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타이베이 4박 5일 - 추석맞이 샹산(象山) 트레킹
타이베이 체류 이틀째인 새벽 6시 – 추석 해돋이 전에 아내와 나는 샹산 트레킹(Elephant Mountain Hiking Trail)에 나섰다. 22층 방 커튼을 올리면 앞을 가로막는 꺽다리 타이베이 101과 빌딩들을 병풍처럼 휘두른 검푸른 산세가 손짓하는데 샹산이란다. 멀리서 바라보는 산세가 흡사 코끼리 머리 형상이라 부른 이름이라.
암튼 산을 좋아하는 내가 코앞의 짙푸른 산세를 모른 채 할 순 없는 노릇. 엊밤 호텔 프런트에서 샹산 트레킹에 대해 대충 얘길 들은 데다 호텔에서 샹산 들머리가 20분쯤 거리라니 아무런 준비 없이 호텔을 나섰다. 애초에 등산은 생각도 안 한 여행인 데다 아내가 동반한 산행이라서 내 멋대로 몇 시간을 휘젓고 다닐 처지도 아님이다.
호텔 동문을 나서 MRT2호선 샹샨(象山)역 쪽을 가리키는 이정표 샹산 트레킹(Elephant Mountain Hiking Trail) 길을 따라 아파트`숲을 가로지르다 주민한테 샹산 들머리를 물었다. 어렵잖게 샹산입구에 닿았다. 아침 등산객들이 좀 많다. 추석명절이란 낌새는 어디에서도 느끼지 못한 채 들머리계단에 발 디뎠는데 좀 가파르다. 초장부터 장난이 아니다. 트레커들이 대게 꼰대들이다.
높이가 낮은 돌계단이기망정이지 처음부터 된비알 계단은 줄곧 이어졌다. 십분 쯤 헐떡거리다 갈림길에서 옆구리의 등산로를 택했다. 나중에 어찌 되던 우선 급살 맞은 된비알 계단을 피하자는 아내의 주장을 따랐다. 칠부능선을 뚫은 산길은 잘 다듬어놨다. 아열대 식물들이 무성하여 열대우림지역을 헤치는 기분은 신명 났다. 초록물감이 나의 심신까지 물들일 것 같았다.
그 짙푸른 숲 속으로 내미는 타이베이시가는 깔끔한 사생화다. 내가 목도한 아직까지의 타이베이는 잘 정돈된 문명의 첨단 요람처 같았다. 아열대 숲 속이어 설까? 샹산의 아침은 후덥지근하여 연신 땀을 훔친다. 이름 모를 아름드리 상록수가 기괴한 모습으로 눈길을 붙잡는다. 샹산의 나무들은 화강암과 화산 석산에다 우기가 많아선지 울퉁불퉁 우람한 덩치들이 탄성을 지르게 한다.
수직 절벽 밑을 지나면 기막힌 통천문도 통과해야 한다. 한 시간쯤 숲길을 걷자 쉼터가 팔을 벌리고, 쉴 품 안은 제법 넓어 많은 산님들이 쉬고 있는데 노익장들이 기체조를 하는 품새가 흡사 춤추는 듯했다. 산 정상을 오르는 길은 엄청 가파르다. 모든 계단은 돌계단이고 튼실한 철제 가이드라인이다.
등산로 정비를 거의 CCA방부목 데크로 조립하는 우리지자체의 졸속정책입안자들이 귀감 삼아야 한다. 동남아산 CCA방부목 데크는 비스, 구리, 크롬 등의 인체에 해로운 화학약품에 절인 상품이라. 하여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사용금지품목인데 우리나라는 값싸고 보기 좋다고 남용하고 있다. 지하수를 오염시키는 환경오염의 원흉인데 말이다. 근년에 만든 서울 안산 자락길은 90%가 CCA방부목 데크인데, 금년여름에 만든 '만남의 장소' 두 군데를 CCA방부목으로 도배질했다.
