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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김삿갓의 혼 찾아 (마대산)


✰김삿갓의 혼 찾아 (마대산) ★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堦被服.

明日若使陽來弔 家家檐前淚滴滴 -<김삿갓의 시 눈(雪)>-

(천황이 죽었나 인황이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 해가 조문 온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 눈물 뚝뚝 흘리겠네)


오늘도 장마는 음습한 얼굴로 아침을 열고 있다. 그의 눅눅한 숨결 속의 도심을 빠져나와 전라, 충청, 강원내륙을 들락거리며 4시간 반 동안 마주친 장마는 잿빛구름, 안무, 가랑비로 변신을 하다 두터운 회색구름사이로 살짝 드미는 햇살까지를 촐랑대는 넉살을 부린다.

그 넉살은 영월땅 남한강에서 탁류로 허물을 죄다 씻어냄인가. 좁은 국토에서도 날씨변덕이 그럴진대 500억 원짜리 슈퍼컴퓨터(검증?)라고 별수가 있으랴.

‘기상청 ✕✕놈’소린 안해야 되겠단 생각으로, 탁류에 길 터준 강에, 그 탁류에 부유 하느라 바쁜 레프팅족들에게 눈을 멈췄다.

구인사 갈림목을 막지나 왼편 언덕배기를 기어오르니 동대천 개울이 흐르고 우린 그를 따라 막 포장한 경사로를 굼벵이처럼 어슬렁어슬렁 오르니 넓은광장이 나왔다. 배틀재 정상이라.

오전 11시반을 넘기고 있었다.

헌데 모두가 우왕좌왕이라. 여기서 숨어버린 마대산(馬垈山)정상을 오르는 입로를 찾느라 한참을 헤맸다. 인적이 뜸하기로 무성한 수풀이 길을 잡숴버린 탓이라. 웬만한 산치고 등산로는 반질반질하건만 이런 예외도 있다. 어찌 찾아 급경사 숲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하는데 모두가 발 때기를 주저하고 있다. 흡사 마사이마라에서 세랭게티 초원을 향하는 아프리카 누우떼가 마라강을 건너기 전의 모습이라. 녹색바다에 아랫도리를 푹 담그고 가파른 오르막을 오른다. 감시초소가 나타나서야 비로써 긴가민가한 산길이 보이고 후덥지근한 숲은 푹신한 부엽토에서 솟는 내음까지 더해 하늘을 가린 숲실 속에서 태곳적의 맛을 느끼게 한다.

활엽목이 빼곡한데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세월의 때를 뒤집어쓰고 거목경쟁을 하고 있다.

무성한 수풀 속에서 이름모를 야생화가 눈웃음 짓는데 꺽다리 원추리가 단연 돋보이고 그의 먼 친족쯤 될 호랑이 꽃이 진홍 볼연지에 검자주 수술을 달고 유혹을 한다. 정녕 우린 그가 애태워 기다리는 충매쟁이가 아님을 모르는 모양일터. 오늘만 버텨보라. 내일은 장마가 물러서면 벌 나비가 예쁜 너를 그냥 놔두기야 하겠니.

그놈의 고혹스런 미소에 빠져 건성걸음을 옮기는데 앞선 두 분이 느닷없이 풀숲에 뛰어들어 땅을 파헤친다. 몇 년생 더덕이 넝쿨째 그의 손에 들려왔다. 그 분은 또 한 번 ‘심봤다’를 한다. 그의 후각은 눈썰미보다 훨씬 예민했다. 눈으로 아닌 코로 더덕을 캐고 있었던 것이다.

그분의 뒤를 따라 더덕냄새에 취해 보려는데 홀연히 그가 내 뒤로 쳐졌으니 냄새는커녕 그의 ‘심봤다’는 소리도 감감 묘연케 됐다. 암튼 마대산길은 손때가 묻지 않고 원시의 그늘이 잠자고 있다는 느낌에 취해본다.

그런 산행을 1시간 반쯤 하니 마대산정상(1052m)이 발아래라. 아쉽게도 볼게 없다. 사위가 안무라. 안개 속 고도에 섰다. 발치 바로 앞 숲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는 김삿갓모친의 긴 한숨같이 느껴진다. 그 숨결 따라 수 십 마리 고추잠자리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그 뿐인 초라한 정상에 내 얼굴 끼어 셔터에 가뒀다. 초라한 오찬 상을 차리자 반대편 숲에서 낯선 산님 몇 분이 올라 와 인사를 해온다.


