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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내려놓는 우리명산 답사기

칠연폭포 사랑에 미치고 (덕유산)


★ 칠연폭포 사랑에 미치고 (덕유산) ★


동업령과 무룡산 자락을 핥은 물은 계곡을 만들고 바윌 닳으며 미친 듯 달리다, 바위벼랑에선 곤두박질하여 시퍼렇게 멍이 들고, 그 아픔에 뒤적거리며 가픈 거품을 토해내고 있다.

그 거품을 달래는 푸른 소(沼) - 옥수와 푸름이 농녹아 일군 비취빛 소가 일곱 개인데, 그들의 아우름 소리가 바람소리와 숲의 속삭임과 코러스가 되어 찾는 이를 무아지경에 빠뜨린다.

그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 Leegj님, 앞서 Speed012님이 비경을 사진으로 담아내느라 숨죽이고 있다. 셋이서 비취 소에 맘 뺏기고 천상의 코러스에 녹아들기를 20여 분, 우린 되돌아 와 갈림길에서 동업령쪽 숲길을 산책한다. 비취에 얼얼한 맘 추스르며 녹색 장원을 지키고 있는 훤칠한 소나무의 사열을 받고 있는데, 기막히게 아름다운 사랑의 포즈 앞에서 다시 발길을 멈춰야 했다.


홍송씨와 서어양은 언제부터 저렇게 정열을 불태우며 농염한 사랑행위에 몰두하고 있을까? 서로의 다리를 꼬고 몸통을 섞어버린 욕정의 화신처럼 엉겨 붙어 있는 그들의 모습이 추하지 않고 어쩜 예술처럼 보이는 것은, 예초부터 사랑의 진정성은 미의 정수인 땜일 것이다. 옆의 거송이 내게 살짝 귀띔을 해준다.

100여 년 전, 아까 칠연폭포 비취소에서 멱을 감던 서어 양을 우연히 지나가던 홍송 씨가 목격하게 되었고, 거기에 정신 홀린 홍송은 자리를 뜨지 못하다 서어에게 발견되어 둘이 그만 눈이 마주치게 되었단다. 주섬주섬 몸을 가린 서어를 따르던 홍송! 숲 속의 데이트는 채 반시간도 안돼 불꽃을 튀기게 됐단다. 그 원초적인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던지 덕유산신령은 그들의 절정의 순간을 그대로 정지시킨 채 사랑의 귀감으로 삼게 함이란다. 이 글을 읽고 칠연폭포 갈림길에서 동업령쪽 숲을 한 10여 분 눈여겨 탐방하라. 그 사랑의 예술을 목도할 수 있으리라. 그 모습을 Leegj님이 사진으로 담으려는데 갑자기 사진기가 얼어붙어 버렸다. 아마 몸과 맘을 정갈히 하고 셔터를 눌러야 하리라. 혹시 불쑥 딴 생각이 도진 게 아닐까? 그런 분위기인지 거기에 있는 소나무들은 우람하면서도 잘 생겼다.

-<덕유산 향적봉 오른는 길>-아마덕유의 넉넉한 젖줄이 빚은 우량아들이겠거니···.

칠연폭포와 홍송과 서어의 사랑과 잘 생긴 거목들에 취하다보니 동업령이 발아래 깔린다. 10시 30분이 돼가고 있었다. 엷은 구름이 파란 하늘 속으로 빨려드는데 태양은 눈이 부시다. 평생을 무거운 하늘 떠받들고 있느라 성장을 멈춰버린 졸참나무들의 초록이파리에 햇살이 내려앉는다. 이파리는 편히 앉으라고 활짝 얼굴을 펴는데 바람이 심술을 부린다.

바람의 몽니는 무슨 연고일까? 이파리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나부끼자 햇살은 미끄러져 숲 바닥에 떨어져 나뒹군다. 그 뒹구는 햇살을 서로 차지하려고 키 작은 수풀들이 손짓을 한다. 그들의 손짓 속에 옥잠화와 비비추가 단연 돋보인다. 향적봉을 오르는 산릉엔 언제부터 졸참나무가 자기네들 천지를 이루어 몸짱 콘테스트를 벌리고 있는지~! 그놈들 육체미에 눈 팔다 돌멩이가 내 발끝을 차도 모르고 있었다. 순간 나는 꺼꾸러지려다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바람도 심사가 더욱 뒤틀렸던지 휘파람소리까지 내며 달려들고 있다. 그래도 두터운 초록이파리 터널은 충분히 나를 보호해 주고 있다. 그 숲실 터널에서 시간이 죽어가도 모르고 있는 나였다. 벌써 한 시간이 죽어가 버렸다.

