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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인왕산 천향암, 석굴암의 여름나기(1)

인왕산 천향암, 석굴암의 여름(1)

석굴암에서 조망한 서울, 중앙의 검정 숲은 경복궁과 창덕궁 일원

장마전선이 북상을 못한 채 서울`경인지방은 찜통더위가 폭서로 변이됐다. 덩달아 코로나19도 변이바이러스가 된 걸까? 서울의 금년여름은 무섭다. 엑서더스 할 탈출구도 묘연하다. 아내와 난 궁여지책으로 인왕산 천향암(天香庵)을 찾아 나섰다. 인적 뜸한 암자는 무서운 여름 한나절을 나기 안성맞춤일 것 같았다.

천향암의 우주는 동굴안 웅덩이에서 숨쉰다. 철 잃은 올챙이도 신바람을 내고~!

인왕산정상은 치마바위를 만드느라 쌓인 바위들을 쓸어내렸다. 골짝으로 떠밀리던 바위들이 300m고지에 석굴암과 천향암을 만들었다. 그 바위 숲 암자에 들어선 사찰은 치마바위보다 더 기똥차고 멋졌다. 그런데 연산군(1503년)은 사찰이 경복궁을 훤히 내려다본다는 트집을 잡아 절간과 민가까지 모두 헐어버리고 경수소(警守所)를 설치해 민간인 입산을 금지시켰다.

천향암 동굴의 이끼와 약수

도성을 감싼 지척의 인왕산은 먼발치의 오르지 못한 산이 되고 말았는데 설상가상으로 군사정권은 안보를 핑계로 철조망까지 쳤다. 해도 무장공비는 1.21사태를 터트렸고 1993년에 들어서 문민정부가 시민들에게 인왕산을 개방시켰다. 반공 메카시즘은 독재자들이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공작이었지 싶은 게다. 멀리서 봐도 바위산 인왕산은 멋들어지지만 속살 파고들며 체감하는 산세의 매력은 감탄을 연발케 한다.

천향암의 눈

자하문 근처에서 강희안은 <인왕산도>를 그렸고, 정선은 효자동쪽에서 <인왕제색도>를 그렸는데 비 온 뒤의 수려한 풍경은 어찌 표현할까! 그 두 그림 속에 치마바위 밑의 석굴암과 천향암도 녹아들었지 싶다. 울`부부는 피서지로 두 암자를 향했다. 인왕산약수터와 석굴암과 천향암은 치마바위 끝단에 보석처럼 박혀있다. 암자를 찾아가는 깊고 빡센 바위숲길은 철수한 군부대 흔적까지 남아 다소 을씨년스럽고 적요하다.

천향암 웅덩이의 비경과  창밖의 풍경

그래 산님들이 이 코스를 얼마나 사랑할 텐데 지자체는 무지막지하게 데크`계단을 깔아 놨다. 무학대사가 계시다면 치도곤을 쳤을 것이다. 34도를 넘나드는 날씨에 연신 땀을 훔치며 약수터를 거쳐 석굴암에 올라섰을 때 염불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고 있었다. 폭염속의 독경이 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아내와 나는 곧장 석굴암꽃길을 밟고 천향암을 찾아들었다. 서울시가지 위에 부~웅 뜬 암자 앞에서 아내가 연탄성이다.

석굴암 입구

기이한 바위굴 앞에서 조망하는 서울시가지는 보면 볼수록 멋진 수 십장의 사진으로 파노라마 된다. 삼각형 바위문 안의 천향암이 억겁의 세월동안 바위틈으로 짜내는 골수는 초록이끼 옷을 입혔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는 이끼웅덩일 만들었다. 그 낙수들이 모여 이룬 앙증맞은 웅덩인 자기(瓷器)예술품이며 자기그릇 속엔 우주가 있다. 숨쉬며 꿈틀대는 생명의 아름다움의 신비가 넋을 앗는다.

천향암은 앞 뒤로 삼각형 문이 있다. 천향암이란 붉은 글자 옆에 철쭉이 석부작이 됐다

파란 하늘과 흰 구름과 괴이한 바위와 바위에 기생하는 수풀과 고사목이 한 차원 높은 데칼코마니로 숨쉰다. 또한 차고 맑은 웅덩이 속엔 개구리가 연애한 씨- 철 잃은 올챙이떼가 춤을 추고 있다. 놈들은 좁쌀만 한 물방개가 헤엄치다 닿기라도 하면 기겁하여 도망치는 겁쟁이기도 하다. 며칠 후면 물방개는 올챙이의 왕성한 먹이가 될 판인데? 웅덩이는 생존경쟁의 우주다.

