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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창덕궁-창경궁의 겨울예찬

창덕궁-창경궁의 겨울예찬

삼삼와

간밤에 하늘은 뭔 수작을 벌렸을까? 새벽녘 이상한 기색에 자릴 털고 커튼을 열었다. 낮게 내려앉은 다크블루 하늘이 하얀 설경을 품어 여명을 열고 있었다. 순백의 세상을 만드느라 하늘은 동짓달 긴긴밤에 신음소리 한 번쯤은 냈을 텐데 무지렁이 나는 꿀잠에 들었던가보다. 어제의 세태는 죄다 어디에 묻었을까? 누굴 위해 이 곱디고운 하얀 세상을 펼쳤을까?

돈화문과 돌담의 흑백 콘트라스트
돈화문, 2층에 신문고가 있었다

다크블루 하늘이 뿜어내는 여명의 붉은 빛깔은 환장하게 아름답다. 탐스런 눈꽃이 행여 망가질세라 햇살도 숨어들고 바람도 원정을 떠났나 싶다. 해도 동지섣달 변덕은 놀부심술 못잖다. 중무장을 하고 지하로 잠입하여 안국역(安國驛)에서 하늘을 봤다. 무채색의 공간에 수묵화처럼 떠있는 돈화문 속으로 사람들 종종발걸음이 사라진다.

금천
▲인정문과 회랑, 가운데는 숙장문▼

시린 대기에서 숨길이 담배연기처럼 번지고 디카 움켜쥔 손가락이 시려 호주머니를 파고든다. 많은 겨울손님 중에 돈화문2층을 오르는 사람이 없다. 살기 좋아 설까? 억울해서 살기 팍팍한 조선의 백성들은 엄동설한에도 돈화문의 신문고(申聞鼓)를 두들겼다. 임금이 행차하는 날엔 어가(御駕)에 매달려 호소를 했다. 왕은 그 자리에서 민원을 해결했다.

근정전마당엔 관리들의 계급을 나타내는 24개의 품계(品階)석이 좌우로 있다. 또한 마당을 깐 울퉁불퉁한 검정색의 박석은 신하들이 고개를 숙이고 조심히 걸으라는 의미가 있다.
창덕궁인정전 뒷담의 화단도 방뇨장이 됐을 터

광해는 임난 후 창덕궁을 복원하고 연회를 자주 열었는데 궁궐 안에서 악취가 진동했다. 취객들이 방뇨한 탓이다. 광해는 병조에 오줌 싸는 일을 엄금하라고 하명했다. 폭음포식하고 배설을 못 하다니? 창덕궁 인정전엔 예나 지금이나 화장실이 없다. 궁궐담벼락이나 드므가 방뇨하기 딱이었다. 방화수저인 드므는 훌륭한(?) 오강이 됐지싶다. 프랑스 루이왕조 때 베르사이유궁전도 악취가 진동해 코 막고 다닐 정도였다. 규모가 어마어마하게 큰 베르사이유궁전의 연회는 참석한 인사도 많았을 테다. 만취한 고관이 다급하게 시종을 찾으면 그는 오강을 들고 불나게 좇아가 오강속에 주인의 배설을 받아야 했다. 시종은 그 오강의 오물을 궁 밖 화단에 내다버렸으니 베르사이유궁전은 똥오줌화단에 둘러싸인 꼴이었다. 지금도 프랑스인들은 배꼽 밑에서 야기된 문제는 불문에 붙이는 관용(?)은 배설의 카타르시슴에서 기인했지 싶다.

인정전의 드므

소방수조 드무(청동항아리)는 목조궁궐의 화마에 대치한 방책이다. 귀신 중에서도 가장 추물인 불귀신이 왕궁에 불 지르러 오다가 느무속 물에 비친 자기의 추한 얼굴을 보고 기겁을 하여 도망쳐 불 지르는 걸 깜박 잊게 했단다. 글고 드무는 궁궐연회 땐 취객들의 방뇨 - 오강역활도 했을 테니  다목적 항아리였던 셈이다 

근정전 용상

윤석열 대통령은 집무실 100m안에서 신문고 울리는 것도 못하게 하려 헌법재판소에 하문했다가 퇴짜를 맞았다. 158명 고혼(孤魂)들의 어버이들이 하소연 좀 하려해도 등 돌리고, 정부는 동문서답 시간 끌기 꼼수일관이다. 신문고 앞 귀목들이 알몸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퍼포먼스가 고혼들의 절규마냥 가슴에 와 닿는다. 안전하고 편히 놀 수가 없는 사회는 나라도 아니다. 윤대통령은 지난 광복절날 헌법 제10조를 강조했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윤대통령의 헌법제10조는 아전인수 편법이던가?

