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곡산(佛谷山) - 천 개의 바위상[千物像]
어째 뜬금없이 불곡산(佛谷山) 생각이 났다. 가을 옷을 갈아입는 계절의 틈새에서 천 개의 바위얼굴은 어떤 모습을 할까하고 창시 빠진 연정을 느낀 거다. 양주역에서 내려 양주향교(楊洲鄕校)를 산행들머리 삼으려고 찾아가니 난데없는 풍악소리가 흥을 돋운다. 향교 옆 양주별산대놀이마당에서 2023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대축제(2023.10.13.~10.15.)가 열리고 있었다. 예능분야 무형문화재 30종목의 공연이 양주별산대놀이마당에서, 40종목 장인들의 작품전시와 기능실연·시연이 전시관과 관광안내센터에서 열리고 있었다.
늦게 나선 산행 탓에 뭉그적댈 수가 없어 고양이처럼 이곳저곳 기웃거리면서 사진을 찍자 한복차림의 낭자가 안내를 베푼다. 어쭙잖게 사양하며 되돌아서자 <경기도 무형문화재 천년을 秀놓다> 책자 두 권을 선물한다. 황송했다. 견문할 게 많고, 신바람 난 엉덩춤 구경거리에 하루 말아먹기 구미가 당겼지만 공연장을 나왔다. 정조가 활궁을 당긴 어사대비(御射臺碑)를 지나 임꺽정 생가를 향하는 길목에서 불곡산행 산길에 올랐다.
불곡산은 산수자명 하여 400여 년간 양주목사가 행정을 편 동헌과 향교가 있고, 정조가 광릉행차길에 사흘간 머물었던 역사의 고을이다. 별산대(別山臺)놀이마당(중요 무형문화재 제2호)은 순조·헌종 때부터 양주읍에서 해마다 석가탄신일이나 단오, 한가윗날에 공연을 치렀다니 양주군의 대잔치마당인 셈이다. 제3보루에 이르는 등산길은 삐쩍 마른 소나무군락지에 햇살만 날름댈 뿐 인적도 바람도 없다. 이정표가 그리 반가웠다.
상봉이 가까워지자 소나무들의 퍼포먼스가 발군을 이룬다. 놈들은 멋진 몸매를 유지해야 바위의 사랑을 받을 테다. 무생물 바위라고 아무 나무나 건사하며 사랑하지 않는다. 암송의 연애질을 보고 있노라면 그들의 처절한 생존의 비밀을 엿보게 된다. 나는 그들의 사랑을 엿보는 재미로 산행을 하는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온 몸을 던져 바람한테서 온갖 세상사를 알아내어 바위에게 알려준다. 바위가 골수를 짜내 소나무를 건사하는 소이다.
어사대비(御射臺碑)는 정조가 광릉(光陵)행차 후 귀경 길에 양주관아에서 3일간 시무하며 민정을 살폈는데 이때 사대(射臺)에서 신하들과 함께 활을 쏘고 잔치를 열었다. 정조가 10순(巡:50개)의 화살을 쏴서 49개가 명중하였다니 명궁수였다. 이때 양주목사 이민채(李敏采)가 이를 기념해 ‘어사대(御射臺)’라는 비석을 세웠다
이 세상엔 공짜란 게 없단 걸 암송은 실증한다. 바람도 사철나무가 없어 쉴 곳이 없다면 광풍으로 변해 날뛸 테고 자연은 초토화 될 것이다. 기똥차게 춤추는 소나무겨드랑사이로 상봉(上峰)이 윙크를 한다. 팽귄이 바위동네를 안내한다. 소나무들도 춤사윌 벌린다. 불곡산의 암송스테이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천개의 얼굴을 가진 바위가 숨바꼭질에 들었다. 불곡산등반은 천 개의 형상을 찾아가는 보물찾기 산행이기도 하다.
