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곡선사박물관 & 국화축제
연천군 전곡리 선사유적지에서 천만송이 국화전시(10월14~29일)를 한다고 J가 바람잡이 한지 며칠 전인데 정작 오늘 나 혼자 구경 길에 나섰다. 주말엔 인파가 미어터져 북새통을 이룰게 뻔해서다. 간밤에 소나기가 한바탕 요란을 떨었는데 다행히도 우박세례는 없었단다. 꽃 한 송이 피우기 위해 국화는 무서리내리는 밤은 인고해내곤 하지만 우박폭탄엔 상처투성이가 될 터라 나도 조마조마 했었다.
11시쯤에 전곡리 선사유적지에 들어섰다. 싸한 날씨는 뭉게구름을 몰아내면서 파란하늘을 푸르디푸르게 닦고 있다. 은행나무가 노란 망토를 걸치고 참나무들은 황갈색이파리들을 떨쳐 여행 보내느라 몸부림친다. 갈대가 하얀 머리칼을 나부기면서 울부짖는 몸부림이 스산하다. 갈대구릉 둔치 너머에 전곡선사박물관이 이국적인 풍경으로 나타났다.
초행길인 내가 무작정 억새숲길을 소요하다보니 박물관이 먼저 마중 나왔다. 유리창이글루를 리드미컬하게 연결해 놓은 듯한 박물관은 그 앞을 흐르는 한탄강물길을 끌어들여 작은 호수를 만들었나 싶게 햇빛을 반사해 일렁이고 있었다. 이글루박물관 앞 잔디광장엔 어린이들이 늦깎이 가을소풍을 나와 유토피아풍정을 연출한다.
마치 철새들이 이동하다가 잠시 쉼터삼아 앉아 지저귀는 소란이 이글루잔디광장을 정겹게 한다. 이글루에 들어서면 1층은 전시체험실과 뮤지엄샵 및 카페테리아가 있고, 지하1층은 3D영상실과 기획전시실 등 구석기시대의 다양한 볼거리가 있어 뭉그적대기 좋다. 이글루박물관 옥상에 오르면 둔치인데 뒤편 언덕을 넘어 숲길을 걸으면 국화전시장에 이른다.
연천역의 급수탑이 옮겨와 천만송이 국화꽃에 물길을 트나싶다. 까치색동옷을 걸친 국화전시장은 울긋불긋 치장을 한 채 끝없이 드넓어 가까이 다가서기 전엔 무슨 꽃인지 가늠이 안 된다. 누가 이 치성을 쏟았을까? 아직 꽃 봉우리 터뜨리지 않은 놈도 부지기수지만 9할은 만개했지 싶고 낼모레 피날레는 절정을 이뤄 헹가래칠 테다.
누구라 할 것 없이 활짝 웃는 놈들의 구애에 눈길 빼앗기다보면 시간은 턱없이 부족할 것 같아 건성건성 눈인사를 한다. 정녕 놈들은 간밤을 어떻게 새웠을까? 어제 오후부터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가 내리면서 우박이 쏟아질 거라고 기상청은 몇 번이나 예보를 했었다. 무서리도 견뎌낸 그들이긴 하지만 우박한텐 속수무책일 터여서 애간장 태우며 밤을 지새웠을 테다.
그들의 간절한 기도가 하늘을 감동시켰던지 소나기만 흩뿌리고 새벽부턴 먹구름을 하얀 꽃구름으로 차환시켜 파란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천만송이 국화는 갖은 야양을 떨면서 가을 깊숙이 나를 안내한다. 탐스런 꽃다발 속에 쭈그리고 앉아 놈이 뿜어주는 고혹한 향기에 취해본다. 스산한 가을에 국화가 없으면 그 쓸쓸함 어쩔꼬?
“가물고 가물어 안타깝던 하루하루
쭈그러들다 허리 펴던 니가
소나기소식에 미소 짓던 얼굴이
뜬금없는 우박예보에 피 말렸을
그래 핼쑥해져 가냘픈 몸매에
수술 단 꽃잎이어 더 예쁘구나
너의 고결한 마음을 밤하늘은
한탄강둔치에 모아 천만송이 모둠 피워
살랑살랑 속삭이는 향긋한 밀어가 번지고” -< 간밤을 지샌 국화 앞에서 >- 202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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