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철원한탄강 주상절리길(잔도) 트레킹
한탄강 물윗길을 빠져나와 순담계곡의 주상절리길 매표소에서 또 입장권을 구매하여 산허리에 들어서면 곧장 천길 낭떨어지 협곡에 서게 된다. 아까 통과한 한탄강 물윗길과 주상절리길은 U자형 협곡을 이뤄 한탄강물은 구렁이처럼 꾸물댄다. 주상절리길(柱狀節理, columner joint)은 수직절벽의 현무암 5~7부벼랑에 철재구조물을 매달아 놓은 잔도(棧道)다.
순담(蓴潭)은 순채(蓴菜)가 자라는 연못이란 뜻으로 순조 때 우의정 김관주가 이곳에서 요양하면서 연못에 순채를 재배한 데서 연유한다. 순채는 열을 내리고 부기를 가라앉히는 약용식물이다. 순담게이트와 드르니게이트까지 3.6km의 주상절리길은 13개의 다리와 3곳의 전망대, 10곳의 쉼터를 갖춘 아찔하고 아슬아슬한 벼랑길이다.
그 벼랑길에서 마주치는 건너편의 주상절리와 발아래 굽이치는 한탄강물이 연출하는 비경은 간담을 서늘케 하는 공포심을 잊는 스릴만점의 트레킹코스가 된다. 까마득한 태곳적에 화산재가 철원평야를 만들고, 그 분지를 흐르던 현무암용암이 골짝을 통과하면서 깊게 패인 협곡은 가파른 절벽을 만들어 반대편엔 화강암석순이 솟은 주상절리를 형성했단다. 철원평야가 비옥한 건 화산재의 축적 탓일 테다.
이 넓고 비옥한 평야지대를 탐내 일찍이 궁예가 도읍을 정했었고, 6.25땐 철원평야를 차지하기 위한 남과 북의 땅따먹기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인명이 화산재에 파묻혔던가? 비극의 땅 철원이 다시 각광을 받는 옥토가 됐다. 현무암이 빚은 한탄강주상절리는 2020년 한탄강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받았다. 한탄강주상절리길 총27.9㎞로 조성하여 2021년 11월 개장한지 1년 만에 100만 명의 탐방객이 트레킹 했단다.
가파른 절벽의 주상절리는 육각, 사각형의 돌기둥을 켜켜이 세워놓은 암벽으로 빛과 물색의 프리즘이 시시때때로 변색의 조화를 형성시킨다. 한탄강스카이전망대에 서면 한탄강주상절리 협곡은 리틀 그랜드캐년에 들어선 기분이 든다. 한탄강물에 발목 담구고 있는 주상절리의 비경은, 협곡이 넘 깊어 콜로라도강물이 안 보이는 그랜드캐년 보다 더 사실적이다. 기왕 스카이전망대를 만들려면 주상절리에 더 다가선 돌출부를 만들었다면 좋았겠단 생각을 하게 했다.
강 중앙 가까이서 감상하는 얼지 않은 한탄강물에 물구나무 설 주상절리 데칼코마니는 얼마나 신비경일까! 한탄강물이 띄운 데칼코마니 협곡의 풍경을 감상하면서 소요하는 낭만을 즐기고 싶다. 봄, 여름, 가을의 협곡풍경을 고스란히 담고 흐를 한탄강의 데칼코마니는 얼마나 환상적일까! 누가 한탄강 협곡절벽에 잔도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기똥찬 발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겨울한탄강은 침묵을 사랑하나 싶다. 강물 흐르는 소리마저 두터운 얼음장속으로 가뒀다. 협곡은 정적이 흐른다. 고독을 즐기는 한량들에겐 더없이 좋은 주상절리산책코스다. 깊지 않은 물길에 녹아내린 얼음구들장 사이로 들려주는 강물의 노래는 정겹다 못해 살갑다. 평안에 드는 힐링의 순간이 된다. 시간만 넉넉하면 오지게 뭉그적대며 한탄강의 얼음조각품들 감상도 배터지게 하고 싶다.
강물에 뛰어들어 주상절리와 대면하고 싶다. 심심풀이(?)로 만든 고드름얼음도 만지고 싶다. 더는 강물이 빚은 얼음장 꽃들 속의 물길의 자장가에 떠밀리고 싶다. 주상절리 십 리길 잔도는 스릴과 함께 담대한 자신감까지 일깨워 줄것만 같다. 잔도를 소요하다보면 실타래처럼 얽인 일상을 까마득히 달아나버린다. 하여 주상절리잔도는 트레킹족들이 찾는 낭만의 코스이기도 하리라. 누가 한탄강위에 잔도를 만들 생각을 했을꼬?
아침에 아파트 문을 나설 때 아내가 내 뒤통수에 대고 “오후부터 눈 온다고 했어, 빨리 와요”라고 쏘아붙였다. 장장 네 시간이나 걸려 고석정에 갈 필연적인 사연이 있나? 는 지청구가 진하게 묻혀있는 당부였다. 그렇게 나는 오늘 미친 개 넋을 쓰고 집밖으로 뛰어나왔던 거였다. 백마고지역사에 닿았을 때가 이미 오후4시반을 지나치고 있었다. 검푸른 하늘은 왠 짜증인지 지개미 가루를 흩뿌리고 있었다. 진눈개비가 어지럽게 난무한다. 신나는 하루였다. 2022. 01. 06
# 아래 글은 쉼터에서 뵌 어느 노익장의 얘기다
청정 한탄강물은 몇 십 년 전엔 냄새 진동한 오물 이었다고 나이 지긋한 노익장께서 너스레를 떨었다. 친구 분과 쉼터에서 한탄강얘기를 하던 노익장의 말씀이 여간 솔깃한 게 아니었다. 근처에서 평생을 사신다는 노익장의 말은 팔 할은 진실일 것 같아 여기에 간추려봤다. 6.25전란 트라우마에 피폐해진 이곳 주민들에게 설상가상으로 서울에서 쫓겨나다시피 한 이주민들이 이곳 철원에 둥지를 틀어 한탄강은 오염되어 시궁창으로 변해갔다.
서울 개발이 한창일 때 이주민들은 그들의 가내 수공업공장(가죽,물감,비누,재생,폐품 등의 수공업)이 모두 철거 당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이곳 철원으로 혐오공장을 옮겨와 오폐수를 한탄강에 방류한 탓이다. 그렇게 오염된 한탄강을 정화하느라 지자체는 혐오공장을 다시 옮기고 수질보호 20여 년의 역사속에 청정 한탄강을 되찾았단다. 이젠 절대 쓰레기 안 버리고 혐오시설 없애야 한다고 기염을 토했다.
한탄강 주상절리길엔 대여섯 군데에 쉼터가 있고 안내 겸 관리인이 파견 나와 있었다. 쉼터에선 음용수와 흡연행위가 일체 금지사항이다. 청정 한탄강을 지키고 공유하자는 다짐인 셈이다. 드르니게이트에서 되돌아 선 난 오후1시가 되자 시장기가 돋았다. 안내에게 양해를 구하고 쉼터에서 육포와 초콜릿과 식수로 기갈을 때웠는데, 안내원은 내게 CCTV촬영범위 밖에서 요령껏 들라고 당부했었다. 난처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한쪽 구석에서 도둑질 하듯 했다. 그나저나 한가지 아쉬운 건 중간에 간이화장실 하나쯤 있었음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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