상봉의 태극기깃대도 불곡산답게 그냥 막대기다. 태극기가 미동도 않는다. 이마를 흐르는 땀방울이 바람 한파장이 그리운데~! 눈 호강을 시키려 단풍단장에 바람 부르는 걸 깜박했지 싶었다. 금년에 고산에서 맞는 첫 단풍호사에 황홀해졌다. 떡갈나무이파리는 곤충들한테 보시하고 남은 잎을 곱게 물들여 여행을 떠나 땅을 비옥하게 한다. 한 치도 허투루 삶을 살지 않는 나무의 일생이다. 젊은 커플을 만나 인증품앗이를 했다.
상봉바위는 천길 협곡을 만들면서 암송의 퍼포먼스를 질펀하게 벌린다. 나무늘보처럼 굼뜨지 않고선 공감할 수 없다. 협곡 건너 상투봉 바위마을에 지금 화톳불이 붙었다. 단풍산불은 촉석루단애에 옮겨 불타고 있어 더욱 가관이다. 이달 말쯤에 오면 활활 타는 화톳불에 오금이 절일 것 같다. 상투봉은 바다코끼리 새끼를 마중 내보냈다. 상투봉이 마련한 하얀바위 하늘길은 뒹굴고 싶을 만큼 탄력과 매끄러움에 탄성을 지르게 한다.
바위하늘길에 앉으면 거대한 애벌레가 기어가서 임꺽정봉까지 연결했나 싶은 착각을 하게 한다. 그 틈새의 소나무의 춤사위와 천물상은 도봉산과 북한산을 비웃는 듯하다. 생쥐바위와 눈치싸움하면서 점심을 먹는다. 2년 전엔 이놈을 그냥 지나쳐 빠구하여 다시 올라왔을 만큼 꾸꿈스런 곳에 있다. 바위벼랑을 내려서면 팔에 애인 목을 껴안고 뽀뽀하는 연인바위가 있는데 생쥐바위보다 더 신경을 써야 대면하게 된다.
철모바윌 벗으면 낭떨어지 협곡은 임꺽정봉을 곡예 하듯 바위벼랑에 올라타서 밧줄과 철재난간에 몸을 맡겨 한참을 씨름해야 한다. 근디 임꺽정은 두 손과 발로 수없이 오르내린 끝에 다람쥐 같았으니 그의 신출귀몰한 도피행로를 관졸들이 상상이나 했을꼬? 저 아래 유양동 청송골짝에 임꺽정 생가 터가 있다. 그는 키버들로 바구니나 키 등 생활용품을 만들어 파는 유기장(柳器匠) 고리백정이었다.
1559년 황해도 구월산에서 시작한 도적질은 3년간 고관과 부자들을 털어 훔친물품 일정은 가난한 자에게 베풀면서 관군을 엿 먹이다가 체포돼 막을 내렸다. 죄 없는 그의 아내도 진즉 끌려가서 형조소속의 종으로 생을 마감한다. 당시 실세 윤원형의 외척세력이 왕권을 장악하여 부패한 조정은 민란을 자초했고, 임꺽정의 난은 윤원형의 세력을 청소하여 왕권을 바로잡는 공헌도 한 셈이다. 문득 ‘윤핵관’이란 단어가 떠오르는데 그들은 설마 임꺽정의 반란을 까먹진 안했을 테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임꺽정봉은 쉼터로도 멋지다. 다람쥐처럼 올라와 한나절 질펀하게 놀 마당으로 딱이다. 도봉산자락으로 시작한 연봉들은 한 바퀴 빙 휘둘러 수락산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산수화 한 폭을 그렸다. 왼쪽에 멋진 악어바위능선이 뻗었는데 수많은 바위형상과의 숨바꼭질로 피날레를 즐길 참이다. 공깃돌, 코끼리, 악어, 속삭임, 복주머니, 삼단바위 등등과 마주치는 열락은 여간 옴팡지다. 아니 놈들을 찾는 바위협곡 타기 스릴은 불곡산만의 비장이라! 산님들께 추색단장한 불곡산행을 추천하고프다. 2023.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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