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의 천국 - 송도해안 볼레길
오전10시, 남포역사를 나와 영도다리를 건넌다. 지금도 다리상판을 들어 올리는 도개교(跳開橋)영도다리에서 남항을 매운 어선들과 포구를 휘두른 상가건물들을 일별한다. 부산의 상징 갈매기를 형상화한 자갈치 공동어시장지붕이 날개 짓을 하고 있다. 암남만(岩南灣) 깊숙한 남항포구는 천혜의 어항이란 걸 남항대교를 거닐며 실감한다.
나는 오늘 송도볼레길 트레킹을 나서며 부러 영도대교와 남항대교를 도보로 건너고 싶었다. 남항대교에 올라서면 영도와 송도사이 해협인 암남만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고 아미`구덕산이 품은 남항만의 깊숙한 포구를 볼 수가 있어서다. 어선들은 남항대교 밑으로 들락거리고 덩치 큰 상선들은 암남만 먼 바다에 나무토막처럼 무수히 떠있다. 우리나라 제일의 묘박지(錨泊地)다.
묘박지엔 배가 빼곡 차야 항구는 흥청망청 활기가 찬다. 송도해수욕장에 들어섰다. 1913년, 일제에 의해 암남반도의 최남단에 우리나라 최초로 개장한 공설해수욕장이 전신이다. 해안의 거북섬에 소나무가 많아 송도라 불렀으며, 섬 안의 국마장(國馬場)에서 기른 말이 하도 빨리 달려 말 그림자가 끊어져 비치지 않는다고 해서 절영도(絶影島)라고도 했다.
거북섬과 연결된 바다 위의 구름산책로엔 늘 인파가 붐빈다. 길이 365m, 폭 2.3m의 구름다리 바닥은 일부 투명유리로 되어 스릴만점이다. 입구에는 거북섬을 스토리텔링화한 젊은 어부와 용왕의 딸 인룡(人龍)의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담은 청동조각상이 세워져 있다. 바다 위를 걷는 구름산책로는 송도해수욕장 백사장으로 연결된다. 한 여름철엔 수영복차림으로 구름산책을 하면서 체감하는 정취도 색다르리라.
구름산책로 위로는 케이블카가 하늘을 날고 밑에선 해녀들이 물질하느라 자맥질하는 정경은 압권이다. 송도해수욕장은 한가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수욕장으로 내 어릴 땐 해운대온천과 더불어 부산여행의 백미였다. 송도해수욕장에서 두도(頭島) 전망대까지의 해안절경과 울창한 숲길 이십 여리를 ‘송도해안 볼레길’이라 하는데 혼자 보기 아까워 “너도 보러올래”라는 말을 줄여 볼레길이라 이름 붙였단다.
잔잔한 바다는 바람 한 마장을 일깨워 물결 주름살을 만들고, 이내 성난 파도로 변해 해안의 거무스레한 현무암절애에 곤두박질치며 하얀 포말을 뿜어낸다. 그 포말바람이 숲을 흔들고 나의 몸뚱이를 휘돌면 일상은 씻은 듯 사라진다. 아! 상쾌하다. 저 해원의 무역선들은 무슨 꿍꿍이 속으로 꿈쩍도 안한 채 웅크리고 있을까? 하여도 항구사람들은 시꺼먼 상선들이 촘촘히 들어서길 기원한다.
국내 최대의 묘박지 옆으로는 영도가 학익진을 펴고 봉래산이 굽어보고 있다, 엊그젠 봉래산자락의 태종대를 얼쩡거렸었다. 영도의 봉래산과 송도의 장군`진정산은 바다를 내륙 깊숙이 끌어들여 천혜의 포구를 만들어 항도부산이 태어나게 했다. 송도는 화산활동과 퇴적지층으로 생긴 다양한 암석들로 ‘부산국가지질공원’이란 벼슬도 달았다.
검고 노랗고 희고 갈색의 층층 바위는 아름다운 ‘시루떡바위’란 애칭을 단다. 1억 전에 형성된 멋있는 해안절애의 볼레길이 보수공사로 출입금지였다. 이태 전에 시간에 쫓겨 수박 겉핥기 했던 해안볼레길은 오늘도 개구멍샛길로 멀리서 훔쳐보는 재미로 아쉬움을 달랬다. 암남공원에 들어섰다. 방파제엔 시간을 낚는 강태공들 차지가 되고 즐비한 맛집은 손님을 낚는 깃발이 펄럭댄다. 오늘은 어떤 조개구이를 내놓을까?
아미산의 남쪽, 아미골에서 유래 된 ‘암남’공원엔 천혜의 비경이 많다. 해안을 빙 휘두른 시루떡바위의 단애, 수많은 무역선들이 해조음에 졸고 있는 묘박지의 평온, 부드러운 해풍에 피톤치드 듬뿍 내뿜는 울창한 송림속에 일제는 동물전염병 예방을 위한 혈청소를 세웠고, 해안경비대가 주둔하며 출입통제지역이 됐다. 낚시꾼들의 뷰`포인트인 방파제와 즐비한 맛집들은 또 다른 진풍경이 됐다.
송림 속 벤치에 앉아 기갈을 때우며 피톤치드솔바람에 몸뚱이를 맡기니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솔잎을 수놓은 파란하늘 한쪽에 케이블카가 날아들고, 저 아래 소나무에 갈라진 바다엔 어선이 쫓기듯 달아난다. 자릴 털고 전망대와 용궁구름다리를 향한다. 용궁구름다리는 암남공원과 무인도인 동섬을 연결한 127.1m의 현수교다. 해상케이블카, 바다 위 산책로와 함께 해안볼레길의 3대보물이다.
동섬엔 용이 살았다고 전하는 용굴, 사람의 콧구멍처럼 생긴 두 개의 굴이 나란한 쌍 굴을 비롯 10여 개의 해식동굴이 있는 보고다. 전망대에서 두도를 잇는 해안가 숲길은 진종일 소요하고픈 트레킹의 천국이다. 원시림속의 퇴적암 길은 발 지압까지 거들고, 100여종의 야생화와 370여종의 식물이 퍼레이드 하듯 숲 터널을 이루며 자생하는 원시자연숲길은 꿈길이라! 걷고 싶은 해안볼레길! 나만 보기 아까워 그대에게 강추하고프다.
몇 십 년간 어지간히 산길을 걸었지만 송도 해안볼레길의 정취는 독보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두도(頭島)전망대에 섰다.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원시 섬의 면적은 1만9080㎡이다. 공룡알과 뼈, 나무중치 화석, 소철나무의 나무줄기 화석, 피부비늘 화석 등이 발견된 무인도는 해안절벽과 해식동굴이 발달해 있는 금단의 섬이다. 근년까지 낚시꾼들이 출입했나 싶게 돌무더기 징검다리가 있다.
무인등대 섬은 부산지방해운항만청에서 관리하고 있단다. 두도는 영원히 출입금지 섬으로 남기를 기원해 본다. 재갈매기와 괭이갈매기가 새끼를 치고 민물가마우지와 해오라기가 철마다 찾아오는 바닷새들의 보금자리인 서식지를 원시 그대로 보전하자. 널찍한 전망대 숲에서 망원경으로 놈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는 죄인(?)이고 싶다. 놈들의 사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 죄인을 송도 해안볼레길은 손님으로 환영할 테다. 2022.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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