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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검단산, 겨울잠에서 깨다

검단산(黔丹山),  겨울잠에서 깨다

생강나무꽃

집 나설 땐 아침햇살이 구름떼를 몰고 있었는데 하남 검단산자락에 이르자 산천이 희뿌옇다. 따뜻해진 봄기운에 땅이 뿜어내는 숨결일까? 총총한 소나무숲길은 엷은 안무를 걷어낸 생강나무가 노랑폭죽을 알량하게 터뜨리고 있다. 알량한 폭죽에 놀란 건 아직 눈꺼풀에 남은 겨울잠을 털어내는 개나리와 진달래다. 생강나무는 봄의 전령사로 겨울잠의 산골을 깨우는 노오란 불꽃이다. 그 노랑폭죽 소리에 개나리도 화들짝 놀라 꽃잎을 벌리고, 질투심 강한 진달래가 홍조 띈 얼굴들을 피어내느라 애쓰는데 모둠피기 전이라 아쉽다.

검단산 초입등로는 빼곡찬 소나무 열병식이 거행된다
유길준가족 묘역
쉼터

놈을 담으려고 휴대폰을 드밀다가 접는다. 유길준(兪吉濬)묘역에 올라섰다. 그가 1895년에 일본`미국에서 유학하고 유럽을 여행한 다양한 서양체험과 개화사상을 기록한 서유견문(西遊見聞)은 근대 한국의 첫 번째 서양소개 책이었다. 국한문혼용체로 쓴 입헌군주제도의 도입, 상공업 및 무역진흥, 근대적인 화폐 및 조세제도의 수립, 교육제도실시 등을 내용으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개화-실상개화를 주장한 책으로 갑오개혁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다. 유길준이 조선인 최초의 국비유학생으로 일본 게이오대학에 유학하게 된 건 그가 쓴 과문폐론(科文弊論)땜이었다.

불규칙한 돌계단은 빡세기까지 한다
팔당대교가 숨바꼭질을 하고~

과문폐론은 과거제도가 양반들의 부정부패로 신분세습의 대상이 됐음을 비판하는 글로써 정부와 기득권층이 격노했으나 나이 어린 소년이라고 흐지부지했다(1881년 고종18년). 그는 일본유학 후 1883년 7월, 민영익 전권대신으로 유길준은 홍영식, 서광범 등과 함께 미국에 보빙사(報聘使)에 임명되어 40일간 활동하다 귀국, 이듬해인 1884년초에 다시 한국 최초의 견미사절단(遣美使節團)인 보빙사로써 미국에 파견된다. 그는 사찰 후 정사(正使) 민영익(閔泳翊)의 허락으로 한국인 최초의 미국 국비유학생이 되었다.

▲검단산 소나무들은 필시 영양결핍으로 기형목이 됐지 싶다. 태양이야 배터지게 포식할 터여서~▼
예봉산 천문대가 보인다

유길준이 1885년 미국에서 버스와 기차를 처음 탑승하여 ‘인간이 아니라 마귀의 힘으로 전기가 켜진다.’고 놀라며 기차를 탄 소감을 “증기차의 속도는 화륜선에 비할 바 없이 빠르며, 신기하고 놀라운 규모와 편리함이 놀랍다. 기차에 한번 타기만 하면 창밖의 풍경이 아름답게 보이고, 마치 바람을 타거나 구름에 솟은 듯한 황홀한 기분을 맛보게 된다.”라고 서유견문에 기술했다.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 숨결은 뿌연 산골짝을 덧칠하고~! 헉헉 차오르는 숨소릴 가라앉히며 안부 쉼터에 올랐다. 선행자들 십여 명의 눈인사를 못 본 채 다시 돌계단에 발을 디딘다.

검단산 바위마실은 어째 소나무 하나와 연애질을 한다

아까 유길준의 묘역을 어슬렁대면서 저암 유한준과 연암 박지원 가문이 ‘백세의 원수’로 지냈던 과거사를 후예들인 박규수와 유길준이 일거에 삭히고 서로를 포용, 상부 상생한 배려의 정치가 문뜩 떠오르기도 했다. 저암과 연암은 연배도 비슷하고 집안끼리도 내통하는 절친이며 문우(文友)였다. 글다가 상대의 글을 비평하고 선산문제로 쟁송하다 철전지원수가 되었다. 1871년 홍문관 대제학 박규수는 향시에서 장원한 16세의 유길준을 불러들였다. 박규수는 연암 박지원의 손자이며, 유길준은 유한준의 4대손이었다.

박규수는 집안대대로 강조되어온 ‘백세의 원수’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집안간의 불화를 잊자며 유길준의 뛰어난 재주를 거듭 칭찬하였다. 더하여 열심히 공부하면서 자주 찾아오라고 당부했다. 박규수의 인품에 감복한 유길준은 박규수를 스승으로 받들고 그로부터 학문을 사사받아 훌륭한 인재로써 나라에 봉사했다. 윤대통령의 심사는 도대체 뭘까? 자신을 대통령에 오르게 한 정부의 인사들을 정적(?)으로 취급하고, 원수 보듯 불통한 채 갈라치기 하는 옹졸함이 나라와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팔당대교와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남양주와 미사리가 마주한단
하남시전경

빡센 돌무덤 계단은 전망 좋은 칼바위능선은 에두른다. 나는 비정규노선을 택해 칼바위능선을 오른다. 칼바위능선엔 만물상바위와 그들이 붙잡고 사랑하는 기괴한 소나무, 그들 연애질 사이로 조망되는 예봉산과 운길산이 검단산과 협곡을 이뤄 만든, 한강과 미사리들판의 천지개벽을 환장하게 완상할 수가 있어서다. 검단산의 자랑은 칼바위능선을 타는 긴장과 스릴속의 조망일 테다. 북한강과 남한강의 거친 물살은 두물머리에서 만나 얼싸안아 팔당호를 만들고, 그 물길은 도도히 흐르는 한강을 이뤄 거대한 서울과 수도권의 젖줄이 된다. 갈라치기는 망조의 지름길이다.

