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족두리봉,향로봉,비봉,사모바위,승가사의 뒷이야기

 

승가사 승가대사탑

 

북상할거라는 장마전선이 일본근해에서 주춤거린다는 6월말일, 오랜만에 북한산행에 나섰다. 불광역9번 출구를 나서 주택가를 기웃거리며 북한산둘레길에 들어서자마자 족두리봉을 향한다. 완만했던 바위산은 본격적으로 된비알을 만든다. 후덥지근한 날씬 땡볕이 아니어서 다행인데 터진 땀구멍은 쥐어짜듯 땀이 솟는다.

 

족두리봉 서쪽능선을 탔다

 

손수건이 금방 물수건이 됐다. 땀수건을 잊고 그냥 왔다. 잊은 건 육포와 비스켓 싸놓은 봉지도 있다. 나이 탓일까? 한심하다. 땅딸이소나무그늘에 앉아 놈의 위로를 받는다. 한줄기 바람이 청량수가 되어 기분을 업시킨다. 산은 그렇게 일상의 찌거기를 후딱 씻어낸다. 그 맛에 산님들은 갈수록 느는 성싶다.

 

은평시가지

 

된비알인수봉을 오르는 산님들이 좀 많다. 눈앞에 깔린 서부시가지는 검푸른 숲속을 하얀 빌딩숲이 물결처럼 굽이치듯 한다. 산록속의 물결은 서울을 한 폭의 묵화로 만들고 있다. 화강암민둥산인수봉을 기어서 오르다시피 하면 대머리수리부엉이 꼴이다. 거기엔 눈물 글썽이는 눈깔도 있다.

 

족두리봉

 

어찌나 산님들이 밟아디끼는지 아프기도 할 것이다. 되짚어 빠꾸하여 수리봉계곡을 향한다. 바위에 쇠말뚝박고 연결한 쇠줄에 의지해 바윌 휘도는 잔도(棧道)스릴이 좀 있어 신난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면 응봉능선과 의상봉능선의 바위병풍이 파노라마처 탄성이 절로 난다. 향로봉을 향하는 솔밭 길은 산님들 공원이라.

 

향로봉과 비봉

 

한껏 멋 부리고 있는 소나무그늘 속이라면 산님들이 어김없이 앉아있다. 북한산이 바위산이기 망정이지 흙산이라면 이 많은 산님들 등쌀에 견딜 제주가 없으리라. 바위가 골수를 짜내며 키우는 소나무인데 산님들한테 부대껴 소나무도 영양실조에 헉헉대나 싶었다. 향로봉은 아예 출입을 금지시키느라 초소에 지킴이가 서있다.

 

향로봉배꼽쯤의 널빤지바위사이길

 

에두르는 바위길엔 뚱보사절인 널빤지바위사이 지름길도 있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비봉과 사모바위가 손짓을 한다. 소나무에 등을 기대고 계곡바람을 초청한다. 근디 휴대폰이 배고파죽었다. 충전을 잊었다는 걸 이제 깨달았으니 한심한 내 꼴에 또 뒤통수를 친다. 해도 나는 허기증을 달래야 하겠기에 누룽지과자에 토마토를 곁들어 아작아작 씹어 삼켰다.

 

뿔 잘린 코뿔소바위

 

몇 시나 됐을꼬? 비봉에 오른다. 코뿔소의 뿔은 뉘가 때어갔을꼬? 헬 수없이 놈을 마주쳤을 추사(秋史)도 코뿔소 뿔 얘기는 안했으니 놈은 태생적으로 뿔 없는 코뿔소였지 싶다. 그렇더라도 세월 탓에 거뭇거뭇한 주름살이 더 늘었나 싶어 짠한데 씩씩한 기상은 여전하다. 바윌 깎아 홈을 낸 닥터링은 정상에 오르는 걸 좀 수월케 한다.

 

비봉

 

이 바위를 수 없이 오르내렸을 추사의 집념과 열공은 상상을 절한다. 드뎌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 앞에 섰다. 비석의 신분을 찾아 준 건 추사였다.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어느 분야에 미친 사람이 없으면 문명과 문화는 발전할 수 없는 법. 추사는 스무살 때(1805) 부친 김노경을 따라 친구들과 비봉에 올라 처음 비석을 마주친다 

진흥왕순수비(진본은 국립박물관에 있다)

 

1400여년동안 도선(道詵)대사 아님 무학(無學)대사 비()라고 알려진 비었다. 십년이 흐른 18167월 추사는 금석학에 기초하여 진흥왕순수비란 걸 밝혀내기 전까지 말이다. 승가사에 머물면서 탁본을 뜨고 고서를 뒤지며 고증하면서 금석학에 심취한 결과였다.

