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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용문골에서 마주친 소금강 (대둔산)

★ 용문골에서 마주친 소금강 (대둔산)


어제 오후 갑작스레 숙대박(淑大朴)의 산행소식을 통보받은 나는 아침에 약속장소로 나갔었고, 4월이 마련한 연초록 산야에 취하며 17번 국도를 따라 베티고개를 향했다. 대둔산 위락지구 주차장을 약간 지나 용문골짜기 들머리로 들어선다. 무슨 공사인지 모르지만 입구가 파헤쳐져 들머리가 사라졌고, 몇 십m 들어서 있던 간이매표소도 온대간대가 없었다. 그렇잖아도 평소에 외진 등산로였었기에 찾는 이 별로였는데 오늘따라 인적이 거의 없다.

연초록 아기이파리숲실 속을 들어서자 상끗한 풋 비린내가 폐부를 파고든다. 심호흡을 한다. 아침 냉기를 쫓아내는 햇살에 하얀 제비꽃이 기지개를 펴고 있고, 개울물이 골짜기바위들을 세수시키느라 수선스럽다. 골짜기를 씻긴 물들은 이내 장선천(長仙川) 상류에서 또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근데 S가 울상이라. 가게 두 군데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발문수도 왕발이어 휴대전화가 연신 분신노릇을 하는데 그만 가게에 때놓고 왔단다. 끊어진 신경을 복원하겠다고 내전화로 애면글면 해보지만 골 깊어 허사였다. 모처럼 일상에서 탈출한 그가 풀죽어있어 안쓰러웠다. 골짜기를 저만치 발아래 깔고 산허리를 질러가기 30여 분, 선은사 앞마당에 닿았다. 어찌하다 S의 신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이다.


갈림길에서 장군바위 쪽으로 틀었다. 케이블카 정류장에 이른다. 비로써 등산객들의 인파에 휩싸였다. 산 꾼들의 뒤통수를 따라 임금바위에 이르고 거기서 입석대를 잇는 높이50여m, 길이 81m의 구름다리를 건넌다. 천길 깊이의 협곡과 사위를 둘러싼 뾰쪽바위산들이 현기증을 일으키게 할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가히 대둔산의 명물이라. 그 스릴과 감탄에 한숨짓다 약수정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고 심호흡을 해야 한다. 이제 경사 70여도로 기운 삼선계단을 기어올라 하늘로 진입하려면 말이다. 계단초입에서 바라본 꼭대기는 아스라이파란하늘이라. 스릴 좋아하다 공포감에 심장 스톱할까 싶을 정도로 아찔한데 도시 진행이 더디다. 아니 꽉 막히기 일쑤라. 끝내주는 주위풍광을 즐기려 잠시 멈춤이 아니라 심약 자들이 몇 계단을 오르다 눈감아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선 빠꾸(회귀)가 없다. 할 수도 없다. 끝이 보이질 않는 사다리는 폭이 좁아 비켜설 공간도 없다. 오직 전진만이 살길인 것이다. 황천길 들어섰다고 후회하다 정상에 이르면 천국에 왔다고 환호성 터뜨리는 곳이 삼선계단일 것 같다. 인생살이가 그렇다. 내가 가는 길에 타인이 뒤따라 올 때 걸림돌이나 불쾌감을 남겨선 안 됨이고, 기왕 하는 일에 역지사지하면 만족감에 이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은 알려주고 있을 터-.

