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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포대능선 망월사 여름나기(3)

포대능선 망월사(望月寺) 여름나기(3)

폭염탈출 세 번째 산행으로 울`부부는 도봉산 망월사를 찾았다. 깊고 융숭한 원도봉계곡의 짙푸른 녹음과 바위골짝의 청정물길을 숨 쉬며 망월사를 오르는 빡센 산행은 폭서탈출의 별미일거라는 야무진 생각이 들어서였다. 특히 아내가 땀 오지게 짜내는 이열치열속의 망월사탐방을 꿈꿨다.

원도봉계곡 청정둠벙, 코로나19로 출입금지다

5년 전 탐방했던 망월사의 풍정이 넘 인상적이었단다. 글면서 정 더워서 못가면 청정웅덩이에 배낭 풀고 피서하면 된다고 말이다. 36°C를 웃돌 거라는 기상예보는 서울을 열섬으로 달굴 테다. 원도봉 탐방지원센터를 지나 계곡에 진입하는데 골짝물길은 찌질찌질 흐르고 그나마 출입금지 가이드라인을 빈틈없이 둘러쳤다.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현상이었다.

망월사등정길은 자연석으로 이뤄진 친환경 돌계단이라 좋다

출입금지구역 탓에 산님들 인적도 뜸하다. 폭서에, 코로나 팬데믹에 가만히 방콕이나 할 것이지 특별한 이유 없이 외출하는 자체가 잘못이란 세파다. 갈수 탓에 물소리가 없는데 어째 매미의 간드러진 세레나데도 없다. 작열하는 태양을 차단하는 녹음터널이 그나마 위안처다. 아내가 연신 땀을 훔쳐내면서 빡센 계단을 오른다.

원도봉계곡 숲은 태곳적 분위기를 돋운다

원도봉 계곡의 자연석계단은 끝까지 이어진다. 흙과 돌을 밟는 요철(凹凸)등산로는 건강에도 유익한 자연친화적인 산길이어서 참으로 좋다. 화학약품범벅 된 데크 길이 아니라 오염걱정 안 해도 될 수목과 물길이다. 덕재샘에서 목을 축이고 망월사를 향해 막바지 된비알을 오른다. 6년 전(2015.8.16) 벼락에 쓰러진 전나무그루터기에 이끼와 풀이 무성하다.

문주암, 이방인이 행선 중이었다

200여년을 수문장한 늠름하기 그지없는 참으로 아까운 놈이었는데~! 아내와 내가 망월사를 좋아하는 까닭은 무애도사 춘성(春城,1891~1977)스님의 선풍을 흠모해서다. 스님은 망월사주지로 거하며 절의 중흥을 이뤘고, 무소유의 삶은 수많은 일화를 남기셔 망월사는 스님의 발자취가 녹녹하다.

천중선원과 심전당 & 영산전을 오르는 통천문

명색이 주지인데 자신이 거할 주지방(住持房)한 칸도 없이 평생 일군 사찰을 훌훌 털고 나서면 끝인 자유인이었다. 스님한테 소유란 것은 거추장스런 애착 - 짐덩일 뿐 이였다. 어디 걸림이 없으니 대자유인-무애도인 이셨다. 춘성스님은 생전에 화장 후 사리도 챙기지 말고, 비도 세우지 말라고 유언했다.

천중선원, 춘성스님의 선풍이 녹녹이 베인 선방이다. 출입금지구역

더는 자신의 설법을 녹취하는 것도, 글자 한 자 남기는 것도 쓸데없는 짓이다, 라고 일갈하셨다. 수도승의 말과 글은 하나의 방편 일뿐 오직 참선정진 해야 한다는 선승이었다. 목침과 방석 하나가 침구의 전부였던 춘성스님은 이불은 잠귀신이라 공부(참선)할 아까운 시간을 빼앗는다, 고 모든 이불을 불태웠다. 하여 망월사 선방엔 이불이 없었다.