 

  비봉에서 조망한 사모바위 승가,문수,나한,나월연봉들

 

이는 신라 진흥대왕 순수비다. 병자년(1816) 7월 김정희·김경연 읽었다. 정축년(1817) 68일 김정희와 조인영이 함께 와서 남아있는 글자 68자를 심정했다.”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 丙子七月 金正喜 金敬淵 讀. 丁丑六月八日金正喜趙寅永同來審定殘字六十八字)”

  소나무를 키우는 비봉

 

진흥왕순수비 측면에 추사가 새겨 넣은 글씨다. 진흥왕은 뭣 땜시 여기 바위꼭대기에 비를 세웠을까? 여긴 줄곧 백제 또는 고구려 땅이었다. 신라로썬 벼르고 벼른 땅을 빼앗은 쾌거를 기념하며 국경선으로 구획 지으려 했을 테다. 더구나 코뿔소(거북바위)바위는 옛날부터 민간신앙의 기도처이기도 했다.

 

 

내가 비봉에서 추사를 생각하고 있을 무렵 판문점에서 트럼프대통령과 김정은위원장이 남북을 오가며 자유의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문재인대통령과 합류했다. 실로 아이러니 하다.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삼국이 힘겨루기를 하는 품새가 얼핏 천 년 전을 오버랩 시켜서다. 기왕 평화의 깃발을 들고 만났으니 비핵화와 평화공존에 올인 불광불급하기를 기원해 봤다.

 

멀리 인수,백운,노적봉이~

  

멀리 인수봉과 백운대, 노적봉과 만경대가 파노라마 치는 하얀 바위산은 그 아래에 또 하얀 빌딩숲을 만들어 아름다운서울을 꾸몄다. 정은이와 트럼프가 재인이의 안내를 받아 여기에 섰음 싶다. 이렇게 아름다운 산천을 싸움질로 망가뜨리는 짓은 만고의 불한당이라고 삼구동성(三口同聲)으로 외쳤으면 좋겠다. 비봉을 내려선다.

 

산님들 놀이터 된 사모바위

 

사모바위는 바윌 사모하는 산님들로 울긋불긋 꼬까옷을 걸쳤다. 남자의 사모관대처럼 보여 붙은 이름은 병자호란 때 청에 끌려간 아내를 애타게 그리는 남자의 모습에서 망부석(望婦石)으로 거듭난다. 망부석은 괴롭다. 산님들의 개구쟁이 짓거리에 바스러지면 아내가 몰라볼까 애간장을 태운다 

 

 

그 망부석 아랜 커다란 바위굴이 있다. 무장공비 김신조일당이 청와대를 침투할 루트로 잠시 머뭇댄 1.21사태의 표본장소로 거듭났다. 굴속에 들면 밀납`무장공비의 눈매와 마주쳐 섬뜩하다. 열 몇명이 사살 된 그들은 누굴 위해서, 무엇 땜에 개죽음으로 일생을 북한산에서 마감했을까?

1.21무장공비가 머문 바위굴

 

정은이와 트럼프와 재인이가 평화공존에 미처 날뛰어(불광불급) 굴속의 밀납`공비도 아예 철거되기를 염원한다. 어떤 명분의 싸움도 지나고보면 초라한 권력자들의 욕망의 말로를 보게된다. 역사의 비극을 그들도 통찰했음 싶다. 천년고찰승가사를 향한다.

 

승가사가 있는 구기동골짝은 파고들수록 태곳적분위길 맛보게 한다. 서울도심에 이런 골짝도 있나싶다. 울창한 숲속의 가파른 돌길을 반시간쯤 내려오면 삼각산승가사란 현판을 단 일주문이 발길을 잡는다. 가파른 언덕에 날아갈듯 싶다.

 

구기동골짝

 

신라 때 삼각산`낭적사(狼迹寺)의 수태(秀台)스님이 승가대사를 흠모하여 삼각산(三角山)남쪽에 바위굴을 만들고 승가대사의 모습을 조각했다. 국가에 천재지변이 발생할 때 기도하면 바로 응답이 있는지라 봄·가을에 사흘간 재를 지내고 연말에는 임금이 옷을 바치는 것을 상례로 했다.”고 최치원 문집에 쓰인 게 승가사의 시원이다 

승가사일주문

 

승가대사는 당나라고종 때 장안에서 생불(生佛)로 추앙받았던 인도의 고승이었다. 일주문에서 승가대사탑에 거기서 또 대웅전을 오르는 계단은 아슬아슬하다. 대웅전에서 다시 마애여래좌상을 알현하는 계단도 아슬아슬하다. 대웅전 앞의 범종각[動靜閣]현판글씨는 탄허(呑虛)스님 친필이란다 

 

종각의 현판은 탄허스님의 친필 '동정각'

 

마애여래좌상을 향하는 길목의 팔각형 향로각을 구렁이처럼 감싼 채 명부전지붕을 올라타는 적송이 지금도 청정하다. 스님이 예불중이다. 승가굴(약사전)의 커다란 바위엔 영천(靈泉)이란 글씨가 음각됐는데 굴 안의 약수는 세종의 비 소헌왕후의 지병을 낫게 한 효험에서 기인하여 조선조 초엔 궁정의 약수로 음용했단다 

