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의 남한산성 - 행궁 & 암문의 너구리
마천역사를 나서 청량산자락 남한산성등산로 입구 성불사까지 15분쯤 소요됐을까? 터가 좁아선지 옹색해 보이는 사찰경내를 일별하고 낙엽 두텁게 깔린 만추의 청량산자락을 헤친다. 나는 마천역에서 남한산성 등정코스가 있단 걸 며칠 전에 알았다. 울`집에서 남한산성에 갈 수 있는 최적의 코스란 걸 알고, 엄습해 오는 동장군에 앞서야겠다고 나선 게 오늘 처녀산행코스인 셈이다.
갈참나무를 비롯한 낙엽수가 앙상한 골짝에서 아침햇살이 한기를 쫓아낸다. 미련 많은 고엽들이 이별이 두려워선지 나뭇가지에 그림처럼 매달렸다. 산골의 침묵은 무서우리만치 적막하다. 마침 산님 몇 분이 저만치 앞서 오르고 있어 위안이 된다. 수북이 쌓인 낙엽위에 산님들 발길은 뚜렷한 등산로를 만들었고, 1200여계단과 잦은 이정표 덕에 헷갈릴 염려가 없어 안심이 됐다.
이따금 소나무가 군무를 추고, 마른단풍잎이 떨리는 듯한 나목들의 풍정이 빡센 등정에 청량제가 된다. 한 시간여쯤 후 남한산성과 마주쳤다. 성곽외벽 길을 타고 서문을 향하는데 너구리가 한 마리가 마중을 나왔다. 처음 마주쳤을 때 잠깐 멈칫대곤 힐끔힐끔 뒤돌아보면서 앞서는 건 분명 나를 선도하는 마중물이 아니곤 벌써 숲속으로 사라졌을 터.
놈은 연주봉옹성이 보이는 암문에서 성안으로 나를 안내한다. 근디 놈은 굼뜬 발걸음을 자주 멈추곤 발로 목덜미를 긁는 거다. 아뿔싸! 놈은 가려움 병을 앓아 만사가 귀찮은데 자꾸 내가 따라붙었지 싶었단 생각이 문득 났다. 놈은 인적 없는 안식처가 필요했던지 성곽 밖 소나무 밑에서 긁기 삼매에 빠졌다. 겨울은 목전인데 아픔이 도지게 되면 어쩐다?
너구리는 작은 포유류 동물로, 주로 아시아 지역에서 서식하며 야행성동물로 주로 곤충과 작은 동물을 먹는단다. 배설장소는 인적이 드문 길가로 막 배설했을 때는 검은색을 띠지만 마른 후엔 회색을 띠게된다. 놈의 귀여운 외모는 애완동물로도 사랑받는 인기만점이란다. 황갈색 긴 털은 어깨와 등에, 꼬리는 검정색. 다리는 갈색이나 고동색으로 털 끝부분이 검은색이라 어두운 느낌이 든다. 눈 아래 검정색 큰 점이 있다.
너구리설화는 대게 미련한 동물로 그려지는데 몸은 크고 다리는 짧아 몸놀림이 굼떠서일 거다. 털이 복슬복슬 부드러워 모피용으로 남획된다.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는 온 몸의 털이 빠지고 피부가 딱딱해진다. 심한 가려움증과 함께 기아 및 탈수상태로 먹이를 찾아 도심지에 출몰한다. 특히 개선충은 개나 사람에게도 옮겨 가려움증을 유발한다. 수명 7~8년인 너구리의 짝짓기는 1월~4월. 임신기간은 2개월이고 4~10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연주봉옹성은 공사 중 출입금지였다. 서문을 향한다. 서문(우익문450m)은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었으나 급경사 탓에 화물이송이 어려웠다. 병자호란 때는 청군과 전투가 심했던 곳으로 인조가 소현세자를 대동해 청나라 진영으로 가서 항복하기 위해 통과했던 문이다. 숲속으로 구불구불 뻗은 치욕의 길에 인조임금 부자가 어른댄다.
2층 누각에서면 위례신도시와 롯데월드타워, 한강, 남산서울타워를 조망할 수 있다. 여기서 10분쯤 성벽을 타면 청량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수어장대에 오른다. 지휘관측을 위한 군사적 목적의 누각으로 성내에서 현존하는 건물 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옆엔 청량당이 있고 뒤편에는 우물이 있어 장대에서 근무하는 장졸에게 물을 공급했었다.
