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인폭포, 성산, 토토봉 기행
사진으로만 본 재인폭포를 가본다는 게 언제 적부터였던가? 승용차 이외의 대중교통사정이 안 좋다는 귀동냥 탓에 얼른 나서기가 뭣했다. 하여 성산과 토토봉 산행을 연계하여 재인폭폴 구경할 속셈으로 집을 나서 전철과 버스로 연천 읍까지는 일사천리(?)였다. 거기까지였다. 성산들머리 버스노선은 아예 없고 제인폭포엘 가는 버스는 가뭄에 콩 나듯 한다는데 그마져 불확실했다.
택시를 잡았다. 동막리 제3등산로가 젤 좋다고 기사님이 강추한다. 택시비8,700원을 지불하고 ‘해태의 집’을 성산들머리로 산행을 시작했다. 간밤에 소나기가 지나갔던지 수풀은 잔뜩 젖어있고 흐린 날씨는 여간 후덥지근하다. 좀은 빡센 인적 없는 고요한 숲길은 나의 숨소리와 발길소리와 스틱 짚는 불협화음뿐이다. 호젓해서 세상 만났다.
나의 발밑에 깔리는 무생물들의 엷은 파열음이 적막속의 나를 인식케 한다. 산행 중에 내가 젤 아끼고 즐기는 고요의 시간이다. 오롯이 나를 의식할 수 있어서다. 의식은 말초신경을 깨우고 오감을 열어 자연에 동화된다. 숲길의 고요가 좋은 건 고독한 산보자의 낭만이 새록새록 느껴져서다. 산세는 꽤나 가파르고 첩첩하다. 이마의 땀을 연신 훔처낸다.
궁예가 철원에 웅지를 틀며 여기 동막골에 전초성곽을 쌓았다고도 했다. 겹겹이 파도치는 산 능선이, 골짝에서 피어나는 안무가 어딘가에 요새가 있을 법하다. 성벽의 산 성산(城山)엔 궁예의 꿈보다 더 맛깔 나는 순애보(殉愛譜)가 성산자락에서 피어났다. 조선 중엽, 남사당패거리는 가장 인기 있는 예능인이었다. 만능재주꾼이면서도 천직(賤職)의 멍에를 짊어져 늘 배고픈 인생이기 십상이였다.
남사당패거리에 재인이란 줄타기 고수가 있었는데 그는 항상 잘 생긴 산받이와 공연했다. 그 산받이가 남장여인이란 걸 알아 챈 패거리 곰뱅이쇠가 혹심을 품고 강간하려다 재인한테 들켜 살해당한다. 얼떨결에 살인범이 된 재인은 산받이를 데리고 삼십육계 도주하여 이곳 동막골 남사당패에 정착했다. 남사당패엔 여성이 낄수 없단 불문율이 있다. 재인의 줄타기와 산받이는 유명세를 타 잔치마당에 초청공연이 많았다.
연천고을 사또 생일날, 잔치에 초대받은 재인패거리는 멋진 공연으로 사또의 칭찬을 받아 몇 차례 더 공연을 한다. 사단은 사또가 재인과 산받이의 비밀을 눈치 채고 산받이의 자태에 혹심을 품어 음모를 꾸미면서였다. 줄타기 명수인 재인을 죽이고 산받이를 품에 안을 계략으로 사또는 폭포 위의 줄타기를 제안한다. 무사히 폭포를 건너면 살인범죄를 면책해 주겠다고-.
재인은 흔쾌히 응한다. 살인범죄를 면하고 더구나 산받이와 떳떳한 부부로 살 수 있는데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운명의 날이 왔다. 재인은 폭포 위를 횡단하는 동아줄에 올라서 줄타기에 들었다. 폭포 중앙쯤에 도달했을 때 재인은 곡예 하듯 순간 격동하다 폭포 속으로 떨어져 죽는다. 사또가 매수한 노비가 미리 동아줄을 한 가닥만 남기고 끊어놓았다가 마져 끊어버린 탓이었다.
