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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홍주성 & 맛집 소요(逍遙)

홍주성 & 맛집 소요(逍遙)

울`집 네 가족이 율의 뜬금없는 제안으로 홍주성소요와 맛 집 나들이를 나간 건 순전한 객기였다. 난 애들을 따라나서면서도 ‘거길 뭣 땜에 가느냐?’고 떨떠름해 하자 ‘그냥 떠나서 맛있게 끼니 때우고 오는 외출이 신 안나?’라고 아내가 쏘아붙였다. 요는 홍성소고기 맛깔이 유명하다는 애들의 식도락너스레에 끼니 걱정 안 해 좋은 아내의 추임새는 그럴싸했다. 그래 우린 용산역에서 망각했던 기억 저편의 새마을 열차를 소환해 몸뚱일 실었다.

홍성역

새마을열차는 옛날(?) 최상급의 특급열차였는데 K`G`STX에 자릴 빼앗기고 장항선에서 겨우 명맥을 잇고 있었다. 내 학창시절엔 서울행 새마을열차를 타는 게 로망이기도 했다. 두 시간쯤 후인 오전 11시경에 홍성역에 내렸다. 처음 발 내딛는 홍성은 분지에 아담하게 들어선 소도시였다. 예약한 솔레어호텔에 체크인하고 백팩을 맡기려던 우린 ‘금일 만원, 오후3시 이후에 체크인 합니다’란 팻말을 안내데스크에 올려놓고 자릴 비운 채 전화도 안 받는 호텔로비를 빠져나왔다.

▲홍주성지순례길▼

율과 앨이 점심자리로 ‘삽다리 곱창’집을 찾아 선도한다. 곱창과 곱창전골로 유명세를 탄다는 식당은 ‘성주성지순례길’을 반시간쯤 소요하면 된단다. 율과 앨은 울`식구가 2박3일 동안 식도락과 눈요기 할 장소를 촘촘히 짜놓고 있었다. 가뭄 속에 물길이 흐르는 하천의 뚝방길을 식구들과 걸으며 희희낙락대는 정취도 각별했다. 파란하늘을 여행하는 구름, 탁 트인 공간, 몇 잎 남은 단풍을 때어내 보내는 나목의 강심장, 풀섶에 둘러싸인 둠벙을 잇는 실개천의 물길, 둠벙속 낙엽 밑에서 숨바꼭질하는 송사리 떼가 동심을 일깨운다.

▲홍주성지순례길은 홍주천 뚝방길이기도 하다▼

이 낭만적인 뚝방길은 병인박해 때 천주교인들이 생매장당한 곳을 향하는 순례길이기도 하다. 천주교 사대박해 중 하나였던 홍주성순교는 그 질곡의 역사를 순례길가에 팻말을 세워 기리게 했다. ‘삽다리곱창집’은 용봉산행 갈림길에서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납작 엎드려 있는데 실내는 제법 넓다. 이 꽤째째한(?)식당이 제법 시끌벅적댄다. 잡냄새 없는 돼지곱창이 양도 푸짐하다. 뉘가 쇠곱창을 고집할 텐가? 뿐이랴! 곱창전골은 배가 부른데도 맛깔이 죽여줘 수저를 놓을수가 없다.

삽다리 돼지곱창
돼지곱창전골과 전골비빕밥. 유명세를 탈 만했다

우린 후회했다. 곱창을 아예 주문하지 말던지 아님 2인분만 할껄! 하고. 울`식구들은 곱창하면 쇠곱창이란 고정관념이 남세스러웠다. 곱창으로 포식한 우린 찻집쉼터를 찾아 홍주성을 향했다. 이십여 분 구시가지를 산책하다 홍화문(洪化門) 바깥의 카페 호봉(THE HOBONG)에 들어섰는데 실내가 참 기이하게 멋있다. 시골 소도시에 이만큼 머리 짜낼 생각 없었다면 곧장 망하기 마련일 테다. 유리액자에 박힌 홍주성곽 수십 장을 모자이크한(?) 듯한 투시창의 홍주성은 상상의 날갯짓을 편다.

홍주성곽
홍화문
카페 호봉 심벌일까? 입구에 외계인처럼 버티고 있다
카페호봉

베란다와 옥상테이블에 앉으면 모자이크 홍주성은 실체로 압박해온다. 커피 한 잔을 놓고 힐링에 들기 딱이다. 오후5시쯤 우린 아까 온 성지순례길을 되짚어 솔레어호텔에 체크인 했다. 별 볼 것 없는 욕실이 넓어서 특실일까? 싶은 호텔은 신장개업이라 깔끔했다. 백팩을 내려놓자마자 우린 호텔을 나섰다. 한우생고기로 유명한 ‘내당(內堂)’에서 저녁식사를 한단다. 구시가지를 향해 반시간쯤 소요한 내당은 율이 홍성행을 고집한 문제의 식당이었다.

