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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그 미지?

100204

김유정 문학촌을 다녀와서

“봄봄, 동백꽃의 저자가 누구지요?”

“박경리”

반 친구들 모두 키들키들.

참 재밌는 순간이었을 것 같죠?

우리 집 큰애의 고등학교 때 추억이랍니다.

그때는 정말 한심하다 했는데 오늘 김유정문학촌을 가면서 그 기억이 떠올라 생각해보니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이해가 되었지요.

미적분은 알아도 봄봄과 김유정은 연결시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어디 이것뿐이겠습니까? 나또한 그런 이유들로 얼마나 많은 학생들에게 핀잔을 주었는데요.

“혹시 우리나라 역 중에 인물 이름이 들어간 역이 얼마나 되는 줄 아십니까?”

바로 김유정역이 처음이라네요. 그리곤 잘 모르겠어요.

한 번 찾아봐야겠네요. 이러면서 공부하는 거죠. 뭘.

김유정은 참 안타까운 사람이데요. 글쎄 스물아홉 살에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으니까요. 친구인 필승이한테 보낸 편지가 가슴 절절하던데요. 죽기 열흘 전에 보낸 편지였어요.

닭을 열 마리 고아먹으면 살 것 같았나 봐요. 뱀탕도요.

그런데 먹지 못한 채 가버렸어요.

김유정의 글은 읽은 지 오래되어 전혀 기억에 없지만, 문학촌에 소개한 토막글들을 읽어보니 묘사가 끝내주던데요. 특히 새가 와서 앉고 날아가는 장면들은 새들이 표현한 것처럼 실감이 났지요.

아, 강원도 동백꽃은 생강나무라네요. 노란 꽃이 피는.

그런데 글쎄. 김유정이 꼭 고흐 같단 생각이 들지 뭐예요.

얼마나 가슴이 쓰렸을까 생각하니 눈물이 날 지경이었지요.

박록주에게 실연당하고, 박봉자에게도. 매일같이 쓴 혈서에 한 번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니! 그 마음이 오죽했겠어요.

예술인들이나 문학인들을 보면 왜 그리 모진 마음을 먹지 못하는지, 내 가슴이 아팠어요. 그 당시에도 여자들은 참 독할 정도로 현실적이었네요.

아, 김유정의 글의 배경은 작가가 살았던 실레마을을 중심으로 엮어진 게 많네요.

그러니까 실화도 많다는 거죠. 그래서 더욱 감칠맛이 나데요. 어릴 적 내 고향의 일들을 적어놓은 것 같았어요. 지주와 마름의 관계도 잘 나타나있고요. 심보 고약한 지주들이 많았잖아요. 꼭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실레마을은 추워서 그런지 집의 구조가 남쪽과는 사뭇 달랐지요. 중정식(中庭式)이라고 해야 하나요?

사각형으로 둘러쳐진 집 중앙에 정원이 있는 형식이지요. 정원 비슷한 크기의 하늘 구멍이 열렸다고 할까요. 하늘에서 내려다본다면 사각지붕 한가운데 보이는 네모가 바로 정원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요?

한 바퀴 둘러보고, 섭섭해서 또 한 번 둘러보고, 그리고 나오려는데 대문 옆에 몇 그루 소나무가 있었어요. 그 소나무에 알알이 맺힌 솔방울. 김유정의 한이 서리서리 맺힌 것 같아 왠지 아련했지요. 오죽이나 많이 열렸어야죠.

버스시간 급박하다고 ++가 재촉하는데 정말 떠나오기 싫었어요. 소설무대가 되었던 곳을 둘러보고 싶었죠. 그런데 글쎄, 등산복 차림의 대원들이 몽땅 내려오지 뭡니까? 이제까지의 아린 마음은 다 어디로 가버리고 오직 그 사람들이 부러워 죽을 뻔 했지요.

역시 나에게는 산이 최고나 봐요. 바로 앞산이 금병산이라네요. 후회막급. 아이젠과 등산화만 있으면 딱인데 말입니다. 그래도 그 길의 초입이라도 밟아보고 싶어 올라갔지 뭐에요. 눈길을 한참을 걷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후련해졌지요. 1시간가량 걸었으니 그걸로 만족했지요.

아쉬움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벌써 두 개의 산이 맘 한구석을 차지했네요. 오봉산과 금병산. 그때는 꼭 사진도 곁들일 거예요. 포토에세이를 꿈꿔 봐도 될까요?

김유정은 왜 이리 아쉬운지 모르겠어요. 지금 살았다면 백 살이 넘은 할아버지인데요. 제게는 언제고 스물아홉 살이겠죠?

10. 1. 24 김유정 문학촌을 다녀 온 날, 어젯밤 눈이 내려 하얀 날

우리 카페에 올린 글입니다.누구 보여줄 덴 없고 우리 회원들이나 부지런히 읽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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