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봉산(柏峰山) & 묘적사(妙寂寺)
잎은 태양을 탐하려 검푸르듯
꽃은 하늘을 탐하려 곱게 치장한다
잎이 바람을 유혹하려는 건
꽃이 향기를 멀리 멀리 실어보내기 위함이라
그들의 처절한 몸부림이 절정에 달하는 6월
꽃대궁 속의 씨앗은 신비의 옷을 입는다
6월의 숲은 향기롭다, 아름답다
짙푸른 숲길은 우리들 영혼을 살찌운다
-<6월의 숲길>-
남양주시 평내호평역을 나설 때가 11시였다. 백봉산을 향한 약수터골짝에 들어서자 짙은 녹음은 고혹스런 향기로 나의 아드레날린을 자극한다. 조붓한 숲길에 버찌가 주근깨처럼 박히고 습한 기류엔 밤꽃향이 뭉클 베어 나의 오감을 벌렁대게 한다.
그토록 짙은 밤꽃 향기는 세 겹 포장 속에 씨알을 잉태시키는 꽃대궁의 입덧냄새인가! 밤꽃의 입덧냄새에 과부는 밤잠을 설친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음습한 골짝은 진저리나게 이어지고 골짝틈새 가장 낮은 곳은 양치식물 고비세상차지가 됐다. 고비는 몸뚱이 갈기갈기 찢어 한줄기 하늘을 탐한다.
놈의 햇빛 한 파장을 머금으려는 몸부림은 한편의 드라마다. 온갖 식물들이 포식하고 남은 여명(餘明)으로 저토록 탐스런 잎줄기를 꽃피운다는 건 예술이다. 6월의 산야는 초목의 절정일 것이다. 그래서 숲길은 더더욱 싱그럽고 풍요롭다. 쉼터가 있는 안부에 올라섰다. 갈참나무숲은 이따금씩 그럴싸한 소나무를 파수꾼처럼 세워 놨다. 놈들의 허우대가 수준급이라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기웃거리느라 놈들은 모두 훼훼 휘었다. 그렇게 춤추는 소나무에 눈길 뺏기다 정상에 섰다. 백봉산(柏峰山,589.9m)정의 기괴한 망루는 기필코 이래야만 하는지 갸우뚱하면서 올라섰다. 산정에 유별난 공작물을 설치한다는 발상에 박수칠 수 없는 앙금이 남는다. 사람의 손가락 모양을 형상화한 높이 6.5m의 데크`계단을 오르면 남양주시 전역이 눈앞에 펼쳐진다.
한강과 서울강남일대를 비롯한 하남의 검단산, 불암산, 수락산, 천마산, 호명산, 유명산, 청계산능선이 겹겹이 파도치는 파노라마식 뷰로 다가선다. 묘적산(妙寂山)을 얼토당토 않게 백봉산이라고 무단히 개명한 일제(日帝)의 음흉한 저의를 곱씹어봐야 한다. 일찍히 묘적산일대는 원효가 무술도량을 열어 화랑을 연마시키고, 조선조 땐 국왕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면서 남북군영을 세워 무과시험을 행하던 곳이다.
또한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켜 왜병을 무찌른 탓에 일제는 기가 꺾이는 상처의 트라우마가 깊었던지라 '묘적'이란 글자를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백봉산을 묘적산이란 본래의 이름으로 불러야 함이 아닐까? 묘적사를 향해 하산한다. 이정표엔 3km남짓이다. 비옥한 육산의 가파른 등산로는 인적이 뜸해선지 고요가 묘하리만치 낭창하다.
이따금 까마귀울음소리 이외는 쥐죽은 듯 묘적하다. 초행길인 내게 이정표마저 뜸하고, 볼품없는 참나무수종들이 빼곡해 전망마저 가려 적묘하기 이를 데 없다. 허나 6월의 풋풋한 초록이 뿜어내는 피톤치드에 멱감는 4시간여의 산행은 경쾌했다. 검푸른 숲의 미로 같은 등산로는 묘적사 좌측구석을 뚫고 사라진다. 거기에 아무런 표시도 없다. 사찰경내에 들어선다.
이젠 눈 감고도 알만한 길이다. 작년겨울 눈 폭탄 속에 눈밭의 강아지처럼 신났던 답사경험이 새록새록 해서다. 울퉁불퉁 천연목기둥의 ‘마하선실’이 보수공사로 어수선하고, 화장실엔 물이 안 나오고, 하얀옷 대신 초록옷을 걸쳤을 뿐인 묘적사는 6월이라서 더 젊어 보일까? 석굴암마당에 서서 눈 폭탄 뒤집어쓰던 작년겨울풍정을 차환해 산행의 행복에 빠져들었다. 2021. 0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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