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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길 - 산행기

인왕산선바위[仁王山禪巖] 미로(迷路)

인왕산선바위[仁王山禪巖] 미로(迷路)

 

선바위 뒤태

 

인왕산선바위는 민속신앙의 아이콘이라 해도 무방할 듯싶다. 선바위 아래 국사당과 옹기종기 어깨를 맞댄 기도처와 굿당들 십여 채가 골짝 짙푸른 녹음 속에 숨바꼭질 하듯 숨어있어서다. 그 기도처와 굿당들은 길도 아닌 듯싶은 미로들로 서로서로 얽혀 숨 쉬는데, 인적까지 뜸해 귀신들의 아지트란 으스스한 선입견에 신령스러운 기분이 드는 묘한 골짝이다.

 

굿당촌의 미로

 

`부부가 아파트를 나서 녹음 우거진 음산한 미로를 더듬으며 일상탈출이란 호젓함에 빠져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시간쯤이면 충분하여 가끔 선바위미로를 찾아 얼쩡대곤 한다. 통일로 독립문역에서 서대문구 현저동 현대아이파크뒷길 가파른 계단에 들어서면 짙푸른 숲은 금새 거대도시 서울탈출을 실감케 한다.

 

멀리 부처바위

 

숲속의 데크계단길은 띄엄띄엄 쉼터를 끼고 미로를 만들어 헷갈리게 함도 은근한 흥미를 돋친다. 배드민턴구장 옆의 포장임도에서 안산을 향하는 하늘다리길 반대쪽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왼쪽 숲을 뚫는 데크계단을 오르면 폐쇄된 길일까 싶지만 실은 선바위길을 찾아가는 가장 미로다운 언덕배기길이다.

 

잔도를 흉내라도 낸 듯한 바윗길

 

그 길은 무속 굿집들을 얼키설키 얽은 미로로 이어져 미로찾기술래라도 되는 건 아닐까? 초조하기도 한다. 더구나 인적도 뜸해 끝까지 가봐야만 대충 방향을 잡을 수 있어서다. 그 호젓한 미로엔 박새와 오목눈이와 때까치가 서식하고 있어 싱그러운데 놈들은 불청객을 경계하느라 부산을 떨며 지저댄다.

 

오디와 버찌가 널부러진 미로

 

특히 이맘때6월 중순엔 놈들이 오두방정을 떨고 비둘기와 까치까지 나서서 요란스러운데 까닭은 먹거리 땜이다. 검붉게 익은 오디와 버찌는 놈들의 별식인 탓이다. 여기 미로엔 오디나무-뽕나무와 벚나무, 산수유와 앵두나무 등 유실수가 심심찮게 있다.

 

  기도처를 잇는 미로

 

이맘땐 검붉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어 놈들이 신나는 만찬파티를 즐기는데 방해받고 싶질 않아서일 것이다. 미로바닥엔 농익은 열매가 떨어져 터뜨려 검붉은 문양의 꽃길이 됐다. 까치나 비둘기는 오디와 버찌를 얼마나 퍼 먹었던지 놈들이 쉬어간 전봇대 아래나 둥지 밑은 검붉은 배설물로 추상화를 그려놨다.

 

범바위

 

나도 검붉은 변을 쌀 정도는 아니지만 오디나 버찌 따먹는 쏠쏠한 재미에 6월에 들어선 며칠간격으로 선바위미로를 찾는다. 어디 먹거리가 그 것 뿐이랴. 앵두도 있고 살구와 개복숭아와 매실도 눈에 띈다. 개복숭아와 매실은 설탕에 버물려 식초로 만들면 좋겠단 내 말에 아내는 시침일 떼고 모른 챌 한다.

 

 

한술 더 떠 도둑질하면 되겠냐? 는 엄포에 나는 풀 죽을 수밖에 없는데 사실 오디나 버찌나 앵두도 주인이 있긴 마찬가지일 테다. 설사 땅주인이 아니더라도 짐승과 새들한테 우선권이 있을진데, 슬쩍 따먹는 재미를 즐기는 아내의 맘보가 알쏭달쏭하지만 나도 모른 챌 한다.

해골바위

 

암튼 울`내왼 선바위미로에서 오디와 버찌 따먹는 옹골찬 재미에 6월엔 선바위길을 자주 찾는다. 인왕산선바위골짝은 국유지여선지 암자나 굿당이 낡아 허물어지거나 불탔어도 개`보수 않고 방치하고 있다. 폐가가 늘어나 굿거리도, 민속신앙인도 줄어드는 판이라  선바위무속촌은 갈수록 을씨년해지는 것 같아 언짢다.

 

국사당과 어깰 잇댄 굿당촌

 

일제의 횡포로 남산의 국사당(國師堂)이 선바위 아래로 옮기고 근처에 무당집들이 들어서며 토속신앙촌이 된 골짝은 범바위, 해골바위, 모자바위, 부처바위 등의 명소가 기도처로 둔갑하면서 미로는 거미줄처럼 이어졌다. 무당집의 개보수가 금지 되어 퇴락의 길에 들어서자 인적이 뜸해진 무당골은 음침한 미로 걷기가 맹숭하고 움찔해졌다.

