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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홍주2박3일의 식도락

홍주2박3일의 식도락

▲여하정과 느티나무▼

오전10시40분발 익산행 장항선새마을호에 의자 하나를 거꾸로 회전시켜 울`식구들 네 명이 마주보고 앉았다. 홍콩여행3박4일 여행 뒷맛이 채 가시기도 전인데, 이번에 동행하지 못했던 막내를 위무한다는 핑계로 나선 외출인 셈이다. 1년 전에 울`네식구가 홍성읍내 맛집의 맛깔스런 음식에 반해 다시 오자고 했던 식도락여행을 막내한테 선심 베푼다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나들이인 거였다. 암튼 홍콩에서의 식도락 연장을 홍성에서 막내도 합석해 즐긴다는 순정파(?)들의 여행이라.

1여년을 복기하듯 우린 솔레어호텔에 여장을 풀고 삽다리곱창집을 향했다. 홍주읍성과 용봉산행 갈림길 사거리에 ‘삽다리곱창집’은 1992년에 문을 열었으니 한 세기를 거뜬히 넘긴 곱창전문집이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두께에 내려앉은 듯한 삽다리곱창집은 맛과 푸짐한 인심으로 꽤째째한(?)식당분위기를 일신시킨다. 잡냄새 없는 푸짐한 돼지곱창을 음미하다보면 쇠곱창 맛은 까맣게 잊는다. 냉이 듬뿍 넣은 곱창전골과 비빕밥의 별미 또한 한 세기를 버텨낸 비장의 맛일 것이다.

▲울`식구들이 2박3일 묵은 호텔 솔레어▼
김좌진 동상

홍주천 뚝방길은 홍주성지순례길이기도하다. 1791년 신해박해의 여파로 원시장 베드로가 체포되어 1792년 추운겨울 얼음장이 된 몸을 온전히 주님께 봉헌한 그는 충청도의 첫 순교터를 향한다. 배드로의 순교에 이어 이곳의 천주교인들 212명이 목숨 바쳐 순교한 홍주는 전국 두 번째로 순교자가 많이 탄생한 곳이다. 6곳의 순교터 - 목사의 동헌, 교수형터(감옥), 홍주진영, 저잣거리, 참수터, 생매장터 등을 순례하는 성지에서 심문과 고문, 죽음의 형장까지 순교자들의 신앙의 길을 추념하는 순례길이다.

▲홍주의사 묘역▼

 천주교 사대박해 중 하나였던 홍주성순교는 새내기 신자들까지 감옥과 형장으로 끌려가 생매장당하기도 했던 형극의 길이었다. 그런 질곡의 역사를 추념케 하는 팻말이 짬짬이 서 있는데 지금 홍주천 뚝방길을 걷는 나부터 졸졸 흐르는 물소리와 따스한 햇볕 속에서 상춘(賞春)을 즐기는 낭만족이 됐다. 우리는 봄기운을 한껏 품은 채 홍화문을 향하면서 무신자로써의 가벼움을 입담하는 거였다. 홍성(洪城)은 대한민국 최대의 축산단지로 ‘홍성한우’는 한우브랜드의 통합명칭이 됐다.

▲함박, 돈까스 전문집. 울`식구들이 와인 두 병 반입을 허락 받아 세시간쯤 즐길만큼 여사장은 배려해 줬다▼

홍성읍내 한우전문식당이 좀 많을 테지만 울`식구들이 찾은 맛집 한우전문집의 소고기맛과 신선도, 정량 등이 내가 여태껏 먹은 국내 어느 음식점보다 좋았다. 그 식도락을 잊을 수가 없어 울`식구들은 2시간여 열차여정을 마다하지 않음이라. 게다가 전형적인 시골읍내의 단아하고 평온한 분위기와 온후하고 넉넉한 인심이 팍팍한 서울정취와는 다른 매력을 물씬 풍기고 있어서였다. 울`식구들은 점심자리 식도락에 취해 얘기꽃을 피우다보면 오후3시를 넘기기 일쑤다. 미안해서 일어서자 식당여사장이 ‘괜찮다’고 오히려 더 배려 해줬다.

▲ 전통시장 후미진 곳에서 70여년을 소머리국밥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유명집이다.  잡내가 없고 푸짐하며 저렴하다▼

우린 와인과 안주를 추가시켜 주인장께 와인 한 잔을 대접 축배를 하여 분위기일신을 도모한다. 애들과 아내, 특히 애주가인 율은 초면의 인사와 술 한 잔 나눠 마시며 공감대를 이뤄가는 인정미의 진가를 즐기기를 주도하곤 한다. 율의 그런 점은 비즈니스세계에서 터득한 사교일 것이다. 그 자리에서의 비용에 대해서도 아끼질 않는다. 결코 무리해선 안 되지만 버는 만큼은 써야 순환경제를 이뤄 활성화 된 경제의 이윤은 더 큰 과실로 다시 돌아온다는 경제학을 지론으로 삼는 율이다.

