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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수락산 - 명품바위 & 명사들

수락산 - 명품바위 & 명사(名士)

철모바위

초여름의 스콜인가? 날마다 한차례 소나기를 퍼붓더니 오늘은 아침부터 후덥지근하다. 낼부터 장마전선이 북상한단다. 이래저래 산행을 주저하다가 수락산을 향했다. 수락산은 인근의 북한산과 도봉산보다 산세는 작지만 수석(水石)의 아취는 더 빼어나다해서 수락산(水落山)이라고 명명했단다.

서계고택

수락,은류.옥류,금류폭포의 계곡과 불로정의 약수, 기암괴석의 영락대와 칠성대와 성인,미륵,향로봉의 청량한 바람을 일컬어 수락팔경을 품은 명산이라 했다. 수락계곡입구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의 고택이 있고 올 때마다 대문빗장을 걸었는데 오늘은 철재사립문을 살짝 열었다. 조심스레 정원을 향하는데 개짓는 소리가 요란하다.

수락계곡

관리인인 듯한 분에게 사진 몇 컷 찍겠다고 했더니 ‘사유지라 안 된다’며 손사래 친다. 잔디마당 정원에서 핸드폰을 꺼내 사진 찍자 개 두 마리가 달려들면서 앙앙대며 나를 내쫓는다. 얼른 두 컷 찍고 개를 향해 구애작전을 하는데 관리인은 멀거니 쳐다보고만 있다. 짓는 개보다 얄미운 건 그였다. 이 정황을 서계선생이 목도하면 뭐라 할꼬? 말끔히 정돈된 수락골짝을 향한다.

육각기둥의 궤산정 터와 아래 바위에 음각된 '석천동' '취승대' 

노강서원을 향하는 골짝바위엔 서계선생의 발자취가 역력히 묻어나는 곳이다. “아홉 길 높이의 산을 쌓는데 흙 한 삼태기가 모자라서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하라.”는 뜻을 내포한 궤산정을 지었다. 육각기둥에 육각지붕을 올린 궤산정은 친구들과 학문을 논하며 유유자적한 정자로 그 아래 바위에 ‘서계유거(西溪幽居)’ ‘석천동(石泉洞)’ ‘취승대(聚勝臺)’란 글자가 음각돼 있다.

노강서원 홍살문

노강서원 앞에 귀목 한 그루가 서있고, 사다리꼴로 다듬은 화강암초석이 있는데 박세당이 매월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청풍정지(淸風亭址)자리다. 정자 아래바위에 ‘수락동천(水落洞天)’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는데 매월당 친필이란다. 바로 건너편에 홍살문 뒤로 노강서원이 있다. 노강서원엔 비사(秘事)가 켜켜이 쌓여있다.

서계가 매월당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청풍정자(박스 그림)

노강서원(鷺江書院)은 숙종의 기사환국 때 인현왕후 폐위를 강력반대한 박세당의 차남 박태보(朴泰輔)의 위패를 봉안한 곳이다. 그는 피와 살이 벗겨지는 모진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진도유배 길에 오르자마자 노량진에서 36세로 절명했다. 6년 후 숙종은 그를 충신의 예우로 영의정에 추증하고 노량진에 풍계사(豊溪祠)를 세워 ‘鷺江’이란 사액을 하사했다.

코로나19로 빗장 건 석림사

수락산은 맑은 정기와 청정한 물길과 수려한 바위들이 사람들의 영혼을 고상하게 담금질시키는 명산이다. 수락산을 오롯하게 사랑하며 명산으로 회자되게 한 선지식자로는 매월당과 절친 홍유손(洪裕孫), 서거정(徐居正)과 서계일 것이다. 남효온(南孝溫)의 안내로 홍유손은 수락산에서 매월당과 첫 대면하는데 몇 십년지기처럼, 아니 오매불망 기다리던 연인처럼 살갑고 막힘이 없었다.

고래바위

김시습은 수락산 폭천(瀑泉)부근에 폭천정사(瀑泉亭舍)를 짓고 농사를 지으면서 유가(儒家),불가(佛家),제자백가서(諸子百家書) 등 5천 여 권의 서책을 섭렵하며 유유자적한 삶을 즐겼다고 그의 책<遊金鰲錄>에 적었다. 전국을 유람하면서 지은 2,200수가 넘는 시와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가 있다. 만장봉에 ‘매월당(梅月堂)’이라는 자신의 호를 붙인 정자를 짓고 10여년을 머물렀던 수락산선인 이였다.

