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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광릉국립수목원의 만추(晩秋)

광릉국립수목원의  만추(晩秋)

가을이 단풍으로 화장 하느라 경황이 없는 틈을 한파가 기습했지 싶다. 체감온도가 영하로 곤두박질쳐 나는 고슴도치마냥 움츠러든다. 가을은 이렇게 속절없이 무너져도 되는가? 강풍에 몸살을 앓는 마른 잎들을 나뭇가지는 놓치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처절한 이별의 정경이 더 차갑게 느껴진다. 겨울의 엄습에 우우우--신음하는 나무들의 떨림이 안쓰럽다.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대면한 뿔가위 노린재의 짝짓기(우)와 새끼부화(좌)
광릉숲길은 봉선사천과 병행하며 힐링코스로 회자된다

포천시 진접역 앞에서 광릉수목원행 21번버스를 20여분 기다린 끝에 도착한 버스는 경복대 까지만 운행한다고 문짝을 닫아버린다. 정류장 전광판의 점멸하는 시간표는 엉터린가? 아님 텅 빈 버스의 기사님 횡포일까? 다음버스는 40분후라고 전광판은 천연덕스럽게 명멸한다. 아내가 추위에 웅크리면서 집으로 빠꾸하잔다. 국립수목원 단풍구경을 하자고 나선 외출이 한파에 덜덜 떨며 낙엽보다 못한 길거리의 낭아 신세가 됐다.

▲광릉숲길▼

이때 여성 한 분이 택시합승을 하잔다. 그 말에 울`부부는 살아났다. 왜 먼져 그 생각을 못했을까? 우리는 멍청한 얼굴로 서로를 째려봤다. 10여분 만에 택시는 국립수목원 정문에 섰다. 손가락으로 셀만한 탐방객들이 서성댄다. 국립수목원이라고 단풍이 온전할까? 5할은 누런 낙엽이 됐고, 3할은 고엽(枯葉)으로 나뭇가지에, 2할 정도의 단풍이 상추객(賞秋客)들을 영접하고 있었다. 기대했던 수목원이 삭막하게 느껴진 건 추위 때문만은 아니지 싶었다.

광릉 국립수목원은 야트막한 산록에 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밟으며, 후미진 곳을 치장한 단풍을 즐기며, 나뭇가지에서 울어대는 고엽(枯葉)을 감상한다. 차중락의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은 이브 몽탕의 ‘고엽(Les feuilles mortes)’이 원곡으로 나의 18번 애창곡이기도 하다. 고엽을 흥얼대면서 낙엽을 밟는 전율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고 읊은 구르몽의 시를 음미해 본다.

광릉수목원을 흐르는 봉선사천은 수목원의 젓줄인 셈이다
▲국립수목원의 초목들은 대게 알몸이 됐고 단풍은 후미진 곳에서 못다 핀 아쉬움을 달래고 있었다▼
여름정원

낙엽이 두텁게 쌓인 휴게소벤치에 앉아 울`부부는 빵과 과일로 점심을 때운다. 황갈색낙엽 카페트를 깐 드넓은 휴게소는 나목(裸木)들을 촘촘히 세워 파란하늘을 떠받친 채 가을의 따스한 햇볕을 가뒀다. 국립수목원이 마련해 준 가을전당을 울`부부가 전세(?)내 만추를 포식한다. 이런 로맨스그레이 가을소풍을 언제 했던가? 뜬금없는 한파에 인적 뜸한 휴게소 낙엽광장은 소슬하고 삭막한 기운이어 더 낭만적이다.