홍주읍성(洪州邑城)은 1451년(조선 문종 때)에 축성한 길이 약1,772m의 성벽 중 약800m의 성벽과 동문인 조양문(朝陽門), 동헌인 안회당(安懷堂), 여하정이 남아있단다. 서쪽에 경의문(景義門), 북쪽에 망화문(望華門)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소실되었다. ‘홍주아문’이란 글씨는 흥선대원군이 직접 썼으나 현재 남아있지 않단다. 1905년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 등이 이 성에 주둔하던 일본군을 공격하여 덕산으로 격퇴시킨 무용담도 있다. 조양문(朝陽門)에 대한 일화도 유명하다.

▲베이커리 카페 더 호봉▼

흥선 대원군이 홍주에 왔을 때 조양문을 보며 '이 아름다운 성문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홍주관리가 '이름이 없다'고 하였다. 이에 흥선 대원군이 홍주성의 동문(東門)이니 '아침햇볕'이란 뜻의 '조양(朝陽)'이라 이름 하여 현판을 달아주었다. 그 조양문을 지나 성벽외곽을 소요하면 홍주성루 위 홍화문(洪化門) 바깥 언덕 아래에 베이커리카페 호봉(THE HOBONG)이 있다. 넓은 벽돌집에 철근구조물 인테리어는 기하학적인 단순절제미로 기이함과 안정을 공감케 한다. 더욱이 이 집에서 직접 구운 베이커리는 맛과 영양이 일품이라 외진 곳이지만 늘 손님들이 성황을 이룬다.

호봉의 전면 유리창은 홍주산성을 한 조각씩 모자이크 시킨 착가을 하게 한다

 홍주성곽 서문엔 손곡시비(蓀谷詩碑)가 있는데 조선중기의 시인 손곡(蓀谷)이달(李達:1539~1612)의 시로 그의 해학적인 시 한 수를 옮겨본다.

撲棗謠(박조요)      

"대추 따러 왔다는데 꼬마를 쫓는구려  隣家小兒來撲棗

꼬마 외려 늙은이 소리치며 향하기를  老翁出門驅小兒

내년에 대추 익을 때 노인은  小兒還向老翁道

얼마 살지 못하리.  不及明年棗熟時"             

호봉의 베이커리는 직접 구운 영양만점 빵으로 사랑 받는다

'대추서리를 하려 월담한 꼬마가 주인노인장이 보고 쫓아오자 뺑소니친다. 약이 오른 꼬마가 달아나면서 명년 대추 익을 땐 살아있지도 못할 거면서---라고 씨부렁대며 소리치는 거였다'라고.

내 어릴 때의 삽화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시다. 그땐 먹을 것이 귀해 아직 덜 익은 대추, 밤송이, 감 등을 좀도둑질 하는 게 장난삼듯 재밌었고, 어른들도 그런 잘못을 꾸지람만 할 뿐 문제삼질 안했었다. 돌이켜보면 가난했던 그때가 인심과 배려심이 후한 인간미 뭉클한 시절이었다.

홍주산성 안내판

홍주성 성내에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어 동헌 뒤뜰로 흐르며 연못을 만들었다. 그 연못에 1896년 홍주목사 이승우가 여하정(余何亭)이란 정자를 세웠는데 200여 살 먹은 왕버들나무와 기막히게 어울려 동양화 한 폭을 감상케 한다. 여하정에서 홍주목사가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고, 가족들과의 휴식처였는데 지금은 관광객들의 힐링처로 사랑을 받는다. 맞은편 언덕에 ‘홍성사랑 희망장터’가 열리고 있었다. 토요일에 홍성 영농인들이 수확한 농산물들을 직판하는 임시장터인데 손질하지 않은 작물을 저렴하게 팔고 있었다.

조양문

금년엔 금사과가 된 사과를, 비품이긴 하지만 주먹 두 개만한 부사사과 6개들이 봉지를 시중의 절반 값(1만원)에 팔고 있었다. 할머니는 얼마 안 남았으니 떨이로 두 개를 덤으로 얹어 주었다. 2만원어치를 사는데 현찰이 없어 계좌이체를 하겠다니 ‘그런 건 모른다면서 우체국에 가서 확인하면 된다.’고 하시며 비닐봉지에 담아 주신다. 지켜보던 내가 나머지가 한 봉지쯤 되면 마저 싸달라고 했더니 상자 속의 사과를 꺼내 봉지에 넣으면서 불량품이다 싶은 건 빼내서 내가 ‘괜찮지 않아요?’라고 묻자 칼로 절반을 가르며 썩은 부위를 보여주셨다.