금천교를 건넌다. 쌓인 눈 밑 얼음장 아래서도 생명은 살아있다. 꽁꽁 언 땅속에서도 맹아(萌芽)는 꿈을 접지 않는다. 생명들의 겨울시련은 튼실하고 밝은 내일을 위한 담금질이며 하얀 눈은 두터운 수분침구이기도 하다. 겨울 꽃 - 하얀 설경의 신비스러움에 경탄(敬歎)하는 우리들은세파에 주눅 들고 멍울진 각질을 벗겨내는 에너지원을 활성화한다.

선정문과 희정당과 성정각
왕이 국사를 관장한 편전 - 선정전

겨울은 봄날의 산모이다. 찬 겨울이 있어 튼실한 종자만이 싹을 틔울 수 있는 우생학의 온실인 셈이다. 

“떠나야 할 그 사람 잊지 못할 그대여

하고 싶은 그 말을 다 못하고 헤어져

사무친 이 가슴 나 혼자 나 혼자서

숨길 수 없어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뮈신 희정당(좌)과 성정각
▲왕비의 침전인 대조전후원▼

오 붉은 태양 변함없이 뜨겁게 타고

푸른 하늘에 흰 구름도 흐르는데

보내야 할 내 마음 잊어야 할 내 마음

맺지 못할 그 사람 눈물만이 가득해

사무친 이 가슴 나 혼자 나 혼자서

숨길 수 없어요 숨길 수 없어요”                    -인순이 노래<겨울찬가>에서 부분발췌-

경훈각과 대조전 전각의 공간미
성정각 앞 노송

다크블루 하늘을 파먹은 궁궐처마 선들의 유려한 교차는 대목수의 심미안(審美眼)이겠다. 글고 그 선(線)의 미학을 휘장(揮場)한 자연의 겨울수묵화는 흑백의 콘트라스트를 절묘하게 이뤄 미치도록 아름답다. 겨울만이 선물하는, 그때 거기에 대면한 사람만이 열락하는 특전이다. 나는 그 특혜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포착하려 기꺼이 개 넋을 쓴다.  오늘도 ----.

▲동궁-보춘정과 희우루▼
희우루

성정각과 희우루는 세자의 거처로 동궁이라 한다. 성정각(誠正閣)은 왕세자가 자기훈련을 하던 궁궐이다. 성의(誠意)와 정심(正心)으로 학문을 대하는 올바른 마음가짐을 뜻한다. 성정각 현판 글씨는 정조(正祖)의 어필이다.

근다고 개처럼 천방지축 눈꽃 밭은 휘젓지는 않는다. 눈꽃 속에서, 동토(凍土) 아래서 발아하는 맹아의 신비를 날 풀리면 마주하고파서다. 창덕궁은 ‘여인의 궁궐’이라. 성종이 정희(세조비), 소혜(덕종비), 안순(예종비) 세 명의 왕후를 모시려고 지은 수강전이 궁궐의 시작이었다. 후에 후원과 창경원이 동궐(東闕)로 중건됐는데 자연지형과 조화롭게 배치돼 감탄케 한다.

대조전은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왕권을 잇는 세자를 낳는다 해서 대조전이라 했다. 왕비는 겉옷을 두 번 다시 입지를 않고 보관했다가 궁중행사가 열리면 양반가의 부인들에게 하사했다. 대조전과 임금의 침전인 희정당은 복도로 연결되어 래왕하기 편리하게 했으며 창덕궁에 전기가 최초로 들어와 불켰던 전등과 드무가 있는 곳이다. 대조전 우측의 흥복헌은 1910년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던 경술국치의 장소다

선정전 입구에 눈사람을 만들어 겨울여행을 만끽하는 학생들

하여 구중궁궐속의 여인들이 소요할 공간을 마련했다. 여인의 사색과 휴식은 궁궐안녕의 서기(瑞氣)가 된다. 야산구릉의 수목이 울창한 숲속의 궁전은 세계 어느 나라에 있던가? 우린 참 행복한 유산을 물려받음이라. 정도전은 참 대단한 인걸이었다. 숲속의 궁전에 겨울이 찾아오면 내게도 개 넋이 씌워질 것이다. ‘개 팔자가 상팔자’란 말은 결코 허구가 아님이라.          2022. 12. 21

