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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안산초록숲길의 만추(3)

안산초록숲길의 만추(晩秋)(3)

올 여름, 뜨겁고 뜨건 태양 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내가 걸친 초록 옷이 있어서였다. 초록을 태우며 태양을 안아 형형색색의 이파리를 빚은 건, 한줌의 사윈 불씨를 뿌리에 갈무리해 겨울나서 명년봄 발아(發芽)의 불쏘시개로 쓰려 함이라. 곱디고운 단풍낙엽마저 뿌리에 숨긴 불씨를 살리기 위한 덮개로 쓰기에 나는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메타쉐콰이아 숲쪽의 초록숲길의 단풍

내가 나무인 것은 온갖 치장 다 내려놓고 알몸으로 설한풍과 맞서면서도 뿌리의 불씨를 한순간도 깜박하지 않음이라. 나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웠던 만큼의 열정이 영양분(불씨)으로 생성되어 월동속에 튼실한 새싹을 움트게 함이다.  미꾸라지가 겨울철 보양식으로 회자되는 건 월동을 위한 봄`여름날의 왕성한 먹이활동 땜이듯 말이다.

고목벚나무 숲의 초록숲길

모기유충(장구벌레)을 잡느라 진흙을 뒤집는 탓에 미꾸라지가 많이 사는 웅덩이는 늘 흙탕물이 된다. 겨울에 진흙 속에서 겨울잠을 자야만 하는 미꾸라지는 따뜻할 때 많이 먹고 살찌워야 한다. 하여 미꾸라지는 모기개체수를 줄이고, 물속에서 부레로 공기를 마시고 뱉는 호흡작용으로 물을 정화시키는 아주 고마운 물고기다.

안산초록숲길을 걷다보면 몇 군데 웅덩이가 있는데 미꾸라지가 살고 있지 싶다. 도룡농이 살고 있는 생태학습지가 있고, 그곳에 살 미꾸라지들도 이맘때쯤 겨울잠에 들었지 싶은 거다. 그 웅덩이에도 색 바랜 낙엽들이 수북이 떨어져 비단이불마냥 덮여있다. 그만큼 안산초록숲길은 약수터가 많기도 하다.

백암약수터의 암송

아무리 가물러도 약수는 마르지 않는데 불행한 건 그 약수가 음용불가판정을 받은 곳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안타까움이다. 미세먼지와 갈수록 불어나는 등산인파 탓이 클 테지만, 무분별하게 CCA방부목으로 만든 자락길도 수질오염의 원흉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연스럽게 이뤄진 생태숲길인 안산초록숲길이 엄청 좋은 데 굳이 안산허리께를 한 바퀴 빙 두른 CCA방부목의 자락길을 애써 만든 까닭을 이해하기 옹색스럽다. 더구나 동남아산 CCA방부목은 인체에 유해한 비소, 크롬, 구리등이 다량 함유 돼 있어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지목 돼 미국 등 선진국에선 사용규제용품이다. 

전시효과를 내겠다고 지자체가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CCA방부목은 환경파괴와 생태오염에다 유지관리비가 장난이 아닌데 말이다.  어떻든 간에 안산자락길은 무장애길라선지 산책인파가 넘쳐 지자첸 자화자찬하는지 모르겠다. 산을 찾는 인파가 많다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님인데 말이다. 하여 초록숲길은 살판이 났다. 인파가 자락길로 모여들어서다.

팥배나무 열매 위로 안산정상이 보인다. 팥배열매는 새들의 간식거리다

산을 쫌이라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찾는 산길이어서다.  초록숲길 걷다보면 우리 근대사에 악명을 떨친 독립문역사박물관(서대문형무소)이 고색창연히 보인다. 그 서대문형무소에서 1908년10월 의병연합부대 13도창의군 총대장 허위가 교수형에 처해졌다. 억울하게 처형당한 순국선혈이 하 많지만 허위는 내가 석재(石齋, 본명은 서병오)란 인물을 들여다보다 알게 된 젊은 열사다.

허위가 처형 된 겨울엔 석재란 팔능거사(八能居士;시,서,화,거문고,장기,바둑,의술,약재등에 능통한 자)가 친구 긍석과 중국으로 떠난다. 47세의 석재는 5개월 전인 1907.8월에 신령군수란 관직에 첨 임명 됐으나 열흘 만에 사직했었다. 그는 13살 때부터 고향 선산의 유학자 허 훈의 문하에서 수학한 천재였다. 대원군은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18세의 그를 운현궁으로 불러 시``화를 선보이게 한다.

