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이령길 & 오봉산석굴암

오봉, 고을원님 사윗감후보5명이 상장산에서 바윌던져 쌓기시합으로 생긴~

진즉부터 탐방을 벼르던 나는 아내와 소귀고갯길-우이령길트레킹에 나섰다. 사전에 우이탐방지원센터에 탐방예약을 한 울`부부가 센터를 통과한시각은 오전11시를 넘었었다. 가을빛을 담기 시작한 울창한 수목들 사이로 훤칠하게 뚫린 우이령길은 조붓한 산책길이라기 보단 신작로다. 본시 민간인 내왕의 소귀고갯길을 군작전용으로  조성하였는데 공비침투사건으로 40여 년간 통제된 군사용길로 쓰여 이만큼 조용한 숲 터널을 이루었지 싶었다.

활엽수와 단풍나무숲은 며칠 후면 홍건한 단풍터널을 이루고 얼리버드예약객만 그 호사를 누릴 것이다. 마치 태풍전야처럼 오늘의 숲길은 한적하다. 간헐적으로 새들의 지저귐과 소슬바람에 이파리 부대끼는 소리가 대도시탈출이란 생각마저 잊게 한다. 이렇게 청량하고 낭만적인 숲속의 산책을 외면(?)한 서울사람들의 사정이 궁금했다. 아마 우이령길 개방을 모르던지, 예약이란 거추장스러운 절차 탓일지 모르겠다.

1.21공비침투로 폐쇄된 이후의 초소

하여 인적이 뜸하고 스산한 갈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어 힐링`트레킹코스로 더 없이 좋다. 숲 갓길엔 띠엄띠엄 쉼터와 명상자릴 마련했고 완만한 경사길 소귀고개에 대전차방어진지를 만들어 놨다. 여차하면 콘크리트장애물로 전차통과를 차단하는 장치다. 지금에선 저게 얼마나한 효과가 있을까? 전차 몰고 이 고갤 넘는 얼빠진 군대가 있을 법 한가? 소귀고개를 넘으면 도봉산오봉이 숨바꼭질하듯 얼굴 내밀면서 베일을 벗으려나 싶고, 골짝은 북한산과의 경계를 확실케 한다.

소귀고개의 대전차방어진지, 유사시에 콘크리트로 길을 폐쇄시킨다

예로부터 강북우이동과 양주시 교현리를 연결하는 산길이 있었다. 북쪽의 도봉산과 남쪽의 북한산을 가르는 경계선이기도 한 산길은 북`서울시민들과 양주시민들의 내왕과 물물교역을 잇는 소귀고갯길이라 했는데 6.25전란이후 미군의 대전차방어길로 조성했다. 글곤 1968.1.21.일 무장공비 김신조일당의 청와대침투사건으로 폐쇄됐다가 2009.7월 탐방예약제로 개방된, 서울에서 마주하기 쉽지 않은 자연친화적인 트레킹코스다.

단풍은 월말쯤 절정일 테다

4km쯤 얼쩡대며 걸으면 우측에 군부대훈련장입구와 석굴암(石窟庵)들머리가 있다. 근디 사찰로 향하는 경사로는 시멘트포장길이라서 실망했다. 산사에 드는 길이 시멘트길이라니 자연속의 불교성지 답잖고 더구나 일주문은 넓은 시멘트마당에 서있다. 일주문이 관음봉(觀音峰)을 지붕 위에 떠받치고 있다. 관음봉을 파고 나한과 부처님을 자리보전한 굴이 오봉석굴암이란 상징일 터이다. 도봉산주봉인 자운봉(紫雲峰), 남쪽의 만장봉(萬丈峰)과 선인봉(仙人峰), 서쪽엔 오봉산(五峰山)이라.

불이문 위에 관음봉~

오봉산관음봉 중턱의 석굴암은 산세가 뛰어난다. 다섯 봉우리가 멋지게 위엄을 자랑하는 도봉산 서쪽의 관음봉 중턱에 자리한 석굴암은 물 맑고 골이 깊어 수행자에게 최상의 수도처로써 나한기도 도량이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고, 고려 나옹화상이 공민왕의왕사로 3년간 수행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조엔 무학대사의 제자 설암관익(雪庵寬益)이 주석하며, 석굴에 지장과 나한 두 존상을 안치했다.

석굴암 사찰

1455년에는 단종왕후가 왕세자를 위해 왕후원찰로 중수하기도 하였다. 불행하게 한국전쟁으로 소실된 사찰을 초안스님과 도일스님의 원력으로 현재 석굴암으로 중수 나한기도의 도량이 됐단다. 석굴암엔 거짓말 같은 비하인드스토리를 품고 있다. 석굴암의 왼쪽바위틈에서 나오는 자그마한 용왕샘은 옛날 부정 탄 사람이 와 샘물을 마시면 물이 말라, 유일한 식수원이었던 시절 스님과 신도들은 여간한 고욕을 치러야 했단다. 그래서 불순자는 출입금지란 방을 붙였다.

