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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북한산 칼바위능선의 단풍퍼레이드

북한산 칼바위능선의 단풍퍼레이드

북한산순례길(2구간)의 근현대사기념관 앞의 초대길에 들어선 건 오전11시경이었다. 초대길엔 우리의 암울한 근현대사에 햇살이 된 선혈들의 묘소가 소공원을 이뤄 산책하기 그만이다. 이준열사와 김병로선생의 묘역사이 골짝의 조붓한 돌계단은 운가사를 끼고 대동문을 향하는 한적한 숲길이다.

가뭄 탓에 단풍들자 낙엽이 된 고엽들이 발등에 채이지만 아직 골짝은 화톳불처럼 활활 타는 불꽃이 일렁이고 있어 탄성을 자아낸다. 아내와 나는 대동문을 거쳐 칼바위능선을 타고 정릉계곡으로 하산하는 단풍구경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 코스의 산행이 초행인 내가 더구나 아내가 험난한 칼바위능선을 감당해낼지가 걱정이었지만, 아낸 가는 데까지 가잔다.

소귀천골짝길과 합류한 등산로의 단풍

곱디고운 단풍의 향연에 빠져들어 시름은 기우일 뿐이 되어 줄찬 오르막산행도 마냥 즐겁다. 북한산엔 키다리상수리나무가 많은데 푸른 하늘을 향해 솟구친 거목들이 황갈색이파리를 흔들고 있는 풍정에 감탄한다. 죽어서 다음 생엔 소나무가 되고 싶다는 아내에게 나는 상수리나무가 되라고 거들었다.

빛과 색깔의 향연을 호젓하게 즐길 수 있는 칼바위능선

상록수로 산지기노릇과 쉼터를 제공하는 소나무도 좋지만, 상수리나무는 사시사철 이쁜 옷을 갈아입으면서 빚은 열매로 뭍 동물들에게 식량을 보시해서다. 몸치장을 하며 동물들을 먹여 살리는 바지런한 삶을 그 누가 하고 있을까? 아낸 웃으면서 ‘괜찮네!’라고 응수했다. 운가사에 들어서려다 길을 가로지르는 뱀(유혈목이)앞에 섬뜩 멈췄다. 놈들이 아직 동면에 들지 안했나?

운가사 입구

선입관이란 참 묘하다. 아무리 작은 뱀이라도 마주치면 오싹해지기 망정이니 말이다. 놈은 무신경하게 숲속으로 태연하게 사라진다. 소귀천계곡길과 합류하자 산님들을 간간히 조우한다. 햇살에 몸 씻는 단풍이 찬란하다. 그 찬란한 빛살에 숲속이 미열로 부스럭댄다. 한해를 오롯하게 살고 모든 걸 내려놓아 자연에 이바지하는 초목들의 삶은 경외(敬畏)다.

해서 조물주는 초목에게 다음해 다시 살아나는 초자연적인 생명력을 주었는지 모른다. 사람도 사회에 해악을 끼친 삶을 살땐 그해까지만 살게 하고 저승사자가 데려간다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나쁜놈들에게 사후 천국행을 권장하는 종교의 허세(?)가 공허하게 들리는 소이는 뭘까. 대동문에 들어섰다. 조선조 땐 수문장허락을 받아야 드나든 콧대 높은 문이다.

대동문

백성들의 고혈로 만든 북한산성이 백성들 발길을 묶고, 정작 외침에도 유용하지 못했던 애물단지였던가? 고려 때 축성하여 허물어진 산성을 1711년에 중수 완성한 이후 한성밖의 북쪽에 있는 산이라서 북한산(北漢山)이라고 불렀다. 그 산성을 타고 북한산칼바위능선을 향했다. 성곽을 넘자 칼바위봉이 숨 막히게 바짝 다가섰다. 그보다는 하강해야 할 바위벼랑밑이 안보여 더욱 주눅 들게 한다.

대동문에서 칼바위능선간의 북한산성

아내가 뒷걸음질 치며 심난해하다 스틱을 거뒀다. 정작 골짝을 내려서면 가로막고 서있는 칼바위봉은 가파른 계단이 있어 용기를 낼만했다. "시간 많응께 엉금엉금 기어서가자"는 나의 격려가 다소 위안이 되기도 했을까? 20m도 안 내려와서 아내가 "다른 길은 없어?"한다. "우회길이 있단 걸 산행정보에서 읽긴 했어"라고 내가 응수했다. "그럼 글로 가게~" 아내가 나를 빤히 처다 본다.

