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관악산역-연주대`암-용마능선-선바위역)
오전9시반, 지하철 관악산역사를 나섰다. 호수공원을 통과 제4쉼터에서 연주암코스를 밟는 관악산행은 오늘 처음이라 약간 긴장도 됐다. 호수공원을 스치는 삼막골 물살소리가 골짝을 울린다. 엊그제 내린 집중호우로 물길은 바위와 돌맹이를 뛰어넘느라 개거품 내며 난리다. 8월은 9월로 바통을 넘기면서 그렇게 드센 폭염기세도 꺾였는가?
파란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골짝의 숲으로 빨려들면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다. 상쾌하다. 불꽃의 산 - 관악의 청정한 서기를 배터지게 호흡한다. 관악산의 불꽃을 막으려고 경복궁은 입구에 해태를 앞세우고 궁궐대 양쪽에는 느무를 만들어 소화수를 가득 채워 화재에 대비했다. 시원한 물바람이 애무해오는 파라다이스 계곡에 피서객도 산님도 뜸하다.
제4쉼터에 닿았다. 무너미고개와 연주암골짝으로 나뉘는 삼거리다. 여기서 부터가 처녀산행이다. 여태 그랬지만 연주암길도 박석(薄石)을 깔아 발지압산행을 즐긴다. 게다가 옆에서 골짝을 내달리는 물의 노래가 청승맞게끔 가냘프다. 그 여린 물소리가 별세계를 탐닉하는 몽유의 산길인 듯 착각케 한다. 토종다람쥐가 길안내라도 할 듯 앞서거니 옆서거니 한다.
오랜만에 보는 토종다람쥐다. 박석등산길은 줄차게 오르기만 하고 물길은 벼랑 골을 미끄럼타며 하강하느라 아우성이다. 곤두박질치며 폭포를 이루고 소(沼)를 만드는 물살이 있어 등산은 어쩜 낭만적이기도 하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즐기는데 데크계단이다. 빡세다. 지그재그 계단은 마무리가 안된다. 연주대는 그렇게해서 나를 맞나보다. 연주대와 송신탑이 숲속으로 얼굴을 내민다.
오늘은 왠지 정상에 산님들이 한가롭다. 인증샷하는 줄서기가 없다. 연주대에 올라섰다. 드넓어 아찔한 검은 숲속의 서울은 아름다운 한 폭의 몽유도 같다. 677년 의상대사가 연주암을 창건하고 산꼭대기에 영주대(靈珠臺)를 쌓아 신령스런 별천지를 열었다. 기언 허목(許穆)은 1678년 4월 84살에 관악산 영주대에 올라서서 “영주대는 세조(世祖)께서 예불하던 곳으로 관악산의 꼭대기에 있다”고 했다.
또한 좌상(左相) 권시회에게 보낸 편지에서 “영주대 절정에 올랐는데, 산의 돌이 매우 위태롭고 험하였으므로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아찔하고 두렵소. 그러나 세상살이에 비한다면 오히려 평탄한 길이라 할 것이오”라고 말해 세상살이의 위태로움을 영주대에 오르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다. 84살의 노익장이 등산로도 없었을 영주대에 올라 험난한 삶의 여정을 대비 읊었던 게다. 세상사 마음 먹기 나름이다.
고려가 망하자 강득룡(姜得龍), 서견(徐甄), 남을진(南乙珍) - 세 충신이 여기에 은신하며 고려송도(松都)를 향해 그리워했다 해서 연주대라고 했다나? 누군가는 또 조선조 초에 양녕대군(讓寧大君)과 효령대군(孝寧大君)이 여기에 머물며 빼앗긴(?) 왕위에 대한 연민으로 암울한 세월을 삭혔다고 했다. 첫째 양녕과 둘째 효령은 마땅히 태종의 후계자 선순위였다.
태종이 셋째 충녕대군(忠寧大君, 세종)에게 왕위계승을 도모하자 꽥 소리도 못하고 이곳에 은신했다. 왕자의 난을 일으킨 태종을 너무나 잘 꿰뚫고 있어서였다. 그래 그들은 궁궐이 안 보이는 영주대 밑에 40칸짜리 건물을 지어 미련을 삭혔다. 오백여년 전에 뾰쪽한 바위산정상에 이만한 터를 닦아 대가람을 일궜다는 게 왕세자들이라 가능했겠지? 하면서도 두 세자를 흠모한다.
그 건물이 연주암과 관악사다. 연주암을 한 바퀴 휘돌았다. 파라다이스 같은 가람에 우리들이 찾아와 힐링할 수 있어 그 탁월한 발상을 찬양한다. 연주대를 탐방한 사람들은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 듯 가슴이 탁 트이고 번뇌가 사라지는 즐거움을 느낀단다. 항상 스님들의 독경소리와 중생들의 예경이 은은하다. 관악사는 현재도 발굴작업과 재건축하나 싶었다. 관악사지붕은 바로 연주대다. 대모산령이 경복궁을 가렸다.
나는 관악사에서 사당역방향 등산로를 택해 하산키로 했다. 관음사 ~ 연주대코스는 익히 알고 있어 중간 합류지점까지 처녀하산코스로 택했다. 근디 한참을 하산해도 인적이 없고 등로도 어째 반질반질하지도 않다. 초조감이 엄습했다. 길이야 어떻든 사당역방향으로 하산하면 되겠거니 싶어 미답 길을 즐기는데 예상했던 관음사길 대신 낯선 토치카들이 즐비한 능선길을 타고 있었다.
관음사길 합류지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아니 아까 합류지점근처 숲에서 쉬고 있던 산님들께 사당역 방향을 물었을 때 어느 산님이 잘 못 가르쳐준 것 같았다. 산행 중에 조우하는 산님이 길을 물으면 잘 모르는 길을 얼렁뚱땅 가르쳐주면 안 된다. 큰 낭패를 떠안겨주는 셈이 된다. 그렇게 잘 못 든 하산 길을 한 시간여 고독한 산보자 돼 즐겼다. 차선책이 없잖은가.
하산길이 용마능선이란 걸 용마골입구에 와서 알았다. 긍께 엉뚱하게도 선바위역쪽으로 하산한 거였다. 오늘 5시간쯤의 홀로산행은 거의 처녀산행길이어서 해찰도 더 심했다. 관악산등산로는 어느 쪽이던 사위 조망 권과 암송의 볼 거리가 멋있다. 선바위역~연주암~서울대코스를 처녀등반한 것도 오늘의 아기자기한 추억이 됐다. 2023. 0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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