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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초겨울햇살속 북한산성의 민낯 – 칼바위,보현,형제봉능선

초겨울햇살속 북한산성의 민낯 – 칼바위,보현,형제봉능선

보국문쪽 암벽성곽전망대에서 보현봉능선을 잇는 북한산성

북한산행을 위해 북한산탐방안내솔 몇 번이나 들렀지만 ‘삼각산경국사(慶國寺)’는 지나치곤 했었다. 임진왜란때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의병승군을 모집해 아지트 삼고 항일전을 폈다는 얘기를 읽은 기억이 나서 오늘은 맘먹고 일주문에 들어섰다. 일주기둥이 석재인지 시멘트인지 우람한데 부도밭가 진입로주면공사로 어지럽다.

경국사

정릉천변을 타고 든 산문은 얼핏 봐도 도량이 아늑하고 꽤 넓다. 고양이 마냥 경내를 기웃댔다. 요사 채17당우라니 사찰의 규모가 짐작이 간다. 그 사찰처마들이 옹기종기 파란하늘에 모여들어 비상할 듯 멋지다. 고려충숙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절은 억불정책의 조선조엔 문정왕후의 후원과 나라의 경사 때 축원하는 기도를 올리며 경국사라 불렀단다.

경국사경내

1950년대 이승만대통령이 몇 번, 1953년엔 미국닉슨대통령이 방한 때 찾아와 그의 회고록에서 찬미할 만큼 유서 깊은 사찰이다. 사진 몇 장 담고 정릉천을 거슬러 정릉계곡을 향한다. 천변산책로에서 볼거리는 갈수기로 흐르지 않는 냇가의 청둥오리들이다. 영하의 날씨에 움팍한 둠벙가에 짝 아님 네댓 마리씩 군데군데서 시간을 낚고 있다.

서울도심에 철새가 텃새가 되어 시민들과 공생하니 기쁨은 사람들 차지가 훨씬 클 테다. 놈들의 일 거수에 빠져든 산책객들의 표정은 열락이다. 글면서도 그 경사를 소리 죽이며 속내로 즐긴다. 혹여 놈들이 떠날까 하는 조바심일 테다. 정릉천이 3km라지만 대부분 가뭄으로 말라 탐방안내소 한참 아래까지만 물웅덩이가 있다. 근디 갑자기 떠들썩하다. 나도 후딱 달려가봤다.

정릉천의 청둥오리, 암컷3수컷1

어떤 남자가 청둥오리 네 마리가 있는 물웅덩이까지 내려가 저쪽 산비탈쪽을 향해 돌을 던지며 소릴 지른다. 길양이(길고양이)가 산비탈을 몇 걸음 오르다 멈춰 이쪽을 노려보길 반복 한다. 남자는 냇가 웅덩이에서 길양일 쫓아내고 있었다. 길양이가 빨리 달아나지 않고 약 올리듯 노려보는 건 아마 이골이 난 듯싶었다. 천둥오리는 놈들의 사냥감이다.

청둥오리를 노리는 고양이

놈들은 비둘기사냥도 하는데 등치커서 느린 청둥오리야 영판 좋은 사냥감일 테다. 청둥오리는 수생식물과 곤충, 낱알곡식을 좋아한다. 냇가의 수초는 먹잇감을 제공하고 산란과 은신을 하는 장소다. 근디 정릉천변과 웅덩이는 깨끗해도 넘 깨끗하다. 지자체에서 풀 베고 웅덩이 속도 쓸어내는 청소 탓이다. 청둥오리의 삶터를 훼손하는 행위인지 모르는 모양이다. 

수컷 한 마리당 암컷 세네 마리가 노닌다, 이유는 뭘까?

