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

국립수목원의 설경

국립수목원의 설경

봉선사천

어제부터 다시 겁나게 추워진 날씬 오늘새벽녘에 내리기 시작한 눈발까지 가세해 서울의 아침은 우울하다. 눈발이 쌀이라면 서민들의 마음을 좀은 위무할 수 있을까? 쌀값은 안 올라 다행이다. 이 겨울이 유난히 추운 건 쪼그라진 주머니사정 땜일 것이다. 그런데도 높은 위정자들은 남 탓만 하며 날샌다. 눈발이 쉬 멈출 것 같지 않다. 눈발 속을 헤집는 개 넋이 방콕보단 기분이 낫지 싶어 열시 넘어 아파틀 나섰다.

호젓하게 숲길 데이틀 즐기다 나를 발견하고 까무라져 포옹하는 어느 학생커플, 눈꽃가루가 축복을 하는 듯 했다
인적 없는 숲속의 쉼터, 첫발자국 내기가 뭣했다

광릉수목원의 겨울모습이 문득 궁금해졌다. 강원도와 접경이니 적설량도 더 많을 테다. 무거운 눈 짊어지고 추~욱 늘어졌을지도 모를 수목들이 아른댄다. 그놈들의 고생을 즐기려는 난 어떤 억하심정인가? 정오를 넘어 국립수목원에 들어섰다. 눈발은 여전히 날리지만 눈 폭탄은 아니라 ‘나 죽겠다’고 늘어진 놈은 없다. 바람도 얌전해 수목원은 죽은 듯 조용하다.

수목원을 관통하는 육림호에서 봉선사천으로 흐르는 개울물소리는 고요를 탐닉하는 백뮤직이기도 했다

다만 고요를 깨는 굉음의 발신은 공기분무기로 길 청소하는 관리원아저씨다. 죽어나는 건 수목이 아니라 눈 치우는 그분들이었다. 수목들은 딱 견디기 좋을 만큼, 폼 잡고 멋 낼만큼의 눈을 짊어지고 별스럽게 포즈를 취하는 거였다. 눈꽃 세상 만나 신난 건 나다. 놈들이 연출하는 하얀 가면무도회는 끝없이 펼쳐지고 있어서다.

▲육림호, 눈 치우느라 관리원은 죽을 맛이었지 싶었다▼

놈들뿐이 아니라 수목원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눈발을 뒤집어쓰고 가장 아름다운 설경콘테스트를 벌리는 통에 나는 발길과 눈길을 어디다 둘지 멍청이가 될 판이었다. 또 하나 죽어나는 놈은 나의 휴대폰렌즈다. 배터질 지경인데도 멋 있다 싶은 데선 찰각찰각 잘도 찍어삼킨다. 출금(出禁)인줄 친 어린이정원을 에둘러 티끌 하나도 없는 설토에 나는 최초(?)로 발자국을 남기며 휴게광장을 찾아들었다.

통나무집 카페, 평소엔 왁좌지껄 붐볐을 텐데 개문 휴업상태(?)
에어펌프로 계곡나무다리 눈길을 여는 관리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내 뱃속의 거지가 앙탈부리고 있어서다. 근디 움막 속의 통나무의자도 눈이 벌써 내려앉아 난 엉거주춤 서서 기갈을 때웠다. 이때 학생인 듯싶은 커플이 숲속의 유토피아를 찾은 듯 환희하다 나를 본 여학생이 번개처럼 남학생 가슴에 얼굴을 묻고 기겁한다. 설인(雪人)도 아닌데? 개 넋만 잠시 빌렸을 뿐인데~! 숲속의 카페도 손님 대신 눈만 하염없이 내린다.

통나무집 카페

누런 수은등이 손님을 부르나 싶은데 하얀 눈발이 마당과 지붕에 소북이 쌓인다. 전나무 숲이 한결 짙푸르다. 겨울이면 독야청청한 기개 탓이려니!  하늘을 찌를 듯한 놈들을 사열하는 나의 기개는 하늘을 날 기분이다. 아주머님 두 분이 사진 찍느라 어린이처럼 폴짝 대다가 나더러 한 번 찍어달란다. 아이젠까지 착용한 계절사냥꾼 같았다. 서울 목동에서 왔다니 나 못잖은 개 넋을 씐 분들일까?

▲숲사이 나무데크 오솔길▼

암튼 시간을 즐겁게 요리하는 멋쟁이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육림호는 물 다 퍼내고 눈을 가득 담았다. 습지식물원도 눈 이불을 덮었고, 숲 생태관찰로는 눈꽃관찰로로 변신 어리둥절하게 한다. 어디가 어딘지도 구분이 안 된다. 땅딸이침엽수원이 빚은 설화세상의 낭만은 감탄, 감탄이라. 공룡 같은 졸참나무의 괴이한 모습에 눈길 팔다가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를 방문했다.