우측 바위 아래 빨간벽돌집 서대문형무소가 보인다

글곤 감탄한 나머지 42살 연하의 서병오에게 자신의 호 ‘石坡’에서 石자를 떼어 너를 ‘石齋’로 한다고 작명해 줬다. 그 스승의 동생 허위가 의병장으로 일제에 쫓기던 차 잠시 숨겨준 일이 일경의 의심을 받자 병을 핑계대고 사푤 냈던 것이다. 요즘의 지자체장들이 죽기 살기로 관직에 목매는 행위가 대비된다.

메타쉐콰이어 숲

저기 발아래 서대문형무솔 물끄러미 보다 석재를 생각해 봤다. 팔능거사 석재는 주색을 좋아하는 호걸이었다. 어느날 밤, 친구인 화가 학고와 기생 연홍을 불러 한 판 놀면서 자신은 기석(奇石)을 그리고 학고와 연홍에게 난(蘭)을 치게 해 그 그림에 분위길 띄우는 즉흥시를 쓴다.

클라이머들의 요람

“취한 붓 마음대로 휘두르면서

다만 항아리 속 술이 마르지 않기를 바라네

창밖에 새벽달이 걸려있는 줄도 몰랐다오”

만추의 스산한 허공과 약수터의 차디 찬 웅덩이

또 한 번은 경상도관찰사의 초청으로 연회에 끼였다. 석재가 홀딱 반한 기생이 술을 따르려하자 상 밑으로 발을 뻗어 그녀의 발을 살짝 건드렸다. 놀란 기생이 술을 쏟아 치마가 젖었다. 기생이 당황하자 석재는 치마를 벗어 수양버들에 걸어 말리란다. 관찰사도 부추긴다. 

기녀가 치마를 벗자 잠자리날개 같은 속옷만 걸쳤다. 속살 보이는 기생과 한참 신나게 놀다가 말린 치마를 가져오게 하였다. 가져온 치마폭에 붓을 휘둘러 난을 치고 감상을 써서 줬다. 치마를 건내받은 기생이 감동하여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옆의 다른 기생들의 선망하는 눈빛이라니!

초록숲길의 석간수는 아무리 가물러도 마르질 않는다. 나는 여기 바위가 짜내는 약물을 젤 사랑한다

그날 밤 석재와 기생은 잠자리날개옷마저 벗어던진 알몸에 몽유도를 그리느라 밤새워 신음했지 싶다. 안산정상 봉수대를 떠나 서대문형무소를 비켜 봉원사방향으로 발길을 옮긴다. 남향받이 사찰은 아직 단풍이 훨훨 불타고 있다. 맹열히 타는 만큼 잉글대는 불씨는 겨울잠속에 쉬이 사그라지지 않을 테다. 

바위가 짜내는 암골수는 수질오염측정도 안 한다

나무가 나무일 수 있는 건 모든 걸 훌훌 내려놓고 겨울을 날 수 있어서다. 안산초록숲길은 오밀조밀 자연생태길에 언뜻언뜻 지나치는 풍경들이 역사의 비하인드스토리를 떠 오르게도 하는 수신 겸 힐링로드다. 나는 아내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초록숲길을 2시간정도 더듬는다. 7km이상일 산책길은 울`부부의 행복의 원천이라.          2019. 12월 초순.

# 안산초록숲길에 대한 산행기 (2)편 https://pepuppy.tistory.com/715

(1)편https://pepuppy.tistory.com/620클릭하면 연속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북한산의 비봉, 향로봉,사모바위,능가봉 연봉이 보인다
안산정상 봉수대에서 독립문공원쪽의 가파른 초록숲길
팥배열매 사이로 정상에 오르는 지그재그 초록숲길이 보인다
봉원사를 향하는 초록숲단풍길
초록숲 단풍길의 쉼터
▲봉원사의 단풍▼
안산초록숲길과 자락길 산행도, 남색점선이 나의 주 산행코스다

# 나의 초록숲길 주행코스(7~8km) ; 뜨란채아파트-→능안정-→금화터널 위 봉원사쪽 숲길-→봉원사뒤 계단길-→한성과학고 뒤 숲길-→백암약수터-→권기열등산교 아지트-→너와집 약수터-→옥천약수터-→무악정-→정상(봉수대)-→독립문쪽으로 하산-→봉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