먹이가 귀한 겨울나기 청둥오리에겐 물가의 수초뿌리나 둠벙속에 가라앉은 낙엽등에 기생하는 곤충알들이나 프랑크톤이 먹잇감이다. 그걸 싹 쓸어내서 바닥이 훤해 먹거리가 없고, 수풀이 없으니 은신할 곳이 없어 길양이의 표적되기 쉽다. 청둥오리가 서식하는 하천엔 우리가 쓰레기와 오물만 버리지 않도록 계몽감시만 하면 될 것이다.

보국문성곽의 겨울꽃열매, 이름은?

청둥오리와 사람이 공존하는 정릉천은 서울의 자랑 아닌가! 길양이 땜일까? 덩치 큰 수컷이 길양이의 사냥에 얼른 내빼지 못 해설까?  수컷보단 암컷이 훨씬 더 많다. 일부일처제의 조류세계에 청둥오리도 예왼 아닌데 의아해 검색을 해보니 청둥오리수컷은 폭군바람쟁이도 있긴 하단다.

새들은 대게 암컷의 허락을 받고 짝짓길 하는데 청둥오리수컷은 완력으로 암컷을 강간(?)하기도 한단다. 강간에 앞서 과부된 암컷이 쉽게 몸을 허락해 누이 좋고 매부 좋았지 싶은 게다. 그래선지 수컷 한 마리에 암컷 몇 마리가 노니는 곳이 여러 군데다. 짝 잃은 암컷의 기방생활이 안타깝다. 메마른 정릉계곡을 파고든다. 계곡의 돌 바위들이 알몸으로 모처럼 일광욕을 하고 있다.

빼곡한 푸나무들도 깨 활딱 벗고 햇살의 애무를 즐기는 중이다. 그래서 깊은 계곡은 정적이 흐른다. 낙엽 밟히는 소리가 신경 끝까지 전달된다. 산님들마저 뜸한 초겨울의 산은 그래서 홀로산행하는 맛이 별미다. 초목들이 모든 걸 내려놓고 겨울나기에 든 엄숙한 순간에, 고적한 세계에서 나를 되돌아보기 쉬운 여정일 수 있어서다. 일상탈출은 이맘때 산행이 최적이라.

보국문을 오르는 정릉계곡의 생태돌판길은 발바닥지압에도 그만이라

우측엔 가을에 아내와 씨름하며 애간장 태웠던 칼바위능선이 하늘을 반토막내며 달리고 있다. 오늘은 정릉골짝을 끝까지 더듬어 보국문을 통과 대성문을 거쳐 보현봉에서 형제봉능선을 타고 원점 회귀산행을 할참이다. 넓적바위 갈림길에서 보국문을 향하는 계곡길은 아니, 여태껏 산길은 돌무더길 깐 자연생태길이어서 좋았다.

홀라당 옷 벗고 치부까지 다 들어낸 거목들의 알몸퍼포먼스는 감탄에 앞서 신기롭다. 나무들이 햇빛을 좇아 살아남은 처절한 몸부림을 고스란히 엿볼 수가 있어서다.  푸나무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은 우리들의 삶에 비하면 경탄스럽다 할것이다.  보국문1km밑에 석간수영천(靈泉)이 있다. 쉼터도 마련돼 배낭을 벗었다. 오후1시다. 육포와 과일을 꺼내 요길 한다.

영천

노익장 한 분이 하산하다 오더니 영천수를 마시며 ‘물 마셔도 괜찮지요?’라고 인사(?)를 한다. 뭔 말인지 얼른 알아듣질 못해 머뭇대자 이 양반 훌쩍 떠나버린다. 벙어리 행세한 나 보단 더 친절한 산님일 거라고 멋쩍은 나를 쓸어 담아봤다. 보국문(輔國門)은 문짝이 없다. 산성동남쪽의 암문으로 평소엔 백성들의 출입문으로, 전쟁 땐 비밀통문으로 사용됐단다.

