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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운길산~수종사~예봉산의 스토리텔링을 더듬다

운길산~수종사~예봉산의 스토리텔링을 더듬다

어젠 진종일 가을을 재촉하는 갈비가 내리더니 새벽을 여는 하늘은 맑다. 기온도 뚝 떨어진다고 했다. 예봉산과 운길산행 생각이 솟구쳤다. 침대에서 뭉그적대다 일어나 등산준비를 한다. 아내가 못마땅한지 일찍 유난 떠는 이율 묻는다. 운길산등산 가겠다고, 내 알아서 챙겨갈 테니 눠있으라고, 아내한테 아부를 한다. 글곤 빵 크루아상 한 개와 다이제스트이브, 사과와 육포를 챙기면서 찰밥 반 공기를 전자자에 데워 간단히 아침을 때웠다.

예봉산중턱에서 조망한 양수리두물머리

운길산역사를 나선 건 10시를 막 넘겨서다. 동네로 들어서 고샅길을 헤치다 차도가 아닌 산골짝등산로를 택했다. 밝은 햇살이 초록수림을 뚫고 엷은 안개를 내쫓는다. 안개는 바람을 일으켜 숲을 배회하다 하늘로 빠져나가고 있다. 햇살과 바람과 안개가 적막한 골짝의 길동무가 된다. 길동무가 있어 초목도 싱그럽고 축축한 기온도 향내가 난다. 한참 오르니 저만치 앞에 등산객이 보였다.

운길산입구의 조안면 승촌리. 한음이 낙향하여 사제(별장)를 세우고 말년을 보냈다

잰걸음으로 좇아가 운길산등산로를 물었다. 근방에 사신다는 노익장께서 참 친절하시다. 운길산정상은 지금 보수공사중이라 출입금지여서 예봉산행을 비롯한 어떤 연계로도 할 수가 없단다. 수종사를 들르고 싶다는 내게 정상아래 헬기장에서 수종사방향으로 하산하면 2시간정도 걸리니 하산하여 승촌리께서 다시 예봉산행을 하는 게 좋을 듯싶다는 거였다. 예봉산행은 팔당역까지 네댓 시간이면 된다는 거였다.

그니까 총 7시간정도의 산행인데 악산이 아니라 별 어려움은 없을 거란다. 골짝을 벗어나 능선을 타니 가을바람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소나무와 참나무군락이 혼숙한 울창한 숲은 바람결에 이파리 부벼대며 가을을 노래하고 있다. 등산하기 좋은 날씨와 능선길은 나의 잰 발걸음을 신바람 나게 하는 거였다. 헬기장엔 정상보수공사현수막을 비롯한 집기들이 있고, 정상께선 공사 중인 소음이 들려왔다.

운길산등정로엔 소나무,참나무,신갈나무가 공생하며 쾌적한 숲길을 안내한다

하산하려는 내게 참새같은  새 한 마리가 배회하며 시선을 끈다. 사람이 나타나면 지들의 먹이거리도 생긴다는 걸 알고 있어서일 것 같았다. 놈은 내가 디카를 들이대도 펄쩍펄쩍 자리만 옮길 뿐 달아나질 않는다. 얼핏 눈에 띈 산 아래 북한강과 남한강이 몸을 섞는 두물머리는 엷은 안개구름이 깔렸다.  산정에 선  이성계는 늘 안갤 낀 산세를 조망하며 구름이 쉬어가는 산 – 운길산(雲吉山,610m)이라 했다. 수종사를 향해 하산길을 재촉한다.

운길산정상 아래 헬기장에서 조우한 이름모를 새, 놈이 먹일 달라고 나를 좇는지, 내가 놈을 디카에 담으려 좇는지 헷갈리게 했다

급경사내리막은 오살 맞다 말다다. 기필코 위험한 바윗길엔 밧줄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용케 했다. 미상불 데크계단 아닌 자연생태돌계단길이어서 좋았다.험한 골짝을 벗어나자 전나무보초를 세운 수종사(水鍾寺)불이문(不二門)이 나를 맞아줬다. 잘 다듬어진 돌계단이 심신을 한결 가쁜 하게 받쳐준다. 따뜻한 햇살이 등허리에 내리 쬐이고 바람이 그 뒤를 쫓아 만면에 청량감을 끼얹어줬다. 천연덕스럽게 만든 돌계단을 오르면 해탈문(解脫門)이다.

