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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낙엽보다 가벼운 약속 - 소요산단풍

낙엽보다 가벼운 약속 - 소요산단풍

시월의 마지막 토욜, 소요산골짝을 불 지폈을 단풍에 취하려 소요산을 찾았다. 소요산행열차는 만원이었고, 그래 소요산역사 프랫폼을 빠져나가는 인파의 홍수는 일주문을 통과 속리교를 넘쳐 자재암까지 이어지는 도도한 쓰나미 같았다. 근디 그 곱고 황홀한 소요산단풍은 어디 갔을까? 소요산단풍은 지금 몸살을 앓는 듯 말라비뜰어져 있었다. 

가뭄에 빛바랜 고엽이 된데다 설상가상 인파의 홍수에 부대껴 서둘러 낙엽신세가 되나싶었다. 나무는 물기(영양)가 풍부해야 이파리를 떨쳐내지 않는다. 봄에 싹틔운 잎을 성장시켜 겨울문턱에서 낙엽을 만드는 건 살아남기 위한 생명연장의 수단이고, 잎은 기꺼이 낙엽의 운명을 감내하여 부엽토가 되어 모체[나무]에 기여한다. 새싹에서 낙엽까지의 삶의 반복이 나무의 일생이라 나무와 잎은 이별의 고통을 감수하는 게다.

일주문기와지붕을 치장한 단풍

생명의 윤회는 자연의 섭리다. 나무는, 지구상의 생명은 자연의 섭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살아낸다. 오직 인간만이 자연의 섭리를 거슬리는 돌출행동을 자랑삼듯 할 뿐이다. 나는 오늘 낙엽보다 가벼운 삶 - 약속을 흩날리는 낙엽처럼 여기는 한 여인의 얘기를 친구로부터 들었다. 어쩜 싱거운 헤프닝으로 치부할 요즘의 남녀 미팅풍습(?) 얘기였지만 불성실한 인간의 빗나간 삶이란 두려움에서 낙서를 한다.

A는 소요산단풍축제에서 지인 B의 소개로 C를 소개받았다. A와 C는 서로 호감을 공유했던지 세 시간여의 데이트에서 신뢰와 교분을 나누면서 앞으로 즐거운 시간을 공유하자고 약속을 했단다. 그렇게 소요산단풍을 만끽하고 있을 때 C는 B의 전화호출을 받는다. 한동네 오빠들과 식당에 있으니 거기로 오라는 전화였단다. 마지못해 A와 C는 B가 있는 식당을 찾아갔는데 B는 오빠라는 남자 두 분과 술자릴 펴고 있더란다.

▲국악 한마당공연 팀원들▼

술을 안 먹는 A와 C는 일면식도 없는 분들과의 술자리가 내키지 않아 A가 합석을 사양하고 나왔단다. A와 C의 데이트는 거기서 그렇게 끝난다. 귀가한 A가 C에게 ‘오늘 만나 같이 한 시간이 즐거웠고 고마웠습니다’란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A는 B의 메시지를 받는다. ‘매너가 없어 연락하지 말라'고 C가 말했다며 인연이 없는 모양이다.라고 B는 사족까지 붙였단다.

단풍보다 더 화사한 관광객들

B는 소개팅 주선을 했으면 오직 둘만의 시간을 위해서라도, 더구나 A와 C가 술 안 먹는 줄을 잘 알기에 굳이 어색할 술자리에 합석시킬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매너를 뭉갠 사람이 누군데? 심히 유감이었단다. A와 C의 미팅과 앞날의 약속은 몇 시간 만에 그렇게 싱겁게 끝났단다. 한낮 낙엽 지듯이 할 약속이라면 애초에 미팅 생각도, 나서지도 말았어야 옳다.

약속은 서로 지켜가려는 노력과 그런 과정이 아름다워 삶은 행복한 게다. 하찮은 핑계거리로 파약하는 짓은 자신의 불행이고 불신을 조장하는 사회악이 된다. 인간의 삶이란 건 무수한 사람들과의 약속의 연속선상인 것이다. 좋던 싫던간에 우린 약속을 지키려 발버둥치는, 무의미에서 유의미를 일궈내는 시간의 릴레이가 일생인 셈이다.

약속 없이 이뤄지는 건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약속은 삶이다. 낙엽이 허공을 유영하다 어딘가에 떨어진다. 봄에 싹튼 잎은 태양의 에너지를 흡수 영양제를 만들어 나무에 보은하고 단풍으로 화장한 후 나무를 떠난다. 그런 낙엽의 일생은 자연의 약속이다. 낙엽보다 더 가볍고 싱거운 약속을 인간이 죄의식 없이 해치운다는 건 비극이다. 금년의 아쉬운 소요산단풍은 낙엽으로 해서 명년엔 더 아름답게 태어날 것이다.   2023. 10. 30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법정 스님-

▲종묘앞 추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