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걸어가는 길 - 산행기

장산 옥녀봉의 트라우마

장산 옥녀봉의 트라우마

▲옥녀봉 정상▼

궂은 날씨가 뜸해지자 오피스텔을 나섰다. 장산 옥녀봉 산행을 할 요량이다. 해운대역에서 승차하여 한 정거장인 동백역에서 하차하면 곧장 간비오산 입구에 들어선다. 장산등산로 숲길6코스로 간비오산 정상의 봉수대를 우회해 1시간 남짓 산행하면 장산정상을 향하는 등산길 오거리 안부에 이르고, 거기서 오르막산길을 100여 미터 올라서면 옥녀봉이다.

간비오산 입구의 체력단련장 겸 쉼터
황매의 퍼레이드는 기분 좋은 산행의 시작을 예고한다

이 짧은 코스를 울`부부는 작년에 숙지하여 줄곧 이용했지만 안부에서 바람재를 타고 정상을 가던지 아님 마고단 천재단을 거쳐 대천공원에 이르는 숲길2코스를 애용했다. 안부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옥녀봉을 외면한 건 순전히 아내의 트라우마 땜이었다. 6년여 전에 내가 옥녀봉바위에서 추락하여 손목 골절파손으로 1년여를 치료하느라 고생했었던, 아니 아내는 추락현장에서 나를 수습하여 병원까지 이송시키느라 정신을 반쯤은 잃었었다.

봉수대 오르는 조붓한 숲길
그늘사초 산등성
간비오산 봉화대

아내는 그런 악몽이 떠오를까봐 옥녀봉을 애써 피했었다. 그래 오늘은 아내가 동반하지 않은 산행이기에 부러 옥녀봉산행을 하기로 했다. 남녘 장산은 진초록으로 단장을 했다. 4월의 연둣빛은 부끄럽단 듯이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철쭉은 겨우 몇 송이뿐, 이팝나무가 하얀 면사포를 휘두르고 바람을 일으킨다. 장산등산로는 데크길이 없어 좋다. 바위자갈이 많은 산길은 완만하기까지 하여 산행의 묘미를 만땅 즐길 수가 있다.

오리나무의 영접을 받고~!
금련산이 흐릿하게 조망된다

게다가 울창한 숲 사이로 숨바꼭질하는 마천루 숲과 푸른 바다는 눈 호강을 시켜주고 바닷바람은 몸뚱이를 상쾌하게 맛사지 해준다. 안부에 올라섰다. 네댓 개의 등산코스가 만나는 넓은 쉼터는 벤치와 간단한 운동기구도 있어 항상 인적이 끊어지지 않나 싶다. 옥녀봉을 향한다. 조금 가파르다. 바위무더기가 보이고 바위한테 붙들린(?) 소나무가 6년 전의 나를 알아보나 싶었다. 정상에 올라서니 산님 한 분이 오찬(?)을 만끽중이다.

▲봉수대에서 조망한 마린시티 아이파크와 광안대교 & 경동아파트 단지▼

인사를 나누고 내가 낙상했던 뾰쪽 바위 앞에 섰다. 왼쪽으로 자빠지면서 스틱을 쥔 왼손은 좌측바위를 짚으면서 앞으로 넘어져 아래 바위에 떨어졌나 싶었다. 그 순간부터 몇 분간은 정신을 잃었던지 기억이 없다. 뒤쪽에 있던 아내가 넘어지는 나를 보고 달려와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산님을 향해 도와달라고 소릴 질렀단다. 아내와 산님이 내 양편에서 쓰러진 나를 보듬어 안고 가까스로 일으켜 세웠을 때 나는 정신이 들었었다.

마린시티와 광안대교
이팝나무 꽃

6년 전 그렇게 떨어져 널부러진 채 의식이 없었던 바위에 내려와 그때의 몽롱하고 못 견디게 아파 쑤셨던 기억의 파편들을 떠올려봤다. 산님이 나를 보듬어 부축하면서 나더러 걸을 수 있겠느냐?’고 했을 때 ~’라고 대답하면서 안간힘을 써서 발걸음을 때었었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지금 막 태어난 누우새끼가 첫걸음마를 시작하려는 어정쩡한 모습이었지 싶다. 아래 글은 그날의 불행을 쓴 산행기의 일부다.

돌탑 삼거리
▲이팝나무▼

“솔숲속의 옥녀봉은 뾰쪽뾰쪽한 화산석바위동네였다. 바위에 올라서서 송정방면시가지를 폰카에 담고 돌아서다 우측 발끝이 요철바위 끝에 걸렸던가보다. 중심을 잃고 추락한 순간 앞 바위에 자빠져 쓰러졌다. 찰나의 불상사라 정신을 잃었는데 아내가 달려와 바위에 엎드려있는 나를 부축하여 일으키려 용 썼다지만 꿈적도 할 수가 없었단다.

