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울호수공원-능골산
지기(知己) C가 오늘 M이랑 호수공원에서 어슬렁대다 점심이나 먹자고 호출을 했다. 백수건달신세에 얼씨구나 아파트를 나섰다. 방화역에서 만난 C와 한참을 기다려서 버스를 타고 M이 살고 있는 신월동을 향했다. M은 진즉 버스정류장에 나와 있었다. M이 심심하면 산책한다는 서서울호수공원은 옛날 수해 때 한강으로 물 퍼내는 홍수조절용 김포정수장이었단다. 정수장을 딴 곳에 옮기고 시민공원으로 업그레이드하여 멋진 호수공원을 시민들께 선사한 셈이다.
뚝방길 호수가에서 갈대무리들이 하얀 머리칼을 미풍에 나붓댄다. 갈대머리 사각대는 호수면 위엔 건너편의 풍경들이 죄다 물구나무서서 호수의 깊이를 재나싶고, 호수 속으로 떨어진 하늘은 흰 구름을 붙잡고 방향 탐색에 나섰다. 정녕 구름은 하늘을 구해줄까? 호수가 품고 있는 호수 밖 풍경은 데칼코마니의 신비경까지 발산해 수중유토피아를 만들었다. 그 아름다움에 취하는 것만으로도 벌써 행복했다.
자연은 사람들이 애정의 손길을 보태면 상상 이상의 아름다움으로 거듭나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한갓 구정물이나 모아뒀다 퍼내던 정수장이 이렇게 멋진 호수로 태어나, 사람들을 즐겁게 품고 위안하면서 찌든 일상의 상처를 치유케 하는 유토피아가 됐다는 사실에 감탄한다. 신월동사람들은 복 받은 게다. 김포공항을 이착륙하는 비행기소음에 속앓이 한 조그만 보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를 염원하는 바램으로 분수는 비행기소리만 나면 분수 춤을 추며 비행소릴 삭히느라 울고 있고?! 풀밭엔 '100인의 식탁'과 벤치가 느티나무와 이팝나무, 미루나무의 그늘파라솔을 펼치고 있어 넓은 쉼터로 시민들을 부른다. 풀밭이나 데크광장에 앉아 물고기와 수생식물의 숨바꼭질, 호수가 주위풍경을 끌어와 연출하는 시시각각의 데칼코마니에 취하는 열락은 보너스로 챙기는 힐링의 시간일 테다.
옛날의 기억! 정수장의 코크리트기둥과 묵직한 철근구조물이 덕지덕지 붙은 세월의 나이테를 자랑하는 듯한 역사의 뒤 안엔, 담쟁이와 등나무덩굴이 치렁치렁 옭아 메며 공존의 의의를 일깨워 주나 싶었다. 우린 옥상정원을 한량걸음 질하다가 몬드리안 정원에 올라 서서울호수공원의 하늘을 품었다. 호수에 떨어져있던 하늘이 구름 등을 타고 나무늘보마냥 유영한다. 구름은 어딜 향하능가?
공원은 잡목 무성한 언덕빼기를 향하는 산책길을 내준다. 능골산자락으로 연결된단다. C가 능골산을 넘어가서 점심을 때우잔다. 향토유적숲길에 들어서 경숙옹주묘역을 훑고 마을로 들어섰다. 심심하면 호수정원을 한바퀴 돌고 능골산자락을 기웃댈 M이 보금자리위치는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린 뭘 먹을까? 고민(?) 끝에 산자락의 오리구이 전문집을 찾아들었다. 손님 한 분도 없는 썰렁한 식당이라 우린 얼른 눈치껏 빠져나왔어야 했다. 기름종이위에 짜낸 오리기름으로 튀기듯 한 오리로스는 더럽게 맛없었다.
오리기름은 불포화지방산이라 건강에 좋다면서 여주인이 튀겨 준 로스는 느끼하여 시장기로 반주하며 가까스로 목구멍에 처넣었다. 고기양도 1마리치곤 형편 없지 싶은데 비싸기는 우라지게 비쌋다(74,000원). C가 식대를 지불했지만 유쾌하진 않았을 테다. 애초에 ‘오리로스로 하자’라고 제안했던 내가 민망했으나 내색도 안했다. 우리같은 눈귀먹은 노인들이나 찾아올까말까 싶은 식당이었다. 오리기름범벅에 튀긴 로스만 아니었으면 참으로 즐거운 하루였는데~! 깨복쟁이 C와 M이 고마웠다. 2022.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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