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곡폭포 & 등선폭포
봉화산자락 아홉구비를 돌아 떨어지는 높이 50m의 웅장한 구곡폭포는 기암괴석을 휘둘러 삐쭉삐쭉 절단 낸 파란하늘구멍에서 떨어내는 물보라가 장관이다. 그 물보라가 겨울이면 하얀 얼음벽을 만들어 탄성을 자아내는데 정작 가슴 조이게 하는 건 빙벽(氷壁)을 오르는 알피니스트들의 아슬아슬한 곡예등반의 스릴이다.
감히 빙벽등반의 꿈도 못 꾸는 내가 겨울이면 구곡폭포빙벽을 생각하는 건, 몇 해 전 우연이 여기서 빙벽을 오르는 알피니스트들의 도전을 보면서 한참을 넋 놓고 가슴 조이며 대리만족했던 아찔한 충격 땜이었다. 하여 매년 겨울이 오면 꽁꽁 얼음세상이 됐을 구곡폭포의 스릴을 공유하러 춘천행 기차에 오르곤 한다.
50m빙폭의 구곡폭포 장관을 찾아가는 기암괴석협곡은 짧지만 융숭하여 심산유곡의 정취를 쉽게 체감할 수가 있어 많은 산님들의 사랑을 받나 싶다. 구곡폭포를 향하는 골짝의 인공 얼음폭포도 장관이다. 산님들이 띄엄띄엄 빙판길을 오른다. 깊은 골짝의 적설은 춘천의 앙팡진 겨울풍경을 여실히 전시한다.
구곡폭포는 몸살이다. 알피니스트들의 송곳주먹과 송곳발길로 얻어터지고 갈라지면서 살점 떨어내는 아픔을 끽 소리 없이 인고하고 있었다. 어디 한 두 사람인가? 상처뿐인 하루하루를 버텨내야 한다. 차례 기다리느라, 응원하느라 소리치는 산님들 아우성도 마이동풍 해야만 한다. 사람들 취미란 게 참 아이러니하다. 위험천만한 빙벽타기 곡예가 스포츠란 미명하에 선망의 레포츠가 됐다.
아슬아슬한 스릴 만점의 빙벽타기 공포감은 인내심과 담대함과 용기와 지혜를 북돋아 삶의 자양분이 된다고 예찬까지 한다. 암튼 나는 그들의 그런 위험한 도전을 편하게 아니다, 약간은 조마조마 하면서 즐기는 공범자(?)노릇 하는 알파인 펜인가 싶다. 빙벽에서 얼음조각이 떨어지는 찰나의 공포를 그 밑에서 빙벽을 오르는 알피니스트의 순간모면에 짜릿한 쾌재까지 외친다.
나 같은 상꼰대들에겐 어쩜 미친 짓쯤으로 외면 받는 빙벽타기가 선망의 레포츠가 되어 많은 여성알피니스트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사실을 현장에서 실감한다. 빙벽 타는 노력과 지혜를 쏟는 생활이면 뭔들 극복 못 할 텐가? 그들이 부러웠다. 쫌만 더 젊어도 도전해 보고 싶다. 구곡빙벽 틈새로 기웃대는 파란하늘이 유난히 아름답다.
구곡폭포 아래 우측으로 난 등산로는 오지 중에 오지였던 문배마을통로다. 울창한 상록수림 터널을 뚫고 깔딱고개를 넘으면 산골분지에 몇 채 안 되는 산촌이 고즈넉한데 주민들은 평생 동안 비행기만 보고 차와 기차는 못 본 일생을 살았던 오지였다. 더는 6.25동란도 모른 채 오손도손 만족했던 하늘 아래 지상천국(?)의 주민들 이었단 얘기도 있다.
그때의 지상천국은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각박한 자본주의사회 물결에 진통을 앓고 있는 모습이 집집마다 입구에 명찰처럼 걸치고 있는 현수막에서 묻어난다. 삼악산등선폭폴 향한다. 눈 덮인, 빙폭이 됐을 등선폭포와 천길 협곡을 보고팠다. 삼악산 들머리이기도 한 등선폭포는 네 댓 개의 폭포보다 천길 바위벼랑이 울퉁불퉁 튀어나와 파란하늘이 실개천처럼 흐르는 진귀한 하늘강의 모습이 기똥차다.
