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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소요산 속리교, 구절터의 여름나기(2)

소요산 속리교, 구절터의 여름나기(2)

폭염탈출 두 번째 산행으로 울`부부는 소요산을 찾았다. 소요산역사를 나서면 곧장 울창한 활엽수들이 터널을 이뤄 땡볕은 차단하고 골짝을 달리는 물의 노래는 머릿속의 폭염찌꺼기까지 씻어줄 것 같아서다. 소요산입구에서 해탈문에 이르는 오리 길의 녹색터널은 여느 산문(山門)보다도 시원하고 평안하다. 평탄하고 너른 녹음터널 길은 피톤치드로 샤워를 하면서 눈 감고 한량걸음짓을 해도 거칠 게 없다.

소요계곡 쉼터

게다가 바위골짝을 어르며 달리는 물의 속삭임은 숲 사이를 빠져가는 바람에 실려 세레나데가 된다. 어쩌다가 나뭇잎 사이를 비집고 쏟아지는 햇살은 속 창시까지 시원하게 관장시키고. 가을엔 울긋불긋한 치장한 단풍길이 연탄성을 질러 마음풍선을 타게 한다면, 여름의 소요산길목은 청량한 힐링`로드인 셈이다. 벌써 피서 엑서더스 인파는 그 많은 벤치를 차지하고 골짝바위까지 점령했다.

▲소요산 자재암 일주문▼

일주문을 통과한다. 골짝은 물길을 바루느라 중장비가 석벽을 쌓으며 굉음을 내는 통에 흐르는 물길은 흙탕물이 돼 나의 평정심도 상처를 입었다. 겨울철 아님 탐방객이 뜸한 비수기(?)에 공사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위민정치란 게 별 거가 아닐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덜 마음 불편하게 하는 행정이 선정일 테다. 골짝을 뒤엎는 공사는 100m쯤도 안 돼서 그나마 안심이라. 원효폭포 앞 동굴기도터에 섰다.

소요로(우)와 속리교계곡(좌)

소나기로 세를 불린 폭포소리는 아까 중장비의 파열음이 남긴 상체기를 말끔히 지웠다. 원효스님은 서라벌에서 북상하다가 이 바위굴에서 가부좌를 틀었다. 적막한 숲을 흔드는 폭포소리에 번뇌를 쫓아내고 요석공주의 연민도 지울 수 있을 것 같았다. 파계가 아닌 인연 쌓기 업장이었다고 합리화해도 요석공주와의 사흘간은 쉬이 잊을 수 없는 기행이었다. 스님은 어쩌자고 계림천변을 거닐다가

속리교의 작은 폭포수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줄 텐가? 하늘 떠받칠 기둥을 깎으리라”라고 흥얼댔던지 묘연했다. 때마침 그 소문을 들은 태종무열왕은 집히는 게 있어 궁리를 불러서 ‘후딱 스님을 찾아 요석궁으로 모시라’고 명한다. 허겁지겁 달려오는 궁리를 본 스님은 개천으로 얼른 들어가 허우적댔다. 궁리가 물에 빠진 스님을 부축해 요석궁의 공주에게 안내하여 자초지종을 아뢰고 옷을 말리게 했다.

원효스님이 가부좌를 튼 동굴, 어디쯤 앉으면 스님의 자리에 포갤까?

공주는 결혼 한지 사흘 만에 전쟁터에 간 신랑[화랑]이 전사하여 생과부가 된 터라 부왕 태종은 마음고생이 공주 못잖은 판이었다. 암튼 농숙한 두 남녀는 사흘동안 육체의 향연에 몸부림치다 스님이 홀연히 요석궁을 떠나버렸다. 그렇게 정처 없이 나선 발길이었다. 그런 스님이 동굴에 거적을 치고 정진하는데 장대비 쏟아지는 밤에 묘령의 여인이 나타나 작전에 들지만 뿌리친다.

원효폭포

"心生則種種法生 心滅則種種法滅(마음이 생겨 온갖 법이 생겨나는 것이니, 마음을 멸하면 온갖 법도 없어진다)"는 스님의 게송에 여인으로 변장한 관세음보살이 사라지고 원효스님은 해탈문 위에 자재암을 열었다. 글고 있는데 요석공주가 ‘하늘 떠받칠 기둥[설총]’을 안고 나타나 원효폭포 앞에서 기도에 들었다. 그 요석공주 넋이 머물고 있는 공주봉을 오른다. 아니 구절터 아래 바위방석에 자릴 깔았다.

소요로의 녹음터널

울`부부는 스님과 공주의 로맨스로 얘기꽃을 피우면서 피서의 낭만을 즐기고 있었다. 까만 흑염소가 나타나 놀래 키기 전까지 말이다. 허나 곧 흑염소가 구절터를 찾는 산님들과 공생하는 친구란 걸 알고 원효스님처럼 놈에게 구애작전을 폈다. 근제 놈은 멀뚱멀뚱 냉담했다. 스님이 해골물을 마시고 깨우치듯 나도 놈과는 공유할게 별로 없단 사실에 비로써 나를 인식했다. 소요산은 언제나 우리들을 풍요와 청정 속에 마음 살찌우는 명산이다. 행복한 하루였다.                   2021. 07. 15

▲구절터 주인 흑염소. 놈은 표정 하나 안 바꾼채 산님들한테 어슬렁댄다. 놈의 최상의 먹거리는 뽕잎이다 ▼ 
공주봉 아래 마당바위 전망대
마당바위에서 조망한 상`중`하백운대 능선
나한대와 의상대 능선
▲공주봉에서 조망한 동두천시가▼
▲의상대-공주봉의 난코스▼
의상봉과 나한봉
공주봉정상과 아래 토치카
원효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