초라한 잔치(?)상위로 잠자리의 춤 수고는 계속인데 우린 음식을 싹 쓸어 목구멍에 넣었다. 그놈들이야 욕을 하건 말건 간에 우리들만의 잔치였다. 우리가 뜨면 어쩌다 흘린 밥풀 하나라도 건질는지?

배낭 챙기고 김삿갓 생가 쪽으로 하산 길에 들었다. 오후 2시를 갓 넘겼다. 숲이 녹음터널을 만들고 터널위엔 회색구름이 아직도 하늘을 가렸다. 한참을 내리막길 더듬다보니 재잘거리는 소리가 아련하다. 숲에 스민 물이 땅속을 빠져 모여들어 돌멩이를 어르느라 내는 소릴 게다. 골은 깊어 물소리가 점점 옥타브를 높이고 있다.

어둔이 계곡물은 바야흐로 내 곁으로 다가와 힘차게 달리며 김삿갓의 생가를 안내한다. 한 시간쯤을 그렇게 삼켰다. 물길과 숲길이 맞딱드는 곳에 생뚱맞게 미니초가(草家) 두체가 초라하다. 움막 같은 단간엔 김삿갓의 영정을 뫼신 사당이고, 미니 삼간집은 살림집이란 데 마루 끝 토방에 통나무로 엉성하게 조각한 김삿갓이 난 영 마음에 닿질 않는다. 그의 고고한 심성과 섬세한 시상(詩想)을 생각할 때 투박스럽고 거친 목상(木像)이 섬뜩하기까지 했다. 그의 곁을 지키는 지팡이도 요술쟁이 것 마냥이어서 입맛이 찜했다. 그건 그렇다 해도 사방을 높은 산령이 바짝 엎드려 텃밭 한 뙤기 이룰 수도 없는 산옥(山獄)에서 삼모자(三母子)는 무엇으로 연명을 했을까?

계곡청정수와 숲의 맑은 정기와 한 뼘의 푸른 하늘을 먹고 살았기로 그의 영혼과 시상은 그리도 고고하고 출중했을까? 난고(蘭皐: 김삿갓의 호. 자는 炳淵)선생은 세도양반 안동김씨의 한 파로 조부가 평안도 선천부사 때 홍경래의 난(1811년)이 발생했고, 그는 곧 투항하였기로, 난 평정 후 죄인이 되 참수형을 받는다. 일가는 폐족(廢族)이 되어 모친(함평 이씨)은 어린형제를 대리고 친정인 양주를 거쳐 이천, 여주로 전전하다 어둔(於屯)이 골로 숨어들었다.

선생이 20살 때 영월 동헌에서 백일장이 시행 되 응시, 장원을 했다. 그 때의 시제(詩題)가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翼淳罪通于天”이였다. 폐족된 까닭을 모른 선생은 조부의 죄를 능멸하는 시로 장원했음을 모친으로부터 얘기 듣고 망연자실 집을 떠나 주유천하를 시작했다.

삿갓을 씀은 부끄러운 얼굴로 푸른 하늘을 볼 수가 없다는 참회와 속죄의 뜻 이였는데 후일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될 줄이야~!

그의 발길엔 사회의 적폐를 촌철살인 하는 풍류와 혜학이 넘치는 시구를 많이 남겼는데, 그의 혜안과 예지를 꿰뚫어 보게 한다.

나는 불운한 선생의 은거지가 하 궁금하여 오늘의 산행을 목멨다. 두 해 남짓 머물렀을 어둔골 집에서 선생을 떠 올리기엔 나의 선생에 대한 무지가 턱도 없음이라. 목각으로 흉내 낸 선생 앞에서 스냅사진을 담고 추적거리는 산길을 하산한다. 그때도 흘렀을 청정수가 골짜기를 더듬다 큰 돌멩이에 부딪치면 하얀 얼굴을 선뵌다. 이따금 잿빛 구름사이로 쏟아진 햇살에 하얀 얼굴은 신령한 빛을 발하며 무수한 물방울로 부서졌다. 알지도 못하는 선생의 얼굴도 부서진다. 그의 모친의 한숨소리가 물속에서 부서진다. 모두가 부서졌다가 다시 모여 바위벼랑에서 하얗게 떨어져 푸른 소를 만들곤 청정수가 되 내달린다.