덕유평전이 다가왔다. 펑퍼짐한 덕유능선 한 귀퉁이를 빌려 점심을 먹기로 한다. 예의 졸참나무가 그늘 막을 만들어 주었다.

산력이 꾀 된 갈뫼인들 대게가 향적봉을 몇 번식 배알한 탓에 나를 비롯한 몇 분만이 정상을 향한다. 완만한 중봉을 오르는데 남덕유를 훑고 온 바람은 더욱 몽니쟁이가 되었나 싶다. 내 모자가 뭘 잘못했는지 벗겨내려고 앙탈을 부린다. 칠연폭포의 코러스와 합창한 바람이 그립다. 한손에 모자, 한손으론 지팡이를 움켜잡고 중봉에 올랐는데 밀쳐대는 바람의 등쌀에 곧 향적봉을 향한다. 그놈이 등을 밀어붙이니 발걸음이 가볍다. 여긴 쥐손이풀이 쫙 깔려 별천지를 이루었는데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느라 정신이 없다. 거기에 비비추가 성글게 비집고 들어서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햇살을 챙기려, 몇 번이나 접었던 긴 타원형 초록 잎을 활짝 펴들고 있 다. 바람은 홀랑 벗은 주목의 피부까지도 벗기려든다. 그래서 그의 살갗은 하얗고, 바람 덕에 깨끗한 피부로 다시 천년을 살아가게 되는가 보다. 벗은 주목이 더 아름다운지 사람들은 그와 짝꿍 돼 사진 찍기에 애면글면한다. 나체라면 나무라도 좋은가 보다. 죽어 알몸으로 천년을 아름답게 사는 주목이 보기 좋다며 왜 사람들은 자기가 아름다운 주검이 되길 외면하려 함인가?


아름다운 주검으로 천년까진 몰라도 150년쯤은 거뜬히 살수가 있다. 장기이식과 시신기증이라. 우리나라엔 하루에도 10여 명씩이나 장기이식 신청을 해온단다. 뇌사자 한 분이 아홉 분에게 새 생명을 줄 수가 있고, 주검에서도 각막으로 보지 못하는 분에게 시력을 찾아 주며, 의학도들에게 질병퇴치의 의술발전기틀을 제공하고, 법의학 전문가들에겐 산지식을 쌓게 하여 범죄예방을 도모하며, 나아가 밝고 은혜로운 세상을 만들게 되는 대도 말이다. 나의 아름다운 주검이 내 가족, 이웃들에게 새 생명을 선사하여 곱살이 삶을 하니 한 세기 반은 거뜬히 살아감이 아니겠는가!! [감히 큰소리(?)치고 있는 것은 본인도 시신기증을 서약한 탓이라. www.konos.go.kr의 문을 두드려 보시라.]

아름다운 주검의 주목과 구상나무를 눈여겨보면서 향적봉에 닿았다. 거기엔 인파와 바람과 햇볕이 난장을 벌리고 있었다. 윙윙거리는 바람도 실체를 보여주려는 듯 깃털운무가 돼 백두대간 산릉을 타며 달리고 있다.

오후 1시가 훨씬 넘었다. 오던 길을 내달린다. 이제 바람이 앞을 가로막는다. 좀 더 심술을 부리면 지팡이로 혼쭐을 내 주겠다고 하니 옆에서, 때론 뒤에서 갈피를 못 잡게 한다. 중봉을 찍고 덕유평전을 단숨에 뿌리쳤다. 그 단숨 땜에 패가망신할 줄은 생각이나 했겠는가. 아침에 하산코스가 바뀌었다고 마이크로 고지했었는데 난 혼자 덕유를 즐기느라 송계사쪽을 지나쳤다. 호젓함을 즐기다 문득 정신 들어 핸폰을 두들긴다. 불통이라. 좀 가다 핸폰, 또 좀 가다 핸폰, 그러기를 십여 번 하다보니 아침에 마주쳤던 동업령 팻말이 비웃고 있다. 되돌아오다 핸폰, 드디어 회장이 모기소리로 대답을 한다.

