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암(尤庵)선생도 홀딱 반해버린~ (도락산)


am11:00을 넘겨서 우린 충북 단양, 상선암 주차장에서 배낭을 챙겼다. 초하의 신록이 찌뿌대한 하늘을 가린 숲길을 더듬어 제봉을 향하는데 그는 여간 호락호락하게 길을 내주질 않고 있다.

촘촘히 선 떡갈나무들이 후덥지근한 열기를 쫓아내고 있어도 암릉길을 오르는 나는 반시간도 안돼 이마에 흐르는 땀을 연신 훔쳐내고 있었다.

이따금 적송이 멋들어진 몸매로 마중 나와 우리의 방문을 반기고, 길섶 척박한 땅에 뿌리내린 진달래가 이상한 눈으로 인사를 해 오지만 난 도통 그의 이름도 몰라 민망코 답답하다. 몸과 잎이 진달래임엔 분명한데 싸리꽃 한 옴큼을 모아 얄궂게 미소 지음에 난 갈피를 못 잡고 지나치는 산님들께 물어도 시원한 대답이 없다.

그럴 때마다 내가 속상해하는 것은 초목에 대한 나의 무식이지만 워낙 게으른 탓에 그 무식을 어쩌질 못하고 있다. 실로 안타까운 한심함이라. 반시간쯤 오르니 제봉에 이른다. 제봉이 아니라 제송봉(諸松峰)이라 이름하고 싶었다.

거기서부터 뽐내기 시작한 적송들의 아름다운 자태는 언어도단이라. 그저 쳐다보고 감탄하고 넋 잃고 경외할 뿐이라.


한참을 바라보다 빅토리아님이,

“왜, 이 적송들은 이렇게 구불구불 구부러졌을까요?”라고 알 듯 모를 듯한 자문을 한다.

“백제에 햇살이 있잖아요! 햇살 맞으려다 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요.”라고 내게 묻지도 안했는데 나는 다소 엉뚱한 대답을 했었다. 해님은 아직도 잿빛하늘 뒤에 숨어있다. 허나 백제인들 속에 ‘햇살님’이 있고, 오늘 분명 동행했는데 아직 모습이 보이질 않는다. 어쩜 우리들의 산행에 햇볕 줄까 싶어 맨 후미에서 도우미햇살노릇 하고 있나 싶다.

형봉(835m)을 향한다. 바위능선을 더듬는 길 양편으로 전개되는 협곡과 가파른 바위산들이 나의 시선을 잡아당기고 있다. 그렇다고 양쪽에 눈 팔 처지도 아니다. 발아래가 천길 낭떠러지고 마지못해 길 터준 바위등걸이 편편할 리가 없어서다.

30여분을 눈싸움, 발싸움 하다보니 형봉이 자리를 내 주고 있다. 그를 뒤로하고 내리막을 조심하며 골자기에 닿자, 빅토리아님과 마태오님이 한 평 남짓 자리를 세내어 지키고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후딱 정상을 갔다 오란다. 점심 먹을 터란 거다. 정오를 훨씬 넘어섰다. 그분들의 배려가 당연하다는 듯 짐을 내려놓고 맨몸으로 바위산을 오른다. 20분도 채 안됐을 거라. 바위산이 뚝딱 잘라져 나갔다. 평평한 바위가 농구코트 장을 만들고도 남을만하다.

산님들이 옹기종기 모여 천하 첫 자락에 오찬장을 마련하였고, 시도 때도 없는 사진 찍기에 수선스럽다. 신선봉은 그렇게 아량을 묵묵히 베풀고 있었다. 그는 얼굴 한 편에 직경 1m의 물웅덩이를 만들어 파란이끼를 자라게 하여 올챙이를 키우고 있었다. 아니다, 올챙이가 거길 점령해 이끼를 만들었나? 생명이 사는 터라지만 어쩐지 볼썽사나웠다.