등선바위협곡은 밑에선 폭포가 위에선 하늘강이 흐르는 우주의 걸작그림을 빚고 있는데 하늘강을 감상하며 감탄신음하다 고개 떨어지는 아픔까지 절감케 된다. 등선바위벼랑은 애초에 누가 뭣 땜에 이렇게 위험한 작업을 했을까? 얼음바윗길 탓인지 탐방객이 없다. 속세를 끊은 겨울등선벼랑은 적막이 팽배했다. 내 등산화에 얼음 깨지는 소리가 골짝을 놀래킬만하다.
협곡을 흐르는 물길소리도, 바윌 뛰어넘는 폭포수의 굉음도 자지러졌다. 모두 얼음 속에 가둔 탓이다. 소(沼) 중앙의 얼음구멍으로 숨 쉬는 물길의 신음소리는 연인들이 속삭이는 밀담(密談)인 듯싶고. 하늘강을 올려다보면 벼랑에 뿌리박은 나목들이 하늘강의 갈대가 되어 운치를 더한다. 오늘은 협곡을 훑는 골바람도 휴가를 떠났나 싶고 하늘강물빛은 협곡 깊숙이 내리꽂아 불빛이 된다.
해찰하기 딱 좋은 날씨다. 폭포와 협곡과 하늘강의 멋진 뷰에 오지게 빠져든다. 겨울산행 중의 진미는 산능선의 상고대와 협곡이 빚는 천태만상의 얼음조각품과 그 밑을 흐르는 빙하소리에 심취하기다. 등선협곡의 빙하소리는 천상의 하늘강으로 흐르는 아리아일까! 엉덩이 걸칠 곳이 있음 앉아 쉬고 싶은데 온통 얼음바위다. 이따금 텃새 된 까마귀 울음이 산통을 깨곤 하지만~!
이 등선벼랑골짝은 궁예의 마지막 보루였던 흥국사로 통하는 벼랑길이기도 했다. 궁예는 철원에서 왕건과의 싸움에서 패퇴 쫓겨서 이곳 삼악산에 숨어들곤 흥국사에 은거하며 권토중래를 꿈꿨다(918년). 등선협곡에서 흥국사와 삼악산정상을 잇는 4km의 외성은 삼한시대 맥국(貊國)이 쌓은 성으로 궁예의 마지노선이기도 했었다.
흥국사부근엔 기와 굽던 ‘와데기’, 말 방목장의 ‘말골’, 칼싸움 장소 ‘칼봉’, 군사들이 옷을 바위에 널어 말렸던 ‘옷바위’가 지금도 있다. 그 흥국사를 향한다. 골짝은 두툼한 적설이 소담한 겨울풍정을 뽐낸다. 물소리가 얼음장 속에 파묻히고 대신 딱따구리의 나무 좆는 울림이 적막을 깨뜨리는 목탁소리가 되어 골짝을 맥놀이 한다.
그 맥놀이를 깨뜨리는 인적 뒤에 산님과의 조우를 몇 번인가 반기면서 인사말로 겨울산행의 묘미를 공유하곤 했다. 흥국사는 스님이 대웅전법당에서 목탁으로 딱따구리 흉내를 내며 독경삼매경에 빠졌나 싶었다. 고양이처럼 산신각에 올라 앞을 바짝 막아선 등선봉마루에 걸친 햇살을 품어봤다. 너무 해찰을 한 통에 여기서 오늘 산행을 접을까보다.
벌써 오후 3시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박새가 회양목잔챙이 가지사이를 휘저으며 찍찍찍 봄소식을 찾고 있나 싶었다. 놈들도 이 오지 깊은 골짝 쇠락한 고찰에 숨어든 건 궁예의 꿈이 서린 넋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골짝을 내딛는 발걸음이 거뜬했다. 늦은 겨울햇살이 골짝에 땅거미를 내렸다 거뒀다를 반복한다. 나더러 빨리 하산하라는 시그널인가! 2023.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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