칼바위능선, 계단이 위태위태 걸려있다

"그럼 올라가서 찾아봐야 하는디?" 나는 좌고우면할 개재가 아니었다. 기어내린 벼랑을 다시 기어서 빠꾸 올라탄다. 칼바위능선은 바위들이 칼로 내려친 듯 날선 암봉이 800m정도 날을 세우고 있어 명명된 이름이다. 깎아지른 암벽은 사고위험구간이라고 소문났다. 나도 미답의 칼바위능선인데 아내가 동반하는 자체가 어리석었지만 여기서 어쩌질 못한 채였다.

칼바위능선의 절애

네발로 기어서 다시 성벽에 올라섰다. 마침 칼바위능선에서 넘어오는 산님에게 우회로를 물었다. 우리가 서 있는 바위우측에 있단다. 절애(絶崖)에다 바윗길이라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아래에 표지판이 있어 가보니 칼바위우회로 이정표였다. 다시 올라가 아내를 동반하강했다. 우회로도 그리 호락호락한 바윗길이 아니라 아낸 바짝 긴장하여 바위늘보가 됐다.

칼바위능선서 조망한 노원구시가지와 수락산

칼바위봉 옆구리를 파고드는 우회로는 낙엽이 덮인 데다 산님도 없어 옛길 같다. 인적 뜸한 정릉계곡은 단풍이 절정인 게 칼바위능선 타는 것 보단 만추의 풍요에 취할 수 있어 위안이 됐다. 온전히 울`부부만을 위한 단풍퍼레이드를 정릉골짝은 펼치고 있는게 아닌가. 어쩌다가 넓적바위에 닿아 본격등산로에 들어서기까지 우린 어떤 길로 하산했는지 (나중에 찾아봐도)산도에도 없었다.

나한,문수,보현연봉 능선

그렇게 하산한 코스가 흐지부지한 옛산길인데다, 긴장속의 험한 바윗길이 불 지핀 단풍꽃길이 된 통에 아내 덕에 칼바위단풍무대 관람이란 호사를 누린 셈이다. 가뭄으로 희멀건 알몸 들어낸 골짝바위를 훑으며, 골수 쥐어짜내는 청수폭포를 지나 정릉탐방지원센터에 이른 건 오후3시를 훨씬 넘겨서다. 담엔 홀로산행으로 칼바위를 더듬을 테다.

여름날 맑은 물소리 속삭대는 청수천을 따라 올라 대성문과 보국문을 들랑거리며 칼바위를 타고 땀으로 멱 감고 싶다. 글곤 정릉골짝으로 하산하면서 물바람과 수목들이 내뿜는 피톤치드 향으로 심신을 씻는 또 다른 행복감에 취해보고 싶다. 북한산이 없는 서울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테다. 무학대사과 삼봉과 이성계의 혜안을 상상해 본다.               2019. 11. 01

불타다 마른 잎으로 낙엽된 단풍이 수북히 쌓인 만추
순례길(북한산둘레길2구간)의 초대길입구
운가사 가는 길, 년 중 몇 번이나 이런 호사를 누릴수 있을까?
북한산연봉능선
대동문성곽
대동문에서의 이정표
대동문밖, 조선조땐 입출수속을 기다리느라 북새통을 이뤘을 터였다
대동문에서 보국문을 잇는 성곽길↕
성곽길의 단풍
↕보광사 옛터인듯~
정릉계곡은 하산할수록 불길이 활활 타고 있었다
석간수 옹달샘, 인적이 뜸해선지 낙엽을 종이배처럼 띄운 물빛이 탁해보였다
불타는 골짝에서의 황홀한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바위마실에 수호신처럼 서있는 건 소나무가 아닌 상수리나무↕
오늘 우리가 밟은 칼바윈능선우회길 중 옛길 일부는 (고백컨데)출입금지구간 이였는지 모른다
가뭄에 민낯 들어낸 정릉골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