올챙이가 이소하면 처녀들이여! 물을 퍼내시라. 소나기가 내려 정간수로 채워야 신선봉에 걸맞지 않겠나. 처녀 아닌 처녀는 얼씬도 마시라.

사방을 조망한다. 이 바위마당의 벼랑은 보일 리 없고 저 아래 협곡에서 솟아오른 단애들이 만들어 간 암산들의 능선은 황정산, 용두산, 수리봉, 문수봉등을 이어 하늘에 금을 긋고 하늘땅 따먹기를 하고 있다. 곧장 도락산정(964m)으로 발길을 옮겼다. 지척간이다. 산님들이 돌멩이 하나씩이 주어다 이뤄놓은 돌무덤일까. 그것뿐이라. 참으로 맹숭 한지고~! 앞의 신선대가 그의 몫까지 다 한 땜이려니. 되돌아가 아까 짐 풀어 둔 골짜기에 왔다. 몇 분이 점심을 먹고 있다. 참으로 옹색한 터를 빌려 놓은 마태오님은 터 지킴이 하느라 재미(?)가 옹골진가보다.


그 분은 항상 웃는 얼굴이라. 마음도 늘 웃고 있으려니 생각을 하는 나는 그가 부럽다.

비좁고 경사진 언덕배기에 자리를 깔고 뱃속을 채웠다. 저기 신선봉은 참으로 좋았는데···.

집어넣을 건 다 뱃속에 집어넣고 배낭을 짊어진다. 급경사 내림 길을 더듬기가 한참이다. 내림만큼 다시 가파른 바위등걸을 보듬고 오른다. 산님들의 체증에 걸려 한가롭다. 그 한가롬을 주위의 풍광이 기를 막히게 보여주고 있다. 채은봉에 올라서면 옆으로 새 한참을 해찰키로 한다. 내 앞길 막을 자 없다고 채운봉(867m)결국 엎드려 나를 맞는다. 뒤로 돌아 그럴싸한 소나무 한그루를 키우고 있는 바위를 찾아 숨어드니 산님들의 소리가 아련하다. 배낭을 다시 내렸다.

억겁을 살아왔을 화강암들이 급하게 등허릴 오므렸다 펴서 가파른 산을 만들고, 바람과 눈비에 세월을 씻어내어 희고 반들거리는 얼굴을 다듬었다. 나름대로 보이기 민망한 곳은 수풀로 몸을 가리고 깊게 주름진 얼굴엔 소나무를 키워 멋들어진 화장을 하고 있다.

참으로 빼어난 산수화 병풍이로고···! 노회한 노론의 영수 우암인들 맘 뺏기질 않고 어찌 배길 텐가!

그는 오죽해야 이곳에서 “깨닫는데도 나름의 길이 있고, 그 길엔 즐거움이 있어야 한다.”고 도락송(道樂頌)을 읊었겠는가! 텁수룩한 흰 수염 미풍에 날리며 이곳 어느 뫼서 신선처럼 유유자적했을 노학자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뿐이랴, 그의 수제자였던 권상하도 여길 찾아 상선골짜기에 정자를 짓고 “신선과 놀던 학은 간곳이 없고, 학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이 와 닿는 이곳···”이라고 칭송하며 스승(학으로 은유하지 않았을까)을 기렸을 터.

반시간을 그렇게 취했다. 오후 2시를 한참이나 지났다. 배낭을 챙겨 산님들 꽁무니를 따른다. 검봉(825m)을 밟는다.

모든 봉우리들이 지척간이라. 저렇게도 떨어지길 싫으면 애초에 달라붙지 뭣 땜에 떨어져 깊은 골 만들곤 산님들에게 진땀을 빼게 하는지 모르겠다. 우암 말마따나 고행의 과정을 거쳐 정상에 오름의 열락이 도락(道樂)이고 인생살이 길일 것도 같다.

범바위 아래 꾀 넓은 바위가 느닷없이 싹둑 잘려나갔다. 수직 단애 밑은 볼 수가 없는데 바위상단 주름에 빨간 나리꽃을 너 댓 송이 피워 맞은편 바위산에 미소작전을 펴고 있다.

