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락(道樂)산의 연인송(戀人松)을 아시나요?
“이제 고만 놓으세요, 이러다가~
뭔 섭한 말씀을 또 하세요
죽은 나를 붙잡고 있다 그대마저~
차라리 그리함 좋겠어요, 눈비바람 치는 날엔 조마조마해서~
그러기에 놔야해요, 그대라도 성해야 이렇게나마 버틸 수가~
그건 그렇지만 어찌 놓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우린 몇 백 년을 붙어있었으니 행복한 일생 아닌 가요!
해도 바스라져 느낄 수 없을 때까진 안 돼요”
산천엔 연리지(連理枝)도 많고 연리목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허나 금수강산 우리산천 어디에서 완벽한 연리목(連理木)을 접하기는 쉽잖다. 우리의 삶이 사랑타령이지만 죽는 날까지 올곧은 사랑을 한 커플이 귀하듯 말이다.
연인송
하여 연리목을 접한 날은 길일(吉日)이라고 기뻐하는 소이일 것이다. 조선중기 우암(尤庵.宋時烈)선생이 월악산자락을 오르다 기암괴석과 제멋에 겨운 나무들을 벗 삼으며 가파른 계곡을 넘나들며 제봉을 넘을 때였다.
바위무더기 절애 위에 소나무 두 그루가, 참으로 괴이하게 서로를 보듬고 있잖은가. 동생뻘 되는 소나무가 바위에서 미끄러지며 넘어지려해 붙잡고 있다가 그대로 살붙이가 된 연리목을 목도한 거였다.
선생은 앞 바위에 걸터앉아 연리목의 사랑에 빠져들었다. ‘사랑은 서로가 버팀목이 되어 체온을 나누는 삶’이란 걸 시연하나 싶어서였다. 굳이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당시엔 당파싸움이 절정에 달해 인간미 상실의 시대였다.
바위와 소나무와 사과나무
노론의 영수인 그도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며 보듬고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통감하고 있어서였다. 우암선생은 그 연리목 – 연인송 앞에서 한참을 묵상하다 발걸음을 돌렸다. 당시엔 등산로도 없어 험준한 골산(骨山)을 무작정 오를 수 없어서이기도 했으리라.
몸은 고됐지만 저절로 흥이 돋는 산행이었다. 연인목을 접한 그 길로 하산하여 제자들 앞에서 연인목얘기를 곁들어 산행소회를 말한다.
“깨닫는데도 나름의 길이 있고, 그 길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선생은 그 뒤로 상선암에 움막을 짓고 유유자적하던 제자 권상하(權尙夏)를 찾아 도락산에 오르곤 했다.
BAC100을 향해~, 내 짝궁은 낼 새벽 한라산 당일치길 한다
내가 발 내딛는 데가 길이 되고, 그 길엔 고통과 기쁨이 수반된다. 고통과 기쁨의 길이 되기 위해선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스스로 자연에 동화되는 오롯한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허투루 본 사물에서 뭔가를 깨달을 순 없어서다.
사랑하는 눈빛속에 자연에 다가설 때 그도 민낯으로 다가설 것이다. 선생은 걷는 기쁨, 고행(苦行)의 열락(悅樂)을 만끽했지 싶은 거다. 하여 후세사람들이 선생이 오른 월악산자락을 ‘도락산(道樂山)’이라 부르게 됨이라.
내가 도락산을 오른 건 11년 전이었다. 오늘 산행에 앞서 그때의 산행기를 들처봤는데 아쉽게도 사진이 없었다. 어찌 됨일까? 화강암바위산이 급살 맞게 오므렸다 펴기를 거듭해 진땀을 뺐던 기억이 새록새록 산행기속에 떠오를 뿐이었다.
글고 산행시작하자마자 눈길을 붙잡는 앙증맞은 꽃(꼬리진달래)이름을 몰라 속상했던 일, 멋들어진 소나무들과 첩첩으로 포개져 파도치는 산능들이 아련하게 기억 한 자락 끝을 붙잡고 있는 거였다.
꼬리진달래
내가 그때 그날 산행 중에 연인송을 접하지 못한 건 등산로가 험해서는 아닐 것이다. 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엷어서였을 것이다. 오히려 등산로가 잘 정비된 지금이 연인송을 마주할 확률이 적다면 적다.
산님들이 대게 그렇듯 앞만 보고 경주하듯 내달리기 땜이다. 산은 생긴 그대로 놔둬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자연에 접하기 위한 배려로 등산로를 정비하는 짓은 산을 모욕하고 자연을 훼손하는 팔푼이(?)짓거리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산을 오르는 건 일상을 탈피하여 오롯이 자연에 동화되는 자아발견의 묘미일 것이다. 고행 끝에 열락이 오는 법이다. 앞만 보고 내달리는 운동위주산행이라면 굳이 등산할 필요가 있을까? 운동장이나 헬스크럽에서 운동하는 게 현명하다. 산을 찾는 우리들은 겸손해야 할 손님인 것이다.
오늘, 잘 다듬어진 등산로의 도락산이 11년전에 체감했던 도락산의 멋과 맛을 못 느껴 아쉬웠다. 온 몸으로 더듬고 비벼대는 산행일 때 오감으로 산에 다가설 수가 있다.
잘 정비된 산길은 산꾼들만 늘어 자연을 훼손하기 딱이라.
“산으로 된 그 원고의 장엄한 한 페이지를 읽을 수만 있다면 기꺼이 내 일생을 다 바치고 싶다. 그 광경은 얼마나 웅대한가! 그 장엄함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삶이란 얼마나 짧은가! 또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치며 배워봤자 그게 얼마나 되겠는가!”
신선봉웅덩인 개구리의 허니문 못이 됐다
요세미티에서 살았던 기록을 <나의 첫 여름>이란 책에 담았던 존`무어(John Muir)의 말이다. 산은 사람이 읽고 또 읽어야 할 만고의 위대한 교과서다. 교과서를 망가뜨리는 얼간이 짓은 후예들의 배움을 박탈하는 행위다. 지자체는 무분별한 개발행위 제발 삼갔음 싶다.
서두의 ‘연인의 밀어’는 연인목이 세월 탓에 시목(屍木)이 되어 비바람 치면 바스러져 사라지는 짝꿍소나무를 붙들고 주고받는 애절한 사랑의 묘약이다. 가슴 뭉클한 연인들 앞에 머물렀을 우암선생을 상상해 봤다.
오늘 도락산에 대려다 줘 연인목을 마주하게 해준 ‘한숲산악회’에 감사드린다. 글고 연인목이 오래 오래 그 멋진 포퍼먼스를 해주었음 싶다. 도락산엔 '영원한 사랑'의 실연을 감상할 사랑학페이지가 산님을 기다리고 있다.
2019. 06. 08
# https://pepuppy.tistory.com/342 에서 <우암선생도 홀딱 반해버린~>도락산행길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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