약사전 위 바위에 '靈泉'이란 글자는 바위굴의 약수를 일컫는다

기도 드리는 스님 땜에 맛도 멋보고 자릴 떴다

 

나는 그 약수를 마시고 빈병에 담을 작정으로 갖고 간 생수를 비봉에서 다 마셨는데 어찌해야 한디야? 스님이 승가굴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어서다. 기도 중엔 출입을 금하는데 스님의 기도는 언제 끝날지? 승가굴 옆에 기다랗게 누운 바위에 가양심신(可養心神)이라는 글씨가 있고 금사(錦史)란 서명도 새겼다.

약수전 밑돌의 可養心神 글자는 추사작품

 

마음과 정신을 바르게 키울 수 있다는 글은 추사의 글씨란다. 진흥왕순수빌 석명하느라 승가사에 머물렀던 추사다. 그의 혼백 앞에 섰다. 심하게 마모됐어도 살아 꿈틀대는 듯하다. 사실 나는 오늘 산행에서 추사의 행적을 더듬고 싶었던 거였다.  

 

향로각 옆의 소나무는 구렁이마냥 휘감고 있다

 

마애여래좌상을 오르면서 조감하는 장수전(長壽殿), 명부전, 영산전 등이 절묘하게 어우른 경내는 사자능선과 숨바꼭질을 한다. 승가사의 또 하나의 아이콘 같은 승가대사탑신은 일품이다. 고행 아니 수행길인 계단 끝의 어마어마한 마애여래좌상은 모든 걸 압도한다. 더는 온화하고 유려한 모습에 한결 평안해진다.

 

고행 후라야 마애여래좌상 앞에 설 수가 있다

 

묵념 후 찬찬히 여래상을 쳐다보면 양옆어깨와 머리 위 천개석(天蓋石) 양편에 사각형구멍이 보이는데 목조가구(木造架構)흔적으로, 여래상을 보호하기 위한 가림막 비계였지 싶다. 신앙심 없인, 미치지 않고선 어림없는 참 대단한 불사였지 싶다. 선정인(禪定印)한 여래상의 오른손을 풀어 무릎아래를 향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자세는 석가세존이 성불할 때의 모습이란다.

 

천개석과 비계를 설치했던 사각구멍

 

보면 볼수록 불가사이하다. 다시 약사전 앞에 섰다. 스님은 아직도 기도 중이었다. 약수 뜨는 건 포기하고 입구에서 승가대사좌상을 훑었다. 천여 년 전에 수태스님이 굴을 파고 새긴 불상이니 승가사의 기원이다. 정조가 문효세자책봉을 할때 청나라가 세자의 무병장수를 위해 보낸 장수옥불(長壽玉佛)을 승가사 중건하여 안치했단 장수전(長壽殿)을 훑는다.

 

 

 

향로각, 범종각이 발 아래 깔리고~

 

우회비탈길에 들어 경내를 벗어나려는데 담벼락 철쭉나무(?)에 희한한 꽃, 조화같이 딱 한 송이 피었다. 구기계곡에 들어섰다. 백색소음(白色騷音)길이란 골짝은 흐르는 물이 없어 백색너덜길이 됐다. 울퉁불퉁 급살 맞은 산길은 그대로 수행길이고 힐링로드였다. 이따금 초록이파리 흔들리는 바람소리와 새들의 지저귐이 태고의 숲길인가 싶었다.

 

 

구기계곡뿐 아니라 비봉능선길이 좋은 건 인공포장이나 데크, 쇠붙이가 없는 자연친화적인 등산로란 점이다. 지자체는 산님들 위한다는 핑계로 산림훼손 그만 했음 좋겠다. 위험지역과 무단샛길에 밧줄로 출입금지영역표실 하면 된다. 오늘 다섯 시간의 행복은 비봉능선자락의 선물이었다.

 

백색소음이 낭창하다는 구기계곡은 백색너덜이 춤을 췄다

 

하루 몇 시간을 온전히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북한산을 찾을 것이라. 될 수 있음 홀로산행을 하라. 그래야 우선 내가 홀가분해지고, 산속에 단정한 손님으로 들어서게 돼서다.산에서 산짐승 허락없이 떠드는 산님도 무뢰한이다. 

#승가대사에서 승가란 범어(梵語)인 상가(Samgha)의 음역으로 우리는 승려를 중[]이라 표기했다.

2019. 06. 30

 

 

수리봉골짝안부 갈림길목

 

 

북한산의 연봉들이 한 눈에 조망됐다

코불소가 거북이로 둔갑하고~

 

승가사에서 본 보현뵹

응진전

약수전 밑돌의 可養心神 글자는 추사작품

철쭉나무(?)에 핀 꽃이름은?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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