두어 시간 산행이 드디어 정상 마천대(877.7m)를 밟게 한다. 동-오대산, 남-천등산, 북서-월성봉이 지척인데 발아랜 바위 숲과 좀 전에 통과의례를 치렀던 구름다리와 삼선계단이 장난감처럼 걸쳐있고 거기엔 울긋불긋 차린 난쟁이(?)들이 느리게 꿈틀거린다. 우린 되짚어 하산한다. 낙조대 방면으로 반시간쯤 산턱 9부 능선을 가로지른다. 요깃거리도 안 되는 쑥떡 몇 개로 우린 입가에 고물만 묻히고 용문골을 찾아 들었다. 양편을 수십m 단애들이 요새처럼 솟아있고 그들이 수천 년 동안 토해낸 바위조각들 위를 조신하게 걸어야 했다. 그렇게 양쪽이 막힌 협곡을 반시간쯤 내려왔을까 커다란 절벽바위 앞에 용문골 안내판이 우릴 맞는다. 왼편에 거대바위가 갈라져 빼꼼이 보이는 틈새가 꾀 긴 바윗골이 나타난다. 모새가 홍해를 가르듯 용이 승천하기 위하여 바위를 쪼개고 웅비했단다. 홀로 지나기도 빠듯한 바위틈새(뚱보는 사절?)를 5m정도 간신히 빠지면 거대한 바위가 다시 앞을 가로막는다. 철제사다리를 올라서니 바위난간에 철 구조물로 전망대를 만들어 붙들어 맸다. 서너 평은 될 쇠 그물망에서 관망하는 풍광은 대둔산이 소금강이란 말을 듣게 되는 까닭을 실감케 한다. 앞에 일곱 봉우리(칠성봉)가 차례로 쫙 펼쳐져 금방 나를 덮칠 기세고, 그 뒤를 수많은 암봉들이 병풍처럼 연좌하고 있는데 바위 사이사이에 굽은 노송들이 어쩜 작위적(?)이다. 바위가 얼마나 외로웠으면 척박한 자신의 몸에서 비실한 영양분 몽땅 뽑아 소나무를 키우고 있겠는가! 칠성봉을 깎아 세운 협곡은 하 깊어 무성한 숲만 아니면 리틀캐년이라. 대둔산 바위숲솔의 백미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용문골 전망대라 할 것이다. 몇 해 전 초겨울에 와서 한참을 빠졌던 흰눈 덮인 칠성봉풍경은 장대한 수묵화였다. 붓에 연초록 물감 뭉텅 묻혀 회색 바위산 군데군데 찍어 놓은 칠성봉을 앉아 한 참을 시리도록 감상하곤 일어섰다. 다시 팻말 뒤, 거대한 단애에 하켄(haken)이 듬성듬성 박혀있다. 그 아래 훨씬 높은 단애에도, 또 다른 바위에도 박힌 하켄이 계곡을 찾아드는 햇빛에 반짝이고 있다.

가히 이 근처의 클라이밍들에겐 적소라. 몇 년 전에 왔을 땐 어느 암벽등반가의 조난을 알리는 기도문이 있었나 싶었는데 ‘낙석주의’란 경구만이 눈에 띈다. 젊은 나이에 등반 중 조난하여 넋을 여기에 묻힌 그도 결코 불행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나는 했었다.

그가 누군지는 모르되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더구나 청정한 산 속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행복한 죽음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몇 년 전에 요세미티 국립공원엘 갔을 때가 생각난다. 거기엔 세계의 유명한 클라이밍들이 꿈속에서도 도전한다는 엘-캐피탄(El capitans)이란 거대한 수직단애가 있었다. 더는 그 요세미티란 국립공원이 지정되기까진 일개 목공소 기계공이었던 죤 뮤어(1838~1914)의 자연사랑이 낳은 결과였다. 그는 어느 날 쇠줄에 눈을 다쳐 목공소를 그만 두고 양떼를 몰고 시에라네바다 산맥 기슭에서 몇 달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자연에 매료되어 귀의하게 되는 데 그의 일기<나의 첫 여름>엔 그의 자연관이 물씬 배어난다.

일기 중, “아무리 지쳐 있더라도 산에서 하루를 보내며 축복을 받은 사람이 도중에 기운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장수를 누릴 운명이건, 파란만장한 삶을 살 운명이건 간에 그 사람은 영원한 부자다”라고 쓰고 있다.

자연을 사랑하고 그 일에 매진하다 어찌 운명을 하는 자는 뮤어의 말따나 부자일지 모른다.

아니 산 속에서 하루를 보내며 일상에서 온전히 벗어날 때는 누구도 부럽지가 않다. 오직 산행이란 일념뿐이다. 마음이 텅 비워지는 - 덧없이 풍성해지는 부자인 것이다.

심난해 했던 S가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신경이 복구되고 청정산기(山氣)에 멱 감았나 싶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를 무척 아끼고 있는데 그 아끼는 노릇이란 게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걸 요즘 절감한다. 아낌에 나의 에고가 발동하니까 말이다.

보랏빛 현호색 두 송이가 고개 숙여 졸고 있다. 그 위를 연초록 이파리가 무성한 숲실을 이루고 4월의 햇살은 곱게 내려와 빗질을 하고 있다. 반질거리는 숲실의 이파리를 빠져 나오는 계곡물 소리가 협곡을 타고 아득히 달아난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월이도 달아난다. 부신 계절의 여왕에게 자리를 내줄 채비에 사월인 계곡에서 소란을 떨고 있는지도 모른다.


08. 04. 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