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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창경궁의 봄

창경궁의 봄

수양벗나무꽃

창경궁(昌慶宮)을 해방전후까지도 창경원이라 했고, 봄엔 벚꽃축제가 유명했다. 그래 오늘 창경궁을 찾았더니 아직 만개하진 않았고 화사하게 차려입은 상춘 인파의 홍수가 더 볼만했다. 창경궁은 성종대왕(1483년)이 세 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하여 창덕궁 옆에 창건한 궁궐이었다. 인조반정 후 이 괄이 반란을 일으켜 창경궁을 침입하여 일일천하를 누리다 퇴각하면서 불질러버리는 등 화재가 빈번했다. 또한 숙종이 애첩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취선당에 거처하던 그녀에게 사약을 내린 곳이기도 하다. 정조가 창경궁에서 승하했고, 영조는 사도세자를 뒤주에 갇혀 죽게 한 희대의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대온실 ; 1907년 순종 때 일본인 후쿠바가 설계하고 프랑스 회사가 시공하여 1909년 준공한 창경원 식물원은 170여 평으로 동양최대의 목조식물원이었다.
금천
낙선재 성정각
양화당 화계
풍기대 ;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재는 풍기를 세웠던 창경궁에 있는 석대
▲춘당지▼
성종대왕 태실비
팔각칠층석탑
아네모네
대온실 입구
관덕정(觀德亭 1642년)은 활궁장이였다. 넓은 빈터는 군사훈련과 무과시험장으로 사용됐다, 좌측은 고비
대온실
할미꽃을 백두옹이라고도 하는데  허리굽은 할머니가 하얗게 센 머리를 빗어 곱게 틀어 올리려 해도 흩어져버리는 뒷모습에서 '백두옹‘이라는 했단다. 꽃말은 '슬픈추억'  '충성'
가지복수초는 4~5월에 가지 끝에 노란꽃 한 송이씩 피운다
송재정
자주괴불주머니 (현호색과) ; 독성이 있어 먹으면 호흡곤란,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
백송;  꽃말은 ‘백년해로’
산자고

산자고의 자고(慈姑)는 자비로운 시어머니를 말한다. 옛날 가난하게 사는 홀어머니가 삼남매를 키워 두 딸은 시집보내고 막내아들은 결혼을 못해 마음고생이 컸는데 어느 해 봄날 한 처녀가 보따리를 들고 나타났다. 사연인 즉 모시고 살던 홀아버지가 죽으면서 이집 총각을 찾아가라고 유언해서 왔다는 거였다. 하여 어머니는 그 처녀를 며느리로 삼았다는 일화가 있다. 그들은 아주 행복했지만 며느리가 등창이 나서 고름이 심해졌으나 가난하여 의원을 찾아갈 수가 없었는데 시어머니가 우연히 산에서 이 꽃을 발견해 며느리의 등창에 발랐더니 병이 나았단다. 그 뒤로 이 작은 꽃을 산자고라 부르게 되었다.

돌배나무
회화나무와 느티나무의 사랑, 3백여살 된 회화나무는 연하의 느티나무를 커플로 맞아들여 창경궁사랑의 심볼이 됐다
돌단풍은 돌 옆에서 봄에 하얀꽃을 피우곤 가을엔 단풍으로 변신한다. 관덕정 고양이가 실연을 당했나 넋빠진 채 웅크리고 있었다
홍화문 ; 영조는 홍화문 앞에서 백성들에게 균역법에 대한 찬반 여부를 물었고, 정조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기념으로 홍화문에서 백성에게 손수 쌀을 나눠주는 기쁨을 공유했다. 금천교(중앙)는 홍화문과 명전문을 잇는 다리다
▲홍화문에서 본 명정문▼
사도세자의 비명을 지켜봤다는 회화나무

회화나무 괴()를 파지하면 나무 목()과 귀신 귀()가 되므로, 회화나무를 '귀신 쫓는 나무'라고 하여 궁궐 등에서 잡귀를 쫓기 위해 많이 심었다고 한다. 또한 회화나무는 은행나무 등과 함께 대표적인 학자수(學者樹)라 통한다. 중국 주나라 때 삼괴구극(三槐九棘)이라고 하여 회화나무 3그루와 가시나무 9그루를 심어놓아 여기에 정승 3, 고급관료 9명이 나왔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길상목으로 여겨 궁궐, 정승 집, 문묘 등지에 심었는데 가문이 번창하고 학자나 큰 인물이 난다는 상서로운 나무다. 임금이 친히 상으로 하사하기도 했다.