재인이 밧줄 타고 중앙에 이르면 마저 끊어 익사시키는 흉계였다. 익사시킨 후 음흉한 사또가 산받이를 불러 온갖 감언이설로 회유하며 능욕하려 들었다. 남편의 사인을 눈치 챈 산받이는 혀를 깨물고 폭포에 뛰어들어 순절했다. 비극적인 재인부부의 익사사건 후 신관사또가 부임하자마자 다음날 그 사또는 폭포에 빠져 익사체로 발견 되곤 했다. 하여 사또들이 부임을 기피하는 통에 사또 없는 고을이 된 판이었다.
그러다 과거시험이 시행되고 젊고 당찬 선비가 장원급제하자 임금은 그에게 의향을 물어 신관사또로 임명했다. 부임첫날 밤, 책을 읽고 있는데 소복한 여인이 피눈물을 흘리며 나타나 사또에게 폭포 쪽을 가리키다 닭이 울자 사라졌다. 소복한 여인은 사흘 밤을 연속 나타나 같은 행동을 하곤 사라진다. 괴이하게 여긴 신관사또는 이방에게 폭포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명한다.
폭포 소(沼)를 수색하자 폭포밑에서 소복차림에 쪽진 머리를 한 여자의 시신이 발견 됐다. 사또는 단순익사체로 여겨 장례를 치렀으나 어쩐 일인지 소복여인은 밤마다 나타나 눈물만 흘리는 게 아닌가! 예삿일이 아니다싶어 사또는 무덤속의 시체를 꺼내 자세히 살펴보니 혀가 잘려있고, 쪽진 머리와 소복은 남편의 상중에 피치 못할 일로 혀를 깨물고 투신자살한 게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들게했다.
사또는 변사체의 신원파악과 사인을 수소문했다. 맨 처음 신관사또가 부임하여 익사하기 전의 구관사또가 벌린 잔치 때 재인이란 남사당이 폭포위의 줄에서 떨어져 익사하고, 이어 여인이 자결한 사연을 알게 됐다. 여인의 시체가 발견된 곳 밑에서 남자의 부패돼지 않은 시신이 발견 됐고, 그 시신의 손아귀엔 칼로 끊은 밧줄이 쥐어있었다. 밧줄이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끊긴 타살이란 걸 알게 된 사또는 남편시신을 아내와 합장을 시켰다.
사또는 구관사또가 여인을 탐해 벌린 연쇄살인이란 걸 확신하고 그 죄상을 조정에 장계 올리는 한편 무당을 불러 진혼제를 열어 두 혼령을 위무해주는 천도제를 했다. 그날 밤 재인부부의 혼령이 사또를 찾아와 목례를 하곤 곧장 사라졌다. 비로써 재인부부 혼령은 승천했던 것이다. 그래 재인부부가 익사한 폭포를 후세사람들은 ‘재인폭포’라 부르게 됨이라.
사랑은 숭고하고 위대하다. 여인의 사랑은 더욱 더 그렇다. 사랑이 오롯할수록 비원의 깊이는 무한대일 것이다. 오늘의 재인폭포는 갈수기여선지 여렸다. 해도 폭포 소는 더없이 쪽빛이었다. 그 쪽빛 소에 가까이 가서 재인부부 영가(靈駕)를 볼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도 코로나19로 소의 접근 길을 차단돼 아쉬웠다. 현무암 주상절리가 유난히 오돌토돌한 채 폭포수의 보호벽으로 뽐내는데 가까이 가볼 수가 없다.
재인폭포 상단의 선녀탕이 명경 같다. 산받이 여인도 선녀로 하강하여 가끔 멱 감았을까? 그녀의 고운 자태를 상상해 본다. 재인폭포와 토토봉 잇는 등산로 3km(편도)는 육산과 골산이 연계된 아기자기한 멋과 난이도까지 갖췄다. 성산과 토토봉을 완주하며 뿌듯했던 건 등산로에 촘촘히 세운 이정표와 자연친화적인 등산로정비였다. 특히 데크`길이 전무였다. 처음 찾는 산님들도 안심산행을 담보한다. 연천군지자체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2021. 07. 08
#위 글은 '재인폭포 설화(문화콘텐츠닷컴)'를 참조 발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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