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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 ~ 그 알갱이

알밤

알밤

 

 

오뉴월 어느 날

꽃 수술 곱게 따 늘어뜨리고

햇살 한 줌 품으려

야릇한 페로몬 흩날리던

 

그 향 가시외투로 만들고

가죽옷 껴입더니 삼베적삼으로 감춘

그대가

우주를 찢고 빨간 육신 던져

세상의 입들 즐겁게 됐구려

 

피붙이 모두 내준 후에야

한 알의 밤으로

다시 태어나는 그대

고운 일생

 

 

 

&.  

어제 함라산엘 오르다 아내가 호들갑을 떨었다.

뜬금없는 가을 앞에 경탄했던 것이다.

 

비록 씨알 작은 쥐밤이었지만,

이마를 흐르던 더위를 훔치던 아낸 풀숲에 떨어진 주황색밤송일 발견하고 경외의 탄성을 질렀던 것이다.

 

놈은 오뉴월 햇빛 한 줌을 품고 세 겹의 옷을 껴입은 채

이를 악물고 여름과 치열하게 싸운 결과인 것이다.

 

세상의 동물들 먹거리를 만들기 위해,

더는 씨알 한 톨을 남기려,

그 고생 끝에 우주를 부수고 튀어나온 것이다.

 

아름다운 일생이 눈부시다.              2015.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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