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설경
영하10°C를 훨씬 넘은 강추위의 서울하늘엔 눈발이 오락가락하더니 정오를 지나자 어두컴컴한 대기는 무섭게 눈보라를 치기 시작했다. 오금이 저렸다. 설화 속으로 뛰쳐나갈까 말까하고 창밖을 응시하며 안절부절 했다. 함박눈도 아닌 광란의 눈발에 맘은 고궁(古宮)에, 몸은 거실에서 부유하고 있는 꼬락서니에 아내가 빈정댔다.
“남들은 눈이 오면 집으로 들어오는데 당신은 눈밭으로 내달리려 안달이니 개 넋이 씐가 보다"라고.
심드렁해진 나는 눈보라의 광란이 좀 수그러들자 장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하얗게 눈 덮인 길은 인적과 자동차에 다져지고 염화칼슘에 녹아 빙판이 됐다. 눈발 휘날리는 눈길 위의 사람과 자동차는 슬로모션 영화 한 장면을 연출하는 기이한 풍정이 됐다. 지하로 숨어들어 전철로 경복궁역에서 고궁박물관 밖으로 빠져나왔다. 소복단장한 경복궁은 벌써 수많은 설경 영접(迎接)꾼들로 어수선하다.
나 같이 모두들 개 넋을 껴안은 사람들인가! 사계 중 겨울설경이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나는 할 수만 있다면 미친개처럼 온 천지를 쏘다니고 싶다. 겨울설경이 극히 아름답다고 여기는 까닭은 순간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애틋함 땜이기도 하다. 순백의 극적인 아름다움은 햇빛과 바람의 간섭에 속절없이 변형돼 그 순간을 영원히 사라져서다. 봄, 여름, 가을의 풍경은 몇 시간 아니 며칠간도 그 풍경을 엇비슷하게나마 유지시켜준다.
하지만 겨울의 설경은 오로지 그 순간 그 자리에 실재하는 사람에게만 대면시켜줄 뿐이다. 시간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의 허망을 통감하는 때가 겨울이다. 그래 겨울을 사랑하는 계절꾼들은 바지런히 쏘다녀야 한다. 새롭고 아름다움에의 대면은 삶의 윤활유를 충전하는 셈이다. 하여 사람들은 윤활유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새롭고 신기한 아름다움은 우리들에게 경탄과 희열을 안겨줘 침잠해진 정신에 충동질 한다.
그 신선한 충동은 새로운 기운과 지혜를 솟구치게 해 삶의 활력소로 인생을 행복케 한다. 우리가 늘 새로운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수반하는 선물이다. 여행은 행복한 삶의 바로미터인 것이다. 세상의 아름답고 멋진 자연풍광과 인공구조물들은 결코 영원하지도 않다. 천재지변에 언제 훼손되고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아름다움에의 경외감과 황홀감은 항상 기다려주질 않는다.
오늘 떠나는 여행을 미루지 말라는 체험담은 선구자들의 값진 경구이다. 눈발 세차게 퍼붓는 혹한의 날씨에 경복궁나들이를 망설일 까닭이 없다는 나의 개 넋을 나는 사랑한다. 아내의 볼멘소리는 미끄러운 눈길 조심하라는 경종의 더도 덜도 아님이다. 경복궁은 두 번 다시는 연출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설경을 내 앞에 펼치고 있었다. 이 순간 이 자리에 내가 서 있다는 실존에 희열한다.
고궁의 설경이 한껏 더 아름다운 건 유려한 자연 속에 인간의 지혜가 빚어낸 멋진 구조물들을 적재적소에 잘 조화시킨 최상의 풍경에 무채색의 눈꽃을 피워서다. 더욱이 한옥이 갖는 곡선의 미학은 설경의 극치미가 어떠한지를 절감케 한다. 서울의 사대궁궐(四大宮闕) 경복궁, 창덕궁, 경희궁, 덕수궁이 인접한 곳에 잠자리를 펴고 사는 나는 행운아다. 눈발이 순해졌다. 장우산을 접었다.
하향정(荷香亭)은 1959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대목장 배희한씨가 세운 멋들어진 육각형정자다. 이 대통령이 휴식처로 삼아 프란체스카 여사와 정자에 앉아 낚시를 하기도 했다. 낚시 중에 6·25 남침보고를 받았다는 얘기도 있는데, 경회루와 언바란스 된다고 일부학자들이 헐어버리자는 걸 그대로 존치시켰다. 내 눈엔 하향정 없는 경회루는 송곳니 빠진 얼굴이지 싶다. 견해가 다른자가 만든 것들을 모두 배척하는 용열한 꼴통들이 지금도 잘난 척하는 세태가 우릴 서글프게 한다.
