상이 숲의 무대에서 펼쳐지는 유일한 박진감이라. 위~~잉! 하는 놈의 날갯짓에 야생화들의 유혹은 절정에 달한다. 태어나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생존의 의의와 비밀을 꿀벌한테서 배운다. 죽기 살기로 쏘다니다가 초록 잎에 엎드려 죽은 듯이 쉬고 있는 이름 모를 작은 나방한테서 쉼의 미학을 일깨운다.

폐타이어진지와 루트. 철수한 후 방기된 타이어가 산골짝에 널부러져 흉물이 됐다, 산불이라도 발생하면 불길화약고가 될 듯
토치카 창구멍인가?

성산 등산로는 인공구조물 없는 자연친화적이다. 게다가 이정표는 많다싶을 만큼 자주 있어 좋다. 활엽수 참나무가 주종을 이뤄 빼꼭해선지 표토는 낙엽이 두텁고, 그래 멧돼지가 많다는 걸 여기저기 배설물이 증명하고 있다. 하나 거슬리는 건 폐허화 된 군진지에서 방치한 폐타이어다. 보기도 역겹고 산불이 나면 어찌한다? 성산엔 방치된 군대훈련자취가 많아 을씨년스럽다.

5형제소나무, 덩치도,키도 비슷비슷 썩 잘 자랐다

성령산성으로 둘러싸인 성산일대는 공산군이 점령해오다 1954년 한국전 종전 후에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해 행정권이 수복됐단다. 조선시대 요업이 번창해서 독막(陶幕)으로 불리다가 ‘동막’으로 변음 되어 동막리가 되었던 오지였다. 병자호란 땐 연천현감 이창조가 주민들과 함께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기록도 전해지고 있다. 

바위가 놓아주질 않은 나무는 죽어서 두루미가 됐다

태실과 풍혈, 병풍`쌍둥이`남근바위와 수형이 멋진 소나무도 발길을 멈추게 한다. 드뎌 성산정상에 섰다. 북동쪽 누리를 파도치는 산릉과 연봉들이 엷은 안무를 걸치고 장대한 수묵화를 연출하며 병풍 치듯 휘둘렀다. 첩첩이 포갠 산릉골짝엔 한국동란을 전후한 피비린 나는 트라우마들이 켜켜이 쌓여있을 테다. 아까 등정 중에 마주친 군부대의 흔적들이 침묵속에 증명하고 있었다.

필자
산성정상에서 조망한 북동쪽 능선파도,

북쪽 끝 튀어나온 능선 뒤에 내가 두 번이나 등정했던 고대산이, 그 앞의 지장봉 줄기가 마루금을 이루고 사연 많은 철원산야는 그 뒤로 숨어있을 것이다. 서쪽 가까이 협곡 아래가 동막골이고 그 너머 군자산인가? 동막협곡을 태극 모양으로 흘러 한탄강에 보태지는 지류가 아미천일 것이다. 사방이 훤히 조망되는 산정이 꽤 넓기도 하여 성을 쌓고 보루를 만들어 요새화한 게 산성이라.

정상은 벤치를 마련해 멋진 오찬장을 제공했다
서북쪽 능선

산성은 적의 침략을 막기 위한 성이 아니라 주민들의 피신처를 만들기 위한 은신처로써의 성곽이었단다. 세 개의 봉우리를 잇는 성벽의 둘레는 약740m인데 오돌토돌한 네모난 자연석을 그대로 축조했던, 그 성벽의 잔해가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기왓장이나 토기그릇이 발견되고 우물터도 있었던 성령은 성산이란 이름을 낳게 함일 거란다.

성산정상 간이벤치에 P와 천상천하 유일 점심자릴 만들어 한갓진 풍류까지 탐하는 오찬의 짬을 즐겼다. 트레킹으로 안성맞춤인, 잘 다듬어진 등산로의 성산이 산님이 귀한 건 워낙 오지라 교통이 불편한 탓일 테다. 재인폭포를 찾아 온 여행객이 첩첩 포갠 성상을 등정할 염두를 못 낼 테다. 세 네 시간이면 족할 성산트레킹인데 말이다.

어떤 놈도 그럴테지만 세계 유일의 춤꾼이 된 소나무, 머~엉! 할 말이 떠오르질 않았다

하산은 제3등산로를 타고 토토봉을 향하다 1등산로를 통과하는 코스를 택했다. 2년 전 나는 토토봉을 등정했었는데 급살 맞게 빡센 바윗길의 토토봉정상이 새록새록 하다. 암튼 제1등산로도 트레킹의 진면목을 오롯이 즐길 수 있는 멋진 코스다. 줄곧 능선을 타면서 사방을 조망하고 더구나 암송의 연애질이 감칠맛 나서다.

삼거리갈림길
온전하게 버틴 성벽

나는 등산의 묘미 중에 소나무와 바위의 동거를 완상하면서 그들의 지난한 사랑(?)의 역사를 상상해 보는 재미와 상상의 나래를 으뜸으로 여긴다. 성산트레킹에서 암송의 연애질을 심심찮게 목도하게 된다. 놈들의 사랑행위를 야동 보듯 즐기느라 솔찬히 뭉그적대다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오늘도 재인폭포가 수억 년 동안 빚어놓은 주상절리를 가까이서 마주보지 못해 아쉬웠다. 뜬금없는 산행이 2년 전의 산행을 복기하는 실팍한 맛깔을 안겨줘 뿌듯했다. 성산은 트레킹의 진산이라.                2023. 06. 01

ㄲ군 비상작전 임도가 산을 넘는다
재인폭포 상류 군부대지역
성산이 몇백 년을 공들여 빚은 소나무들 앞에서 탄성을 지른다
제1등산로엔 바위를 붙잡아야 되는 스릴만점의 난코스를 종종 즐길 수가 있다
한탄강댐, 홍수조절용이란다
거북등 소나무도 발걸음을 붙잡고~!
재인폭포 공원 산책길
▲재인폭포 출렁다리▼
유채꽃이 한창이다
양귀비, 산나리, 부들레아
재인폭포~2등산로~3등산로~정상~3등산로~토토봉코스~1등산로~재인폭포 ; 검정선이 오늘의 코스

 

# 재인폭포, 성산, 토토봉 기행 (tistory.com)에서 2년 전 산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