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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 그 여적

방하착! - 팜파스 그라스와 핑크뮬리 들녘에서

방하착! - 팜파스 그라스와 핑크뮬리 들녘에서

추석 끝자락에 내린 폭우가 지긋지긋한 폭염을 앗아갔다. 1주여 일간의 귀성일정을 보낸 나는 다시 부산 오피스텔생활에 들었다. 아쉬움이 많은 추석이었다. 하긴 해가 거듭될수록, 주름살이 늘수록 명절을 맞는 소회는 뭔가 가슴 한구석이 휑해지는 서운함이 남는다. 그 서운함을 떨쳐내야 한다. 늙는다는 건 애착을 하나씩 떼어내는 삶이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짓을 못한 채다. 방하착(放下着) 하기가 쉽잖다.

▲핑크뮬리▼

아내는 누구 올 사람도 없으니 추석 차례를 간단히 한다며 추석빔을 했지만 막상 추석날 아침 차례를 지내는 울`내외 - 나는 애석함을 털지 못하고 있었다. 명절은 식구들이 한자리에 모여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나를 편하게 하질 않았다. 딸애들만 셋이니까 출가한 자식이라 단정해야 함인데 말이다. 한 달 전에 호주로 이사 간 큰애는 새터 잡느라 바쁘고, 며칠 전 파리`런던 비지니스여행길에 오른 둘째도 분망할 테다. 더구나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시차 탓에 전화하기도 난처하고.

 핑크뮬리(pink muhly) 털쥐꼬리새라고도 부르는데 미국 서부나 중부의 평야지대가 원산지다. 키는 30~90cm로 곧게 서서 자라고 줄기의 마디에 털이 있다. 2013년부터 국내에 들어왔는데  30도가 넘는 아열대 식물로 번식력이 강하다.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상승하는 우리나라에서 불원간 토종식물들의 생태계를 파괴할까 고민이 많단다.  애완종으로 수입한 외래종이 우리나라 토종 생태계를 교란하는 불상사가 하나 또 늘어난 셈이다. 꽃은 9~11월에 분홍빛을 띄다 자주색으로 변한다. 꽃말은 '고백'이란다. 

어찌됐던 자식들도 성장하면 부모 곁을 떠나게 마련이고 그게 인생본분이다. 늙으면 부부만 남게 되고 그마져 어느 땐 나 홀로가 된다. 독거노인들이 어쩌다가 홀로 죽었다는 소식은 화재거리가 아니다. 어느 날 갑자기 눈 감는 죽음 복의 삶은 인생 최상의 행운이다. 문득 영화 ≪아무르(Amour) https://pepuppy.tistory.com/1229≫의 조르주와 안느 부부의 동반죽음이 생각난다. 부부가 동시에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차례 상 앞의 울`내외를 지켜보는 눈이 딱 하나 있었다. 창밖의 숲가지에 앉아 두리번거리는 까마귀였다. 길조(吉鳥) 까마귀가 좋은 소식 알려 주려나! 그마져 애착일까? 싶었다. 옛날 태백산골의 사찰 스님이 어느 날 보시(普施)하러 산길을 걷고 있는데 벼랑 아래서 ‘사람 살려’라는 외마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절벽아래서 나무에 매달려 있는 사람을 발견하곤 소리쳤다. “뭣 땜에 그러고 있소?” 나무 가지를 붙들고 있는 중년남자가 애걸한다.

▲대나무숲길▼

“저는 봉사인데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져 나무에 매달려있으니 빨리 와서 구해주세요”라고. 그 상황을 자세히 살피던 스님이 외친다. “나무를 붙잡고 있는 손을 놓으세요.” 나무에 매달린 봉사의 발과 땅 사이는 불과 사람 키만큼 될까 말까싶었다. 허나 봉사는 나무를 붙든 손을 놓지 않고 애걸만 하고, 스님은 나무 가지를 놓으라고 외치기를 몇 번인가 하는 참에 그만 힘이 빠진 봉사가 나무에서 떨어졌다.

나홀로 버스킹 하는 키타리스트
▲대저체육공원▼

땅바닥에 꼬꾸라졌던 봉사가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두리번거리다가 툴툴대면서 숲길을 헤쳐 걷는다.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생명 줄로 알고 떨어져 죽을까봐 움켜쥐고 발버둥 친 욕망에의 집착 - 눈뜬장님이 곧 나일 것이다. 그 욕망과 집착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할 내가 지금 허상을 붙들고 애석해 하는 불쌍한 존재다. 다른 사람들도 다 겪는 일을 대범하게 단념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서글퍼짐이다.