 

미로에 떨어진 버찌와 오디

 

나는 그 가파르고 수풀 우거진 미로를 걸으면서 심산계곡의 옛 잔도(棧道)를 걷는 조마조마한 불안에 들기도 한다. 잔도는 바위벼랑에 가까스로 낸 위험한 외길이다. 선바위미로도 바위벼랑길은 아니지만 바위와 바위를 연결한 긴가민가한 오솔길이고 인적도 뜸해져 얼핏 잔도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모자바위

 

잔뜩 흐린 날엔 으스스해지고, 살얼음 낀 때는 아랫도리가 후들후들해지며 불안하다. 인기척 없는 외진 곳이라 사고라도 나면하는 노파심이 돋치는 거지만 그래도 나는 잔도 같은 선바위미로가 좋다. 잔도는 인간이 범접하기 어려운 위태위태한 벼랑길이다. 선바위미로도 어찌 보면 얼른 발 들여놓기 뭣한 꾸꿈스런 외진길이다.

 

 

삼국지에서 대국 조조의 위(魏)나라가 진드기만한 유비의 촉(蜀)나라를 징벌하지 못한 건 칼날처럼 솟은 대검산(大劍山)을 통과해야하는 촉잔도(蜀棧道)탓 이였다. 촉으로 가는 250여리 되는 험한 잔도는 겨우 한사람씩 지나야하는데다 검문소가 있으니 감히 원정할 수가 없었다. 두렵고 의시시해서다.

 

중국 화산반룡잔도

 

허나 지금은 험한 잔도를 찾는 산님들이 늘고 나라마다 잔도를 개척해 관광지화 해서 손님을 유혹한다. 바위형상이 흡사 장삼을 걸치고 좌선(坐禪)에 든 스님 같아서 자를 따서 선바위[禪巖]라 부르게 된 기도처엔 이성계와 무학대사와 정도전의 혼백이 묻어있고, 헬 수 없는 민초들의 간절한 기도가 기도처마다 꿈틀대고 있어서다.

 

선바위

 

산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기에 사람들은 산의 명당자리를 찾아 산신령을 모셔 치성과 기도를 드리는 외경의 대상으로 성역화 했다. 그래서 인왕산의 국사당과 선바위는 무속신앙의 심벌인 셈이다. 이래저래 나는 선바위미로가 좋다. 철따라 입가심할 과일까지 생기니 사랑할 수밖에 없다.

 

치마바위

 

선바위미로를 더듬다 수성동계곡으로 빠져 청운공원을 휘돌아 시인의 언덕까진 두 시간이 소요된다. 아내가 컨디션이 좋다면 성곽길을 타고 인왕산정상을 밟고 범바위 밑 미로에 다시 들어서면 짬진 산행을 하는 거다. 아니 피곤이 싹 가신다. 선바위미로의 마력이랄까? 적막하다. 약수도 넘친다. 그래 편안해진다.

 

어쩜 무속신앙촌이 폐허가 되어 다 떠나길 바라는 산짐승들의 알량한 욕심이 내게도 발아하는 성싶은 게다. 나의 선바위미로 산책에 요즘은 때까치의 영역사수지저귀는 소리가 요란스럽다. 촘촘히 우거진 수풀사이를 날렵하게 헤치며 불청객을 위협하는 거다. 불청객주제에 도둑질까지 하는 나를 놈들이 그냥 못 본채 할 순 없으리라.

2019. 06. 16

 

화재로 불탄2층은 그대로인채 아랫층은 거주하고 있다

국사당과 선바위를 잇는 미로

*족쇄(足鎖)에 걸린 비둘기*

울`부부가 밴치에 잠시 머물 때 비둘기떼가 내려앉았다가 별 볼 일이 없단 걸 알곤 후두둑 날아갔다. 근디 아까부터 거동이 좀 이상한 비둘기가 마치 왕따라도 당한 놈처럼 주윌 살피는 폼새를 하다가 걷는데 아뿔사 발을 제대로 때질 못한다. 유심히 살피니 나일론실이 양발목에 걸려 왼쪽발목은 핏멍이 선연하고 퉁퉁 부었다. 아내는 어떻게 해 보라고 안달하지만 뾰쪽수가 없었다. 놈은 부리로 나일론끄나풀을 물어뜯다 주윌 살피기를 반복했다.

 

안타까운 정황을 보다못해 내가 일어서자 놈은 몇 걸음 절름발이 발돋음 하다 가까스로 비상에 성공했다. 측은한 놈의 잔상은 오후내내 울`부부의 머릿속을 감돌았다. 얼마나 살아갈 수가 있을까? 놈한테 뭔 잘못이 있을까? 놈에게 족쇄를 채운 건 우리들이 아무 생각없이 버린 나일론끈이었다. 길을 걷다가 장애물에 걸려 발목을 부러뜨린 우리들은 고칠 수가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다. 비둘기는 누군가가 버린 쓰레기에 시한부생명이 된 거였다.

한양성곽

선바위 뒷모습↑ 앞모습↓

선바위에서 조망한 서울, 안산↑남산과 관악산↓

인왕산

선바위 옆모습

인왕-안산 하늘다리

중국 화산 장공잔도

개복숭아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