해탈문

근디 나는 티끌 하나도 벗은 것 없이 속물그대로 해탈문을 들어서 옆의 석간수를 바가지에 받아 목을 축였다. 이 석간수가 세조를 잠 못 들게 한 종소리 - 동굴 속의 물방울 떨어뜨린 소리였을까? 석간수 위 벼랑엔 응진전(應眞殿)과 산영각(山靈閣)이 있다. 은진전은 종소리가 났던 바위굴안의 18나한(羅漢)를 모신 전당이다. 대웅전 앞엔 두물머리풍광에 푹 빠질 수 있는 삼정헌(三鼎軒)이란 찻집이 있다. 차향(茶香)으로도 수종사 이름을 드높이는 데 정오께부터 탐방객들에게 무료 식음케 한다.

응진전 아래에 문제의 석간수가 있다

다성(茶聖)초의선사가 낙향한 다산선생을 찾아와선 수종사에서 늘 차를 마셨고, 추사김정희를 비롯한 선지식들이 자주 찾은 역사적인 장소란다. 대웅전과 삼정헌을 비껴 내려서면 종각(鐘閣)이 거대한 은행나무 품속에 고풍창연하다. 세조가 금강산구경 후 오대산월정사에 들려 지병인 등창을 동자승으로부터 치료받고 귀경하다가 아래 마을에서 하룻밤 묶는다. 새벽잠에서 깬 세조는 뜬금없는 종소리에 잠 못 이루고 그 종소리를 찾아 나섰다.

다실 삼정원에서 조망한 두물머리. 사진촬영금지 딱지가 민망하다

종소리나던 석굴자리 앞에 행목(杏木)두 그루를 심은 게 바로 550살 된 저기 은행나무 두 그루다. 위용이 형언불사다. 동생뻘 되는 행목은 해우소를 품고 있다. 천상천하 550살 되는 나무 품에서 방하착(放下着)! 카타르시스를 만끽 할 수 있는 곳은 수종사의 뒷간 말고는 없으리라. 운길산에 오르걸랑, 수종사근처를 지날 땐 뒤가 마려워 죽을지경 이어도 좀 참았다가 수종사해우소를 찾을 일이다. 뒷간에서 방하착에 빠져들다 성불할지도 모른다.

수령550살을 넘긴 은행나무

하산길을 서둘러 들머리마을에서 예봉산을 향한다. 얕은 동네뒷산이 리드미컬하게 고도를 높이며 참나무활엽수들은 가을찬가를 읊조린다. 등산하기 이리 좋을 수가 없다. 가끔은 훼훼 꼰 소나무가, 때론 미끈한 서어나무가 공존군락하며 울창한 숲을 이뤄 길벗을 보탠다. 내 눈길을 낚는 건 또 있다. 늦게 낙과한 상수리가 등산길섶에 때깔을 뽐내며 보석처럼 박혀 가을전령이 됐다. 어제 내린 빗발 따라 생의 마지막 여행길을 떠난 상수리들이 아직 은신처를 찾지 못함이라.

세조가 심었다는 행목 두 그루 중 하나는 해우소를 품에 안고~!

탱글탱글한 도토리묵식감을 떠올리는 소담스럽고 큰 알갱이를 하나씩 발견하면 줍는다는 게 조끼주머니가 가득해졌다. 아니었다, 그렇게 한가하게 해찰할 신세가 아님이다. 도토리묵생각은 하산 길에 하자고 상수리를 외면하지만, 물욕은 어쩌질 못하고 또 줍는 좀도둑중생이다. 글면서 여기 사는 동물들은 참 행복한 놈들이란 생각이 줄곧 이어졌다. 식량이 지천으로 널려있어서다. 안개 낀 두물머리가 잠깐씩 얼굴 드밀다가 사라진다.

