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철원한탄강 물윗길 - 고석정트레킹
연일 강추위가 마음까지도 얼게 하는데 철원고석정에서 겨울눈꽃마당축제가 열린다는 광고가 눈길을 잡았다. 이태 전 이맘때 고석정 물윗길 트레킹을 하려고 찾았었는데 간밤에 눈이 많이 내려 부교가 미끄러워 ‘통행금지령’이 내린 탓에 되돌아섰던 아쉬움이 설레발을 쳤다. 7일(토)부터는 축제라서 나는 오늘(6일)일찍 집을 나섰다.
축제마당은 인파난장이 될 판이고 또한 강추위가 풀리면 한탄강의 얼음세계는 볼품이 망가질 터다. 하여 오늘 가기로 맘먹은 난 서너 시간 걸리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려 불나게 서둘렀다. 7시에 집을 나서 동두천역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백마고지역에서 또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11시20분에 고석정에 닿았다.
기상청에선 늦은 오후부터 눈이 온다고 예보한 철원의 회색빛하늘은 찌뿌둥하다. 폭풍전야라고 축제전날인 고석정관광단지도 잔뜩 웅크린 모양새다. 숭일교를 향한다. 숭일교에서 물윗길에 들어 고석정을 경유하는 4km의 물윗길산책에 이어 순담게이트에서 주상절리길로 갈아타 드르니게이트까지 3.6km남짓의 합계8km, 왕복16km이상 트레킹 하는 강행군을 할 참이다.
남과 북의 합작품인 승일교는 세월 때 덕지덕지 낀 채 옆의 우람한 한탄교에 주눅 들어 인도교로 포도시 다리구실을 하고 있다. 더구나 방풍림 할 옆 산자락이 온통 고드름빙벽을 만들어 초라한 모양새가 더 안쓰러울 정도다. 고드름빙벽의 장관은 자연과 인간이 합작한 아름다움에의 추구가 어떨지를 상상의 날갯짓하게 한다. 아~! 하는 탄성도 목젖에서 맴돈다.
직탕폭포를 뛰어넘은 한탄강물도 빙벽 앞에선 얼음장속으로 숨어들어 침묵한다. 모든 게 스톱한 정적의 세계다. ‘콰이강의 다리’ 같다는 아취형교각 밑을 통과하면 굽이치던 물살은 얼음장을 깨고 참았던 숨 내쉬느라 헐레벌떡 요동친다. 돌멩이 휘돌며 두꺼운 얼음장 깎아내는 한탄강물의 얼음조각솜씨는 신의 손길만이 가능하리라.
신의 걸작품 얼음조각상에 발길 멈추면 얼음구들장을 애무하는 강물의 속삭임에 그렇게 마음 평안해진다. 엷어진 살얼음 속에 강물의 숨결기포를 응시하는 순간은 또 하나 덤으로 얻는 힐링챤스다. 관광객 뜸한 오늘 물윗길 소요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고석정이, 고석대가 다가온다. 강 가운데에 우뚝 선 거대한 바위는 솔숲 머리로 태양을 가리고 한탄강지킴이로 위풍당당하다.
15m높이의 기암 건너편 옹벽에 신라 진평왕이 지은 정자- 고석정(孤石亭)은 고려 충숙왕이 엉덩이 불티나게 놀았다는 기록이 있다. 뿐이랴, 대도 임꺽정은 정자 아래 고석대의 큰 구멍을 은신처삼아 도적질을 했다. 꺽정은 관군에 쫓길 땐 한탄강물로 잠수하여 고석대 밑에서 나와 굴로 숨어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물윗길에 서면 임꺽정의 그런 신출귀몰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경제, 사회가 불안하고 희망이 굴절된 요즘 윤석열대통령은 신년사에서 "기득권 유지·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는 미래 없다"고 역설했다(2023.1.2.) 지대추구란 “집세, 방세, 지대(地代), 임차료”를 뜻하는 말로 부자와 특권층, 은행권의 불로소득을 이름일 것이다. 근디 윤대통령은 부자감세와 다주택자보호, 주택구입 중도금대출풀기 같은 기득권층을 위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게 서민을 위한 정책인가? 돈 없는 데 고리의 은행대출 받아 집구입해서 재미 볼 사람은 과연 누굴까? 어쩜 임꺽정 같은 대도가 나타나 기득권층의 부를 빼앗아 서민들에게 나눠주는 꿈을 꿔보는 게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일지 모르겠다. 대도 임꺽정이 의적으로 둔갑한 데는 홍명희가 그 당시의 혼탁한 사회상을 고발하는 주인공으로 그를 역발상한 탓이다. 지대추구를 없애거나 줄이는 것, 그게 바로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이란 데 윤대통령 특유의 ‘아니면 말고’식의 언어의 유희가 아니길 염원한다.
백정신분에 출세 길이 막힌 임꺽정은 사회에 반기를 들고 날뛰다 1562년 1월 9일 죽었으니 한겨울 이때다. 왠지 임꺽정이 아른댄다. '기득권 유지·지대 추구'를 실현시킬 아나키스트 위정자는 어디 있을까? 고석정일대에 7일부터 눈·얼음썰매와 국제 눈조각 대회 등의 겨울놀이마당이 벌어진다. 트레킹 코스 중간에서는 전통놀이와 팝페라와 버스킹, 피겨스케이팅 공연이 펼쳐진단다.
임꺽정을 빗댄 산적출몰퍼포먼스가 열려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한다는데 나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한탄강의 고요가 더 좋다. 오늘은 날씨마저 풀어져 바쁘게 나대는 통에 내 등적삼과 머리엔 땀방울이 솟는다. 밤부턴 눈발을 흩날리려는 듯 하늘은 태양을 가린 시스루를 거둘 기미가 없어 보인다. 어쩌던 간에 바람 없어 좋은 날 - 스냅사진 찍기도 그만이다.
철원평야를 만들며 흐르던 현무암 용암이 좁은 통로를 통과하면서 U자형협곡을 만들고 가파른 절벽과 주상절리를 형성해 한탄강물위에 8㎞의 트래킹코스를 냈다. 깊은 협곡을 달리는 강물은 천태만상의 바위를 빚어 햇살과 물빛의 반사에 카멜레온 못잖은 다양한 색깔로 치장한다. 한탄강의 변화무쌍에 몰입하다 어느새 순담계곡에 들어섰다. 물윗길을 나와 이제부턴 바위벼랑을 잊는 주상절리 잔도트레킹에 진입한다. 2022.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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