카페 호봉창에 모자이크 그림이 된 홍주성
호봉에서 직접 구운 빵에 곁들어 음미하는 커피 한 잔은 달콤 쌉쌀했다
카페호봉의 베이커리
가뭄에도 물길을 잇는 홍성천
호텔 솔레어 입구
조양문
한우 전문점 내당

7시 예약한 내당은 울`식구가 들어섰을 땐 벌써 만석이었다. 주말이라지만 예약 없이 들어설 수 없는 식당이 시골에도 있다니? 율 말마따나 질과 맛이 유명세를 탄 탓이려니! 안창, 새우살, 치마살을 2인분씩 주문했다. 문외한인 우리 눈으로도 질감이 좋을 듯했는데 셰프가 구워주니 맛도 좋을 수밖에~! 암튼 ‘여태 먹어 본 쇠고기 중에 최고다’라고 이구동성한 울`식구들이었다.

치마살
생간과 천엽 등은 서비스였다
안등심과 내당복도, 홍성시내의 음식점엔 100년이상 독특한 맛깔로 가계를 이어온 전통음식점이 많다. 그래 충남도에서 인증한 상표가 인상적이다.

소주에 설치살과 안등심을 1인분씩 추가한 만찬은 쾌재였다. 150g정량이지 싶었고 서비스로 생간과 사스미를 입가심해 줬다. 비싼 편이지만 돈 생기면 한 번쯤 식도락을 할 만한 ‘내당’이었다. 밤9시를 지나 내당을 나와 홍주성야경 소요에 들었다. 고성 언덕빼기에 소나무와 나목속의 성루(城樓)는 빛의 스펙트럼에 아름답기 그지없다. 고요속에 빛의 성곽을 소요하는 가족들만의 낭만은 여행이 선물하는 행복이려니.

후식으로 서비스한 생고기와 비빕밥
▲홍주성의 야경▼

일제(日帝)는 홍주성을 모두 헐어버리는 만행을 하자 민초들이 결사반대하여 남아있던 성곽이 그나마 1978년 홍성지진으로 무너져 복원하여 홍화문으로 개명하였고 지금도 복원 중이다. 하여 성벽을 쌓은 돌은 형태가 다른 게 많다.

소녀상과 성삼문
홍주성 소나무군락의 야경
홍화문
홍주성은 현재 810m쯤 남아있고, 성내에 있던 36동의 관아건물 중 조양문, 홍주아문, 안회당(동헌 東軒), 여하정 등4 동의 건물만이 현존하고 있다 .
홍주성내의 지하수로와 이달의 시비와 한용운과 김좌진 안내판
성벽 돌에 대흥이란 글자는 예산군 대흥면을 말한다. 성벽쌓기공사는 활당책임제로 이루어졌는데 대흥면 사람이 다음에 표시된 돌까지 쌓았다는 표식이다.
홍주성 안내도
청산리대첩의 영웅 백야 김좌진장군(좌)은 독립운동가이며 노비해방에 앞장서고 집을 팔아 호명학교를 설립한 교육자였다. 호명은 호서지방을 밝게 한다는 뜻으로 충청지방을 의미한다
밤빛 속의 피마자가 싱그럽다. 내 초등학교시절의 기억 한 편을 차환해 줘 반가웠다

밤 11시에 호텔에 입실했다. 홍성의 첫날밤이 이렇게 뿌듯할 거란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었다. 둘째 날은 홍성오일장날이었다. 9시에 호텔을 나서 입소문 났다는 재래시장속의 소머리해장국밥집을 찾았다. 세월의 때 덕지덕지 낀 무너질 것 같은 해장국집은 장꾼들로 문전성시였다. 맛도 맛이지만 질그릇을 가득 채운 소머리고기가 시장손님을 줄서기 하나 싶었다. 포식한 후 우린 시골전통시장을 어슬렁댔다.

▲잠시 여독을 푼 커피숍▼
오일장의 호떡집은 대기손님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호떡이 그렇게나 맛 있능가? 한 개에 2,000원이라.

호떡 하나씩 사 먹은 게 시장보기 전부였지만 눈요기만큼은 풍요였다. 딴따라 노천무대의 고성방가와 뻥튀기 노천가게는 세월을 초월하는 우리들의 애환이다. 초등시절 엄마 따라 읍장에 갔던 까마득한 추억 한 토막을 소환해봤다. 김장철이라 싱싱한 배추와 푸성귀와 젓갈이 풍성했는데 배추 한 망(3포기)에 5천원은 아내의 발길을 잡아 고민케 했다. 아무리 싸고 품질 좋다지만 운반할 방법이 없잖은가? 재래오일장은 눈요기만으로도 포만감에 이르게 한다.

오일장 가설무대의 부보상 패거리들의 공연이 무르익고 있었다,
▲전통 재래 홍성오일장, 값도 싸고 품목도 다양해 볼거리 풍부한 축제마당으로 떠들석 했다▼
홍화문 망루에서 조망한 성벽 안팍

오일장을 빠져나온 우린 반시간쯤 시내를 어슬렁대며 다시 홍주성을 향했다. 어제밤풍경의 홍화문과 성벽과 여하정 소요에 한나절을 취하고 싶었다. 엊밤 아름다움을 한껏 뽐냈던 홍화문을 찾았다. 홍주성의 남문이다. 성곽 서문엔 손곡시비(蓀谷詩碑)가 있다. 조선중기의 시인 손곡(蓀谷)이달(李達:1539~1612)의 시로 그의 해학적인 시 한 수를 옮겨본다.