휑한 숲속의 정자도 소슬하다

고엽이 바람 한 떼와 실랑이를 벌리다 이별여행길에 올랐다. 목적지는 몰라도 마지막임무는 알고 있는 듯 기꺼이 나뭇가지를 떠난다. 고엽의 이별장면을 응시하다 내가 기댄 옆의 갈참나무에서 연애 중인 가위뿔 노린재 커플을 발견했다. 짝짓기 사랑이 한창인데 수컷 한 마리가 커플 꽁무니에서 찬스를 엿보고 있다. 주윌 찾아봐도 세 놈뿐이다. 겨울문턱에서 창시 빠진 놈의 짝짓기는 아닌지? 아님 놈들의 일생에 일자무식한 나의 경솔한 속단일까? 놈들은 울`부부를 철저히 무시하는 투다.

▲수생식물원▼

놈들의 짝짓기는 울`부부가 오찬을 끝낼 때까지 반시간여를 지속했다. 아니 우리가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 감쪽같이 사라졌다. 지구상의 어떤 미물도 후손을 위한 짝짓기는 성업(聖業)이다. 모든 생물은 짝짓기 위해 -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태어난다고 할 것이다. 가위뿔 노린재의 시조가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아니 어쩜 인간보다 먼저인지도 모른다. 무수한 생명체들 중에 인간보다 월등한 역사를 가진 놈들이 수없이 많다.

그나마 살판 난 놈은 갈대무리다

가위뿔 노린재의 짝짓기는 기상천외하여 혀를 차게 한다. 교미시간은 상상을 절하게 길고, 웬만한 충격에도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개들의 교미보다 더 끈질기다. 교미시간이 긴 건 수컷이 자신의 유전자를 확실하게 남기려는 고육지책이다. 노린재의 수정은 가장 늦게 짝짓기 한 수컷의 정자와 난자가 성공할 확률이 높단다. 더구나 암컷은 몸속에 수컷의 정자를 보관하는 저정낭(Sperm reservoir)있고, 수컷의 정자는 딴 수컷의 정자를 솎아낸단다.

▲겨울정원▼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에 탁란하는 뻐꾸기 숙주새가 오목눈이새끼를 밀어내 죽이듯 말이다. 하여 수컷의 사랑놀이는 치열한 두뇌싸움이기도 하다. 교미 직전 수컷은 암컷의 저정낭을 청소하고, 교미 후 암컷의 생식기를 분비물로 막아버리는 놈도 있단다. 교미 후 암컷은 먹이식물의 잎에 50개 쯤 되는 알을 낳고 정성껏 보살피는 희생적인 삶을 산다. 암컷은 3단접이식 빨대 주둥이로 알과 알 사이를 빨대입으로 쓸고 닦기를 반복하며 숨결을 불어넣어 부화율을 높인다.

천리향
난대온실
에덕나무(East Asian mallotus 과)로 6~7월에 원뿔모양꽃차레로 꽃이 핀다. 갈색열매 겉에 가시돌기가 밀생한다, 조해에 강해 조경수로 좋다

 암컷은 부화할 때까지 약2주 동안 꼼짝 않고 굶주림을 견딘다. 가위뿔 노린재 어떤 놈은 몸길이가 10mm정도로 등판중앙에 하트문양이 있는데 노랑하트는 수컷, 아이보리색은 암놈으로 암컷의 몸집이 좀 크고 봄부터 가을까지 활동한다. 부화한 애벌레들은 한동안 뭉쳐서 몸이 단단해지기를 기다린다. 놈들의 치열한 종족보전은 신비하고 경외스러울 정도다.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역사가 고작 30만 년인데 바퀴벌레한테는 조족지혈이다.

난대온실

덩치가 어마어마한 공룡은 1억 9000만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구를 지배하여 놈들의 번식과 생명력연구에 학자들이 매달렸으나 의문투성이란다. 큰 덩치로 어떻게 교미했나? 페니스는 얼마나 컸을까? 넘 덩치가 커서 교미를 정상적으로 할 수가 없었을 거란다. 또한 지금까지 공룡화석에서 페니스를 발견하지 못했단다. 공룡의 후손인 새의 수컷은 외부생식기가 없어 상대의 항문에 살짝 대는 ‘총배설강 키스’ 방법으로 교미를 한다.