한강 좌측에 직사각형호수는 88서울올림픽 때의 조정 카누경기장으로 현재 다양한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미사경정공원'으로 불린다
사자바위
필자

영원한 적(敵)이란 없다. 무조건 보듬고 합쳐야 된다. 적도 포용할 떼 평화를 기하고 역사발전을 이룬다. 갈라치기로 분쟁을 야기하고, 적과의 싸움을 생존경쟁 인냥 합리화시키는 자들은 결국엔 역사와 인류의 죄인이 된다. 전쟁은 독재자들이 권력강화를 위한 꼼수 짓거리였다. 남`북한강이 만나 합류하며 일궈내는 도도한 흐름의 역사발전을 검단산에 올라 통감하라고 윤대통령에게 강권하고 싶다. 산님들은, 깊고 험준한 산에 오르는 산님일수록 마주치면 인사를 잘한다. 유대감에서 공감하는 안도와 이심전심 채 받는 용기땜일 테다. 그렇게 어려움을 인극하면서 산행의 행복을 절감하는 거다.

▲칼바위능선은 조망도 뛰어나지만 발지압은 피곤을 잊게 한다▼
팔당대교와 철새도래지인 한강, 우측은 남양주시일부

꽤 넓은 검단산정상은 확 트인 전망들이 고행(苦行) 끝의 달디 단 행복과 상생(相生)이란 자연의 섭리를 통찰케 한다. 높이657m의 검단산은 백제한성시대 하남 위례성의 숭산(崇山), 진산(鎭山)으로 왕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산이었다.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곳에 은거했다 하여 검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도 하는데, '검(黔)'은 '금'이 되어 즉, '크다, 신성하다'는 뜻이라 해석한다. 정상에는 조선시대까지 봉수대가 있었고, 해돋이와 해넘이 구경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름 모를 박새만한 작은 새들이 휴식중인 산님들 곁을 휙휙 날거나 가이드라인 밧줄에서 폴짝폴짝 뛰면서 재롱을 부린다. 어찌 해야 할꼬~! 군것질을 나눠먹어야 하나?        2024. 03. 27

예봉산 천문대
▲비정규코스인 칼바위능선을 타는 스릴과 가슴에 안는 풍광의 희열 탓에 산행을 기꺼이 하게 되지 싶다 ▼
▲온 누리를 향해 맘껏 포퍼먼스를 즐기는 소나무의 독무대는 기똥차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놈의 무대 위 스테이지는 누가 만들어 헌사했을까?
▲마치 절규하는 듯한 몸부림의 소나무시위에 나는 넋을 놓고 한참을 서성댔다▼
아버지 소나무의 절규하는 포퍼먼스를 닮아가는 아들 소나무
하남시가지와 미사경정공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바위도 생겨먹은 만큼의 개성이 있단다. 이쪽의 바위군들은 어째 낙엽송을 더 좋아 했던지 소나무를 팽겨쳤다▼
삼형제바위
바위피라밑
하남시
쉼터
희뿌연 안무속에 용문산록능선이 수묵화를 연출했다
낙엽송들이 에워싼 무대에서 열연하는 소나무는 항상 내 시선을 끌었다
▲굴참나무들의 군무는 정상 아래서 신나게 펼쳐진다▼
▲겨울은 잔인한 계절! 폭설과 강풍에 장애를 입은 소나무가 수십 그루는 될 터다▼
이성산성쪽의 하남, 정상에서 좌측의 이쁜 박새(?)가 내 눈치를 보면서 깡충대는 통에 호기심과 갈등의 휴식시간이 됐다
음지엔 겨울잔설이 최후의 몸부림인냥 열을 뿜어내고~!
▲팔당호와 두물머리, 까마귀가 활공을 한다▼
예봉산, 운길산이 첩첩능선을 이뤄 하늘짐을 떠 받치고 있다
팔당댐과 호수 뒤로 북한강과 양수리일대가 조망된다
호국사쪽 하산길에 조우하는 너덜지대
소나무 재선충 희생목의 무덤
▲곰돌약수터 위 쉼터▼
▲귀룽나무는 땅에 닿도록 치렁치렁 내려뜨리는 초록잎줄기로 우아함을 뽑내는데 어떤 나무보다 일찍 몸단장을 한다▼
▲메타세콰이어 숲길은 한참 동안 이어진다▼
호국사 약수는 돌부처 좌대 밑이다
호국사 입구에서 조망한 하남시 아파트군락
월남전 참전 기념비
▲회양목과 현호색도 꽃망울을 터뜨렸다▼
산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