▲늦가을 햇살 눈부신 만추의 성곽 정자와 평상과 의자에 래방객이 없어 쓸쓸해 보였다▼

撲棗謠(박조요)

대추 따러 왔다는데 꼬마를 쫓는구려  隣家小兒來撲棗

꼬마 외려 늙은이 소리치며 향하기를  老翁出門驅小兒

내년에 대추 익을 때 노인은  小兒還向老翁道

얼마 살지 못하리.  不及明年棗熟時              -<손곡 이달>의 시-

▲여하정과 200여살의 왕버들▼

'대추서리를 하려 월경한 꼬마에게 주인노인장이 쫓아오자 달아난다. 꼬마가 달아나면서 명년 대추 익을 땐 살아있지도 못할 거면서--- 오히려 큰소리로 배알꼬인 망말을 뱉었다'라고 내 어릴 때의 삽화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하는 시다.   

영특한 이달은 서얼출신으로 벼슬길이 막히자 방랑길에 들어 자연의 아름다움과 술을 사랑하는 마음의 행로를 시문(詩文)으로 달래며 여생을 제자교육에 보냈다. 말년에는 허균(許筠)과 허난설헌(許蘭雪軒) 남매를 가르쳤다.

홍주성 성내에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어 동헌 뒤뜰로 흐르며 연못을 만들었다. 그 연못에 1896년 홍주목사 이승우가 정자를 세워 여하정(余何亭)이라 했다. 홍주목사가 신하들과 나랏일을 논하고, 가족들과의 휴식처였는데 언제부턴가 원앙가족이 보급자릴 틀어 더더욱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 곳이 됐다. 여하정은 옆에 200여 살의 왕버들나무를 키우고 있어 한껏 운치를 더한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울`식구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여하정의 6각 기둥의 주련시(柱聯) - 작자 미상

"余方宥公事(여방유공사) / 내 바야흐로 목사로서 공사를 보게 되어

作小樓二間(작소루이간) / 조그마한 누 두칸을 지었도다.

懷伊水中央(회이수중앙) / 연못의 물은 중앙으로 맴돌고

樹環焉泉縣(수환언천현) / 등나무가지는 샘가에 달렸도다.

開方塘半畝(개방당반무) / 반이랑 정도 물문을 열으니

九日湖之湄(구일호지미) / 호수의 물살에 햇빛이 아름답구나.

一人斗以南(일인두이남) / 남쪽은 한 사람의 도량으로 가하건만 

捨北官何求(사북관하구) / 싫다하면 관직을 어찌 구하랴하나

環除也皆山(환제야개산) / 환제는 다 산인데 

於北豈無隹(어북기무추) / 그 북쪽엔들 어찌 새가 없을소냐?

賓主東南美(빈주동남미) / 손님과 주인이 동남에서 만나 좋아하니 

其必宥所樂(기필유소락) / 반드시 즐거움이 있을 것이다."

중식당 '동해루'도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데 맛깔 좋은 음식을 상상외로 실비제공한다

홍주성벽엔 이곳 홍성출신의 최영장군, 성삼문, 한용운, 김좌진 등의 흉상과 시비가 즐비하여 눈길을 빼앗는다. 농익어 기우린 만추의 햇살을 즐기며 고성탐방이란 소요의 희열은 울`식구들의 불망의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중식당 '동해루'에서 팔보채에 곁들인 고량주로 늦은 점심을 때우고 시내쇼핑을 하다 땅거미 내리자 산동네 아파트촌의 일식집 꼬치사께를 찾아들었다. 생맥 한 잔으로 해갈하잔다. 술은 소통의 윤활유다. 게다가 울`식구들은 애주가이기도 하다.

 이틀째 날밤이 그렇게 익었다. 셋째 날 아침 체크아웃을 미리 하고 백팩을 카운터에 맡겼다.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우자고 ‘홍성제빵’을 찾아 아침산책에 나섰다. 관공서 앞이라 그쪽 직원들을 타깃삼았지 싶은 2층빵집은 규모가 엄청 크고 깔끔했지만 맛은 좀 그랬다.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며 느닷없던 2박3일의 여정이 의외로 쏠쏠했단 자평 속에 우린 격월제로 지방소도시 여행에 들자고 입을 모았다.

가족나들이는 많을수록 행복의 바로미터라며 담 행선지를 논했다. 빵집을 나서 순례길을 소요한 후 피날레로 다시 곱창전골로 점심을 하고 귀가하는 일정에 들었다. 식구들과의 시골여행! 무턱대고 따라나선 여행이 더 솔깃한 흥분을 선물한다. 그래 다음여행을 은근히 기대해 본다. 젊은 애들의 여행스케줄은 상상이외로 꼼꼼하고 알차다는 걸 절감했다. 인터넷세상은 참으로 요지경속으로 젊음의 특권이지 싶었고~!                            2022. 11. 27

홍주성 부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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