이 조붓한 등산로는 애 터질 정도로 적막하다. 이정표도 눈에 안 띄는데 예봉산행길이 맞는지를 묻고 싶어도 인적도 없다. 두 시간쯤 걸려 이정표를 맞을 때의 반가움이란! 산세가 낮은데다 울창한 숲 탓에 전망이 썩 좋지를 안 해 등산객이 뜸한가 싶었다. 예봉정상1.43km, 팔당역1.45km의 이정푤 보고 안도한, 그실 초조해지기도 했던 두 시간여의 초행 홀로산행은 결코 유쾌하지만은 안했다. 정상오름은 여태처럼 만만치가 않은 된비알등산로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안했던 정상의 하얀 레이더기지 돔이 숲속에 우듬지를 내민다. 드뎌 정상에 섰다. 전망이 빼어나게 아름답다. 커플 한 팀과 홀로 산님 세분이 꾀 넓은 정상을 유유히 자적하고 있었다. 하얀 돔은 ‘예봉산강우량측정레이더’였다. 두물머리가 팔당호에 갇혀 바다처럼 잔잔하고, 팔당대교 건너 하남시가 신흥도시답게 깔끔하다. 그 뒤론 롯데월드가 하늘을 뚫는 굴뚝인양 뿌연 안무를 뿜어낼 듯싶고. 히끄무리한 서울이 묵화 속에 호수인양 가물가물하다.

팔당대교와 하남시

서거정이 예봉산에 올라 이만큼 빼어난 풍광을 찾을 순 없다고 극찬한 이유를 알만하다. 사실 나는 한 달 전 저 아래 다산선생유적지를 산책할 때 예봉산과 운길산을 연계하는 다산능선트레킹을 염두하고 있었다. 그 염원의 코스를 온전히는 아니지만 홀로 밟을 수 있었다는 오늘의 행운에 희열한다. 운길산에서 적갑산(560m), 철문봉(630m)을 밟으면 수도권의 명산 예봉산(683m)이 맥을 잇는다. 다산능선이라고도 부르는 산세는 선사와 지성들의 발길이 누누이 쌓인 아름다운 길이다.

다산선생 삼형제가 수시로 올라 심신을 연마한 철문봉

조선시대 경기 동부와 강원 중북부선비들이 한양에 갈 때 여기서 임금이 사는 왕궁을 향해 신하의 예를 표한 고갯길로 예봉이라 불렀다. 운길`예봉산 능선이 품은 많은 스토리텔링은 가슴 뭉클케 한다. 정상에서 팔당역을 향하는 직선코스는 날선 돌무덤에 급살 맞게 가파르기까지 하여 신경 곤두세워야 했다. 팔당역사에 들어서니 오후5시를 훨씬 지나쳤다. 차창에 몸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6년 전 폭설이 내린 하얀 겨울 나는 수종사와 운길산을 등정(https://pepuppy.tistory.com/394)했었다.

양수교가 있는 북한강과 양수리 너머의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그 아련한 기억이 오늘의 진초록산행에 오버랩 되면서 뿌듯한 복기의 행복에 빠져들었다. 산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계절의 옷을 갈아입고 그 자리에서 우릴 맞아준다. 그의 한량없는 품은 자연의 이치와 역사의 협량을 고스란히 간수한 채 늘 열린 마음으로 말이다. 산은 사랑이 무언지를 일러준다. 그래서 그의 품을 헤집은 날은 행복하다.                              2019. 10. 08

예봉산정상의 양수리강우량을 측정하는 레이더기지
레이더기지와 팔당역을 잇는 화물운반용 삭도
↓팔당대교와 하남시가지, 뒤로 아스라이 롯데월드가 보인다 ↑
불이문을 통과 해탈문에 이르는 가즈런한 돌계단은 일상을 내려놓는 入靜의 길인가
팔각오층석탑, 성종때건립 된 석탑은 해체수리때 31구의 불상이 발견 됐단다
↓삼정헌에서 조망한 두물머리와 양수대교↑
수종사해우소 지킴이 행목,중생들의 구린내를 몽땅 호흡하는 행목은 그래서 열매의 향기가 수신용일지도 모른다
범종과 목어를 향하는 은행나무팔
수종사경내
두물머리와 양수대교`철교. 운길산역사가 보인다
불이문과 네그루의 전나무
한음이덕형의 별당이 있는 조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