이 순간의 기쁨을 오래오래 간직하려고 부지런히 경복궁의 설경을 디카에 담았다. 사진은 그날의 내 희열을 담은 추억앨범이라. 추억 속에서 희열을 건져먹는 재탕의 기쁨도 삶의 활력소가 된다. 여행은, 새로운 것에 다가서 경탄하는 충격은 일상의 각질을 털어내는 지혜의 순간이 된다. 어차피 인생은 고난의 여정이 아닌가? 여행을 많이 아니 죽는 날까지 하는 행운아이면 좋겠다. 오늘 정녕 행복한 오후였다. 2022. 12. 15
고종은 집옥재에 역대어진을 모시고, 장서각으로 이용하면서 외국사신 접견장소로써 개화정책을 실시했다. 고종은 1896년 덕수궁으로 왕실을 옮기는 아관파천을 단행 집옥재는 빈 건물이 되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후 수경사30경비단이 주둔하여 출입금지구역이 되었으나 1996년 부대이전 후 복원하여 2006년 일반공개 되었다.
1895.10. 8일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는 공사관의 일본군수비대와 경관, 일본인 낭인들, 조선군 훈령대를 경복궁에 무력침입시켜 곤녕합에 기거한 명성황후와 궁중인사들을 무참히 살해한다. 그날 밤 명성황후의 시신을 곤녕합 뒤 서녹산에서 불질러 암매장 했다
향원정은 1885년(고종 22년)에 건립되어 왕과 왕실가족들의 휴식처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정원인데 건물의 노화로 해체수리 중(2019년 11월)에 향원정 바닥 가장자리에서 온돌시설이 발견되어었다. 향원지의 물은 서북쪽 북악산의 지하수가 여기서 솟아나 항상 수위조절이 됐다. 지하수 샘물을 열상진원(洌上眞源)이라 했다
교태전 후원의 아미산은 경회루 건립 때 연못을 만들면서 파낸 흙을 교태전뒤뜰에 장대석으로 4단의 석축을 쌓은 공간을 채워 화단을 만들고 6각형의 굴뚝 4개를 세운 화계(花階)다. 굴뚝벽엔 십장생과 사군자 등의 문양과 매화와 새를 새긴 화조도를 그려 아름답기 그지없다. 신선이 살고 있다는 아미산은 노을과 별과 달이 뜬 연못을 꾸며 왕비의 정서와 사색을 고려한 후원이었던바 궁녀들의 쉼터로 사랑을 받았다.
강녕전(康寧殿)은 경복궁의 내전(內殿)으로 왕이 일상을 보내고 침전에 드는 전각(殿閣)이다. 1395년 태조 때에 창건하고 정도전(鄭道傳)이 강녕전(康寧殿)이라고 이름 지었다.
삼봉 정도전이 ‘생각하면 슬기롭고 슬기로우면 성인이 된다'는 뜻으로 명명한 사정전(思政殿)은 왕이 신하와 경연(經筵)을 하고 정무를 보는 집무실이다. 생각하고 정치하라는 의미를 담은 사정전에서 세종은 사정전훈의(思政殿訓義)와 자치통감을 편찬했다. 세조는 사정전 앞 복도에 큰 종을 달고 군사관련 정사를 보살필 때마다 호령을 대신하여 이 종을 쳤단다.
경회루 화재를 방지하기 위하여 연못에 청동 용 2마리를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1997년 연못 준설공사로 연못의 물을 뺐을 때 청동용 1마리가 하향정근처에서 발견되어 고궁국립박물관에 전시 됐었다. 애초에 화마를 퇴치하기 위해 청동용 2마리를 연못에 넣었다는 기록이 있다
경회루(慶會樓)는 근정전 서편에 있는 누각으로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을 접대하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 행사에 사용하던 건물이다. 경회루의 바깥 돌기둥은 사각형이고 안쪽 돌기둥은 둥글다. 또한 주위의 사각형 인공 연못과 둥근 모양의 섬 2개가 있는 건 땅은 모나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圜地方) 사상을 나타낸다.
정도전이 서경(書經)의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勤) 잘 다스려진다(政)"는 뜻의 글자를 취하여 붙인 이름으로 근정전의 정전은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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