수어장대 넓은 공간은 등산객들이 휴식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각광받는다. 벤치에서 기갈을 때우고 행궁을 향한다.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한양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인조 4년(1626)에 건립되었다. 병자호란(1636)당시 인조가 남한산성에 47일간 피신해있던 곳이 행궁이다. 성안에는 45개의 연못과 80여 개에 달하는 샘이 있어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아 장기간 농성에 유리했단다.
하지만 행궁과 마을은 고산지대의 분지다. 병자호란때 성안에는 1만3천여 명의 군사가 방어진을 치고, 조정은 주화파와 주전파 사이에 격렬한 논쟁만 벌인 채 뾰쪽한 대안이 없었다. 홍타이지 청군의 포위망과 대규모 공격에 이은 장기전에 성안의 물자와 식량이 고갈되고, 강화도가 함락되어 세자가 인질로 잡혀오자 1636년1월 26일 인조는 협상사신을 청 진영에 파견 협상을 도모했으나 결국엔 항복해야했다.
1월30일, 인조가 소복을 입고 높은 단상에 앉아있는 청나라 황제를 향해 삼궤구고두의 예를 올려 삼전도 치욕스런 항복을 해야만 했다. 삼궤구고두는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여진족의 의식이었다. 명분만 앞세운 주전파의 득세에 헤아릴 수 없을만큼 많은 병사들과 백성들만 죽고 수십만명의 백성들이 노예로 끌려갔던 것이다.
전쟁은 인간성의 말살 및 인류문화를 파괴하는 지옥행이다. 전쟁은 상대를 죽여 환호하려는 데드게임이다. 아무리 굴욕적이고 불공평한 화친일망정 전쟁 보다는 낫다. 살아남아야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전쟁은 편협한 위정자들과 군수업자들의 자기만족을 위한 추잡한 카르텔의 돌출구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전쟁,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전쟁의 참상이 이를 증명한다. 주전파를 지구상에서 추방시켜야 평화를 담보할 수가 있다. 군비증강이 평화를 담보한다고 침 튀기는 정객들이 무섭다.
남한산성의 운영에는 승군의 역할 또한 지대하였다. 승군은 6도의 사찰에서 차출되어 매년 2개월씩 성안의 9개 사찰에 머물며 비상시에 전투에 나아가 적을 토벌하고, 군량미의 수송, 성곽축조와 보수, 둔전의 개간, 무기의 제작, 시신의 수습과 같은 여러 가지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의무제였다. 또한 승려본연의 종교적인 의식을 수행하면서 서책의 인쇄, 기타 잡역에 동원되었다. 더는 병자호란 후 신해박해에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피비린내 나는 처형장이 되어버리고-.
남한산성(南漢山城)은 해발 497m인 청량산(淸凉山)을 서쪽 끝으로, 해발 514m 벌봉을 동쪽 끝으로 하여 긴 장방형 돌로 쌓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총 12.4㎞산성이다. 나는 오늘 남한산성 탐방코스 중 1코스인 ‘장수의 길’을 트레킹한 셈인데 6.25때 파괴된 북문은 최근 보수하여 새롭게 단장했다. 북문은 주전파의 독촉에 이시백이 조선군 300명을 이끌고 청군과 싸우려 나갔다가 청군의 기습에 몰살당한 통곡의 장소였다.
참화의 비극은 주전파(김상헌)의 득세와 이에 휘둘린 쫄남 인조의 우유부단이 빚은 참극이다. 김상헌은 청에 인질로 끌려간 후 귀국하여 병자호란의 비극이 주화파(최명길) 탓이라고 인조를 꼬드겨 부화뇌동한다. 오늘날 전쟁불사를 외치며 군비증강을 도모하는 위정자들한테 김상헌의 말장난이 오버랩 된다. 북문 누각에 올라서서 주전파의 독촉에 개죽임 당한 300여명의 넋을 헤아려봤다.
북문을 통과 연주봉옹성 암문에 부러 와봤는데 너구리의 행방은 묘연했다. 개선충 병이 아니길 바래며 하산길에 들었다. 오후3시인데도 기온이 뚝 떨어져 손 시리다. 붉은 연지 바르다 누렇게 말라버린 단풍잎이 이소하여 여행길에 오른다. 짙어지는 만추에 멸종위기동물인 너구리가 먹이사슬 상층부에서 우리산야의 건강한 생태보전에 일익이 되길 염원해 봤다. 5시간의 행복한 시간을 남한산성이 선물해줬다. 2023.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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