소 앞에서 배낭을 풀곤 살풍경한 족욕을 하고 있는데 웬 여인 두 분이 나타나 자리를 내달란다. 삿갓선생께 예약을 했었나? 주섬주섬 챙기고 일어서는데 한 여인이 신발만 벗어 제키곤 소(沼)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간다. 놀래, “아주머니! 소용돌이에 말리면 못 나옵니다.” 주의(?)를 하곤 자리를 뜨려는데, 또 한 여인이 “아저씨, 백제 아니어요?” 반갑긴 한데 나의 무례 탓인지, 그들의 결례 땜인지 얼 벙거지가 되 헷갈렸다. 난고선생은 이땐 뭐라 읊었을꼬? 노루목길 삼거리 다리를 건너니 왼쪽으로 김삿갓 골짜기란 안내판이 서 있다. 내친김에 혼자 갈 때까지 가보기로 한다. 이곳 물길은 급하고 낭떠러지 바윗길이어서 폭포의 굉음이 웅장하고 소도 깊어 검푸르다. 조금 오르니 숲길하곤 궁합이 안 맞을 포장길이라.

뭣 땜에 도포를 했을까? 자연사랑도 편의성만 생각다보면 자연파괴가 됨을 난고선생이 목격 했담 시 한 수로 몰지각을 꾸짖었을 것 같다. 20여분을 오르다 시간이 빠듯하여 되짚는데 청수 속에 흰 돌멩이가 하얗다못해 부시다. 조그만 놈 하나를 주어 기념한다고 도둑질했다.

다릿목에서 김삿갓 묘역은 10여분 소요됐다. 선생의 기념물 조각품들이 소공원을 이루고, 앞을 흐르는 남한강 물길이 실어다 들려주는 세태의 온갖 얘기를 선생은 하나도 빠짐없이 듣고 있으려니 싶다. 이곳 하동 외석리는 간판에 ‘김삿갓’글자가 빠진 집이 없다. 아니, 영월시가지까지 김삿갓은 간판을 메우고 있었다. 쿠바의 체·게바라가 생각난다. 풍운아 김삿갓도 영월의 체·게바라를 넘어 우리의 체·게바라로 사회의 모순을 혁파하는 아이콘으로 거듭나면 싶다.

어둠이 밤을 잉태하는 충청내륙 깊숙이를 달리는데 청계광장의 촛불시위 뉴스가 얼핏 스치고 지나간다. 문득 선생이 생각났다. 지금 청계광장에 나타나심 어떤 시를 한 수 남길까? 그의 유명시 書堂乃早知. 房中階尊物.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을 패러디 해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감히 선생께 누를 끼치는 노릇이지만 “富侍乃早知, 場內牛尊物. 狂牛諸未十, 入食民不謁.”라고 몇 자구를 바꿨다. 소리 내 읽으면(된소리로),

“부시내좃이, 장내우좃물. 광우제미씹, 입식민불알.”- 라고 소리 난다. 대가리 굴려 억지 해석해 본다.

“일찍이 부시를 알고 만나고보니, 목장 안엔 좋은 쇠고기 스테이크라. 미친 소가 채 열 마리도 안 된다니, 백성들께 수입해 먹어라 말 같잖은 말 하네.” 그럴 듯 해 혼자 피식 웃음 삼키는데, 난데없이 마이크가 장내를 숨죽이고 있다.

“늦은 저녁 간식으로 사발 면을 준비했으니 하나씩 -<김삿갓 생가 앞>-

갖고 가 휴게소 온수로 데워 잡수라.”라고 고지를 하는 게 아닌가!

빅토리오님(회장)이 뉴라이트 불빛을 든 것은 아닐 게고-.

고맙습니다. 몇 일전 그의 친절한 안내전화를 받고 김삿갓의 행적에 목메게 됨 이였다.

친절만 입고 보니 미안키만 하다.

자주 만나 봄이 미안을 더는 길이라고 누군가 귀띔을 해 준다.

“백제 파이팅!”

08. 0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