구상나무단지
전나무숲길의 구상나무단지

우선 따스한 온실에서 몸을 녹여 좋고, 엄동설한에 열대자생의 화려한 꽃들과 마주쳐 잠시 동장군의 끄나풀에서 해방된 나는 한참을 뭉그적대고 싶었다. 양치식물원원 앞의 비밀의 뜰과 소리정원은 겨울풍경도 운치최고다. 난대식물온실을 나와 관목원정원에 닿으면 가장자리를 얼음으로 장식한 호수가 주변풍경을 물 그림으로 담아 신비경을 선사한다. 앙증맞은 정자에서 젊은 커플이 이 풍류를 몽땅 전세 낸 듯싶었다.

▲전나무단지를 관통하는 숲길은 사시사철 어느 때라도 나를 잊게한다▼

풀인지 나무인지? 꽃이 피는지 안 피는지? 알쏭달쏭한 푸나무들이 눈덩이에 파묻혀 신음하는 넝쿨`수국원 산책도 새삼 나를 되돌아보는 순간에 들게 해 옹골차다. 인적 뜸한 차가운 겨울에 흩날리는 눈발 속을 소요하는 나는 나목들의 모습과 흡사할 테다. 설국에선 누구나 담대해 보인다. 나도 저놈들처럼 생존의 조건에서 의연한 존재였음 좋겠다.

낙락장송 속의 괴이한 졸참나무가 주인공 같다
서울 목동서 온 두 아주머니는 계절과 시간여행을 탐닉하는 프로근성이 다분한 멋쟁이였다

광릉 숲은 조선조 때 나라에서 필요한 큰 재목을 조달한 곳으로, 왕실가족의 사냥과 활쏘기 장소[강무장(講武場)]이기도 했다. 특히 세조가 강무장을 애용하다 죽자 그의 묘[광릉]를 여기에 조성하여, 사방 15리의 숲을 능 부속림으로 지정하여 500여 년간 나라에서 관리를 했다.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성역의 땅이었다. 글다가 1987년 산림박물관으로, 1997년에는 국립수목원이 됐다.

진종일 걸어도 질리지 않을 전나무숲길, 눈을 치우긴 했지만 꽤 미끄러웠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온대활엽수 성숙림지대로 945종의 식물과 장수하늘소를 비롯한 3,977종의 곤충, 699종의 버섯류가 자생하는 산림생물다양성의 보고로 유네스코는 2010년 6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했다. 국립수목원은 7개의 테마 산책길이 있어 안내서를 따라 알차게 산책을 즐길 수가 있다. 오늘은 눈길을 미처 못 치워선지 출입금지구역이 하 많다.

사랑이 샘솟는 "러빙 연리목길", 건강을 위한 "힐링 전나무 숲길", 식물 공부를 위한 "희귀 · 약용길", 처음 방문하는 분을 위한 "느티나무· 박물관길", 아이들과 함께 식물탐구를 위한 "식물 진화 탐구길", 가족 또는 단체관람 오신 분들을 위한 "맛있는 도시락길",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벗 삼는 홀로 오솔길의 "소소한 행복길"로 구분 길잡이 할 수 있다는데 말이다.

오두막, 모처럼 놈도 푹 쉬면서 겨울삼매경에 들었지 싶었다
열대식물원
관상수원

우리가 처음 산야와 바다를 찾으면 모든 감각을 열고 내 지친 마음을 그들에게 열어보이며 소통하려든다. 소리와 향과 맛과 촉감을 심벌언어로 소통한다. 나아가 향기와 색깔, 무늬와 움직임, 특이한 행동을 생태언어로 공유 소통하면서 자연에 동화하려 애쓴다. 그것은 곧 세파에 찌든 내 마음을 치유하는 길이란 걸 알기 땜이다. 국립수목원은 우리들이 쉽게 찾아가 별반 힘들지 않게 치유에 들수 있는 숲생태 유토피아다.   2023. 01. 26

식물의 용도, 분류학적 특성 또는 생육 특성에 따라 수생식물원, 식·약용식물원 등 24개의 전문수목원이 총 102ha의 면적에 3,344종류의 식물이 조성되어 현장학습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전문 전시원은 관상수원, 아름다운꽃나무의 화목원, 습지수생식물원, 약용식물원, 식·약용식물원, 관목원, 덩굴 식물원, 손으로 보는 식물원, 난대식물 온실 등이 있다.

약용식물원

*덩굴식물원 ; 다래, 머루, 으름덩굴, 오미자, 인동덩굴, 청사조 등 20여 종을

*관상식물원 ; 잎, 꽃, 수형 등이 아름다워 관상적 가치가 있는 백송, 구상나무, 계수나무 등으로 구성된 전시원이다.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만병초원 ;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만병초를 중심으로 외국에서 도입된 일부 만병초(진달래과) 품종을 볼 수 있다.

▲열대식물원 앞 풍경과 쉼터▼

*소리정원 ; 복개하천을 생태적으로 복원하여 개울과 도랑을 조성한 곳이다. 흐르는 물소리, 지저귀는 새소리,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담은 공간이다.

*백합원 ; 백합과, 붓꽃과의 숙근초와 구근류를 중심으로 다양한 원예품종으로 구성된 전시원이다.

