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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백운대를 불사르는 우이골짝의 단풍

백운대를 불사르는 우이골짝의 단풍

도선사에서 깔딱고개의 단풍

울`부부는 금년가을 북한산계곡단풍에 홀딱 빠져들었다. 그럭저럭 서울사람행세한지 세월께나 흘렀는데 단풍구경을 서울 밖에서 즐길 궁리만 했지 싶다. 정작 올 해 서울지방가뭄으로 단풍이 예쁘질 않다는데 매료됐으니 늦깎이 눈떴다 할 것이다. 아니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소린 울`부부에게 밥풀이라.

우이동계곡 단풍

오늘은 우이동서쪽 백운대를 오르는 계곡을 더듬으며 도선사산문(道詵寺山門)을 기웃거려보자고 했다. 북한산최고봉인 백운대를 향하는 우이동계곡은 융숭하고 깊어 여느 골짝보다 단풍이 이쁠 테다. 백운공원을 감싼 계곡은 물길시늉이라도 있어선지 형형색색 빛깔이 곱다. 도선사까지의 1km남짓한 골짝의 단풍시위에 정신을 앗긴다.

도선사로 불붙는 우이골단풍

단풍몸짓 틈새로 얼핏얼핏 드미는 하얀 삼각산의 위용은 덤으로 맛보는 양념이라. 타는 불꽃 속에 하얀 삼각산이 어찌될까 조마조마하다. 불타는 단풍은 참나무와 생강나무에 황갈색으로 번져 온 산을 울긋불긋 화톳불치장을 하고 있다. 붙임바위의 담쟁이도 빨갛게 타들어 누군가가 붙여놓은 소원돌멩이를 덮칠 태세다.

인수봉,백운대,만경대연봉이 잡힐듯~

저 작은 돌멩이들엔 어떤 소원들이 담겨져 있을까? 문득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一切唯心造)’는 원효스님의 일갈이 떠오른다. 도선사를 반석에 앉힌 청담스님이 원효의 ‘일체유심조’사상을 전수했는데, 스님은 만공스님문하에서 수학하고 인가를 받은 큰스님이셨다. 청담스님의 행적은 도선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단다.

천왕문 앞의 영봉쪽 능선도 불 지피고~

천왕문을 통과하여 본찰에 이르는 길가의 시목(屍木)이 마음을 붙잡는다. 5년전(https://pepuppy.tistory.com/491) 악어능선을 밟고 백운대등정 후 하산 때 마주한 생고목(生古木)이었다. 그 고목 아닌 시목 앞에서 조망하는 산세는 때때옷까지 걸쳐 곱디곱다. 도선사는 뭔 공사인지 어수선하다. 미로를 통해 16나한전을 휘두른 단풍병풍에 빠져들어 환호한다.

16나한상은 화톳불에 휩싸이고.

만추가 선사하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사람의 정성이 더해질 때 극치미를 발한다. 16나한이 제일 행복할 때가 이맘때일까 싶었다. 오층 사리탑과 청담스님의 심지연(心地淵)도 공사판으로 어지럽다. 종각 앞 벤치에서 만추영접(晩秋迎接)하는 가을사람들이 그윽한 풍경화로 다가섰다. 산사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은 사람을 품을 때 영감이 깊어지나 싶다.

9층석탑

산사를 빠져나와 백운탐방지원센터를 통해 백운대를 향하는 골짝의 단풍은 화려하기가 산사의 풍정과는 확연히 달랐다. 애써 속세와 불가의 자연미감(美感)을 구분함은 ‘일체유심조’를 모르는 속물인간 탓이려니? 어째든 하루재를 향하는 단풍은 탄성의 연발일 수밖에. 울`부부는 빠꾸하여 능선을 타고 백운2공원지킴터 쪽으로 하산한다.

영봉, 백운`만경대, 용암봉이 단풍사이로 자꾸 뒤통수를 간지럽힌다. 허나 자꾸 단풍숲에 숨어 아쉽긴 피장파장이다. 어느 겨울이었다. 청담스님이 설악산 봉정암에서 정진할 때 도반들과 선정(禪定)에 들었다. 얼마나한 시간이 흐렀고, 그 사이 눈이 엄청 내렸었다. 스님이 좌선을 풀었을 땐 법당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백담사로 떠났던 참이었다.

폭설(暴雪)로 옴짝달싹도 못한 스님은 다시 참선에 빠져들었다. 식량도 없어 공복인 채 보름이 지나 아사직전이 되도록. 근디 홍천군수와 경찰서장이 눈사태를 헤치고 나타났다. 그들 꿈에 설악산 산신이 나타나 “지금 봉정암에 선정에 든 스님이 아사직전이니 빨리 가서 공양을 하라.”라고 당부해서였다. 뭔 꿈이 두 사람한테 똑 같이 꿨당가?

봉정암으로 달려간 그들이 청담스님을 아사에서 구했던 것이다. 그 스님의 족적이 저 아래 도선사에 또렷하다. 나무가 아름다운 건 단풍 옷을 입어 더하다. 비바람치고 덥거나말거나 제 할 일을 다 해서 이뤄내는 섭리라 곱다. 섭리대로 살면 우리네 삶도 고울 텐데. 나한텐 공염불이다.

백운대를 향하는 하루재의 단풍

이쁜 단풍에 취해 흥분하는 전율이 이어지길 바랄뿐이다. 내일은 어딜 갈까? 글고 뭔 재미를 탐할까? 탐욕은 끝이 없는데 말이다. 가을이 가면 눈이 내릴 텐데 아사걱정 안 해서 더 행복한가? 올 겨울엔 봉정암에서 백담사까지의 눈길을 걷고 싶다.  펑펑 쏟아지는 폭설속이라면 어딸까? 하얀설경에 몸도 마음도 씻겨보고 싶다.           2019. 11. 05

 

우이골의 단풍↕
붙임바위, 돌을 붙이고 기도를 하면 소원성취한단다
도선사골의 참나무도 노랑가사를 걸쳤다
도선사골짝의 만추
9층석탑

 

대웅전처마를 향하는 단풍
반야굴과 대웅전 앞의 야외법당
오층사리탑(우)
깔딱고개
하루재길

 

연무에 싸인 인수봉

 

우이동계곡
때까치의 목욕, 털갈이 하느라 근지근질한가? 커플이 번갈아 찬물에 멱 감으며 눈길을 빼앗았다
단풍과 바위, 햇빛이 깊은 소에 그린 신비한 데칼코마니
원시의 숲 같은 우이골짝의 만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