아까 못보고 지나친 송계삼거리에서부터 잘 못 짚은 게다. 장장 2.2km나 더 왔다. 왕복이니 4.4km에 두 시간은 족히 죽여야 함이다. 미친 짓이다. 홀로 좋아하다 미친놈이 됐다. 사타구니에서 쉰내가 나도록 걸어야 한다. 시간도 죽일 수 없고 거리도 죽일 수가 없으니 노망 든 나를 죽여야 한다. 호젓함(외톨이)을 즐기다 보면 뭔가 잘못 됐을 때 지적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단점을 절감한다. 나를 죽이는 것은 당연함이지만 두

시간여를 나 땜에 명분 없이 죽여야 할 갈뫼인들 생각을 하면 숨통을 끊어야 할 참이다.

갈림길에 되돌아 와 송계 쪽에 몸을 틀었다. 그런데 여긴 발바닥에 불꽃이 튀겨선 아니 될 산책길이라. 너무 좋다. 즐기기로 했다. 갈뫼인들도 어차피 뒤풀이한답시고 한두 시간은 뭉겔거란 생각으로 나의 미친 짓을 위무하고 합리화시킨다. 우리는, 아니 나는 급한 불을 끄기도 전에 좀 쉴 틈이 생기면 아전인수식으로 주위의 모든 것들을 끌어당겨 쓰려든다.

땅딸이 졸참나무와 나보다 훨씬 큰 철쭉이 무성한 숲실을 만들곤 쿠션 좋은 산책길 옆으론 나도 옥잠화, 산 모시, 취나물, 둥굴레 차, 산 겨릅, 비비추 등과 이름모를 수 없는 숲이 햇빛을 받아 반짝이면서 카드섹션을 하고 있다. 바람도 이젠 진정하고 나를 지켜본다. 그도 걱정이 됐나? 미끈한 철쭉 밭에 잠시 주저앉기로 했다. 물통바닥을 핥았다. 다리도 쭉 펴본다. 주인 놈 잘못 둬 발만 오지게 고생하고 있다. 미끈하고 큰 키의 철쭉이 빨간 꽃잎을 토하면 꽃불바다가 될 터인데 소화는 누가 할 텐가? 실로 장관일 거란 생각에 기시감을 느끼다 배낭을 짊어졌다. 참으로 멋진 산책길이 아닐 수 없겠다.

그 적막한 3km의 길을 즐기니 갈림길이다. 송계중개소 방향으로 내리막길을 택하는데 영 죽을 맛이라. 급경사 내리막은 형편이 없다. 한 시간을 험로에 신경 곧추세우다 보니 어디선가 물소리가 아련하다. 바위를 뚫고 간헐적으로 흐르는 물은 적요를 달래려 자장가를 부르나 싶었다. 청정수에 족욕 생각이 간절하지만 어디 한가롭게 물 장난칠 팔자인가. 험한 길 다 잡아먹으니 산비탈을 가로지르는 평탄한 내리막길 이라. 근데 저만치서 쌍지팡이를 든 산 꾼이 이 늦은 시간에 산을 올라오고 있다. 점점 가까이 오는 그는 나를 부르는 듯싶었다. 이 무슨 해괴함인가? 이 시간에 이 적막한 산속에서 나를 부를 자 귀신 말고는 없다. 이윽고 얼굴윤곽이 또렷해지자 그가 팔을 벌리고 달려든다. 난 빨려들 듯 그의 품에 포겠다.

쌍지팡이는 Leegj님 이였다. 길 잘 못 들어 뒤처진 나를 회장으로부터 서식 듣고 마중나선 그였다. 눈물이 비선을 역류하여 목젖이 싸해진다. 나라면 필시 마중 올 생각의 ‘생’자의 ‘ㅅ’도 안했으리라. 미친놈의 미친 짓에 갈뫼인들의 애탄 맘이 훤히 보이는 듯 싶었다. 그들의 뒤풀이 마당에 이른다. 회장이 벌건 얼굴을 파안하며 반가이 마중한다. 때 아닌 박수에 저마다 한 말씀을 건네고 있다.

“미친놈에게 박수를···!” 모두가 안도감속에 터진 격려박수일 테지만 그 박수 땜에 또 미치겠다. 예라, 미친 김에 더 돌아버리기라도 하겠다는 듯 맥주를 내 목구멍에 따랐다. 미친놈 뱃속이 시원타 못해 오장육보가 얼얼하니 미쳐 나자빠지겠다. 오후 5시 반을 넘겼다.

“담에 또 내 지랄 떨면 완전히 미친놈이 되겠제이~~!”라고 혼자 속말을 삼켰다.

갈뫼인들, 고맙수다.

08. 0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