군부대 철조망,  6년 전 부러진 팔목을 동여매고 철조망 옆길을 지나던 기억이 새롭다. 그땐 이 등산로는 전혀 몰랐다

순간 내 얼굴에서 피가 흐른다고 아내가 호들갑을 떨며 손수건으로 지압하려 애쓰면서 마침 저만치서 쉬고 있던 산님한테 도움을 청한다달려온 산님이 나를 안고 부축하며 일어 세우려는데 난 왼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산님과 아내의 부축을 받으며 간신히 일어선 나는 정신이 들어 그때 상황파악을 했다왼쪽 볼에서 피가 흐르고왼손목이 심하게 굴절된 채 부어오르며 통증이 심했다

군부대 훈련장

산님이 부축하며 발을 떼보라는 말에 두 발을 교대로 내디딘 난 '괜찮아요'라며 웃었다. 아내배낭을 내 가슴팍에 매고 왼손을 배낭에 걸쳐 쑤셔 넣고 손수건으로 팔목을 감싸 당겨 목에 매곤 발걸음을 뗐다. 초행길인 난 산님에게 시내로 가는 최단코스를 물었으나 그분 또한 비슷한 처지였다. 참으로 고마운 산님과 헤어져 200m아래 아까 장산너덜길이정표까지 갈 수밖에~. 

▲바위길과 군부대 경계선은 한참을 계속된다▼

오른손으론 뺨의 상처를 압박한 채 하산하며 느끼는 왼팔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전신의 고통은 땀범벅이 되나싶었다.”

 생각할수록 아찔하다. 내가 사진 찍고 돌아서다 넘어진 바위에서 조심스럽게 내려와 그 밑에 자빠져 널부러져 있었던 바위에 앉았다. 그때 바로 바위절벽 아래서 인기척이 나더니 밧줄을 잡고 장년커플이 단애를 기어 올라오고 있다.

오늘 산행한 17번코스는 6년 전 낙상때의 하산길이었다. 옥녀봉에서 1번코스로 하산 했으면 좋았을 텐데 길 가르처 준 산님도 잘 몰랐을 테다

 놀란 내가 묻는다. “거기에 등산로가 잇습니까?” 라고. “있지요” 대단한 클라이머 커플이란 생각이 스쳤다. 바위에 올라선 그들에게 “대단하십니다.”라며 부럽다는 듯 인사를 했다. “장산에서 이 코스가 가장 힘들걸요”라며 남산님이 미소를 지으며 “바위 하나 없는 킬리만자로는 여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라며 환하게 웃는데 햇볕에 그을린 구리 빛 얼굴의 깊게 주름살이 산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안부 오거리(쉼터) , 그날 옥녀봉에서 내려와어느 산님의 안내로  봉수대 방향2.5km로 하산했었다. 대천공원1.7km를 외면하고 였다

산님 커플이 내 머리 위 바위에 자릴 잡고 배낭을 푼다. 내가 묻는다. “세렝게티산에 바위가 없어요?” “ 예, 옥녀봉 바위 올라오기가 더 힘 든다니까요. 거긴 난코스가 없어요.” “그래요. 얼마나 걸립니까?” “못 잡아도 5박6일은 걸리지요” “그렇게나 많이요?”라고 내가 의아해하자. “산세가 워낙 큰데다 6천 미터가 넘어 고산병으로 더딜 수밖에 없어요.”라면서 고행속의 자기 찾기란다. 검튀튀 그을린 얼굴이 영락없는 산꾼 이었다.

옥녀봉 정상석, 점심 먹다말고 저 분이 나더러 '옥녀봉이 십년은 더 살 행운을 주었다'고 격려를 했다

 

누가 묻지도 안했는데 “옥녀봉을 대수롭게 알고 까불다가 떨어져 죽을 뻔 했네요”라고 내가 괜한 너스레를 떨자 저쪽의 홀로산님이 “여기서 떨어졌다고요?” 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예, 6년 전에 저 바위에 올라서 사진을 찍다 넘어져 1년간 죽을 고생을 했네요.”라고 무슨 자랑거리라고 역설을 했다. 그러자 홀로님이 “당신 운 좋구먼, 옥녀바위에서 떨어져 안 죽은 사람은 10년은 더 산답니다. 안 죽으면 병신 되는데 죽는 게 나아 설걸요.”

▲옥녀봉 정상에서 조망한 해운대 시가지 일원▼

“점심은 먹었소?” 점심보따리를 풀면서 커플 산님이 물었다. “예, 아까 먹었어요.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즐건 산행 하세요” 불청객노릇하기 뭣해 일어섰다. “옥녀봉 자주 오시요. 당신한테 길산(吉山)이요.” 홀님이 손을 흔든다. 어째 심신이 개운한 느낌이 들고 발길도 가볍다. 옥녀봉에서 살아남은 건 옥녀가 돌본 게 아니라 하느님이 눈감아 준 건가! 시건방 떨지 말라면서~, 이팝나무가 튀어나와 뻥튀기 축하를 한다. 고소한 향 기미를 못 느꼈다. 환하게 웃으면서 흔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지는 산행이다.     2024. 04.

옥녀봉표지석 배낭 아래에 킬리만자로 등반 커플이 있고 바위사이 얼굴이 홀로산님인데 나는 그 뾰쪽바위에서 낙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