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단풍 속으로
청계산은 청룡이 승천했다고 해 청룡산(靑龍山)이라고도 불렀다. 정상의 망경대(望景臺 618m)는 과천시, 성남시와 경계를 공유하는 서울의 보석 같은 진산으로 등산로가 사통팔달이라 사시사철 등산객들로 붐빈다. 많은 골짝을 거느린 장대한 산록은 다양한 수목과 식생들이 아우러져 융숭한 숲속에서 평안을 만끽케 하는 매력적인 힐링 트레킹코스다. 잘 정비된 등산로엔 요소마다 쉼터를 조성해 쉬엄쉬엄 산책하듯 트레킹의 매력에 빠져들게 한다.
울창한 숲은 여름철엔 뜨건 햇살 차양막이 되고, 등산로 주변에 심심찮게 들어선 많은 밤나무들은 알밤을 보시해 가을등산의 묘미에 빠져들게 한다. 나는 가을철엔 그 알밤 주어먹는 재미에 청계산을 처갓집 찾듯 한다. 등산로 갓길에서 보물찾기하듯 알밤을 찾는 집중과 희열은 행선(行禪)의 경지가 이런 걸까? 하는 일념의 묘미를 즐긴다. 입안 가득 햇밤 씹히는 진동음과 식감은 알밤만이 주는 보너스다.
과일이 흉작이라는 금년가을 청계산의 밤나무들은 풍년이었지 싶다. 나는 알밤 줍는 재미에 빠져 등산은 뒷전인 채 집을 나설 때 아예 비닐봉투 하나를 준비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알밤 찾느라 굼뜬 산행은 산행시간을 배가시키지만, 두루미가 물가에서 물고기 낚듯 하는지라 피곤하지가 않다. 더구나 재수가 좋으면 작은 비닐봉지를 가득 채워 아내에게 한 턱 쏘고, 삶아 군것질 하는 맛과 멋은 진정한 밤 맛의 의미를 절감케 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내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라고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개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마 11:28).
오늘 우리는 천지와 만물의 창조주 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야웨 하나님께 마음의 문을 열고 통회하고 자복하고 우리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를 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간구할 때 해결책을 제시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밤은 탄수화물이 풍부해 포만감이 좋고 소화가 잘 되어 배탈이 없는 과일 중의 과일이다. 이십여 년 전 친구로부터 햇밤 한 포대를 선물 받아 1/3을 처제한테 선물했었다. 두 달쯤 흘렀던가? 처제가 전화로 죽다 살아난 호들갑(?)을 떨었다. 다용도실에 구더기가 기어 다녀 구더기퇴치작전을 하느라 별짓을 다 했지만 헛수고만 하다 구더기 발생처가 밤이란 걸 알아냈단다. 우리가 선물한 밤을 아껴먹느라 알뜰살뜰 보관한 게 구더기 숙주처가 된 거였다.
나는 처제에게 일갈 했다. “그 구더기는 밤 엑기스 아닌가. 구더기 그대로 생식하시라. 밤 까서먹는 수고로움 안하고 얼마나 좋은가!”라고. 처제가 응수했다. “형부, 며칠 후에 뵙시다. 구더기 모아놨다가 갖고 가서 선물할 테니 맛있게 드세요.”라며 비아냥대던 일화는 평생 동안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가시외투를 걸치고, 갑옷을 입고, 다시 쓰디 쓴 내피로 감싼 밤알에 어떻게 구더기가 생기는지 생명의 신비는 기상천외하다.
이중삼중으로 무장한 밤! 오직해야 내 친구 J는 밤 까서먹기 귀찮아 밤 서리 안한다고 기염을 토할까? 그렇게 까다로운 알밤인지라 제사상에 오르는 과일일 것이다. 금년 추석에도 우리내외는 차례상에 청계산 밤을 올려 진상했다. 내가 손수 수확한 햇과일이고, 명년 추석날에도 청계산 햇밤은 어김없을 테다. 길마재 정자에 닿았다. 화사한 단풍무대 위의 정자는 늦은 추석명절기분에 달떠 있나 싶고, 산님들은 멈칫대며 정자 품안에 안겨 희열을 공유한다.
돌문바위 오르는 천 몇 백 개 계단은 인파의 띠로 가드레일을 만들었다. 그 와중에 돌문바위를 세 번 통과하면서 소원을 비는 행렬이 꼬리를 잇는다. 매바위와 매봉은 인파로 뒤덥혔다. 인증샷 하려는 줄서기는 언제 끝날까? 젊은 학생들이 주류를 이뤄 보기 좋은데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또한 왠지 부럽고 흐뭇했다. 코로나팬데믹 이후 산행하는 학생들이 부쩍 늘었다. 청계산은 악산이 아닌데다 등로가 좋아 유난히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
건강을 지키고 호연지기를 신장하는 레포츠로 산행만한 게 없단 걸 체감한 땜일 것이다. 더구나 여학생들이 태반을 이뤄 그들과 마주치는 나도 흐뭇하다. 매바위 아래 충혼탑은 예상한대로 역시 사람이 없다. 배낭을 풀고 기갈을 때운다. 공수대원 53명을 태운 수송기가 추락한 사고를 기리기 위한 추모탑인데, 50여m 떨어진 한갓진 숲길 끝에 있어 찾는 이가 별로 없다. 그걸 짐작하고 있는 나는 정상등정 후에 필히 쉼터로 애용하는 곳이다.
빵과 과일로 식탐을 즐기는데 한 무리의 단체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참배를 하고 사라진다. 충혼탑에 새긴 53명의 영혼들도 아마 저 또래들이지 싶었다. 지구상에 전쟁 없는 날이 도래할까? 한 푼의 값어치도 없는 이념으로 민심을 갈라치기 하여 정치적인 이득을 꽤하는 위정자들의 선동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곤 한다. 애국인냥 떠벌리는 그들의 과대망상 탓에 애먼 민중만 죽어난 게 전쟁의 이면사다. 종교를 빙자한 전쟁의 죄악이 다름아니다. 바람 한 마장이 갈참나무를 울린다.
무지막지한 중동전쟁의 참혹한 화면이 오버랩된다. 누런 마른 잎이 우수수 바람등을 타고 여행을 떠난다. 충혼탑 마당의 낙엽도 덩달아 골짝으로 내달렸다. 매바위를 오르내리는 인적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온다. 자릴 털었다.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는다. 가을이 아파하는 소리일까? 화사한 단풍은 빛바랜 시간처럼 누렇게 낙엽이 되어 산록을 덮고 겨울로 내닫는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고 뉘가 말했던가! 겨울이 벌써~. 달력도 한 장이 남았다. 속절없이 한 해를 보내나 싶어 허허롭다. 2023. 11. 04
청계산은 2007년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특수폭행 사건으로도 유명세를 타게 됐단다. 그래 김회장을 청계산 회장님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는데 그 뒤 청계산은 한화 그룹의 이름을 단 스포츠단이나 소속 선수가 경기를 제대로 못하거나 사고를 치면 친히 회장님이 끌고 가서 폭행하는 곳이라는 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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