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산단풍불꽃에 불태우며~
시월하순이면 소요산단풍축제가 떠들썩한데 어째 수상쩍다. 아프리카돼지열병 탓에 축제는 물 건너갔고, 화사하게 화장한 소요산은 모처럼 지들만의 잔치를 벌이며 소요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 내밀한 꿍꿍이 속내가 엉덩이에 불을 지펴 행장을 꾸리게 했다.
아서라, 소요산역은 나처럼 궁둥이에 불붙은 손님들로 북새통이다. 근디 소요산주차장입구의 단풍나무들이 시푸덩텅 피멍만 잔뜩 든 채 시큰둥하다. 며칠만 더 진중히 참다오지 그랬냐? 고 볼멘소릴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성깔 급한 놈들은 이미 불을 지펴 빨갛게 불타고 있다.
불타고 있는 놈들은 일주문을 지나 속리교를 건널 때쯤은 소요산골짝으로 불길이 번지고 있었다. 해탈문을 잃어버린 원효폭포는 오줌을 지리는데도 사리탑은 고깔 옷을 걸쳤다. 자재암(自在庵)의 보초수(步哨樹)가 고엽(枯葉)을 걸칠 수밖에 없는 사연은 청량폭포도 쥐어짜듯 오줌을 찔끔대고 있어서다.
원효가 이곳 움막에서 정진하던 밤 묘령의 여인이 찾아들게 한 장대비는 언제 내리고 말았당가? 가물러도 넘 가물렀다. 여인의 유혹(?)을 뿌리치려 뛰어들었던 청량폭포 밑의 소(沼)도 원효의 사타구니는 커녕 발등도 못 가릴 정도라. 나한전을 훑고 선녀탕골짝을 파고든다. 가뭄속의 단풍은 골짝이라야 화사하게 지핀다.
아니나다를 까다. 벌겋게 불붙인 놈, 핏빛으로 일렁이는 놈, 그들 등쌀에 누렇게 갓 익은 놈과 고엽들이 바야흐로 색깔의 향연을 일궜다. 이미 선녀탕골은 불타고 있었다. 그 불꽃 튀는 골짝 바위너덜을 헤처 걷는다는 게 수양이다. 단풍쇼에 정신 팔다간 자빠지기 십상이어서 정신 바짝 가다듬고 한량걸음질 해야만 해서다.
가파른 너덜길을 온갖 해찰부리며 불꽃쇼 즐기는 산행에 아내가 신바람이 났다. 헐떡거리면서도 연신 탄성을 질렀다. 자연의 신비는, 어김없는 순환의 섭리는 감탄이외 어불성설이다. 선녀탕갈림길에서 나한대를 오른다. 단풍이 나를 살렸다. 이 험한 된비알너덜 길을 오르는 아내가 황홀한 색깔의 향연이 없었다면 길잡이노릇 하는 나한테 뭔 말을 할지 빤해서다.
막말로 하산해서는 밥도 안줄지 모른다. 밥 안 먹으면 죽는다. 아내는 밥이란 끄나풀로 나를 여태껏 건사하고 있어서다. 하산하는 내 또래의 부부 한쌍을 만나자 아내가 물었다. ‘의상대까진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요?’ 좀 멋쩍은 질문이었던지 웃으면서 자기들은 9시에 시작하여 공주,의상,나한대를 찍고 하산한단다.
긍께 정오를 갓 넘겼으니 3시간 즐기고 있음이다. 우린 이제 한 시간쯤 올랐다. 선녀탕골짝은 길이 험해선지 한적하다. 모두 백운대와 칼바위능선을 타는 산행 탓일 것이다. 오늘 그들은 불꽃쇼를 간과한 산행이기 쉽다. 아니다, 단풍은 산 정상에서부터 하강하니 낙엽막장을 즐길 것이다. 오를수록 화려한 색깔 대신 주황색의 옷으로 바꿔 입고 갈색이파리들은 몸뚱일 부비면서 숙덕거린다.