▲열대식물원에 핀 야생화 모음▼

* 손으로 보는 식물원 ; 손의 감촉과 후각을 이용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향기 나는 식물 정향나무, 누리장나무 등이 조성되어 있다.

▲열대식물원▼

*수생식물원 ; 한반도 모양으로 물가나 물속에서 자라는 수련, 부들, 노랑어리연꽃, 가래, 마름 등 수생식물이 심겨 있으며, 물속의 생태계를 가까이서 접할 수 있다.

*식물진화정원 ; 진화과정에 따라 순차적으로 식물을 전시하여, 전시원을 산책하면서 자연스럽게 식물의 다양한 모습을 관찰할 수 있도록 이끼와 같은 선태류 식물부터 양치식물, 나자식물, 원시피자식물, 단자엽식물을 거쳐 마지막에서 다양한 쌍자엽식물을 만날 수 있다.

소리정원

*키 작은 나무언덕 ; 관상식물로 꽃이 피는 시기, 꽃의 색, 열매의 색 등을 고려하여 ‘봄의 언덕’, ‘겨울의 언덕’으로 계절별로 특색 있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비비추원 ; 비비추속 식물자원의 다양성 보전 및 전시 교육에 관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우리나라 자생 비비추 6종과 재배품종 120여 종을 함께 관찰할 수 있으며, 정원 소재로서 비비추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전문 전시원이다.

*돌나물 ;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돌나물과 식물의 연구와 보전을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이다. 건조하고 척박한 바위틈과 같은 자생지 환경을 만들어 바위솔, 바위채송화, 기린초 등이 식재되어 있다.

산림박물관
숲의 명예전당

*난대식물 ; 남쪽 도서 및 남해안에 자생하는 온대 남부와 난대식물들을 보존하는 온실로 상록활엽수인 팔손이, 돈나무, 후피향나무 등과 다양한 원예 품종이 식재되어 있다.

*양치식물 ;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고사리 90종이 현무암과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으며, 양치식물이 어떻게 정상하고 번식하며 살아가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시원이다.

▲유네스코생물권보전지역 등재 기념조형물 공원▼

*열대식물자원연구센터 (제한개방구역) ; 잠재적 가치를 지난 열대식물의 수집과 보전으로 기초, 응용 연구기반을 구축하여 열대식물의 중요성과 자원의 가치를 알리기 위한 온실이다. 열대식물과 아열대식물 전시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스원 ; 잡초로 여겨져 왔던 벼과, 사초과를 전시원의 소재로 활용하여 생육형(습지형, 산지형, 저지대형)으로 야생화와 혼식하여 경관을 연출한 곳으로 나무 데크를 통해 대상지 전체를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전시원이다.

*희귀특산물원 ; 자생지에서 개체수가 줄어든 희귀 식물과 우리나라에만 자라는 특산식물 400여 종을 분포와 생육 조건에 따라 7개의 주제원(울릉도 식물, 고층습원, 습지, 석회암 지대, 한라산, 백두산, 숲 정원)으로 전시하고 있다.

모형 다보탑

*복주머니란 ; 전 세계적으로 희귀 식물인 복주머니란속의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유전자원의 안정적인 보전과 정원 식물 소재로서 원종 10여 종과 원예품종 30여 종류의 복주머니란속 식물을 볼 수 있는 전시원이다.

*숲길과 전나무숲길 ; 오대산 월정사의 전나무 종자를 증식하여 1927년경 조림한 곳으로, 90년 이상의 수령을 자랑하고 있으며, 전체 약 200m 구간으로 우리나라 3대 전나무 숲길 중 하나이다.

*침엽수림 ; 늘 푸른 바늘잎나무(침엽수)인 섬잣나무, 솔송나무, 구상나무, 잣나무 등 자생식물과 조경수로 인기가 있는 금반향나무 등 130여 종이 식재되어 있다.

*습지식물원 ; 물가에 잘 자라는 식물인 금꿩의다리, 동의나물, 산뚝사초 등 80여 종을 데크를 따라 관찰할 수 있다.

*숲생태관찰로 ; 숲을 있는 그대로, 보다 가까이서 접할 수 있는 생태관찰로(Eco-trail)는 LG상록재단의 후원으로 1999년 조성되었으며, 관람객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태풍에 쓰러진 전나무의 천이 과정을 관찰할 수 있다

수생식물원

*약용식물원 ; 국내·외 약용식물에 대한 올바른 이용정보를 전달하고자 조성된 공간으로 인류와 약용식물의 역사, 인체 부위별 약용식물, 생활 속의 약용식물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위  * 식물 분류와, 숲길 안내설명의 글은 <국립수목원 홈페이지>에서 발췌했습니다

▲콩배나무의겨우살이공원▼
▲국립수목원 내부 관통로, 빙판길은 나를 한 번 엉덩아 방아 찧게 했다▼
봉선사천변 둘레길은 봉선사까지 이어지는 데 언제 트레킹 나설 참이다
국립수목원 입구 빙판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