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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노루궁뎅이버섯과 알밤에 빠진 청계산행

노루궁뎅이버섯과 알밤에 빠진 청계산행

횡재한 노루궁뎅이버섯

모처럼 화창한 토요일의 날씨는 선선하여 산행하기 딱 좋아서 청계산 입구는 등산인파로 미어터진다. 골짝을 흐르는 물소리까지 덩달아 원터골은 수선스럽다. 청계골짝으로 방향을 틀었다. 엉성하게 울타리를 친 산밭뙈기는 주인장은 있기나 한지 야채와 잡초가 반반씩이다. 그 풀밭에 떨어진 밤송이가 벌어진 채 빨간 알밤이 튀어나올 태세고, 이미 튀어나온 씨알 굵은 알밤이 여기저기 숨어있어 내 속깊은 도심(盜心)에 불 지른다.

누가 살짝 벌어진 밤송이 속의 알밤을 엿보다가 여인의 엷은 화장기 벤 속눈썹이라고 읊었던가! 그 햇밤이 여간 탐스럽다. 등산로 갓길의 밤나무 밑은 벌써 밤송이 껍질들이 천덕꾸러기가 되어 처참하게 짓밟혀졌다. 밤도 자연을 거슬리는 일 없이 지 몫의 삶을 다해 한해를 갈무리하는 순회길에 들고 있었다. 그런 가실 끝 무렵의 밤나무 아래서 난 보물찾기 하듯 알밤 몇 개를 주었다. 그렇게 꿈실대면서 반 시간도 못 올랐을 테다. 등산로갓길 국수나무숲이 우거진 덤불속에 빈 밤송이 껍질 하나가 눈에 띄었다.

청계산밤

밤나무 그림자도 안 보이는 곳에 저놈은 어디서 예까지 굴러왔을까? 빈 밤송이가 제법 컸다. 나는 국수나무 덤불속 언덕에 발을 올려 딛고 숨바꼭질 하듯 숲을 살폈다. 10여m쯤 안쪽에 밤송이 몇 개가 보였다.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자 저만치에 밤송이가 무수히 떨어져 있잖은가! 여인의 속눈썹보다 더 발갛게 벌어진 밤송이들! 그 옆에 튀어나온 알밤들이 어지럽게 숲을 수놓고 있었다. 금년 들어 그 누구의 손길도 타지 않은 알밤 터! 횡재다. 누군가가 있나 싶어 사방을 기웃댔지만 동적인 것은 없다.

노루궁뎅이버섯

국수나무 덤불숲 밖 20여m쯤 저쪽 등산로를 오르고 내리는 산님들의 인기척만 들렸다. 얼른 배낭을 벋어놓은 나는 알밤 줍기 삼매경에 들었다. 뱀이나 짐승보다 사람이 나타날까 더 두려웠다. 후딱 싹쓸이를 하고 이 불안한 알밤 터를 빠져나가야 했다. 도둑놈(?)이 돼서일까? 왠지 불안하지만 횡재란 기쁨을 훨씬 즐기고 있었다. 밤알크기는 중`상품, 송이채로 떨어져서 배시시 벌어진 주둥이를 까고 알밤을 취하느라 한 시간여 걸렸다. 밤송이 까는 고욕은 가시껍질에 이어 겉껍질 까기도 쉽지 않지만 진짜 어려운 건 속껍질 벗기기다.

노루궁뎅이버섯 볶음요리 - 맛과 식감과 향이 그만이었다

밤은 지방과 단백질이 적은 고탄수화물 식품이란다. 황산화성분인 갈산, 엘라그산과 마그네슘과 칼륨의 미네랄이 많고 섬유질이 많아 장내 미생물활성화로 소화 작용을 돕는 일등과일 이다. 그래 입속에 넣기까지 여간 까다로운 게 식감과 맛이 최고다. 알밤 색깔이 약간 누런빛이 있을 때의 생밤이 식감과 맛이 일품인데 이땐 속껍질도 잘 벗겨진다. 알밤을 통재로 입에 넣고 아다닥 씹는 소리와 식감, 단맛도 쓴맛도 아닌 떫고 풍부한 액즙은 햇밤만이 주는 독특한 맛이며 포만감일 것이다.

