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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단풍몸살 앓는 도봉산원통사 & 북한산솔숲`순례길

단풍몸살 앓는 도봉산원통사 & 북한산솔숲`순례길

원통사삼성각 바윗길의 가을치장

도봉산역에서 산문에 이르는 길은 울긋불긋한 산님들 패션이 단풍쓰나미를 이뤄 밀물처럼 도봉산을 덮칠 기세다. 서울산님들70%가 도봉`북한산에 몰린다니 바위산이기 망정이지 떠밀려갈 듯하다. 아내와 나는 산님들 쓰나미에서 탈출하여 도봉옛길(북한산둘레길18구간)을 더듬으며 무수골을 향한다. 활엽수들이 가을몸살을 앓느라 빨`주`노`녹색으로 신음하며 이파리 하나씩을 떨어내고 있다.

방학능선의 단풍몸살

가을은 슬프다. 피붙이를 떨어내는 아픔의 스산함이 홍건해서 마음을 여미게 한다. 이 우수(憂愁)의 계절에 살판난 놈은 멧돼지일까? 도토릴 찾아먹으려 온 숲과 땅을 파헤쳐 놨다. 묘역도 파헤쳐 아수라장으로 뭉겠지만 놈들의 불도저식 땅 뒤집기는 건강한 생태환경조성에 기여를 한 셈이다. 근디 그 멧돼지가 웬수놈이 됐다. 아프리카돼지열병에다 도심에 출현해 난폭자가 돼서다.

방학능선의 가을 속으로~

세상의 동물들은 어떤 종(種)이던간에 좋은 놈과 나쁜 놈, 역겨운 놈과 치사한 놈이 있게 마련이다. 그 중에도 나쁘고 치사한 하등동물이 사람중에 많을 것 같다. 단풍몸살 앓는 숲길을 걸으며 좋은 것들만 생각하고, 심신을 살찌우는 산님들이 도봉옛길에도 넘친다. 참으로 좋은 계절에 기분 좋은 날씨다. 우린 무수골에서 방학능선을 탄다.

원통사(圓通寺)를 탐방하고 우이암을 거쳐 우이능선을 타고 하산하면서 순례길(북한산둘레길2구간)에서 오늘을 마무리하자고 했다. 다만 아내가 견뎌낼지 걱정이긴 했지만 단언코 앞장서란다. 완만한 방학능선을 뒤덮은 활엽수의 가을몸살과 소나무들의 상큼한 소슬바람은 트레킹의 활력소가 됐다. 자운`만장`선인`신선대연봉이 숲 사이로 희멀건 모습을 비추고, 파란하늘에 수놓는 구름 꽃도 비타민이 된다.

우이남능선골도 단풍빛이~

이따금 바위에 앉아 쉬면서 이 가을에 빠져 든 산님들을 보면 덩달아 나도 행복해진다. 원통사는 500여m를 앞두고 깊은 골짝과 빡센 오름길의 바위너덜로 불문입성(佛門入城)을 시험하려는 듯싶었다. 그 험난한 산길을 빨갛게 불붙은 단풍이, 노랗게 화장한 나무들이 위무하는 거였다. 아내가 죽을 상이다. “여기서 쉬고 있소. 얼른 올라갔다 올께” 잔뜩 생색내는 내게 “걱정 마, 따라간다고~” 아내와의 선문답이 몇 번 이어졌다.

우이남능선을 지피는 단풍

가까스로 일단의 산님들이 쉬고 있는 원통사 아래 소나무숲터에 올랐다. 하얀관음암을 이고 있는 원통사가 눈앞으로 다가섰는데, 아낸 바위에 배낭을 풀고 나더러 “후딱 갔다 와요”라고 볼멘 외마딜 뱉었다. 난 이럴 땐 아내를 알다가도 모른다. 힘들게 와놓고 정상등정을 포기하는 경우를 한두 번 보아온 게 아니다. 나 혼자 가파른계단을 오른다. 소나무를 옆구리에 차고 귀목을 등잔등에 엎은 종각(鐘閣)이 파란하늘에 붙박인 채 내려다보고 있다.

원통사 탐방객은 종각의 소나무와 귀목의 영접부터 받는다

사찰마당은 중창기재(重創機材)들로 어지럽다. 나는 이성계(李成桂)가 기도한 석굴과 그가 기도 후 꿈속에서 상공(相公,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알현하고 상공암(相公岩)이라 새겼다는 바윌 찾아 가파른 바윌 올랐다. 약사전과 삼성각, 동굴나한전은 주변에 수많은 동물형상을 한 바위들을 거느리고 있어 천혜의 관음성지라 일컫는다. 원통사는 신라경문왕 때 도선국사가 창건했단다.

원통사

1928년 비구니자현(慈賢)주지스님이 춘성(春城)스님을 초청하여 천일관음기도를 올려 이듬해에 불전을 중건하였다. 나는 춘성스님을 흠모하느지라 더더욱 원통사를 탐방하여 스님의 숨결을 느끼고 싶었다. 춘성스님은 인근의 망월사를 중흥시킨 선승이며 육두문자설법으로도 일세를 풍미한 무애도인이셨다. 더는 설악산신흥사에 침거한 춘원이광수의 뒷바라지와 옥중의 심부름까지 했던 생불이셨다.

