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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 그 알갱이

능소화

능소화

 

 

뜨건태양도 시샘하는 황금빛트램팻

붙들어 올리느라 여윈 돌담

너머로 사무친 기도 모아

 동트면 트램팻 소화꽃은

부신 햇살 토한다

여름은 기지개를 펴고

 

 

이 길목, 저 길모퉁이 담장에

붉디붉게 피는 트램팻

태양의 찬가는

아련한 그리움되어

진한 아픔으로

파란하늘에 솜털구름이 되고

 

 

 

 

능소화이야기

 

옛날 심성 착하고 자태가 고운 앳띤 소화란 궁녀가 있었다

어쩌다 왕의 눈에 띄어 잠자릴 같이 한 소화

왕의 하룻밤 섹스는 그녀를 깊고 깊은 구중궁궐 처소에 가둔다

그 하룻밤이 운명이라고,  빈(嬪)이란 이름의 올가밀 쓰고

처소에서, 궁궐담너머로 기다리던 왕은 그림자도 없고

기다림은 안타까운 한이 되어

살아온 날들보다 많을 단장의 날들이  

가슴앓이 되어 소화는 뜨거운 열망을 땅에 묻었다

어느 여름날,

'내 육신을 대문 밖 담장밑에 묻어주오'라고

유언한 채

죽어서도 담장에 기대 왕을 기다리고팠던 소화!

왕은 눈길이나 한 번 줬을까?

 

 

 

그 담장밑에서 핀 소화

왕을 기다리다,

담장을 기어올라 멀리서나마 님을 보려고

님의 기침소리라도 들으려 꽃잎을 넓게 벌리고

그리고, 그리고 누가 꽃을 꺾을까봐

수술엔 독을 잔뜩 묻힌 채

뜨거운 여름 태양을 향하듯

왕을 향한 고결한 순정을 피운 소화꽃이

능소화란다

왕은 기억조차 가물한 하룻밤 섹스였을 뿐인데

 

 

능소화는

다섯 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듯 하지만 
실은 통꽃이라 낙화할 때도

활짝 핀 그대로 툭툭 떨어진다

기다림이 얼마나 사뭇쳤으면,

죽어도 지조를 굽히지 않던
옛 선비의 일편단심 같다고

가련한 수절의 일생을 미화한다고

소화의 넋은 위무 받을까

그 붉디붉은 한의 응혈을-

왕은 다른 궁녀를 소화처럼 안고 밤을 새는데

2016. 08. 12

 

 

 

 

 

"누가 봐주거나 말거나

커다란 입술 벌리고 피었다가, 툭!

떨어지는 어여쁜

슬픔의 입술을 본다

그것도 비 오는 이른 아침

마디마디 또 일어서는

어리디 어린 슬픔의 누이들을 본다"

 

                        - 나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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