선정각 앞 솔화단
낙선재 정문의 현판'장락문'

낙선재 정문의 현판글씨 '장락문'은 흥선대원군의 친필로 추사체다. '장락(長樂)'은 달이 있는 신선한 궁궐을 말한다, 낙선전은 비운의 황태지비 이방자여사가 환국하여 거처하다 1989년 생을 마감한 곳으로 단청 하지 않은 원목의 자연미를 살린 전각이다

낙선재
▲석복헌 뒤뜰▼

잘생긴 헌종은 문예에 일가견자로 왕비(효현왕후) 16세로 세상을 떠나자 서둘러 왕비간택을 한다. 홍씨와 경빈김씨 두 규수 중 대비 순헌왕후의 낙점으로 효정왕후 홍씨가 두 번째 왕비로 선택됐지만 헌종의 맘에 든 여인은 경빈김씨였다. 효정왕후가 결혼2년차에도 자식이 없는 걸 빌미삼아 헌종은 17세의 경빈김씨를 후궁으로 정식 간택하여 맞이한다. 그리고 헌종은 낙선재를 창건해 '석복헌'이라 명명하여 경빈김씨에게 바쳤다. 석복헌은 헌종과 경빈김씨의 불꽃 튀기는 허니문전각이 됐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궁전을 지어 선물한 헌종은 멋진 낭만이스트였지 싶다.

"그대의 눈빛이 되려 / 그대의 마음이 되려 / 내가 여기 이 자리에 왔나 보다.

무엇이 나와 그대를 만나게 했는가 / 나는 그 뜻을 따르리라."

헌종(13 1847)이 사랑하는 여인(경빈김씨)을 위해 궁궐을 지어 헌정하면서 읊은 사랑의 독백이다. 우리나라 임금이 애인을 위해 전각을 지어 바친 로맨스가 있었던가~!  인도 타지마할 궁전의 세기적인 '사랑의 역사'와 닮은꼴이 아닌가!

삼삼와

창덕궁 낙선재(昌德宮 樂善齋)의 삼삼와(三三窩)"여섯 모서리 움집"이란 뜻이며, 6각형의 정자로 의신각(儀宸閣)과 함께 귀한 서적을 보관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경복궁 집옥재도 장서각이였는데 조선의 도서관건물은 멋들어진 걸작이다

창덕궁과 후원으로 연결되는 창경궁후문과 계단
통명전후원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여 통명전후원 일대에 흉물을 숨겼다가 발각돼 끝내 사약을 받아들고 숙종한테 혈토한다. "왕을 사랑한 죄밖에 없다". 궁녀에서 왕비로 신분상승한 희빈은 뛰어난 미모 탓에 숙종의 성은을 입고, 또한 변덕스런 왕의 애정행각과 당쟁의  마중물로 사약을 받은 여인이다. 어쩌면 영국의 헨리8세의 총애를 받다 왕의 변심으로 단두대의 이슬이 된 앤 불린의 비련과 닮은 꼴이다.

통명전(뒤)과 양화당(앞)
\▲함인정과 석탑▼
환경전과 경춘전(우)
숭문당과 문정전의 기막힌 공간미
명정전
숭문당
금천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창경궁의 솔밭공원▼
▲춘당지▼

춘당지는 왕과 왕비가 농사와 양잠을 실습하던 전답으로 위에 작은 웅덩이만 있었다. 일제가 1909년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면서 준설하여 인공연못을 조성하여 일본식 정원을 만들었다. 해방 후 1984년 창경궁을 복원하면서 경주 안압지를 룰`모델 삼은 한국적 정원으로 재탄생시켰다. 앙증맞은 섬이 있는 큰못은 위의 작은 못과 연결됐는데 북악산기슭에서 발원한 물길은 마르지 않는다. 원앙새들의 보금자리가 됐고, 수많은 새들의 쉼터이기도 한 춘당지는 창경궁의 아이콘이다 싶게 관광객들의 사랑은 받는다.