청계산 밤송이껍질과 이름모를 버섯

아내는 특히 햇밤을 좋아한다. 내가 산행 중에 알밤을 줍는 집중의 시간은 일념이란 희열에 들고 나아가 아내의 맛깔스런 식탐을 지켜보며 공유하는 순간이 여간 뿌듯하다. 그런 일념의 시간은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의 탈출인 것이다. 금년 가을 알밤추수라는 의외의 횡재가 더 흐뭇하다. 25L배낭이 1/3이상 찼다. 대충 마무릴 하고 이삭 줍느라 사이드를 훑다가 쓰러진 참나무고목에 하얀 솜덩이가 붙어 있는 게 눈이 띄었다. 노루궁뎅이버섯 이었다. 인터넷상에서만 봤던 버섯의 실체를 대면한 거였다.

노루궁뎅이버섯은 생김새가 독특해서 버섯에 멍청한 나도 확신하는 바였다. 이게 무슨 행운인가! 노루궁뎅이버섯은 노루의 엉덩이 털과 닮아 부른 이름으로, 학명인 헤리시움(Heosricium)은 고슴도치를 의미하는 가시가 삐죽삐죽 솟은 외양 땜이라. 노루궁뎅이버섯은 신경계 및 인지기능의 다양한 질환을 개선하는 효능이 있어 면역력지원, 염증억제, 건강증진 등의 효능이 좋아, 중국에서 항암, 소화 불량 치료, 만성 장염 개선, 면역 기능 증대, 치매 억제 등의 약용버섯으로 애용한지 3000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노루궁뎅이버섯은 5종류의 활성 다당을 함유해 탁월한 항암효과를 발휘하여 치매예방과 당뇨병 개선에도 좋아 차, 팅크, 분말, 캡슐형태로 조제 약용한다. 버섯의 쓴맛을 제거하려면 버섯을 물에 반나절 이상 불린 후 끓는 물에 데쳐 볶음, 무침, 찌개 등에 사용하는데 양파를 곁들이면 음식궁합이 좋아 혈중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효과를 얻을 수 있고, 고기의 육질을 부드럽게 해주고 소화를 도우며 회나 숙회, 무침, 조림, 튀김 등 각종 요리로 활용한단다.

청계산 천개사

생버섯을 반으로 잘라 요구르트, 우유, 주스 등을 함께 믹서기에 넣고 갈아 마셔도 훌륭한 웰빙음료가 된다.음료는 숙취 해소와 당뇨병 예방, 면역력 향상, 다이어트에 좋단다. 식용이나 약용을 떠나 귀한 자연산 노루궁뎅이버섯을 횡재하고 아내한테 자랑(?)할 옹골짐에 나는 기분이 부~웅 떴다. 오늘 등산은 여기서 피날레였다. 6~7kg쯤 될 알밤을 지고 등산할 염두가 나질 않았다. 게다가 노루궁뎅이버섯은 신주단지 뫼시듯 해야 망가지질 않을 테다. 청계산등정이야 담에 하면 된다.

신바람이 났다. 어깨쭉지가 묵직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가을은 어느새 절정을 치닫고 있음을 밤나무는 일러주고 있다. 하산 길의 밤나무 아래엔 산님들의 알밤 보물찾기가 볼만했다. 하나라도 줍는 그 쾌재의 맛을 즐기려는 원초적인 도심을 어쩌질 못해서이다. 산짐승들의 겨울나기를 위해 산에서의 열매채취를 금한다는 걸 알면서도 알밤 줍는 재미를 놓을 순 없는 울`부부처럼 말이다. 오늘 청계산에서의 횡재는 쉬이 잊을 수 없을 낭만 끼 푸짐한 추억이 될 참이다.                  2023. 09. 25

천개사요사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