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고대에서 산호초까지 (남덕유산) ★
무자 년 벽두부터 내린 적설로 지리,덕유산은 입산이 통제됐다는 뉴스와 강추위가, 그 곳에는 얼마나 멋있는 설국이 이루어졌을까를 상상하던 나는 부랴부랴 인터넷에서 산행소식을 훑어야 했고, 1월3일 남 덕유산 등정을 고지한 ‘산들내 산악회’를 접하였다.
어제(1/2)야 전통을 시도했던(넘 촉박하여 만원이라 거절할 것을 예상 코)나는 회장의 쾌락을 받았고 오늘 새벽 한 자리에 동참할 수 있었던 행운아 이였다.
육십령에서 시작한 산행은 아이젠과 스팻치 착용 없인 입산을 허락하지 않음 이였다. 서봉을 향하는 완만한 능선의 경사였지만 눈 속의 산행은 평소보다 힘들고 더뎌 두 시간여를 오르다보니 잔가지에 애송이 상고대가 막 싹트기 시작하고 있지를 않는가. 바람도 온화하여 털보숭이 서릿발은 나뭇가지에서 바르르 떨고 있었다. 그 애처롭기까지 한 갓 핀 상고대는 서봉을 눈앞에 둔 능선에서부턴 토실하게 몸뚱이를 부풀려 상고대의 절정에 이르고, 능선 남쪽 아래 수 만평에 땅딸이 목화나무들은 한 창 목화 꽃을 만개시키고 있지를 않는가!
주먹만한 하얀 솜뭉치 몇 개씩을 달고 있는 목화나무 밭은 나를 타임머신을 태워 어릴 적 풋 비린 향수에 젖게 한다. 목화 꽃을 터뜨리기 전 다래를 따서 껍질을 벗겨내면 골수처럼 똬리를 튼 희고 말랑말랑한 속살덩이가 물기에 젖어 목젖을 간질거렸다. 한 입 물고 씹어봐라. 달짝지근한 당분 즙과 오돌톨한 씹는 맛이란 지금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군것질이 없던 시절 그 다래는 길가를 걷다 몰래 한두 개 따 먹어야 했으니 도둑질의 야릇한 맛까지 가미되어 어찌 쉽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 목화 꽃들도 서봉에 바짝 이르면 질펀한 설화의 세계로 변하고, 능선 북서쪽에선 아까부터 사납기 시작한 바람결에 상고대는 한창 칼날을 세우느라 비명에 가까운 신음소릴 내고 있었다. 10여 센티 이상의 눈 칼로 변한 헤일 수 없는 칼의 전당에 들어선 난 그 칼잡이들을 호위하다 덕유산의 또 다른 눈을 혼자 뒤집어 쓴 소나무 한 그루와 맞딱드리게 됐었는데, 그 소나무란 놈은 어이없게도 이고 있는 눈으로 채설장(採雪藏)을 만들려는지 칼바람을 초대하여 조각칼질을 하느라 눈가루를 휘날리고 있는 거였다. 바람과 눈은 이젠 지상에서 창조할 수 있는 오만 조형물의 설국을 만들어 놓곤 우리를 바다 속으로 안내하고 있다. 상고대는 튼실하게 살이 찌어 산호초로 둔갑하고 바위와 나무와 숲 등의 모든 것들은 하얀 눈 덩이로 모습을 바꿔 흰 바다(심해는 온 통 흴지도 모른다?)속이라! 그 흰 바다 터널 속에서 까닥하면 수초림을 건드려 차가운 흰 가루 세례받기 일수고, 다듬어지지 않은 해저길 걷느라 절름거리고, 기고, 붙잡고, 뛰고, 네 발로 더듬어야 하는 태어나 움직이며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하여 심해탐사 길을 가야 했었다. 하기야 서너 시간의 품을 팔아 우주가 창조한 신비경을 무료관람 하는데 바짓가랑이에 똥오줌을 찔금거린단들 대수냐. 진정 바다 속일 수밖에 없는 현상은 어쩌다 위를 쳐다보기라도 하면 하얀 수초림 위로 파란 하늘이 아련히 보이는 게 수면임에 틀림 없으렸다.
거기 백색의 심해에 간혹 산죽(山竹)이 진초록이파리를 살짝 내밀고 추위와 설친 잠에 부르르 떨고 있음은 사뭇 안쓰럽긴 하지만 유일한 원색이어서 이곳도 생존이 있는 터전임을 깨닫게 해 준다. 사실 그 산죽도 백색가루에 푹 파묻혀 동면중인데 우리들이 길을 내느라 일으켜 세운 불상한 녀석들 이였다. 서봉에 발을 들여놓으려는데 바람이 가로막는다. 억지로 두어 발 디밀고는 남덕유산정을 향한다. 다시 산호와 해초의 터널은 계속된다. 그들의 천자만태를 어찌 내가 글자로 형언하겠나!