강추위에 춘당지가 꽁꽁얼어 원앙과 새들이 안보여 좀 섭섭했다
팔각칠층석탑

팔각칠층석탑은 성종(成宗) 원년(元年, 1470)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탑인데,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창경궁에 이왕가 박물관(李王家 博物館)을 건립할 때 상인으로부터 구입하여 세운 것이다. 석탑의 기단(基壇)은 사각형의 받침돌과 팔각의 2중 기단으로 되어 있다. 그 위에 놓인 팔각형 돌의 각 면에는 꽃무늬를 새겼다. 팔각의 납작한 돌 위에는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모양의 둥그스름한 탑신 받침을 놓고 화려한 연꽃무늬를 돋을새김하였다. 1층 탑신은 위층에 비해 매우 높으며, 지붕돌은 팔각으로 목조 건물의 지붕처럼 표현하였다. 지붕돌 윗부분은 그 재질로 보아 후대에 보완한 것 같다. 이 석탑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공주(公州) 마곡사(麻谷寺) 석탑과 비교되는 라마탑(喇嘛塔)을 연상케 된다.                                                         - 석탑 안내판에서 발췌 -

창경궁대온실
1909년에 지은 창경궁 대온실은 한국 최초의 서양식온실이다. 향나무, 팔손이나무, 꽝꽝나무 등 천연기념물 후계목과 식충식물류 등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있다.
창경궁 대온실

관덕정주변의 숲은 사시사철 아름답기 그지없다. 정조는 관덕정숲을 자주 소요하며 시상에 젖기도 했다. 아래 정조가 읊은  '관덕풍림<觀德楓林>'이란 시 한 수를 옮긴다.

"과녁판이 울릴 때면 화살이 정곡을 맞히는데 (畫鵠鳴時箭中心)

구름과 안개로 장막이 선경 숲을 에워쌌네 (雲霞步障擁仙林)

삼청동(신선이 사는 곳)의 물색은 원래부터 이러하기에 (三淸物色元如許)

즐겨 제군과 함께 취하기를 금치 않노라 (樂與諸君醉不禁)"

관덕정 ( 觀德亭 )은 활궁장으로 정자 앞 넓은 빈터에서 군사훈련과 무과 시험을 치뤘다
관덕정의 고양이

관덕정은 집춘문으로 나가는 북서쪽 끝머리에 있는호젓한 정자다. 내가 창경궁소요 중 유일하게 쉬는 쉼터다. 평소에도 여기서 고양이를 마주하곤 하는데 오늘은 놈들이 좀 유별났다. 폭설과 강추위에 배곯은 놈들이 마루에 걸터앉은 내 주위를 맴돌며 보챈다. 적선하라는 거다.  마침 나도 기갈을 때울 참이라 육포를 꺼내 씹으며 몇 조각 보시(?)했다. 글자 놈들이 내 무릎까지 올라와 내 입을 노려본다. 놈들한테 먹일 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내쫓을 수가 없었다. 육포 한 장을 조금씩 때어 차례대로 나눠준다. 

놈들한텐 서열이 있어 강자가 독식하는 통에 약자를 위한 꼼수를 부린 거다. 아뿔사, 거친 녀석이 육포를 들고 있는 내 왼손을 나꿔채는 통에 엄지와 검지가 발톱에 긇혀 핏발이 섰다. 좀 따끔해 '악'소릴 내며 부라렸다. 멈칫 했던 놈들이 그래도 온기가 그리워 나한테 부비고 엉킨다. 사랑이 별 거냐? 보듬는 거다. 보듬으면 저절로 공감대가 이뤄진다. 육포 세 장 중 두 장을 놈들한테 빼았겼다(?). 아니다 난 첨으로 야생고양이를 품에 안아보고 놈들을 디카에 잡아넣어 추억 한 토막을 선물받았다. 괜찮은 장사를 한 셈이다. 그나저나 날씨가 풀려야 놈들이 덜 허기질 텐데~!   

춘당지는 몇 걸음 때고, 방향만 틀어도 새롭게 다가선다. 연못이 주는 아름다운 풍경은 희열이란 연못에서 줄차게 행복을 걷어올림이라
성종태실비
풍기대
양화당과 통명전 후원
▲후원입구▼
대조전일원의 기와지붕
인정전 뒷담
구 선원전의 양지당골목
선원전 뒷담
만수문계단 담벼랑
홍문각
검서청 뒷담장 풍경
선원정누각
봉모당
구 선원전 중앙을 관통하는 금천은 궐내각사를 양분하는 경계이기도 하다
옥당
돈화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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