천향암 천정의 낙수가 바위를 뚫고 이끼 웅덩이를 만들었다

웅덩이 저만치 바위마당엔 개미의 행렬이 장관이다. 바위벽에서 낭떠러지까지 1m쯤의 거리를 뭘 하느라 그리도 바쁘게 내왕하며 궁금증을 유발케 하는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책<개미>가 떠올랐다. 놈들은 나를 무서울 게 없는 멍청하고 허우대만 큰 곰으로 여길 테다. 하여 거들떠 보지도 않고 제 할일에 매진한다. 그런 그들의 근면성이 사회적집단을 이뤄 1억4천여를 살아온지라 인간의 역사를 우습게 여길 터고.

천향암에서 조망한 남산타워 & 시내 중심지 

바위천정 하늘속에 뻗은 고사목에 까마귀가 날아와 망을 보고, 이름 모를 뱁새들이 동굴 속에 날아들어 이끼 둠벙에서 멱 감는다. 놈들도 원채 덥긴 한 모양인지 오후엔 수시로 물 장난질까지 친다. 울`부부도 놈들한테 한식구가 됐다. 하늘향기가 솟는다는 천향암의 하루는 그렇게 바삐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천향암의 세계를 탐닉하느라 한나절이 훌쩍 지나간다. 누구하나 찾는 이 없는 천향암에서 폭염을 잊었다. 자연속에 온전히 빠져든 하루였다. 

천향암 입구

아내는 낼 또 오잔다. 오후3시 무렵부턴 느닷없는 천등소리가 동굴암벽에 부딪쳤다. 햇볕이 쨍한데 천둥치다니? 호랑이가 장가를 가나? 서북쪽 하늘의 먹구름이 이쪽으로 마수를 뻗치고 있다. 신이 났다. 소나기 한마당 쏟아주면 좋겠다. 요즘은 국지적으로 퍼붓는 세찬 소나기와 혹서와 코로나19와 씨름하느라 지긋지긋한 여름철이라 여겼는데 그 생각을 까맣게 잊었다. 천향암은 울`부부에게 잠시나마 그 불안한 세상의 탈출구가 됐다.

천향암의 삼각 웅덩이. 데칼코마니는 각도에 따라 변화무쌍하다 

울`부부는 올여름 혹서를 피해 천향암으로의 엑서더스를 몇 번이나 할지 모르겠다. 아니 염천이 아니라도 자연에 동화되는 낭만을 즐기러 오자고 아내가 선수를 쳤다. 천향암입구에 <인왕산>이란 시 한 수가 걸려있다.         2021. 07. 15

천향암의 천공

인왕산

새벽공기 한아름 가슴에 안고 / 오백계단 하나둘 약수터 갈제 / 힘겨운 맥박소리 구슬땀 빚어 / 신성한 천향수에 갈증을 푸니 / 건강에 비결일세 천약수라네

천향암옆을 돌아 인왕을 보니 / 절묘한 암석들은 만물상인데 / 유순한 인왕봉은 현모양처요 / 만상이 신비스런 인왕산절경 / 경관이 수려하여 명산이라네

석굴암 독경소리 새벽이 오면 / 경건한 삼신불에 자애자비를 / 영험한 삼신전에 속죄를 빌며 / 저승의 극락왕생 축원을 하고 / 이승에 만사형통 기원할거나

                                  - 신미년(辛未年.1991년) 유월, 이영원(李永元) -

석굴암마당에서
석굴암의 불전
석굴암을 오르는 바위문
석굴암자를 오르는 산길의 부처입상
토치카
석굴암후문
석굴암~천향암의 꽃길
천향암입구, 좌측에 이영원의 시<인왕산>가 걸려있다
천향암에서 조망한 서울, 경복궁이 한 눈에 펼펴진다
서울중심부와 남산타워, 뒤 멀리 관악산
하늘과 구름과 고사목이 연출한 신비의 데칼코마니
천향암 약수와 이끼 못
천공의 고사목에 까마귀가 울더니 얼마쯤 후에 천둥소리와 먹구름이 몰려왔다
웅덩이가 비춰주는 그림구경으로 더위를 잊고~
▲석굴암 오르는 숲길의 암벽엔 다수의 조각상 있는데 호랑이가 등장한다. 그만큼 인왕산엔 호랑이가 많았다는 얘기▼
울`부부가 있는데 천향암 동굴 속 웅덩이에 새가 날아들어 더위를 식히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