국립수목원의 다보탑과 석가탑은 버려진 자식 같이 외면받나 싶었다
무거운 짐 벗어난 쉼터의 목판의자가 모처럼 일광욕 하느라 행복하단다

그래 공룡도 암수가 새처럼 항문을 서로 맞대는 것만으로 번식을 했지 싶단다. 생물들이 어떻게 사랑을 하던 간에 종족보전에 올인 하지만 오직 인간만이 종족보전 보다 쾌락위주의 섹스를 더 추구하지 싶다. 우리나라는 지금처럼 쾌락탐닉에 열심 한다면 인구감소로 머잖아 한민족은 멸망한다고 저명한 학자가 경고 했다. 점심 후 반시간여쯤 수목원을 산책하는데 아내가 뒤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내 바짓가랑이에 아까 교미 중인 가위뿔 노린재가 붙어있다고. 바짓가랑이를 털어도 놈들은 떨어지질 않는다. 더 놀란 건 아까 교미를 엿보던 수컷 한 마리도 옆에 있다는 사실! 징글맞은 놈들이라! 놈들의 수정은 마지막교미를 한 놈이 유리해서 진행 중인 교미가 끝나길 줄기차게 따라다니며 여수는 걸까? 나는 놈들을 손으로 때어내 나무 밑동에 옮겨줬는데 서로 떨어질 줄을 모른다. 수정만 한다면 교미하다 죽어도 좋다는 수컷의 배짱(?)에 울`부부는 감동했다.

놈들의 일생일대 한 번뿐일 교미를 보며 인간의 경박한 섹스를 생각해봤다. 사람은 만물의 영장이라서 종족보전이 아닌 쾌락을 위한 삐딱한 짝짓기에 매달리는 걸까? 쾌락 지상주의 섹스는 분쟁을 야기 시키고 자멸을 최촉하기도 한다. 수목원은 낙엽을 흩날리는 바람소리와 골짝 물 흐르는 물소리 뿐 무서우리만치 고요하다. 적막은 결코 종언이 아니다. 세 생명을 잉태하는 숭고한 기도의 시간일 것이다. 위대한 우주의 섭리가 순환하는 고요일 뿐이다. 지금은 설한풍을 인고할 담금질 하느라 침묵하고 있을 테다.

열대식물원 앞 정자
열대온실

뭇 생명들은 짝짓기를 쾌락놀이로 장난삼아 하는 게 아니다. 오늘 울`부부는 광릉 국립수목원에서 가위뿔 노린재의 짝짓기를 목도하는 행운을 얻고, 나아가서 후손을 잇는 위대한 성업에 머쓱해졌다. 아주 작은 미물도 짝짓기란 숭고한 시간은 사람보다 훨씬 더 진지하단 걸 관찰했다. 생명체의 신묘한 종족보전은 인간의 훼방만 없으면 유토피아를 만들지 싶었다. 실로 유쾌한 국립수목원 나들이였다.     2023. 11. 07

송라는 소나무겨우살이라지만 다양한 나무에 서식하는 약제식물이다
시체꽃 ; 열대우림의 수마트라섬에 자생하는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로 거대한 꽃대는 생김새가 독특하고 개화할 때 꽃에서 풍기는 동물 썩는 심한 악취로 유명하다
그래스원(좌) & 라일락원(우)
▲희귀특산식물보존원▼
전나무 숲
숲생태관찰로
▲육림호▼
노린재의 짝짓기, 이커플이 갈참나무에서 내 자비가랑이로 자릴 옮겨 1시간여 동안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붉은 가위뿔 노린재의 부화
▲육림호수는 국립수목원의 자랑거리면서 젓줄이다▼
육림호수변의 휴게광장, 드넓은 낙엽카페트광장과 벤치에 인적이 없다
▲어린이 정원▼
미국 낙상홍
봉선사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