마태오님, 김대장님, 프리마 돈나(나중에 알았다. 그녀의 대단한 창(唱)을)와 넷이서 외로운 나리꽃을 동무삼아 주려 둘러 앉아 잠시 진풍경에 빠져들었다.

부스스 일어나 산길을 가다 난 또 해찰을 한다. 아까부터 녹음사이로 살짝 선뵈고 있는 큰 선바위에 오금이 저린 땜이라. 목을 뒤로 꺾었는데도 그를 전부 볼 수가 없어 그의 뒤춤을 팔 요량으로 뒤로 파고 들어가다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야 했다.

웬 여인이 숲 속에서 화들짝 일어서다말고 나와 눈이 마주친 거다. 숨을 데가 없어 외면하고 있는데 여인이 냉정하게 내 옷깃을 스치며 지나간다. 돌아보지도 않고 등산로를 찾아 사라지고 있다.

나도 가던 발길을 옮기는데 그녀가 일어선 자리에 눈길이 간다. 보물찾기라도 하는 것처럼···.거기엔 흰 휴지가 뭉떵하게 있고, 그런 흔적이 몇 군데가 있어 흡사 버섯이 돋아난 성 싶었다. 쌍통 찌푸리며 거암을 쳐다보지만 어디에서도 온전한 실체를 보여주질 않는다. 결국 여인이 카타르시즘에 몸서리친 흔적에 입맛만 조지고 온 셈이다.

옆으로 와 좀 거리를 두고 고개를 젖히니 바위는 허리께에 소나무 한 그루를 키우고 있었는데 양분을 다 소진 했던지 소나무가 비실말라가고 있었다. 그래도 바윈 정수리는 죽어도 보여주질 않고 있다. 단념하고 하산하는데 진달래 같은 것이 진달래꽃도 아닌 흰 수술 꽃을 제법 피워대고 있잖은가~! 궁금증 병을 다시 도지게 한다.

작은 선바위가 또 내 앞을 가로막는다. 그가 내민 손을 뿌리치며 건성으로 인사를 하고 발길을 땠다. 벌써 오후 4시를 넘기고 있다.


상선암 나들목, 버스 옆에 뒤풀이 마당이 한창이다. 맥주 세 잔으로 갈증을 달랜 나는 김대장을 꼬드겼다. 주차장 앞의 상선암 냇물이 불꽃 튄 나의 발을 유혹하고, 내가 김대장을 유혹했다. 상선암 골짜기 물길에 발을 담근다. 시원함이 신경을 타고 전신에 마취약처럼 퍼진다. 여기 어느 곳에 수암 권상하는 초가정자를 지었을꼬? 그도 족욕을 즐겼을까? 문득 당나라 시인 이상은이 떠오른다.

그는 살풍경(殺風景)한 짓거리를 “흐르는 물에 발 씻기, 꽃 위에 빨래 말리기, 고요한 숲 속에서 큰소리 지르기 등”을 들었다. 그 살풍경한 짓에 김대장을 공범으로 유혹 했음인데 마태오님이 그 짓거리가 좋아보였던지 슬그머니 끼어든다. 살풍경한 짓은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라. 좀 떨어진 아래선 여자분 들도 그 짓에 신명이 났다.

아마 이상은 시인이 이 광경을 보았담, 내가 아까 큰 선바위 뒤에서 여인을 보았던 정황처럼 황당하여 외면했을까? 속맘으론 욕을 바가지로 하면서 말이다.

도락산~! 산님이라면, 아니 산 꾼이라면 마땅히 한 번쯤은 탐방해야할 명산이려니-.

높지는 않으나 깊고 가파른 산세가 화강암 연봉들로 이어져 멋과 품격을 더한다. 거기에 적송의 우아함을 도처에서 마주하게 돼 감칠맛을 돋운다.

우암선생이 홀딱 빠질 만했다.

08. 06. 22



Posted by peppuppy(깡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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