백색의 해저를 더듬는 다리도 몸도 피곤하고 뱃속도 포화소리가 요란한데 오후 한 시가 훌쩍 지나도 누가 입 달래자는 소릴 않는다. 남덕유산정을 짓밟고야 목구멍에 풀칠을 하자는 속셈인가? 생각해보면 어디다 엉덩이 붙이고 요기할 자리가 없기도 하였다.
남덕유산정을 오르는 몸과 맘은 지쳐 내 스스로 나이 먹음의 스산함을 씹는다. 상고대에 미쳐 새벽부터 설친 나는 예전의 내가 아님을 실감한다. 허나 나보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분들도 묵묵히 탐험하는 걸 보면, 그 분들의 불광불급(不狂不及)한 산 사랑에 자못 경외감을 느낀다. 아니 몇 분 여자들의 산사랑 파워에 난 기죽을까 오기까지 솟는다. 온통 흰 설국의 해저에 질리기라도 한 걸까, 몸이 근력의 한계치에 닿은 땜일까, 연탄성이 사라지고 갈길 걱정이 솔솔 지핀다. 무거운 발, 남덕유산정에 올려놓았지만 칼바람은, 더구나 그 칼바람은 백두대간의 곁가지 능선의 눈까지 쓸어 담고 달려와 나를 후려치고 있는 거였다. 몸과 맘을 더 담금질하여 진짜 산 사랑하는 놈이 되서 오라는 회초리질 같았다. 하산 길. 좀은 가볍거니 생각했던 기대는 줄곧 이어지는 가파른 철판 계단에 신경과민증에 걸릴 판 이였다. 아이젠을 장착한 발길은 어찌나 불편했던지- 근데 이젠 뱃속도 조용하다. 아예 포기상태인가보다. 내 뱃속생리도 여태 잘 모르고 살아온 한심함에 고소하면서 어디 요기할 자리를 찾는데 나타나질 않는다. 할 수 없어 길가 뾰쪽 바위가 정수리를 내 놓고 있어 거기 엉덩이를 걸터앉아 배낭을 눈밭에 내려놓았다. 빵 한 쪽을 입에 넣고 배낭 옆구리 물병을 꺼내 열어 한 모금 삼키려는데 얼음 반 물 반이라. 빵을 도로 집어넣고 깨죽과 복숭아 캔을 따서 목구멍에 붓고는 엉거주춤 일어서는데 옷 속의 훈훈한 땀들이 성애가 됐던지 알몸을 냉 마사지하려 든다. 앗! 차거. 장갑도 땀에 절였던지 끼자마자 손끝이 시아려온다.
“어르신, 뭣 좀 때우고 갑시다?”하는 나의 제안에 “드시고 오세요. 난 생각 없수다.”라고 무슨 식사냐는 듯이 바람결에 흘리곤 훠이훠이 내려가던 나이 지긋한 분의 대답과 뒷모습이 불현듯 떠오른다. 참으로 이상했던 것은 나처럼 길가에 서서 뭔가를 대충 씹고 있던 한 분과, 눈밭에 질펀하게 앉아 자리를 펴던 세 사람을 빼곤 점심 먹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었다. 이상한 나라(설국)에서 이상한 탐방객들의 배곯음 이였다. 모두가 일년 중에 한두 번 볼뚱말뚱한 비경으로 눈요기함이 주린 창자까지 위무하나 싶었다. 영각사를 1km쯤 남기고 제법 널찍이 얼굴 내민 바위에 앉아 모처럼 휴식을 취했다.
바람과 눈과 나무가 삼위일체가 되어 빚은 다능설원(多崚雪原)의 장관을 되새김질 즐기는 거였다.
산행 초입, 투명실크 바람은 막 핀 솜털 상고대가지에 걸려 여린 상고대를 애무하더니 고도를 높임에 투명무명천 바람으로 상고대의 날을 세우고, 산마루에선 투명군용텐트 바람으로 돌변해 모든 것을 앗아가고 있었다. 허나 바람의 공평함은 크고 작고, 낙엽ˑ상록수, 빨간ˑ노란꽃나무 할 것 없이 흰 꽃을 피우게 하여 동속일체감을 심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위가 높고 낮은, 부자와 빈자, 남여노소를 망라한 동류일체감으로 살맛나게 하는 기발 난 어떤 이벤트는 사람들 사회엔 없을까? 새해엔 모든 걸 골고루 나눠주는 바람이 우리네에게로 불어오면 좋겠다. 자리 내어준 ‘산들내 산악회’회원님들께, 더불어 등산용 양발 한 족까지 선물함에 감사함을 어찌 표현할지 모르겠다.
“산들내 산악회 화이팅!” 08. 01.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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