약사전 앞 바위에 태조이성계의 '相公岩'이란 글자가 음각돼 있다

철저한 무소유의 삶을 살았던 대자유인인 춘성스님은 법문을 남기는 것마져 부질없는 짓이라고 참선을 권유했다. 이불은 잠귀신이라고 망월사의 모든 침구를 불사르고, 목침과 방석 하나로 산 스님은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만나면 자기의 옷까지 다 벗어주곤 한 산부처였다. 스님이 서울시내에서 만난 행자에게 옷까지 다 벗어주고 깨복쟁이가 되어 지인을 찾은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바위계단의 가을몸살

박정희의 유신독재시절, 육영수여사생일에 청와대로 초대받아 법문을 요청하자 잔뜩 뜸 들인 후에  “오늘은 육영수보살이 지 에미 뱃속에 있다가 ‘응아’하고 보지에서 나온 날이다”했다. 군더더기 없는 직설 욕법문에 박통도 ‘불교계에 저런 큰스님이 있었나!’라고 했단다. 천일기도 중에 신도들에게 스님은 또 어떤 선지식의 육두법문을 활구하며 감동케 했을까?

귀목과 소나무를 앞세운 종각

생불 춘성스님의 수많은 일화가 인구에 회자되면서 우리의 삶을 각성케 한다. 상공암 아래 석간수로 갈증을 달래고 대웅전 앞에 섰다. 단풍이 골짝을 지피고 저만치 녹음 속에 서울시가지가 희뿌옇게 꿈틀댄다. 바위연봉도봉산의 절애(絶崖) 속에 불성(佛性)을 지핀 선각자들의 혜안이 무섭도록 감탄케 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 멋진 안식처를 설계한 선현들 덕에 감탄할 수 있는 행운은 아무나 누리는 게 아닐 것이다.

원통사에서 조망한 서울시가지. 멀리 소요산이 아물댄다

우이남능선을 탄다. 빨갛게 불붙은 붉나무와 당단풍이 부러웠던지 노랑화장발의 활엽수들이 홍갈색화장을 하고 있다. 가을속내는 나무들의 화장(化粧)으로 깊이를 알린다. 싱그런 가을냄새가 내 옷자락, 창시까지 배어드는 느낌이라. 네 시간여의 가을산책 끝에 북한산국립공원우이분소에 닿았다. 북한산21구간둘레길이 시작되는 1구간소나무숲길(4km)이 시작되는 곳이다.

원통사깔닥고개의 솔밭쉼터

울`부부는 2구간순례길까지 트레킹하기로 했다. 손병희선생묘역을 들려 소나무쉼터를 거처 솔밭공원에 들어섰을 때가 오후3시였다. 얕은 우이동뒷산구릉을 넘나드는 산길은 개발제한구역산촌을 기웃댄다. 어떤 집은 북한산을 정원처럼 공유하는 호사까지 누리고, 어떤 농장은 경작금지현수막으로 울타릴 치고 있었다. 구청과 불법경작자의 대치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볼썽 사나운 응전은 빨리 종결지어야 할 책임이 구청에 있다.

이시영초대부통령의 묘소길

북한산2구간순례길(1.3km)은 신익희, 김병로, 이시영, 이준열사 등의 묘역이 있는 성지다. 이시영부통령과 이준열사묘역 입로(入路)는 꾀 길고 단아하며 넓은 묘역은 쉼터로도 그만이란 생각이 들었다. 암튼 이토록 아름다운 풍치와 풍부한 스토리텔링의 멋진 산책코스가 또 있을까? 싶게 좋았다. 1~2구간순례길을 끼고 있는 동네사람들은 천혜의 해택을 누리고 사는 행운아란 생각이 들 정도로 부러웠다.

솔밭공원

울창한 수목속의 고즈넉한 산책길엔 선혈들이 주옥같은 얘기를 들려주면서 힐링과 심신연마를 해줄 테니 말이다. 우린 두 시간여를 온갖 해찰부리며 가을의 전설 속으로의 여행을 하고 있었다. 깊어지는 가을에 북한산둘레길1~2코스에 빠져 헤엄처봄 어떨까? 이렇게 아름다운 둘레길이 도심지근거리에 있다는 게 서울사람들의 행운일 것이다. 토실한 청설모가 단풍나무순례에 신바람이 났다.              2019. 10. 22

# https://pepuppy.tistory.com/591 에서 춘성스님을 행적을 뵐 수 있습니다

우이암을 오르는 바위길
도봉옛길
도봉옛길에서 무수골로~
멧돼지의 횡포로 초토화 된 묘역
단풍지피는 북한산
북한산 원경
방학능선길에서
우이암(원통사)0.6km의 푯말 앞에서 아내는 자못 ㅎㅎ댔는데 고행길은 여기서부터였다
원통사가 떠 받치고 있는 관음암의 위용
대웅전 앞에 삼층석탑이 건립됐다
순례길에서 조망한 도봉산
순례길은 흰구름길로 이어진다
판돌로 단장한 순례길, 나무데크 대신 자연석이라 좋았다
이준열사 묘역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님 묘소
현대사가 켜켜이 쌓인 순례길은 심신의 힐링길이다
초대 부통령 이시영의 묘소 입구길, 한 없이 뭉그적대고 싶었다
광복군합동묘역
코스모스군락 속의 군계일학-꽃 이름을 모르겠다
소나무숲길에서 해후한 피마자나무가 타임머신을 타고 까마득한 옛날로 향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