데크길로 공사 중인 수락계곡

철저한 무소유자이며 자유인인 매월당은 사상가, 철학가, 종교인, 문학가, 여행가로 사상의 깊이와, 자유분방한 문장과 언행은 뭍 선비들의 부러움과 동경의 대상이었으며 삶의 귀감이 됐다. 남효온, 김일손 등의 청렴사림들의 우상(?)이었을 매월당을 나 역시 흠모하기에 여느 산보다 더 수락산을 사랑한다. 매월당의 발자국에 내 발자국을 포갠다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산행길이 된다.

석문바위

노동의 신성함을 예찬한 매월당은 허위허식의 권력자들을 비판하고 왕도정치의 이상형을 꿈꿨던 이상주의자였다. 평상시 ‘夢死老(몽사노)’ 즉, ‘꿈꾸다 죽은 늙은이’라고 스스로 불렀던 매월당은 1493년 부여 무량사에서 59세로 열반했다. 골짝 바위를 애무하며 흐르는 물소리가 여리고, 느린 물살이 고요마져 감싸안는다. 오감을 열어 숲의 청량기운을 채받는다. 이 산틋한 설렘을 어찌할꼬!

기차바위

근디 뜬금없는 발동기소리가 골짝을 뒤흔든다. 수락폭포등산로 조성공사였다. 데크 설치공사는 등산객을 위한다는 명분을 핑계 댄 지자체의 무식(?)한 폭거다. 매월당이나 서계한테 귀싸대기 맞기 딱인 졸속행정이란 생각이 든다. 기차바위 위의 천연 바위관망대를 데크로 덮을 까닭이 뭘까? 데크공작물 설치는 습지나 크레파스 건널목으로 족하다. 어떤 공작물설치도 산을 망가뜨리고, 자연을 훼손하는 염병할 짓거리다. 유치한 발상이 좋다고 너도나도 따라 흉내 내는 지자체는 바보짓거리란 걸 모르는가?

기차바위 암벽

수락산정상엔 음료와 술까지 파는 간이점포가 있다. 지자체가 바보짓 하는데 장사꾼이라고 점잖 뺄 처지인가? 그게 아니꼽고 더러워선지 창 바위엔 어느 산님이 하늘을 천정 삼아 오수에 들었다. 아니 태극기가 휘날리며 우는 소리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철모바위를 비롯한 명품바위들의 열병식을 따라 도솔봉을 밟고 학림사 갈림길에서 물개바위 쪽의 벽운동계곡을 따라 수락산역으로 하산키로 한다.

정상에 웬 가게?

독수리,철모,코끼리,하강,치마,배낭,물개바위를 사열하려면 서둘러야겠다. 오늘은 소나기 없는 대신 한여름 같은 폭염이 따갑다. 수시로 숲길을 흔드는 수락산 청정바람이 상쾌하다. 수락산의 바위들은 서울을 향하고 있어 이성계는 ‘한양수호산’이라고 했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매력 넘치는 명산이다. 6시 반엔 포`시즌에서 저녁식사약속이 있다고 아낸 아침에 내 뒤통수에 말총을 쐈었다. 뭉그적대고 싶은데 말이다.

2021. 07. 02

수락정상 창바위에서 와선 중인(?) 산님
정상에서 기차바위능선을 조망
독수리바위
두건 쓴 가면바윈가?
배낭바위
버섯바위
모자(母子)바위
물개바위?
거북바위
코끼리바위와  종바위
하강바위
삼각산과 도봉산 능선
치마바위
도솔봉
벽운동계곡
▲서계고택▼
노강서원
궤산정 터
빗장 건 석림사 담장에 능소화가 만개했다, 
석림사 종각
▲수락계곡 암벽잔도▼
수락폭포 데크공사
시루바위
바위관망대를 데크로 덮어쒸우는 자연훼손에 혈세낭비 공사발안자의 속셈은 뭘까?  
2014년도 올랐던 기차바위 사진
매월정
팽귄바위
수락정상-창문바위가 침대바위가 됐다
벽운동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