백골이 된 주목; 문정전 담장 밖에 있어 사도세자의 비명을 지켜본 상징적인 길상목이다
맨드라미
목련

백목련과 자목련의 설화 ;  옥황상제가 딸을 시집보내려고 사윗감을 물색했으나 공주는 부왕이 골라준 사윗감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녀는 사납고 거친 북해의 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공주는 몰래 궁을 빠져나와 북해의 신이 사는 궁궐에 갔으나 북해의 신은 유부남이었다.  충격을 받은 공주는 바다에 몸을 던져 자결한다.
이 소식을 접한 북해의 신은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자신의 아내에게 독약을 먹여 죽자 두 여자의 장례를 정성을 다해 치루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그후 두 여인의 무덤에서 목련이 자라나 꽃을 피웠는데 공주의 무덤에서는 백목련이, 북해신 아내의 무덤에서는 자목련이 피어났단다.                         * 꽃말 ; '숭고한 정신', '고귀함', '우애', '자연애'.

낙선재담장의 화계
산수유

산수유(山茱萸)열매 씨를 제거하고 말려 정력제 등의 약재로 쓴다. 씨를 제거하려고 마을 부녀자들은 열매를 입에 넣고 앞니로 씨를 뱉어내고 열매를 입안에 모았다가 뱉어 말리곤 했다. 산수유로 유명한 구례 부녀자들 입술에 산수유 진액이 배어들기 때문에 밤마다 아내의 입술을 물고 빤 남편들의 정력이 강해졌다는 우스개 이야기도 전해진다. 또한 그곳의 할머니들은 앞니가 기형인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단다.

앵두꽃 ; 앵두를 앵도(櫻桃)라고도 하는데 한방에서는 앵두가 청량제이고, 독이 없으며 비기(脾氣)를 돕고 안색을 곱게 만든다고 한다.
▲함인정에서 조망한 낙선재 담장의 화단. 함인정 마당이 넓어 임금이 신하들과 접견하는 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 ▼
문정전 마당에서 사도세자는 7일간 뒤주에 갇혀 아사했다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하여 양화당 뒤뜰에 해꼬지를 묻었다 발각되어 숙종은 취선당에 거처하던 그녀에게 사약을 내렸다 .
낙선재 상량정일원
헌종은 낙선재를 지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았고, 이듬해에 그녀가 거처할 공간으로 석복헌을 지었으며 바로 옆에 중수한 수강재를 대왕대비의 처소로 삼았다.

1847년, 조선24대 임금 헌종이 아내 경빈 김씨를 위해 지었다. 헌종 곁에서 머물며 후계자를 낳기를 바란 의도였으나 애석하게도 2년 여 뒤인 1849년 헌종은 승하했다. 경빈 김씨는 궁을 나와 안국동 일대에 머물면서 낙선재는 비었었는데 갑신정변 직후에 고종이 잠시 머물면서 신하들과 외국 외교관들을 접견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궁을 지어 받힌 헌종과 경빈 김씨의 짧은 로맨스는 낙선재를 찾는 내가 연민의 정을 품는 곳이기도 하다.

취운정
낙선재 앞 뜰엔 봄꽃들이 만개했는데 화사하게 단장한 벚꽃은 관광객들마져 덩달아 호사를 부릴만 했다
낙선재담장을 월담하는 수양벚꽃
낙선재 앵도꽃
선정전과 희정당 앞
인정전과 회랑
▲인정전에서 구 선원전으로 통하는 골목길(?)은 정취만점이다▼
돈화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