관음봉을 파내서 부처를 모신 석굴암, 우측입구에 옛날 샘물이 솟았다

10여 년 전부턴 이 지하수를 뚫어 물을 풍족히 쓰고 있단다. 또 하나는  6·25전쟁후 주지 초안선사가 석굴암에 움막을 짓고 독성님께 중창불사의 천일기도를 드리던 중 세 명의 보살들이 공양미를 불전에 놓고 불공을 드렸다. 기도 후에 공양미가 줄어들고 손자국이 있어 '석굴암 부처님이 생쌀을 드신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공양미를 든 기도객이 몰려들어 석굴암중흥의 기원이 됐다. 그래서 오봉산 석굴암 나한전은 생쌀을 올리는 도량으로 회자됐다.

토속신앙까지 모셨던 삼성각

글고 또 1792년, 석굴암에 노스님과 동자승 단 둘이서 살고 있는데 동짓날 폭설이 내려 고립무원지경이 됐다. 동자승이 팥죽을 끓이려 아궁이를 헤집어 보니 불씨가 꺼져 있어 노스님께 꾸중들을까봐 동자승은 석굴에 들어가 기도하다 깜박 잠이 들었다. 한참 후 눈을 뜬 동자승이 공양간에 가보니 아궁이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잖은가. 그 시각 아랫마을 차대춘(1802년 작고)씨네 집도 팥죽을 끓이고 있었다. 근디 차씨부인이 인기척에 부엌 밖으로 나가보니 깨 벗은 아이가 눈 위에 서 있었다.  

대웅전처마끝과 북한산 상장연봉이 닿을 듯하다

어여삐 여긴 차씨네가 나체독성님께 팥죽을 공양한 후 현재의 차영민(60세)씨까지 6대째 그 집에서 그대로 살고 있단다. 차영민씨는 6.25전란 때 아홉 살로 가족과 헤어졌다 생존하여 재회한 이산가족이었다. 멍청인 내가 봐도 석굴암터가 예사로운 곳이 아니다. 오봉을 등에 업고 앞은 북한산상장능선자락을 병풍처럼 휘둘렀으니 말이다. 그래선지 경내 곳곳에 불사가 한창인가. 대찰로 거듭날 날이 머잖을 것 같았다.

석굴암바위지붕의 가을몸살이 한창인 담쟁이넝쿨,

울`부부는 석굴암을 빠져나와 교현리 탐방지원센터를 향한다. 2.5km거리다. 우이동지원센터에서 교현리지원센터까진 6.8km여서 거기서 반환점 찍고 되짚어 우이동까진 10km쯤 된다.  오후4시까지 하산해야 하니 서둘러야 했다. 석굴암서 교현리까지의 탐방로도 걷기 좋은 숲속 신작로였다. 마사토를 깐 신작로는 맨발트레킹에 그만이리라. 석굴암탐방이 2km쯤 되니 오늘 16km상당 트레킹한 셈이지만 피곤치가 안했다. 다만 교현리~석굴암길엔 이따금 승용차가 다니고 있어 불편했다.

갓길언덕배기의 성깔 급한 단풍나무들이 빨갛게 이파릴 태우고 있다. 하산시간이 임박해선지 탐방객 마주하기 적막이라. 오전9시부터 오후4시까지란 탐방시간제한도 탐방객이 뜸한 소이일 테다. 우린 단풍이 절정일 이달 말쯤 다시 찾기로 했다. 멋진 단풍골짝이 우이동에서 신작로를 타고 불꽃터널을 이룬다니! 서울사람들은 세계 어느 수도권의 시민들보다 유토피아지근에 살고 있는 행운아들이라!            2019. 10. 18

관음봉
종각
북한산 산장능선

 

석굴암은 군부대유격장과 경계를 이뤘다
웅장한 관음봉

 

우측 산능너머가 양주시
우이령계곡, 갈수기라 바윗덩이들이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탐방안내소, 예약자만 확인 후 탐방할 수 있다
오봉, 옛날 이 고을원님한테 혼기의 이쁜 딸이 있어 사윗감을 찾는 방을 부쳤다. 마을청년 다섯 명이 상장능선에 있는 바윌 도봉능선에 잘 옮겨놓는 시합을 치뤄 승자를 선택하는 거였다. 어떤바위임자가 사위감으로 점지 됐을까?
우이동골짝입구의 북한산의 해골바위와 코끼리바위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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