보국문, 숙종37년에 축성

근디 전쟁 때 비밀통문으로 썼을 만큼 부국강병 한 적이 있었던가? 대성문을 향한다. 성벽 타는 빡센 길은 시계가 멋들어져 쾌재연발이다. 칼바위능선과 삼각산능선, 보현봉능선을 잇는 북한산성의 민낯이 흰 구렁이가 승천하려나 싶게 꿈틀댄다. 비록 적의 침입에 방벽으로 잘 써먹은 적은 없지만, 축성하느라 고달펐던 백성들의 흔적이 생생하여 잘 보전해야 되겠단 생각을 하게 했다.

▲삼각산과 칼봉▲

푸른숲 걷어치운 채 햇살 튕겨내는 하얀산성의 장대한 멋이라니! 보국문과 대성문 중간치의 바위성벽전망대는 멀리서 보면 최상의 요새다. 전망대에서 관망하는 삼각산능선과 칼바위능선, 보현봉능선과 형제봉능선에서 뻗은 북악과 인왕산능선들의 파노라마는 언어도단의 수묵화다. 한참을 풍광에 빠져들었다 한기가 돌자 자릴 털고 대성문(大成門)에 올랐다. 현판글씨 '大成門'은 숙종의 어필을 집자했단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혼쭐났던 조정이 숙종37년에 쌓은 북한산성이어서일 테다. 백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축성을 반대했었다. 깜냥도 안 된 왕들 땜에 죽어나는 건 늘 백성들이었는데 뉘 좋으라고 노역을 해? 라고 생각했을 테다. 지금도 깡냥도 안되는 정치인들이 애국자인냥 떠벌리는 건 여전하다. 대성문을 나섰다. 형제봉능선을 타고 보현봉아래 일선사(一禪寺)를 향한다.

대성문과 성곽

도선국사가 창건하여 무학대사가 중창하고, 근래엔 고은시인이 주지로 있었다는데 뭣보다 전망이 미치도록 빼어난 곳이라 탐방키로 했다. 근디 아쉽게도 사찰문은 닫혀있다. 수행중이라 방문할 수 없단다. 동한거라도 하는가? 입구에서 얼쩡대다 돌아서야했다. 북한산엔 사찰도 많다. 왜란 때 호되게 당하고 의병과 승병들 집합소로와 창고로 사용키 위한 전략에서였단다.

(좌)형제봉에서 북악산과 인왕산 (우)보현봉을 향하는 북한산성

형제봉능선은 트레킹하기 딱 좋다. 더구나 완만한 내리막에 전망도 좋다. 초겨울오후의 따스한 햇살과 부드러운 바람, 수북한 낙엽을 밟는 촉감과 신음소리, 이름 모를 새들의 수선이 한갓진 시간의 선물이 된다. 다섯 시간을 그렇게 뭉갰다. 한 해가 얼마 남질 안했다. 산에서 얻는 행복은 부담 없이 즐겨서 좋다. 청둥오리에게 아늑한 보금자리가 마련되면 좋겠다.

2019. 12. 13

보현봉 아래서 .중턱에 일선사가 보인다
일선사, 수행중이라 출입금지

 

삼각산봉ㅂ
보현봉을 잇는 성곽은 우측의 문수,나한,나월봉으로 향한다
형제봉 뒤로 북악산과 인왕산, 그 너머 시가지 뒤에 남산, 뒤에 관악산
삼각산연봉에서 원효봉까지
바위절벽위 성벽, 고성 같다
(좌)바위고성의 산성 (우)바위고성의 바위전망대

 

바위성전망대, 북한산성 최상의 전망대
삼각산 뒤 우측에 도봉산 연봉이~
대성문루

 

대성문 글자는 숙종의 어필 집자
칼바위
삼각산과 칼바위
형제발자국이 찍힌 형제봉능선의 바위
▲보현봉능선과 밑의 일선사▼
형제봉능선의 선돌과 빙벽
형제봉능선은 북한산둘레5길 명상길입구에서 시작된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 고택, 어린이 집으로 쓰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