그 속삭임을 태운 바람결이 그리 시원할 수가 없다. 산능에서 맞는 가을바람의 청량함은 불꽃쇼 못지않게 기분 좋게 한다. 지겨운 데크계단을 올라 나한대에 올라섰다. 백운대와 의상대 공주봉이 반원형을 이루며 불붙고 있다. 코앞에 우뚝한 의상대를 보는 아내는 심난해진다. 피할 수만 있다면 돈 주면서라도 피할 텐데 기필코 저 놈을 밟아야만 해서다.
“소요산 위의 흰구름은 떠오른 달과 함께 노닌다 / 맑은 바람 불어오니 상쾌하여라 / 기묘한 경치 더욱 좋구나” 고려말 보우선사의 <백운암의 노래>라는 시다. 백운대를 밟고 나한대나 의상대쯤 와서 읊었지 싶다. 의상대 오르기 전의 멋들어진 암송(巖松)들의 연애질은 선선한 갈바람만이나 감칠 난다.
단풍을 악세서리로 치장한 암송들은 연지곤지 찍으며 멋진 묵화를 만들었다. 칼바위의상대가 옹색한 우듬지를 내준다. 의상대사가 원효의 승우(僧友)라서 선심써서 명명해 준 봉우리인가? 저 아래에 공주봉이 다소곳하다. 전방0.45km공주봉과 구절터하산 갈림길 안부에서 아내는 공주봉엘 갈까 말까로 고민했다.
나 혼자 얼른 갔다 올 테니 쉬라고, 고갤 끄덕이는 아내를 뒤로하고 서둘러 공주봉을 향했다. 드넓은 공주봉우듬지엔 데크를 깔아 농구장만한 쉼터를 만들어놨다. 요석공주 혼자 있기 뭣한게로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머물란 배려일까? 아이구매! 근디 저 아래 아내가 올라오고 있잖은가! 내가 손을 흔들었다. 아내가 지팡일 휘젓는다. 고마웠다. 공주봉에서 하산하는 게 수월해서다.
요석공주는 사람이 그리울만한 여인이다. 시집가자마자 생과부가 됐다. 측은한 과부 딸이 맘에 걸린 태종무열왕은 원효스님께 연애바람을 넣어 요석궁으로 안내한다. 스님은 취객으로 가장 “그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나한테 빌리겠는가, 나는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찍으리”라고 흥얼대면서 은근슬쩍 요석궁에서 공주와 사흘간 천당지옥을 왔다 갔다 했다.
글곤 바람같이 사라졌으니 3일간의 자루 없는 도끼질은 공주의 가슴에 상사(想思)의 동티만 도지게 한 셈이다. 그래서 공주도 바람결의 스님 냄새 맡아 소요산까지 찾아와서 저 아래 구절터에 움막을 짓고 스님을 그렸던 거다. 원효스님은 지금 생각해봐도 날고 난 사람이다.
절대자유인이었다. 원효스님 비슷한 자유인 또 한 사람이 소요산을 누볐다. 매월당 김시습이다. 매월당도 이맘때쯤 소요산단풍에 빠져 유유자적하다 시 한 수를 읊는다. “길 따라 계곡에 드니 / 봉우리마다 노을이 곱다 / 험준한 산봉우리 둘러섰는데 / 한 줄기 계곡물이 맑고 시리다” 참멋을 즐기는 선지자들이라.
선생도 틀림없이 선녀탕골이나 구절터계곡을 거닐며 만산홍엽에 취했을 터다. 구절터를 품은 골짝의 단풍은 환상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다. 한 걸음 걷고 단풍그림 보고, 네댓 발 옮기고 단풍불길 끄려든다. 허나 이미 창시까지 지핀 불꽃은 글 쓰고 있는 지금도 활활 타고 있다.
오후4시, 우린 타다만 몸뚱일 열차에 실었다. 소요산단풍불꽃에 마음속의 쓰레기도 마저 태웠으면 싶은데~? 눈을 감아도 타오르는 단풍불길이 훤하다. 집에 가서도 덜 타고 찌꺼기가 남걸랑 다시 불태우러 오자고 아내와 쑥덕댔다. 참으로 뿌듯한 소요산단풍 나들이였다. 2019.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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