천봉선사탑비에서 올려다 본 단애 위의 영산전

"이놈들아 목침 하나 갖고 자다가, 거기서 굴러 떨어지면 바로 일어나서 정진을 해야지, 잠을 자려고 작정하고 달려든 놈들아, 이 도둑놈아, 밥 도둑놈아!" 라고 일갈 했다고 화계사주지 수경스님은 회억하셨다. 하지만 가난하고 안쓰러운 자를 보면 수중에 있는 것 모두를, 심지어 옷까지 벗어 주곤 했단다. 철저한 무소유의 무애선사였다.

통천문을 통과 천중선원을 향하는 돌계단

국내사찰 중 제일 높은 포대능선의 선방엔 스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선방이 출입금지구역이라 먼발치에서 스님을 그려봤지만 넓은 마당과 적요한 분위기는 화강암바위들이 호위하고 있어 절로 숙연케 하는 명당이다. 대웅전 동쪽의 토끼 모양의 바위와 남쪽의 달 모양의 월봉(月峰)이 있어 토끼가 달을 바라보는 모습의 터라 망월사라 했단다.

관음전의 금강문

신라 선덕여왕(639년)때 창건하여 1066년 혜거국사가 중창한 후 열네 번이나 전란과 화마를 당한 양기가 드센 절이란다. 유명한 석간수를 병에 채우고 벼랑 끝의 넓고 오밀조밀 경내를 거닐며 탁 트인 선경에 더위를 잊었다. 요사채 무위당(無爲堂)에 망월사(望月寺)란 현판이 걸려있는데 1891년 가을에 원세개가 쓴 글자란다.

망월사 현판글씨는 청의 원세개 친필이란다

‘주한사자원세개(駐韓使者袁世凱) 광서 신미중추지월(光緖 辛未仲秋之月)’이라는 현판이 그걸 말하고 있다. 청나라 말기 조선을 도우러 온 원세개가 한껏 거드름을 피우며 조정을 쥐락펴락 했었는데 망월사 현판까지 썼다니 여간 궁금했다. 아내와 나는 자재암 뒤 둠벙 바위에 자릴 폈다. 피서처로 오후 한나절을 보내기 그만한 유토피아도 없겠지 싶었다.

범종각에 올라서 감상하는 사위의 파노라마는 절경이다

청정둠벙에서 가재 세 마리를 발견해 놈들과 한참을 놀아났다. 놈들은 긴 더듬이로 물 밖을 감촉하자마자 잠수하는, 아니 수면 위에 어른대는 나의 그림자에 도망치는 대단한 촉수안테나를 소유한 생명체였다. 냇가에서 내가 가재와 놀던 어린시절이 언제 적이었던가! 아! 그립다. 냇가에서 깨복쟁이들과 천방지축을 떨던 고향의 한 때로 망월사가 타임머신 티켓을 끊어준 셈이다. 행복한 여름나기 피서여행이었다.    2021 07. 23

원통문

출처: https://pepuppy.tistory.com/591 [깡 쌤의 내려놓고 가는 길]에서 참조

쌍벽을 이루던 전나무 한 그루는 6년 전에 뇌우 맞아 쓰러졌다
원도봉 탐방지원센터
▲원도봉계곡의 냇가는 거의 출입금지구역으로 인줄을 처놨다▼
▲포대능선과 망월사를 향하는 원도봉계곡길은 끝까지 자연석계단이다▼
해탈문, 안의 바위 아래가 유명한 약수터다
천봉선사탑비에서 올려다보는 문주석굴암.
천중선원과 심검당, 칠성각을 포대능선의 바위들이 호위하고 있다
대웅전지붕과 화려한 불전
고불원을 오르는 대웅보전 뒷길
▲고불원과 법당▼
고불원 오르는 길
범종각
포대능선 오르는 산길
덕재샘
덕재샘 뒤 바위침대에서 입족하며 폭서탈출경에 빠졌다
침대바위 옆의 ?심벌바위에 가재가~! 구멍속으로 피신하여 꿈쩍도 안했다
두꺼비바위, 엄홍길대장의 어릴적을 생각케 하는 바위다
▲쌍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