▲대저생태공원 갈대숲▼

청명한 가을빛과 서늘한 공기가 좋아 대저생태공원을 찾았다. 은빛물결을 이루는 팜파스그라스의 파도에 휩쓸리고 싶었다. 거기 낙동강 들녘의 핑크뮬리도 보라색 물감을 흩뿌려 가을정취에 푹 빠지게 할 것 같은 기대감까지 내 맘에 가을 소풍길로 부채질을 했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팜파스 그라스나 핑크뮬리도 한두 달 후면 하얀 눈발에 파묻혀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묵묵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자연에 순응한다.

삼나무가로수길

놈들은 행여 했던 누군가의 욕심에 의해 먼 이국에서 붙들려왔지만 세월이 일천해선지 본 때깔을 다 못 피운 채 씨앗만이라도 남기려고 발버둥 치나 싶었다. 튼실한 싹의 발아를 위한 낯선 땅에서의 풀꽃들의 생! 울`부부가 애들에게 기도하는 숙명처럼 말이다. 나는 사라지고 후예들은 나보다 나은 생을 영위하길 기도한다. 노년의 행복한 삶은 욕망과 집착을 얼마나 그리고 빨리 내려놓느냐? 일 것이다. 팜파스 그라스가 나의 백발이지 싶었다. 그들과 한참을 몸 섞었다.     2024. 09. 24

▲버베나▼

버베나(Verbena)는 작고 귀여운 꽃술이 모여서 핀 우산 모양의 봄꽃이다. 그래설까, 꽃말을 가족의 화합, 단란한 가족, 가정의 평화.  (보라색=‘사랑의 복귀, 후회’  붉은색=단결흰색=‘나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정의, 기대, 결백’.)

로마인들은 버베나의 레몬 향이 사랑을 불러일으키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힘이 있다고 믿어 사랑을 고백할 때 바치는 사랑의 꽃이었다. 버베나 잎을 적신 물로 목과 손을 닦고 상대의 손을 잡고 사랑을 속삭이면 그 사랑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버베나 원산지는 아메리카로 중세 시대에는 마법의 불로불사의 영약으로 쓰였다.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버베나가 피를 멈추고 상처를 회복시켜 줬다고 기독교인들은 십자가의 성스러운 풀이라고 믿었다. 예수의 신성한 힘으로 마법사, 악마 및 기타 악령을 추방할 수 있다고 말이다. 뱀파이어가 버베나를 만지면 불에 타 버린다는 소문에 뱀파이어의 천적꽃이라 여겼다. 상쾌하고 은은한 레몬 향을 간직한 버베나는 진정 효과와 피로 회복, 숙면 효과도 있고,  요리와 허브티 등 식용으로  또는  방향제로도 사용된다.

▲팜파스 그라스▼

팜파스그라스(pampas grass)의 꽃말은 당신의 사랑을 기다립니다’  ‘나의 사랑을 받아주세요란다. 우리나라 억새와 비슷한데 키가 훨씬 크고 은색의 꽃 이삭이 풍성해서 귀품있는 서양인을 연상시킨다. 남미(南美)가 원산지로 가늘고 긴 줄 모양의 잎은 날카로워 조심해야 한다. 꽃은  8~11월에 피고 암꽃이 숫꽃보다 더 풍성하다.

팜파스 그라스 앞의 필자

벼과의 여러해살이풀 팜파스그라스는 키가 2~3m, 또는 4~5m 까지 자라는데 웬만한 태풍도 견뎌낼 만큼 강하단다. 잎의 색깔은 녹색, 은회색, 노란색 줄무늬가 있다. 꽃은 흰색이 주종이나 보라색, 핑크색 등 여러가지 개량종이 있고, 꽃이삭은 겨울 내내 갈색으로 매달려 있다. 출렁대는 놈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주차장 쉼터
팜파스그라스 뒤 산록은 백양산이다. 불원간 등정할 예정이다
팜파스 그라스 너머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른다
▲대저생태공원에 자전거대여점(1~2인용)이 있다▼
콜레우스(coleus)는 향기가 진한 허브식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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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 가족이 함께 볼 영화 <아무르>

명절에 가족이 함께 볼 영화 아무르(Amour)는 프랑스어로 ‘사랑’인데, 영화는 우아한 80대 노부부의 사랑을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듯 펼쳐집니다. “오늘밤에 당신 참 예쁘다고 말 했던가?” 조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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