▲홍주감옥과 죄수들의 미니어처, 대게 카토릭신자였다▼

그렇게 3봉지를 만들었는데 아마 15kg쯤 되지 싶었다. 할머니가 쪽지에 쓰인 계좌번호를 보여주셔 이체를 하면서 ‘3만원 넣었어요.’라고 하자 ‘고맙소’라며 환하게 미소 짓는다. 세상살이는 ‘신뢰’다. 신뢰가 무너지면 사회가, 국가가 무너진다. 할머니 일생은 믿음의 삶이었을 테다. 티끌만큼도 의심하는 기미를 못 느꼈다. 문득 옛날 어머님이 떠올랐다. 금방 뱉은 말이 문제를 야기 시키면 오리발 내밀고 엉뚱한 사람한테 책임전가를 시키는 대통령도 있다. 그러고는 잘못의 파장을 ‘가짜뉴스’라고 역공한다. 어쩌다 사회가 이 지경이 됐나? 싶어 슬프다.

울`식구들이 홍성읍을 두 번째 찾는 소이는 소박하고 아담한 분위기에 후한 인심과, 정갈하고 맛깔난 음식에 취해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가 있어서다. ‘70년 소머리국밥’ ‘백년 돼지곱창집’ 등등 연륜을 자랑삼는 먹방들이 녹녹한 세월을 살아온 저력을 음미케 하는 신뢰의 탑을 감지하는 땜이라. 우린 횡재한 금사과봉지를 나눠들고 호텔로 직행했다. 무겁지만 금사과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식탐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아니 호텔에서 할머니가 준 메모지의 전화를 넣었더니 남자가 받았다. 아드님이란다. 계좌이챌 확인하고 사과 한 상자를주문하겠다니 비품사과가 더 이상 없단다.

사찰부재 ; 조선초 억불숭유정책으로 사찰의 토지와 노비가 몰수 되면서 사찰건물과 탑 등을 헐어 관아와 유교시설에 쓰였다. 성주성부근의 사찰부재들은 성주성 쌓는데 쓰였던 증거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셋쨋 날 점심을 먹었던 소복갈비집은 갈비구이집 치곤 반찬가지수가 좀 많은데 정갈한 차림상으로 감탄케 한다. 숯불구이 갈비살 맛의 일품도 특별하고, 갈비탕의 시원하고 담백한 맛깔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만 했다. 식당홀 없는 독립된 방에서 식사를 하는 오붓한 분위기까지 흡족시켜서 정오 전에 이미 만원사례가 됐었다.  소복갈비집의 갈비구이와 탕은 우선 시감각(視感覺)을 일신시키고 맛깔 또한 최상이었다. 담에 다시 꼭 오고픈 식당이었다. 하여 율인 갈비와 탕 4인분을 테이크`아웃했다. 2024. 03. 10

보수중인 홍화문
홍주성 공원
병오항일의병기념비 ; 1906년 항일의병 때 홍주성탈환으로 의병과 관군, 일본군이 죽었다. 1907년 김윤식은 죽은 일본군을 위한 시를 짓고, 이완용이 애도비를 세웠다. 해방 후 애도비를 철거하여 땅에 묻고 그 자리에 병오항일의병기념비를 세워 의병들을 추모하며 공원으로 조성됐다. 1978년 홍성지진으로 파손 돼 보수 중이다. <병오항일의병기념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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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성공원은 주민들에게 역사의 장이면서 산책하기 좋은 멋진 힐링공원이다▼

중국음식점 ; 동해루의 음식의 맛깔과 정갈함, 서비스의 질도 틀별했다. 우린 동해루에서도 세 시간여 뭉그적대며 오후를 즐겼다▼
산수유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직전이고 민들레는 만개한체 조춘을 영접한다
▲소복갈비집의 숯불구이는 장소가 별도여서 식당내 고기굽는 냄새가 없다▼
▲눈호강 먼저 하는 정갈하고 맛깔스런 반찬, 불고기집으로썬 사치스럽다 할만큼 성찬이었다▼
깔끔하고 담백한 갈비탕, 게다가 갈비마져 풍성했다. 오죽해야 우린 추가주문하여 테이크 아웃 했을까!
소면도 일품이었다
1인분 250g 갈비가 43,000이면 짱짱한가? 허나 돈이 아깝질 않았다.
여하정과 2백살 먹은 느티나무
홍주목사 이승우는 멋진 낭만족이었을까! 정자를 지어 관리들과 공사를 논하고, 가족들과 풍류를 즐겼단다
▲삽다리곱창집, 낮은 천정이 곧 내려앉을까 싶은 고가에서 홍성한우 내장요리로 100년전통을 자랑한다. 잡내가 없고 푸성귀도 넉넉한데 고기도 푸짐하면서 1인분에 12,000원이다, 읍내 변두리에서 꽤째재한 식당은 늘 성황일 만큼 소문난 집이다▼
볶음밥의 진미라니!&nbsp; 국밥 한 그릇 먹고 볶음밥이면 충분한데 우린 먼져 곱창구이를 시킨 걸 후회했다
홍성출신의 독립운동가인 한용운선생과 김좌진장군의 흉상, 홍주성곽에서 조우한다

# 홍주성 & 맛집 소요(逍遙) (tistory.com)에서  2년 전의 여행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