그래선지 십여 군데도 넘던 안산의 약수터가 거의 음용불가 판정을 받게 된 원인을 살펴봐야 함이다. 우리 지자체는 환경오염과 자연파괴의 주범이란 오명을 벗어야 한다. 자연석으로 다듬은 샹산 등산로가 부러웠다. 오르는 숲 속의 이름 모를 야생화가 화사하다. 화사한 꽃은 향기가 적다고 한다. 겉모습이 예뻐야 할까? 속내가 아름다워야 할까? 헷갈린다. 일장일단이 있을 테다.
겉과 속이 좋은 사회는 언제쯤 열릴까? 산정에 오르니 멀리 옥산(玉山3,952m)준령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눈이 내리면 은백색의 옥 같다고 하여 옥산이라 하는데 동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산이란다. 타이완국립공원으로 등산로가 잘 단장됐고, 각종 편의시설이 마련돼 등산마니아들의 로망 처라서 욕심이 난다. 관음정(觀音亭)방향으로 전진하려는 나를 아내가 붙잡고 육거석쪽으로 하산하잔다. 9시까지 호텔에 들어야한단다.
거대한 바위 여섯 개가 모여 있는 육거석(六巨石)은 훌륭한 전망대역할도 했다. 야경이 아름다운 타이베이시가를 조망하는 뷰포인트이기도 한다는데 어떤 커플이 바위위에 누워 추석하늘을 낚고 있었다. 샹산은 가파른 돌계단으로 등산로를 열었다. 위험해 보이는 내리막계단은 참으로 견고하고 편하게 만들었다. 산을 보호해야한다는 배려심이 묻어나는 돌계단이었다.
아까 들머리를 몇 백m 앞둔 갈림길에서 서쪽5부능선쯤의 조붓한 등산로로 진입했다. 타이베이101이 등대역할을 하는 탓에 길 잃고 미아 될 염려는 없지 싶어서였는데 아내는 투덜대다 못이긴 척 뒤따른다. 등산객이 뜸한 탓인지 열대우림미답 길을 헤치는 기분이 들어 야릇했다. 이 등산로도 필시 시내로 하산하는 코스가 있으리라. 싱그런 풀냄새 얼마나 들이켰을까.
꾀 큼직한 산고동(?)이 풀숲을 기는데 한군데선 네 마리가 혼숙을, 그룹섹스향연을 벌리고 있었다. 무지렁이 나는 그 진경을 디카에 담느라 숨죽였다. 종족보전은 생존의 숙명이다. 글고 또 손바닥만 한 영지버섯을 발견했는데 공항반출이 안 된다는 아내의 핀잔에 채집을 포기하기도 했다. 글고 보니 우리주위에 흔한 과일나무가 안 보였다. 반시간을 그렇게 미답 탐사하듯 하자 골짝에 숨어든 빈민촌(?)으로 산길은 빨려드는 거였다.
폐가와 동거하는 슬레이트집의 인기척소리가 제법 큰 산촌을 이뤘다. 가파른 시멘트골목에 바짝 붙어있는 달동네는 말쑥한 타이베이시의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반세기도 훨씬 전의 서울의 달동네를 재현하고 있어 잠시 타임머신 여행을 했다. 달동네빈민촌에 사는 사람이라고 행복지수가 낮진 않다는 게 통계학적으로도 증명된다. 어쩜 단순한 일상이 행복감에 이르기 쉽다. 그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에서 스스로 만족에 이르는 순수의 삶을 즐기는 땜이다.
세상 어디나 빛과 그림자는 상존하며 빈부의 차이도 엄연하지만 그 간격만큼 행불행을 재단할 순 없으리라. 행복을 구사하는 건 각자의 때 묻지 않은 심지(心志) 탓이다. 22층라운지에서 늦은 아침을 들었다. 세 시간의 등산 후에 먹는 음식과 공기는 맛이 그만이었다. 차례를 무시한 울`부부의 추석맞이를 선친께선 보듬어 주실 거라고 나는 아내를 다독거렸었다. 타이베이에서의 별난 추석맞이는 두고두고 추억창고에서 꺼내 음미할 것이다. 2019. 0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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